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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층 빌라를 리모델링한 건축가 김승욱“우리 가족의 역사를 기록하는 공간”

On October 13, 2013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나이 들고, 변화를 추구하는 공간. 건축가 김승욱이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집이다.

▲ (왼쪽)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2층 거실. 이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다.
▲ (오른쪽)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철제 원형 계단과 합판으로 마감된 벽면이 독특한 질감으로 재미를 준다.

▲ 문을 달지 않고 가벽으로만 구분한 2층의 공부방. 박공지붕의 유니크한 분위기가 소녀 감성과 어울린다.

▲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철제 원형 계단과 합판으로 마감된 벽면이 독특한 질감으로 재미를 준다.

▲ (왼쪽) 오피스pha의 김승욱 소장.
▲ (오른쪽) 1층 거실에서 바라본 부엌 공간. 계단을 중심으로 부엌과 방, 거실이 나뉘는 특이한 구조다.


서래마을은 주한 프랑스인들이 모여 사는 외국인 마을답게 특유의 여유롭고 유니크한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강남의 도시 같지 않은 호젓함이 느껴지는 건 건축법상 5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어 키는 작지만 다양한 건물들이 들어선 덕분이다.
건축가 김승욱 소장이 6년 전 매입한 서래마을의 빌라는 전용면적 25평의 작은 규모로 기존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였다. 뉴욕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후 수없이 많은 이사를 다녀야 했던 김 소장. 찍어내듯 똑같은 모습의 아파트에 서서히 익숙해지던 차에 이 복층 빌라를 보는 순간, 건축가로서의 감성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오래 고민하지 않고 이 집을 매입한 후 2008년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오래된 빌라에 건축가의 손이 닿으면

김 소장이 살고 있는 빌라는 맨 위층에 한해 약 15평의 복층 공간을 쓸 수 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원형 계단은 그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사 당시 아이들의 나이는 여덟 살과 한 살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쑥쑥 자랄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날다람쥐처럼 계단을 오르내리고, 2층의 작은 정원에서 햇볕을 쬐기도 하며,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로 아담한 집을 가득 채우는 풍경이 한순간에 그려졌다. 펜션, 레스토랑 등 상업 공간 설계를 주로 진행해오던 그에게 주택 리모델링을 처음 시도해본 계기가 되었다.

“20년이 넘은 오래된 빌라예요. 전해 듣기로는 10년 전에 탤런트 이휘향 씨가 살던 집이라더군요. 우리가 막 이사했을 때까지 10년 전 인테리어가 남아 있었는데 무척이나 낡은 상태였어요. 그런데도 왠지 집이 마음에 들었어요.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바꿔야겠다는 그림이 한 번에 그려지더군요.”
직접 시공을 하고 사무소에 있는 자재들을 사용하면서 약 3천만원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건축가가 인테리어를 하면 어떤 점이 달라질까?

“건축 설계와 인테리어는 디자인을 한다는 면에서 비슷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건축은 땅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건축물이 들어서는 데 필요한 구조, 전기, 통신, 기계, 토목, 소방 등을 다 조율하면서 디자인을 하다 보니 할 일이 참 많죠. 그런 시각이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할 때도 반영되더군요. 게다가 저희 가족들이 살 집이니까요. 트렌디한 인테리어보다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접근했어요.”

네 가족이 살 집이기에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했다. 작은 면적임에도 방 3개가 배치되어 있던 1층의 경우 방 하나를 터서 컴퓨터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작은 응접실로 변모시켰다. TV는 들이지 않고 책장만 두었다. 비록 거실로 기능하기에는 좁지만 간단하게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공간이다.
2층은 박공지붕이지만 의외로 층고가 높아 숨은 공간을 활용하기가 좋았다. 천장이 뚫려 있는 좁은 베란다를 작은 정원으로 꾸미고 그 앞에 소파를 두어 거실로 꾸몄다.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는 탁 트인 공간이다. 한편에 위치한 작은 방은 일부러 경계를 두지 않고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덕분에 15평도 안 되는 작은 면적이 시원하게 보인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기 때문에 좌우, 위아래가 모두 통하고 접근성이 좋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2층 거실에서 TV를 틀면 아래층에 그대로 들릴 정도예요. 바이올린 소리는 아주 멋지게 집 전체에 울려 퍼지죠. 부엌에 있든 2층에 있든 어디서나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소음이 반드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적절한 소음은 오히려 ‘이곳이 우리 집’이라는 안정감을 주기도 하거든요.”

사람과 함께 나이 들고 변해가는 집

제주도 풀빌라 루온토, 강화도 펜션 혜윰, 반포 샤이바나 레스토랑, 이태원 레스토랑 봉에보&갤러리 jk space, 포천 수입리 골프 빌리지 등 다양한 상업 공간을 작업해온 김승욱 소장. 그의 건축 철학은 단순히 건축 설계에 그치지 않고 건축 재료, 구축 방식, 디테일 등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세심하게 챙기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상업 공간이 아닌 일반 주택, 그것도 자신과 가족들이 가능한 한 오래 살아야 할 집을 리모델링하는 것은 무척 새로운 경험이었다.

“상업 공간의 특징은 단기적이고 우연적인데 반해 주택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입니다. 상업 공간이 각자의 목적에 맞게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면, 일반 주택은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시간이 묻어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즉, 주인의 성격과 취향에 맞게 계속 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디자인이 우선이기 때문에 건축주와의 소통은 필수죠.”

이 집의 또 다른 건축주는 김 소장의 아내인 이혜미 씨다. 미술학도답게 집 안을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예상 외로 리모델링 작업 당시 아내의 요구는 단 하나였다고. ‘집 안 전체를 화이트 톤으로 통일시켜줄 것’.
“아내가 화이트를 원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도화지 같은 집’을 원했기 때문이에요. 1, 2년 살 집도 아니고, 오랜 시간 이 집에서 살면서 하나씩 색깔을 채워나가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그에 대해서는 저도 물론 100% 동감했습니다. 우리 삶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때그때 욕구에 맞게, 상황에 맞게 변화를 줄 수 있는 집 말이에요.”

그렇게 부부가 원하는 집이 완성되었을 때, 처음 집을 방문한 양가 어른들의 반응은 “무슨 집을 짓다 말았냐”는 거였다. 천장은 금방 뜯어낸 것처럼 울퉁불퉁하고, 일부 마감은 공사장에서 그대로 가지고 온 듯한 합판으로 되어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샅샅이 살펴보면 허투루 방치된 자투리 공간이 하나도 없는 알짜배기 공간이다. 손쉽게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도 일상을 재미있게 만들어주었다. 쉽게 못을 박을 수 있는 합판 벽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바꿔가며 단다. 가끔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이면 하얗던 한쪽 벽이 퇴근 후 강렬한 붉은색으로 탈바꿈되어 있기도 한다.

▲ (왼쪽) 응접실로 쓰고 있는 1층 거실은 책장과 컴퓨터, 의자를 두어 모든 가족이 오가며 사용할 수 있게 했다.
▲ (오른쪽) 막내 도현이와 첫째 딸 시윤이와 함께.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도 공간 구성의 중요한 변수죠. 딸아이가 이제 중학교 2학년인데, 동생과 같이 작은 방을 쓰고 있거든요. 현재 응접실로 쓰고 있는 1층 거실 공간을 막아 따로 방을 만들어주려고 해요.”
여덟 살이었던 딸 시윤이는 벌써 열다섯 살 사춘기 소녀가 되었고, 갓난아기였던 도현이도 어느새 자라 올해 어엿한 초등학생이 됐다. 하루하루 성장하는 아이들과 함께 집도 그렇게 조금씩 나이 들고 변해가는 중이다.

건축, 내 삶의 행복을 위한 진지한 고민

미국의 명문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한 김승욱 소장은 수동적이고 도식적인 건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졸업 후에는 미국의 유명 건축가 그룹인 ‘NEW YORK 5’ 중 한 사람, 찰스 과스메이(Charles Gwathmey)의 작업실에서 일하며 모더니즘적 형태와 재료의 실험을 통한 다양한 경험을 쌓기도 했다. 건축학도로서는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그도 한국에서 건축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녹록지는 않았다고.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어 고생했죠. 미국에서도 건축가는 박봉이고 힘든 직업이에요. 그보다 힘든 것은 건축가에 대한 시선이었습니다. ‘건축 또한 문화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없는 건축주를 자주 만나면서 실망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얼마 전 건축가 고 정기용 선생의 전시회에 갔다가 한국의 건축 환경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어요.”
인구에 비해 땅덩어리가 좁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땅값이 비쌀 수밖에 없는데, 산업화를 거치면서 부동산 투기로 인해 그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었다는 것. 즉, 대지에 지불하는 비용이 워낙 비싸다 보니 건물을 지어 올리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그에 따라 중요성도 격하되어 온 것이 오늘날의 건축 문화를 만든 것이다.

“외국의 경우 대지 가격은 건축 비용의 1/4밖에 안 되거든요. 그만큼 땅값이 저렴하다는 의미도 되고 건축에 많은 투자를 한다는 의미도 되겠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대예요. 대지 비용만 전체의 70~80%니까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용적률이 높은 공동 주택이 가장 대표적인 주거 문화로 자리 잡게 된 것 같아요.”
김 소장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아파트 문화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고 한다. 아름다운 조경은 물론 스포츠 등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동시설도 손색이 없다. 예전에는 재산 증식 목적으로 아파트에 접근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이제는 아파트에서도 충분히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주거 문화에 대한 욕구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잖아요. 얼마 전의 땅콩주택 열풍도 내 마음대로 공간을 꾸밀 수 있는 단독주택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 것이라고 봐요. 그만큼 저희 건축가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 소장은 최근 소형 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다양한 주거에 대한 열망을 담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시공 방법이라든지, 주택 하자에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개선안은 물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건강한 집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공간에 몸담게 되죠. 그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이 그냥 잠만 자는 곳이라면 삶이 얼마나 우울하겠어요. 지금 사는 집에 대한 고민, 앞으로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열망 모두 더 나은 삶에 다가가기 위한 작은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왼쪽) 가족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방 식탁. 부엌, 방, 거실, 계단과 이어지는 집의 중심이다.
▲ (오른쪽)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만큼 주방 설계에 많은 신경을 썼다. 양쪽에 설비가 마련되어 효율적인 동선을 자랑한다.

▲ (왼쪽) 아내 이혜미 씨가 일본 여행 중 구입했다는 작은 그림은 합판 벽에 가볍게 걸려 있다.
▲ (오른쪽) 2층 베란다에 천창이 나 있어 햇볕이 잘 들어온다. 작은 화분으로 미니 정원을 꾸몄다.

▲ 깔끔한 화이트의 장점이 돋보이는 욕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나이 들고, 변화를 추구하는 공간. 건축가 김승욱이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집이다.

CREDIT INFO

취재
홍유진(프리랜서)
사진
이봉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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