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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정신과 전문의 이호분 원장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위로이자 애도예요”

어제와 같은 일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미세하게 금이 간 것 같고,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는데도 괜찮지 않다. 무엇을 믿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긴 깊은 상처다. 한 달 동안 우리는 현실이 복마전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아이들과 함께 희망도 침몰했음을 자각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지금 이 순간의 슬픔부터 바로 보자.

기획
남현욱 기자
사진
이주현(이미지), 김진섭(인물)
2014.06.20

차갑고 어두운 물속에서 애타게 엄마와 아빠를 외쳤을 아이들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난다. 뉴스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불쑥 울화가 치민다. 아이 상담을 위해 소아정신과 진료실을 찾은 엄마들은 전문의를 붙잡고 되레 자신의 이상 증상을 호소한다. 

아이와 손잡고 길을 걷다가 교복 입은 학생들만 봐도 미안한 마음이 들고, 이 땅에서 과연 내 아이를 무사히 키울 수 있을지 불안하단다.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그동안 엄마들에게 자녀 교육에 관한 노하우를 전해온 소아정신과 전문의 이호분 원장은 요즘 이런 엄마들을 자주 만난다.

전 국민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사건이었지만 그중 엄마들의 연민과 감정 이입은 특히 더 컸다. 엄마들은 아이를 키운다는 공통분모만으로도 마치 내 아이를 잃은 듯 슬퍼했다. 

사고 현장을 생중계로 접할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오히려 웃고 떠들며 일상생활을 한다는 게 미안했다.

“엄마들이 이상한 게 아니에요. 어른이라면 누구나 그런 기분이 들었을 거예요.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크기 때문이죠. 움직이지 말고 배 안에 있으라는 어른들의 잘못된 지시가 이번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이니까요. 아이들을 먼저 챙기기보다 제 목숨부터 구한 선장 역시 어른이고요. 

같은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고 미안하기 때문에 이전의 그 어떤 사건들보다도 슬픔과 죄책감이 크고 오래갈 겁니다. 게다가 배가 침몰하는 전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봤잖아요. 아침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모두 구출할 것 같았는데 어느새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사라졌어요. 거기에서 오는 허탈함과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죠.”

이 원장은 이번 사고와 같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때는 슬픔을 애써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슬픔에 푹 젖어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슬픔을 부정적이고 나약한 감정이라고 생각해 되도록 표현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거나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은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까지 여긴다. 하지만 이 원장은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말한다.

슬픔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소중한 감정일 뿐더러 이를 느꼈을 때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면 자칫 감정이 억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억압된 감정은 언제고 다시 되살아날 수 있으므로 충분히 슬퍼하고 스스로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몸과 마음에 후유증이 남지 않는다.

슬픔에 빠진 엄마들을 위하여
“자식을 잃은 엄마도 있는데 슬프다고 우는소리를 해도 될까 싶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미안한 기분이 들죠. 하지만 사건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번 일은 분명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어요. 

우선 주변 사람들과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속상하거나 우울한 감정일수록 되도록 말로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실제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환자 중 대부분이 ‘우울하다’는 말 대신 가슴이 답답하다거나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해요.

자신이 우울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데다 그런 감정을 제때 표출하지 못해 신체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거죠. 이번에 받은 심리적 충격 때문에 실제 몸이 아픈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분향소를 찾거나 직접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등 행동으로 슬픔을 표출하는 것도 방법이다. 무기력한 기분 탓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는 몸을 움직이는 편이 좋다. 이 원장은 일상으로 돌아와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는 것도 일종의 애도라고 말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엄마들이 내 아이도 마냥 안전할 수만은 없다는 불안을 느꼈을 거예요. 지금과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결코 이번 일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사고 관련 기사만 찾아보거나 텔레비전으로 본 슬픈 장면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등 사건 자체를 기억하고 있으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사람들의 의식부터 달라져야 하고,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겠죠.”

희생자 가족과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내는 것,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는 것,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본인 투표를 하는 것 등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해보고 행동에 옮기는 노력 말이다. 

그렇게 엄마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고, 찾다 보면 그저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아이에게도 슬픔을 알려준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 앞에서는 이번 사고와 관련된 이야기를 일부러 피한다. 어쩌다 텔레비전이라도 같이 보게 됐을 때는 아이가 혹여 무슨 질문이라도 할까 봐 덜컥 겁이 난다고 말한다. 

어디서부터 얼마나 말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린아이를 둔 부모일수록 굳이 아이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원장은 아이에게도 슬픔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감정 표현 방식을 고스란히 학습합니다. 엄마부터 충분히 슬픈 감정을 느끼고 후에 건강한 방식으로 슬픔을 추스르는 것이 그래서 더 중요하죠.

슬퍼할 일이 생겼을 때 엄마가 숨기려 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슬퍼하면 아이 역시 엄마와 같은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아이 앞이라 해도 되도록 엄마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세요. 이때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주면 도움이 됩니다.”

가령 아이와 함께 사고 소식을 접했다면 우선 바다에서 갑자기 배가 고장 나는 바람에 배 안에 사람들이 갇혔다고 설명해준다. 그다음 차갑고 캄캄한 물속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무섭고 추울지 걱정이 돼서 몹시 슬프다고 말해주면 된다. 

아이 앞이라고 해서 애써 눈물을 참거나 숨길 필요는 없다는 게 이 원장의 조언. 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두고 아이에게도 보여주는 것이 좋다. 이때도 엄마가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말해줘 그 감정까지도 아이와 공유한다.

단, 감정은 솔직하게 표현하되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세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아도 된다. 아이가 자칫 어른들이나 세상에 불신을 가질 수 있으므로 근거 없는 소문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배가 물에 잠기는 큰 사고가 났지만 잠수부나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언니, 오빠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줘 아이를 안심시켜주자. 

만약 아이가 사고 소식을 접한 후에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인다면 충분히 달래주는 태도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이와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던 중에 아이가 물에 빠질까 봐 걱정된다고 말한다면 세상에는 안전하고 튼튼한 것이 훨씬 더 많고, 네 옆에는 항상 엄마가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며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게 해줄 것.

아이의 공감 능력을 키워주는 법
이번 사건 이후 진료실을 찾은 엄마들 중 부쩍 아이의 공감 능력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작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생존자를 기다리는 중에 10대들이 장난삼아 올린 SNS. 

실종자 가족이 붙잡고 있는 일말의 희망과 그걸 지켜보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마치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이 행동하는 태도에 모두가 놀랐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공감 능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이 원장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태도는 무척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감 능력은 도덕성 발달과 사회성의 기초가 되는데 무엇보다 이는 가르치거나 학습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은 어려서부터 엄마가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고 반응해준 경험을 통해 아이 스스로 익히는 거예요. 평소 아이의 마음을 자주 읽어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단, 마음을 읽어준다는 말을 단순히 아이의 칭얼거림이나 떼쓰는 행동을 받아주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친구와 다퉜을 때도,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도 그저 우는 행위로만 감정을 표현한다. 친구와 다퉜을 때는 속상한 감정이 들고,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드는 감정은 슬픔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일러주는 것이 바로 마음을 읽어주는 일이다. 

그다음 아이의 기분이 어떤지 아이의 입장에서 공감해줘야 한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단어로 분명하게 이야기해줄수록 아이는 폭넓은 감정을 경험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감정도 공감하게 된다.

단순히 남의 일, 남의 슬픔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속상해하고 안타까워할 줄 알게 하려면 아이와 함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00는 캄캄한 곳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 배에 갇힌 언니, 오빠들도 정말 무섭지 않았을까?”라고 말을 건네보는 식이다.

남아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많은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누군가는 아이의 손을 잡고 분향소를 찾고, 누군가는 아이와 함께 집 안에 노란색 리본을 매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을 터이다. 눈앞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이처럼 감사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했다면 이제 우리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어제보다 오늘 더 아이를 꽉 안아주자. 그리고 안전한 세상에서 아이가 마음 놓고 자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자.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위로이자 애도가 아닐까. 


Profile 이호분 원장은요…
연세누리 소아정신과 원장. 소아정신과 전문의이자 소아 전문 상담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녀 교육과 소아 심리에 관한 정보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 <내 아이의 평생 습관 미운 일곱 살에 끝내라>, <차라리 자녀를 사랑하지 마라>가 있다.

어제와 같은 일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미세하게 금이 간 것 같고,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는데도 괜찮지 않다. 무엇을 믿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긴 깊은 상처다. 한 달 동안 우리는 현실이 복마전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아이들과 함께 희망도 침몰했음을 자각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지금 이 순간의 슬픔부터 바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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