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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와 철학

이승우는 한국 축구의 미래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는 이승우를 통해 논의할 게 있다.

UpdatedOn September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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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가 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 각광받던 시절, 대한민국 축구 팬은 그가 월드 클래스 성인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대한민국 소년 선수가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소속된 것만으로도 만화 같았다. 나는 그 사실만으로 충분히 기뻐서, 이 어린 보물이 기대만큼 성장하든 안 하든 상관없었다.

당시 내가 아는 축구 기자 한 명은 이승우가 축구 팬의 기대만큼 성장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전망하느냐고 물었다. 수많은 특급 유망주가 무난한 선수로 살아간다고 이야기해주었고, 특정 선수를 거론해서 미안하지만, 권창훈 정도로 성장하면 대단한 거라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나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 기자의 말을 온전히 믿진 않았지만, 권창훈이 대단한 선수인 것은 분명하며, ‘권창훈 정도’라는 표현은, 음, 굉장한 비유이고, 전도유망한 어린 선수가 저 선배만큼만 성장해도 엄청난데, 그 이상의 선수가 될 거라고 막연히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깨달았다고 할까.

세월이 흘렀다. 이승우는 지금 같은 선수가 되었다. ‘지금 같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것 같다. 이승우가 K 리그로 온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전북 현대나 울산 현대 정도의 클럽에서 영입할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훌륭한 스쿼드를 꾸리고 있는 K리그 강팀이 이승우를 원할 것 같진 않았다. 이승우는 ‘균열’이니까. 비슷한 말로 불협화음. 안정적으로 전력을 구축한 팀은 이승우가 필요하지 않다. 그 정도 팀에 가야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는 수원FC에 갔다. 수원 삼성이 아니라 시민 구단 수원FC.

올 시즌 이승우가 보여주고 있는 플레이는, 도발 그 자체다. 공을 잡고, 달려가고, 패스하고, 다시 패스를 받고, 돌파하고, 슛한다. 이승우는 나아간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템포를 늦추지 않는다. 리그에 적응할수록 더 단순해지고 있으며, 마치 처음 축구공을 본 꼬마처럼, 순수하고 맹목적으로 달려든다. 현대 축구는 복잡한 전술이 선수들의 자아를 포박해버렸다. 이승우가 균열인 동시에 도발인 건, 그의 손과 발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승우가 유럽 팀에서 경기에 나가지 못한 이유를 이 지점에서 찾는다면 어불성설일까? (물론 엘링 홀란드 같은 괴물이었다면 어떻게든 경기에 나갔겠지만!)

이승우는 많은 골을 넣고 있다. 득점왕 경쟁 중이다. 숫자에 함몰되어 그를 바라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적어도 내가 판단할 때, 지금의 이승우는 K리그에서 가장 예외적인 선수다. 보통의 선수들이 그라운드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느라 제자리로 돌아갈 때, 이승우는 자신의 자리는 공이 있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승우 같은 선수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승우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출전은 어려워 보인다. 동일 포지션과 주변 포지션에 좋은 선수가 많다. 이승우가 대표로 뽑혀도 이상하지 않지만 안 뽑혀도 이상하지 않다. 두 경우 다 납득이 간다. 비교 우위는 기준에 따라 달라지니까. 그래서 나는 이 부분에 관해 벤투 감독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다른 부분에 관해서라면 일주일 아니 열흘도 비난할 수 있지만. 다만 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이승우라는 ‘균열’을 기꺼이 안고 갈 근육을 갖춘 팀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승우는 어떤 팀에 있든 돌출되어 보인다. 캐릭터와 플레이만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조직적인 움직임이 능한 선수는 아니다. 축구는 11명이 뛰는 스포츠고 당연히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축구의 기본이지만 종종 축구를 지루하게 만든다. 지루한 축구를 하는 팀은 약하다. 벤투에 대해 비난할 게 너무 많다고 적었는데, 특히 이 부분에 대한 것이다. 벤투는 통제한다. 개인의 모든 움직임은 전술과 시스템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의외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그가 선수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믿는데, 그는 오직 자신이 오랫동안 해온 방식만을 신뢰한다.

하지만 벤투가 리뉘스 미헐스나 요한 크루이프가 아닌 이상, 그리하여 그가 완벽하게 새로운 전술을 창조하지 않는 이상, 고집쟁이는 결국 축구라는 오랜 관습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안타깝게도 벤투는 이러한 문제를 ‘더 조직적인’ 방식으로 타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남자 성인 국가대표팀이 일본에 연이어 패배한 것이 축구 실력의 차이 때문이었을까? 일본은 항상 대한민국보다 조직적으로 플레이했다. 대한민국의 비교 우위는 강하고 투박한 플레이였다. 일본이 정교하게 패스할 때, 우리는 터프하게 공을 따내고 슛했다. 나는 저 외국인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를 지나치게 얌전하게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축구 전문가가 아니지만 견해 정도는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축구는 가능한 빠르게 상대편 진영에 공을 보내고 골을 넣는 행위라는 것. 전술은 ‘가능한 빠르게’ 공을 전달하기 위한 의외의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벤투 체제에서 이승우가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승우가 다시 유럽에 진출해 준수하게 활약해도, 벤투는 이승우를 선발하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유일한 선택지도 아니다. 무엇보다 벤투는 균열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보수적인 아저씨다. 균열은 의외성이다. 한국 축구가 이승우라는 의외성, 도발과 돌출의 상징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는 중요한 논쟁거리여야 한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게 한 것만으로도 이승우가 한국 축구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다시 이승우를 판단하자면, 축구 기자의 예언은 정확했다. 질문은, 이승우가 과연 월드 클래스 성인 선수로 성장할 것이냐 였다. 나는 이제, 이승우의 내년과 5년 후를 월드 클래스 선수라는 관점에서 예측하고 싶지 않다. 여전히 이승우에게 잠재력이 차고 넘친다고 생각은 한다. 그런데 이승우가 월드 클래스 선수가 될 것이냐는 질문은 지극히 이승우 개인에 대한 것이다. 반면 이승우가 한국 축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대와 전망은 당연히 한국 축구 미래에 대한 것이다. 이승우라는 도발은 대한민국 축구에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모든 선수가 그런 영향력을 갖는 것은 아니며, 적어도 한국 축구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지점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 축구에 부족한 건 월드 클래스 선수가 아니라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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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정소진
Words 이우성(시인,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에이전시 ‘미남컴퍼니’ 대표)
Illustration 송철운

202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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