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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현실적인 허영

조금만 노력하면 살 수 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갖고 싶은 것들이 있다. 2030에게 자신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채울 수 있는 현실 가능한 허영을 물었다. 의외로 소박하다.

UpdatedOn December 30, 2021

  • 남천동 삼익비치 아파트 313동 305호

    나는 밀레니얼이다. 부모님 세대와 달리 고향에 대한 향수를 못 느낀다. 하지만 추억이 깃든 장소에 대한 씁쓸한 그리움은 느낀다. ‘남천동 삼익비치 아파트 313동 305호’를 떠올릴 때면 더욱이. 학창 시절을 보낸 이곳을 아버지 사업 실패로 쫓겨나듯 떠나야 했다. 광안대교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조망 덕에 부산에서는 가장 뜨거운 매물이었다. 재건축이 확정됐고 무려 61층이나 된단다. 너무 위로 치켜들어 뒷목에 통증이 느껴질 때쯤 아파트 꼭대기가 보이겠지. 아파트는 과거의 냉혹한 현실을 담은 듯 차가운 유리로 감싸지겠지. 그 집은 돈으로 환산되는 물질적인 허영 그 이상의 것이다. 그곳에서 나의 어린 자아가 뛰놀고 있다. 가족과 함께 느꼈던 따뜻한 온도가 그곳에 서려 있다. 그 집을 떠난 날의 기억이 뇌를 잠식할 때쯤 나는 되찾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WORDS 김도균(크래프톤 데이터 분석가)

  • 가성비 있는 하이엔드 제품

    1천만원을 호가하는 아이맥 프로 대신 아이맥 최고 사양이 좋고, 5백만원이 넘는 명품 가방 대신 3백만원대를 사도 행복할 것이다. 나름 눈은 높은지 보급형엔 관심도 없다. 내게 무얼 살 것이냐 묻는다면 ‘가성비 있는 하이엔드 제품’이라 정리하고 싶다. 남들은 최고급만 바라던데. 내 허영의 크기가 작은 걸까? 허영은 가격에 달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록 최고급 장비와 에르메스 가방은 못 사지만 가성비 있는 하이엔드 제품은 실현 가능한 허영이다.
    WORDS 허지민(그래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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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박스터

갖고 싶은 게 딱히 없다. 욕망이라는 세포가 꽤 오래전에 굳어버렸다. 다소 비관적 이야기지만 지금은 일상을 ‘수행’해나가는 수준이고, 그 영역 5m 편차 정도의 상상력만 있다. 사실 욕망의 확장은 일정한 훈련과 현실감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위층에 거주하는 VIP들을 제외하고 뭔가 갖는다는 행위가 실제로 가당하기나 할까? 누가 더 큰 뽀시래기를 갖느냐는 무의미한 싸움의 본질을 알아버리곤 ‘갖고 싶다’거나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거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쉐 박스터를 이야기한 건, 뽀시래기들이 누릴 수 있는 한도의 스피드이며 수습이 피곤하더라도 손에 닿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번 생엔 틀렸다는 자조 섞인 말은 사실 진리의 가르침이었다. 세상에, 이걸 이토록 늦게 깨닫다니.
WORDS 달심(회사원)

롤렉스 서브마리너

예전부터 그랬다. 단계를 차곡차곡 밟아서 오르기보다 내가 갖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을 사버려야 직성이 풀렸다. 모터사이클을 구매할 때 갖고 싶던 1,000cc급 이상 오버리터급이 따로 있었는데 괜히 기본부터 시작한다며 300cc 쿼터급 샀다가 얼마 타지도 않고 기종을 바꾸며 비용이 이중으로 들기도 했다. 최근 들어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롤렉스 서브마리너가 참 갖고 싶더라.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롤렉스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와 클래식함은 바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제품엔 비싼 돈을 들여도 아깝지 않다. 모델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인데 내가 원하는 모델은 2천만원이면 살 수 있다. 현금도 있고 카드 한도도 충분하다. 하지만 사지 못했다. 인기 제품이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란다. 자본주의가 시장을 움직이는 나라에서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하는 현실이라니 무척이나 아이러니하다. 결국 현재 내 손목 위에 올려져 있는 건 애플 워치 7세대. 갖고 싶은 걸 사지 못할 바에야 아주 무난한 것으로 결정했다. 롤렉스 서브마리너, 언젠가 갖고 말 테다.
WORDS 김선관(자동차 전문 기자)

  • 1만 구독자

    “2022년에는 1만 구독자를 갖고 싶다.”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도 안 하고(혹은 못 하고) 미혼 남성의 라이프스타일을 탐구 중인 유튜브 <도시남자> 주인장이다. 주로 다루는 콘텐츠는 새로 나온 차, 좋은 술, 여행기다. 그렇다. 대한민국 미혼 남성이 혼자서 의미 있고 즐겁게 살려면 뭐가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채널이다. 그동안 너무 이 눈치 저 눈치 다 보고 만드느라 콘텐츠 제작이 지지부진했는데, 올해는 좀 가열차게 달려보려고 한다. 그냥 좋아서 한다고? 솔직히 네 자릿수 찍히기 전에는 어디 가서 유튜브 한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유튜버의 최소 허영은 1만 구독자다.
    WORDS 도시남자(유튜버)

  • 빈티지 아날로그 신시사이저

    미국의 양대 신시사이저 회사인 시퀸셜(Sequential)과 무그 뮤직(Moog Music)이 1천만원에 달하는 빈티지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를 발매했다. 아마 2010년 즈음부터 유행처럼 번진 시류를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 나도 음악으로 먹고사는 사람인데 그 정도 무리할 수도 있지. 그 장비로 좋은 음악 만들어서 더 큰돈을 벌면 되잖아?”라고 합리화해봤지만, 멈췄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게 수익을 벌어다주는 건 고사양 음향 장비보다 급한 수정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러그인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빈티지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는 마음속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로.
    WORDS JNS(뮤직 프로듀서)

희귀식물

팬데믹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틈을 타 식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식물을 키운다는 건 들여다보는 게 다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물도 주고, 분갈이도 해주고, 잎이나 가지도 정리해줘야 하며, 때때로 영양 보충은 물론 해충 예방도 해야 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겨울에는 그런 일이 줄어드는데, 그 틈을 타 새로운 종과 형태의 식물을 집에 들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희귀식물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이파리 한 장에 5만원인 친구부터, 수백만원에 달하는 식물도 있다. 식물은 성체가 더 비싼 편이라, 작은 이파리일 때 구매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키워야 한다. 한창 힘들다가도 식물이 다 자랐을 때의 멋진 자태를 떠올리면 온갖 허영심이 솟구친다. “갖고 싶다, 저 우람한 이파리를!” 허영심이 분수에 안 맞고 실속 없는 마음가짐이라면, 나의 작은 희귀식물들이 나의 땀과 노력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단단하고 멋진 성체가 되어 허영이 아닌 현실이 되길 바란다.
WORDS 권민석(자영업)

  • 메르세데스-벤츠 SL500

    허영이 현실이 됐다. 꿈에서만 맴돌던 1997년식 벤츠 SL500을 얼마 전 어렵게 구했다. 옷이 날개라고 했던가? 멋진 옷을 입는 게 새가 되는 거라면 나는 SL500과 함께 봉황이 되고 싶었다. 출시 당시에는 1억을 훌쩍 넘던 이 차를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데려올 수 있다는 것도, 낮고 묵직한 주행감이 일품인 이 차와 함께 2022년의 도로를 달리는 것도 모든 게 낭만적이다. 리스나 할부로 구매할 수 없던 터라 통장 박박 긁어 현금 구매한 나의 로망 SL500, 외로이 노상 주차장에 세워둬서 미안해. 내일 세차장 가자!
    WORDS 아이셔(포토그래퍼)

  • 서울 호캉스

    조식이 포함된 서울의 작지도 크지도 않은 호텔에서 머무는 것. 수영장은 작게라도 구비되어 있으며 룸서비스는 소소한 감자튀김이면 충분하다. 맥주는 발품 팔아 편의점에서 사오더라도, 함께한 이와 밤새 수다를 떨다 다음 날 비몽사몽한 채로 조식을 먹으며 “우리 오늘 참 부자처럼 놀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하루, 그 허영.
    WORDS 장유록(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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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룸

30평대 아파트라고 썼다가 지웠다. 그건 비현실적이니까. 그럼 20평대 아파트라면 현실 가능한 허영인가? 부동산 사이트를 들어갔다 나오니 나의 허영이 쪼그라든다. 그래도 방이 두 개 있는 집을 바라는 건 양심적이지 않나. 그 정도 꿈은 꿀 수 있잖아. 돈 때문에 아등바등하다 보면 집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집 가졌다고 결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직업이 중요하다. 전문직은 아니더라도 알 만한 회사는 다녀야 결혼 시장에서 명함이라도 내밀더라. 지쳐서 하는 소린데, 결혼이야말로 허영이다. 영화에선 주인공들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던데, 현실에선 사랑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려면 갖춰야 할 조건이 많다. 잘생겨야 하고, 매력적이어야 하고, 직업이 번듯하고, 집안도 좋고, 집도 있어야 사랑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결혼하려고 조건을 갖추는 건 이상하다. 직업을 잃거나 집이 무너지면 결혼도 끝나나? 내 허영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진심이 드러난다. 예쁜 여자한테 사랑받고 싶다. 이거야말로 허영이네.
WORDS 최우석(온라인 마케터)

  • 풀 카본 비앙키 아리아 바이크

    끝없이 이어지는 야근. 불확실한 미래. 자전거 라이딩만이 나를 옥죄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정신과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만큼 짜릿한 건 없으니까. 나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즐기며 한강을 달리던 중 내 옆으로 최고급 장비를 타는 아저씨들이 쌩하며 지나갔다. 왠지 모를 공허함이 들이닥쳤다. 아저씨들 자전거를 유심히 봤다. 그러곤 검색창에 쳐 넣었다. ‘풀 카본 비앙키 아리아 바이크….’ 내가 가진 것의 열 배 가격이다. 종잣돈이 필요한데 현재로선 턱없이 부족하다. 내 자전거가 괜히 얄미웠다. 아니, 너무 소중하다. 그렇지만 아저씨들 자전거가 멋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갈피를 못 잡는 마음을 안고 최고급 장비로 라이딩하는 아저씨들을 추월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욕망을 채워본다.
    WORDS 가면라이더(프로덕트 매니저)

  • LG 시네빔 4K

    OTT 서비스란 서비스는 모두 구독 중이다. 디즈니플러스, 왓챠,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티빙. 매달 5만원가량의 돈을 앗아가는 주범이다. 이렇게 많은 서비스를 구독하는데 정작 아이패드 에어로 시청한다. 그 많은 영상들을 고작 아이패드 에어로 재생하는 건 꽤나 억울한 일 아닌가. 내 5만원을 담아내기엔 그릇이 너무 작다. 언젠가 아는 선배가 4K 지원되는 ‘LG 시네빔’을 빌려준 적이 있다. 우리 집은 정확히 정사각형에다 벽은 온통 하얗고 가구도 몇 없다. 선배가 빌려준 빔을 새하얀 벽에 쐈다. 약 이틀간 구독료 뽕 뽑았다. 허영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한번 맛보면 해어 나올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초콜릿처럼 달콤했던 이틀을 떠올릴 때마다 은행 앱을 켠다. 통장 잔고는 여전히 형편없다. 그래도 실현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올해는 꼭 사야겠다. 그러지 않으면 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니까. 잠들기 전, 아이패드 에어를 붙잡고 또 한 번 기도한다. ‘LG 시네빔이여 내게로 오라.’
    WORDS 토토(비주얼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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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정소진
CONTRIBUTING EDITOR 양보연
PHOTOGRAPHY 박도현

202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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