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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많은 유부남 에디터로 살아가기

5개의 문신을 가진 덩치 큰 스킨헤드. 에디터란 직업을 가진 건실한 가장.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나란 남자.

UpdatedOn June 28, 2011



사람들이 패션 에디터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에 대해 갖는 선입견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한낮에 테라스에서 식전주로 샴페인을 마시고, 후세인 살라얀이나 다미르 도마의 옷을 즐겨 입으며, 마른 듯 근육이 알맞게 붙은 몸에 독특한 헤어스타일, 게이인지 이성애자인지 알 순 없지만 친한 여성과 인사로 가벼운 포옹을 나누는 남자. 그러나 나는 햄버거에 맥주를 즐겨 마시고, 랄프 로렌과 브룩스 브라더스의 신봉자이며, 큰 덩치에 지방이 골고루 붙은, 완전한 스킨헤드 유부남이다. 그리고 이건 내 문신에 관한 이야기다.


내 몸엔 문신이 모두 5개 있다. 내게 피치 못할 사연이 있는 문신은 스무 살 때 한 첫 번째 문신뿐이다. 아니, 그건 사연이라기보다는 결심에 더 가까웠다. 어깨에 50원짜리만 한 큰 점을 갖고 태어난 나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 점을 빼기는 꽤 어려워 보였고, 문신으로 덮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사춘기부터 좋아하던 뮤지션의 영향도 있었다. 게다가 난 당시 헤비메탈 밴드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건 어린 내게 문신을 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몇 달 동안 고민해 직접 도안을 하고, 당대 최고의 타투이스트를 찾아갔다. 두 달 동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몽땅 털어 넣어 왼쪽 어깨에 ‘말(馬)’을 새겼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 별명이었기 때문에 나름 이니셜인 셈이었다. 말의 갈기는 트라이벌로 표현했다. 10년 전에는 트라이벌 타투가 가장 트렌디했으므로.


이듬해 군에 입대했다. 예상대로 입대 초엔 문신이 군 생활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선임병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 ‘너 같은 놈들은 초장에 잡아야 돼’라는 식의 논리였다. 그리고 얼마 뒤, 내게 문신을 시술해준 타투이스트가 구속됐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다. 그녀에게 시술을 받은 사람들이 병역을 기피한 것이 문제였다. 큰 사회 이슈가 되었고, 홍대 앞과 대학로 등지에서는 타투 합법을 위한 집회가 열렸다. 당시 전경이었던 나는 부대에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너도 병역 기피하려고 문신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난 신체검사를 받고 난 뒤에 문신을 했던 터라 더 억울했다. 그것도 자랑스러운 1급 판정을 받았었다.


제대하고 난 뒤에는 1년 간격으로 문신을 하나씩 더 했다. 두 번째 문신은 가슴 정중앙에 가톨릭의 오랜 문장(紋章)인 ‘세이크리드 하트(Sacred Heart)’를 올드 스쿨 스타일로 한 것이었다. 세 번째는 모델 하이디 클룸의 남편인 싱어 실(Seal)의 유명한 누드 사진에 날개를 달아 오른쪽 어깨에 새긴 것이었으며, 네 번째는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던 시기에 쓰던 내 문장(紋章)을 등에 그려 넣은 것이었다.


내 아내의 몸에는 문신이 없다. 내가 문신을 더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4개의 문신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다. 물론 처가 어른들께는 비밀이었다. 어른들께서는 지금이야 가족이 된 나를 사랑으로 감싸주시지만 처음엔 내가 스킨헤드인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으셨던 터라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웠다. 최근 들어 오른쪽 전완(前腕)에 문신을 하고 싶었다. 허락해주시면 그동안 감춰두었던 문신에 대해 알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처가에 살짝 운을 띄워보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걔는 삭발에 덩치도 큰 애가 조폭처럼 보이려고 왜 그런다니’였다. 당연히 예상했던 결과라 얼른 마음을 접었다. 나 역시 사랑받고 싶은 사위에 불과하니까. 나의 아버지도 자식이 문신을 여러 개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직후에는 무려 한 달간 대화를 전혀 하지 않으셨으니 당연했다.


문신을 한 에디터들은 꽤 많은 편이다. 우리 사무실에만 나 말고 두 명이나 더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느낌의 문신을 한 에디터는 거의 없다. 프레야 베하나 콜 모어의 몸에 새겨진 것 같은 작은 레터링이나 스케치 선으로 그린 도안이 대부분이다. 많은 패션 에디터들은 무이나 분더샵 맨에서 이브 생 로랑과 발맹이 만들어낸 실험적인 옷을 즐겨 입지만, 난 샌프란시스코 마켓과 에르메네질도 제냐에서 파는 단순하고 남성적인 옷을 더 좋아한다. 진보를 추구하는 옷에는 진보적인 문신이, 전통을 추구하는 옷에는 전통적인 문신이 더 잘 어울린다. 대부분 사람들은 실제로 옷 입는 스타일과 문신의 장르가 일치한다. 몇 해 전 스콧 슈먼의 블로그에서 스타일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남자의 사진을 보았다. 그 남자는 샤를마뉴 대제를 연상시키는 수염을 기르고, 반쯤 벗겨진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넘겼으며, 마크 헌트만큼이나 두터운 몸에 회색 수트와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레지멘털 타이를 맨 차림이었다. 그러나 그 멋진 옷보다 더욱 눈에 띄었던 건 남자의 손가락에 새겨진 올드 스쿨 레터링 타투였다. 지나치게 멋내지 않아 사람이 더욱 돋보이는 스타일링도 굉장히 완성도 있었지만, 클래식한 옷차림에 어우러진 손가락 문신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최근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니만 마커스 그룹의 남성복 디렉터인 닉 우스터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도 군살이 전혀 없는 근육질 몸 전체를 총천연색의 뉴 스쿨 타투로 뒤덮었다. 클래식한 옷을 화려한 색감으로 개성 있게 재해석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왜 뉴 스쿨 타투를 선택했는지 알 수 있다.


며칠 전에 다섯 번째 문신을 하기 전까지 난 옷을 벗었을 때 드러나는 문신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이제 옷을 입은 상태에서 보이는 문신에 관심이 생겨 제2의 ‘문신 인생’을 개막하기로 했다. 물론 처가의 눈이 두려운지라 너무 드러나는 곳은 피했다. 영감의 원천은 앞서 말한 두 명의 남자들이었다. 이번에 가슴 제일 윗부분에 새긴 문신은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었을 때 살짝 보이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그동안 내 가슴에 있는 문신 윗부분이 셔츠 단추를 풀었을 때 꼭 시퍼런 멍같이 보여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아내도 이러한 사실에 공감했고, 반소매 티셔츠만 한 장 걸쳐도 문신이 드러나지 않기에 허락해주었다. 클래식한 필기체로 새긴 ‘카일룸(Caelum)’이란 단어는 라틴어로 ‘하늘’이라는 뜻인데, 사실 의미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그냥 ‘괜찮은 뜻’을 지닌 단어 중에서 고른 것이다. 다만 도안은 신중했다. 풀어 헤친 드레스 셔츠와 어울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나의 문신에 대한 철학은 간단 명료하다. 다다익선(多多益善). 멀쩡한 사람의 코와 유방에 실리콘 덩어리를 집어넣는 요지경 세상일진대 상고시대부터 존재해온 입묵(入墨)쯤이야 색안경 끼고 바라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문신에 대해 지나치게 신중할 필요는 없다’는 주의다. 신중해봤자 어차피 그때뿐이다. 철없는 시절에 바늘로 한 땀 한 땀 떠 넣은 핸드메이드 문신이 있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랴. 실력 좋은 타투이스트의 커버업이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을. 단 하나의 문신을 갖고 평생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문신은 한 번 하고 난 뒤에는 하나를 더 하던가, 지운다. 세상에는 오직 그 두 부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 나는 전자다. 그래서 계속해서 문신을 새기나 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중독일지 모르지만 정체성을 공고히 다지는 행위이기도 하다. 문신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강한 자아를 갖고 있다. 주변 사람들도 이러한 사실에는 꽤 공감하는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문신의 크기가 커질수록 사회적 지위는 낮아진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건 완벽하게 틀렸다. 상반신의 절반을 문신으로 뒤덮은 데이비드 베컴은 기사 작위를 받은 귀족이며, 패션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마크 제이콥스 또한 문신 마니아다. 또 최근 핫한 인물로 급부상한 ‘릭 제네스트 a.k.a 좀비 보이’는 단지 얼굴에 정교한 해골 문신을 한 것만으로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뮈글러의 이번 시즌 단독 모델로, 하이 패션을 다루는 잡지 화보 모델로 대활약하는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문신은 그 무엇보다 섬세한 예술 형태이지만 범죄와 폭력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만으로 폄훼받고 있다. 그러나 문신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부정적인 선입견이 문신을 한 사람에게 폭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직접 경험한 적 있는 나로서는 이것을 ‘인종차별’과 동일선상에 있는 차별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문신을 위한 마틴 루터 킹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문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블랙펜더 같은 과격파 자경단보다 아레사 프랭클린 같은 뮤지션이 흑인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더욱 큰 역할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반기문 UN 사무총장이나 안철수 연구소장 같은 인물이 문신을 하면 재미난 세상이 올 테니까. 물론 헛된 공상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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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창규(엠 프리미엄 에디터)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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