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EATURE MORE+

그리하여 세상 모든 젊은 것들을 찬양함

그 글의 심상을 눈여겨보고 있는, 모 매체의 에디터 한 명이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한 바 있다. “지금부터 속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을, 마감을 코앞에 둔 세상 모든 에디터들을 위하여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틀겠나이다.”

UpdatedOn January 28, 2013

그 글의 심상을 눈여겨보고 있는, 모 매체의 에디터 한 명이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한 바 있다. “지금부터 속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을, 마감을 코앞에 둔 세상 모든 에디터들을 위하여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틀겠나이다.”
당연히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 단독 표기한 이유는 바흐 때문이 아니라, 글렌 굴드 때문일 것이다. 일찍이 알렉산더 슈나이더가 “살짝 미치기는 했지만 피아노만큼은 당대 최고”라 극찬한 바 있는, 샴페인 파티장에 말쑥한 턱시도를 갖춰 입고 2대8 가르마를 완벽히 빗어 넘긴 채 나타날지언정 털이 보송보송한 두툼한 장갑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콘서트 투어를 죽기보다 싫어하고 손가락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괴짜’라는 별명이 떠돌아다녀도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그 글렌 굴드가 뉴욕 이스트 30번가의 낡은 건물에서 전설적인 ‘굴’드베르크 변주곡을 초연했을 때 그의 나이 고작 스물셋이었다.   

때마침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가 내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김에 몇 개월 동안 읽을까 말까 묵혀두었던 <저스트 키즈>를 꺼내 들었다. 그녀가 솔메이트(서로의 감성과 영감을 충만케 하는 관계라는 이 케케묵은 단어에 딱 맞는 사례는 20세기 들어서는 이 커플만이 유일할 것이다. 굳이 역사 속에서 찾아보자면 고흐와 그 동생 테오 정도?)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1960년대와 1970년대 뉴욕이라는 냉랭하면서도 낭만적인, 참혹하지만 뭉클한 역사적 현장을 관통하며 겪어낸 생생한 시적 언어의 기록.
비트족 샌들과 양가죽 조끼를 입고 누더기 스카프를 걸친 채 광장에 울려 퍼지는 포크송 가수들의 노래와 반전 데모의 행렬과 “저들은 예술가가 아니라 그저 애들일 뿐이야”라고 조소하는 노인들 사이에서 외롭지만 뭉클하게 손에 깍지를 낀 채 서 있던 이 커플.
디에고 리베라의 도록, 잭슨 폴록에 대한 비평집,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와 경험의 노래> 복사본,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고이 간직해온 아르튀르 랭보의 시집, 그리고 영화 <보니 앤 클라이드>의 포스터만 덜렁 놓여 있을 뿐인 허름한 뉴욕의 뒷골목 그 어디쯤.
이 젊은 예술가 커플은 그 온기 하나 없이 차디찬 공간들 사이로 울려 퍼지는 존 콜트레인의 ‘러브 수프림’과 조앤 바에즈, 밥 딜런의 ‘블론드 온 블론드’와 엘리노어 스테버의 ‘마담 버터플라이’를 들으며 초라하면서도 위대한 20대 초반을 흘려보냈던 것이다.

그 즈음 보도가 꽝꽝 얼어 거니는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고요한 일요일 오전, 충무로의 허름한 뒷골목을 걸어 대한극장 한쪽에 자리 잡은 채 조용히 <레미제라블>을 보았다. 참혹할 정도로 추운 날이었고, 커플 하나 나타나지 않는 냉혹한 공간이었으며, 예술적 낭만 따윈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는 삭막한 날이었건만 상관없이 <레미제라블>을 보았다.
물론 집단적 힐링 따윈 경험하지도 못했고, 가끔 울컥하기는 하였으나 펑펑 눈물을 쏟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노래하는 앤 해서웨이는 지독하리만큼 아릿하게 예뻤지만. 그나저나 그래서 어쨌다고? 코맥 매카시의 언명은 진즉 틀렸다는 걸 그리도 몰랐나?
그 즈음 너무나 투명해 시퍼런 핏줄 하나하나가 그대로 눈에 들어와 박힐 정도로 곱상하면서도 초췌한, 전형적인 프랑스식 외양을 띤 한 젊은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혀만 끌끌 찼다. 저 세상사에 둔감한 도련님이 ‘비참한 사람들’에 대해 무엇을 알까. 과연 지금 발화하고 있는 저 과잉된 언어의 속뜻을 10%라도 이해하고 있을까.
그런데 결국 눈물이 났다. 파리 시민들이 문과 창문을 닫아건 채 외면하고,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정부군이 대포를 쏘아대며,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기적인 내면 속으로 깊이 침잠해버렸을 때 그 청년은 프랑스 국기를 휘감은 채 기꺼이 창문 밖으로 거꾸로 나가 떨어졌다. 그리하여 인류사에 남을 위대한 프랑스 공화국은 그 새파랗게 질린 겁 많은 청년의 시행착오와 과잉과 용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다시금 말하지만, 세상 모든 젊은 것들을 찬양함. 마음으로. 깊숙한 마음으로.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디지털 매거진

MOST POPULAR

  • 1
    스무살의 NCT DREAM
  • 2
    가짜사나이들의 진심 미리보기
  • 3
    레트로 키워드
  • 4
    철학과 취향을 담은 한 잔: 이기훈
  • 5
    NO SIGNAL

RELATED STORIES

  • FEATURE

    지옥에서 누가 살아남을까?

    전 세계에 전염병이 퍼지고, 시위가 발생해도 공은 굴러간다. 안 열릴 것만 같았던 챔피언스리그가 시작된다. 32강 조 추첨은 마무리됐고, 죽음의 조가 두 개나 나왔다. 그중 가장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H조에는 황희찬의 소속팀 RB 라이프치히가 속해 있어 국내 팬들의 관심이 쏠린다. 또 다른 죽음의 구렁텅이인 D조도 흥미로운 대진이다. H조와 D조에서 살아남을 팀은 누구인가.

  • FEATURE

    키카와 댄의 요트 라이프

    목적지가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은 여행 그 자체다. 바람에 의지해 세계를 항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람이 요트를 어디로 이끌지, 무엇을 발견하게 될진 아무도 모르지만 그런 것도 중요치 않다. 눈부신 밤하늘의 별들을 만나고, 망망대해에서 서로만의 존재를 느끼고, 투명한 바다에 뛰어들거나, 돌고래와 유영하며 살아가는 삶. 요트를 집 삼아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자유에 대해 말한다.

  • FEATURE

    루이지 베를렌디스의 요트 라이프

    목적지가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은 여행 그 자체다. 바람에 의지해 세계를 항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람이 요트를 어디로 이끌지, 무엇을 발견하게 될진 아무도 모르지만 그런 것도 중요치 않다. 눈부신 밤하늘의 별들을 만나고, 망망대해에서 서로만의 존재를 느끼고, 투명한 바다에 뛰어들거나, 돌고래와 유영하며 살아가는 삶. 요트를 집 삼아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자유에 대해 말한다.

  • FEATURE

    엘레이와 라일리의 요트 라이프

    목적지가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은 여행 그 자체다. 바람에 의지해 세계를 항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람이 요트를 어디로 이끌지, 무엇을 발견하게 될진 아무도 모르지만 그런 것도 중요치 않다. 눈부신 밤하늘의 별들을 만나고, 망망대해에서 서로만의 존재를 느끼고, 투명한 바다에 뛰어들거나, 돌고래와 유영하며 살아가는 삶. 요트를 집 삼아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자유에 대해 말한다.

  • FEATURE

    그레타와 마이클의 요트 라이프

    목적지가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은 여행 그 자체다. 바람에 의지해 세계를 항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람이 요트를 어디로 이끌지, 무엇을 발견하게 될진 아무도 모르지만 그런 것도 중요치 않다. 눈부신 밤하늘의 별들을 만나고, 망망대해에서 서로만의 존재를 느끼고, 투명한 바다에 뛰어들거나, 돌고래와 유영하며 살아가는 삶. 요트를 집 삼아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자유에 대해 말한다.

MORE FROM ARENA

  • FEATURE

    콘텐츠가 된 보도자료

  • INTERVIEW

    환상특급 하성운 미리보기

    하성운, 화보 장인의 내공 폭발

  • CAR

    저 바다를 향해

    마세라티는 시대를 따른다. 2020년식 콰트로포르테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시대에 맞춰 변화를 시도했다.

  • INTERVIEW

    가짜사나이들의 진심

    지난여름 <가짜사나이>는 유튜브를 뒤흔들었다. 교관들은 진심을 다해 소리쳤고, 백만 유튜버 교육생들은 유튜버가 아닌 진짜 자신을 드러냈다. 진정성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응원의 댓글이 이어졌다. 제목 빼고 모든 게 진실인 <가짜사나이>. 교관으로 출연한 로건, 에이전트 H, 야전삽 짱재를 만났다. 그들 역시 진심뿐인 사나이들이었다.

  • FASHION

    팬데믹 시대의 패션위크: Digital Presentation

    2021 S/S 디지털 패션위크는 앞으로 패션 시장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어떻게 변하는지를 점쳐볼 수 있는 초석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 런웨이를 생중계하는 것부터, 영상미가 돋보이는 패션 필름을 보여주거나, 새로운 형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등 브랜드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창의적인 패션위크를 전개했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