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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커머스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아프리카TV가 라이브커머스를 한다. 배달의민족도 하고, 매체들도 하고, 인플루언서들도 개인 채널에서 무언가를 판다. 팔아야 살 수 있는 것처럼. 광고 수익에 매달리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지금 고민할 것은 라이브커머스가 볼 만한 콘텐츠냐는 것이다. 라이브커머스에 우리의 미래를 걸어도 될지. 고민이다.

UpdatedOn October 12, 2021


1990년대에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누렸던 게임 중에 ‘대항해시대’가 있다. ‘사회과부도’ 책까지 펼치며 이 게임에 빠져들었는데, 가장 큰 재미거리는 무역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아, 돈을 벌려면 무역이든 유통이든 물건을 팔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상품을 파는 산업은 수천 년 인류 역사의 근간이었고, 시대의 변화를 치열하게 반영하며 발전해왔다.

언젠가 아내가 새 티셔츠 하나를 입어보라고 건넸다. 옷은 마음에 들었는데 못 보던 브랜드다. 물어보니 인스타그램에서 인기 있는 개인이 직접 옷을 디자인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정적으로 판매하는 옷이란다. 다소 이해되지 않는 쇼핑 방법이었지만 옷이 제법 마음에 들었고, 어느새 다음 옷이 나오면 같이 들여다보게 됐다. 아내는 어제도 옷과 관계없이 그 일상이 담긴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고 있다.

요즘 가장 핫한 상거래는 바로 라이브커머스다. 포털 혹은 소셜미디어 서비스의 영상 채널을 통해 직접 소통하면서 판매가 이뤄지는 것이다.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잠깐 열리는 쇼핑몰을 기다린다? 요즘 같은 ‘온 디맨드’ 시대에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구조지만, 라이브커머스는 꼭 물건을 구입하기 위한 채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챙겨보는 콘텐츠로까지 성장하고 있다.

라이브커머스는 어떤 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일까? 미디어를 통해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탄탄하게 성장해온 상거래 방법은 ‘TV 홈쇼핑’이다. 채널과 채널 사이에 끼어 나오는 쇼핑 채널은 리모컨을 넘기는 재핑의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시선을 잡아챈다. IPTV의 채널을 열 개 정도 넘기다 보면 한 번쯤 리모컨 버튼을 멈추곤 한다. 홈쇼핑은 왜 인기가 있었을까? 바로 생동감 때문이다. 우리는 물건을 살 때 두 가지 생각을 한다.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 그리고 고민해볼 수 있는 적당한 무관심이다. 정반대의 대응인데, 이를 가장 완벽하게 해준 것이 바로 TV 홈쇼핑인 셈이다. 라이브커머스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이용자들의 더 적극적인 참여다. 라이브커머스의 뿌리는 바로 소셜미디어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모바일 기반의 미디어를 통해 자연스러운 생방송 콘텐츠가 익숙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플랫폼에 상거래가 붙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정도다. 직접 대면하지 않으면서도 홈쇼핑 수준의 상세한 설명이 이어지고, 채팅을 통해 실시간으로 궁금한 것을 묻고, 이용자들끼리 실없는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물건의 판매가 일어난다.

라이브커머스에 주목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플랫폼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백종원 대표는 매주 한 방송 프로그램의 코너로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농수산물을 판매한다. 사람들이 이 ‘라방’을 찾아서 보는 이유는 네이버의 플랫폼도, SBS의 방송 때문도 아니다. 바로 백종원 대표가 상품성 높은 농수산물을 적절한 가격에 갖고 나온다는 신뢰 때문이다. 여기에 그의 입담에서 나오는 적절한 스토리텔링과 요리법이라는 콘텐츠가 더해지면서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상품을 팔아치운다. 그가 플랫폼을 바꾸어도,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서 라이브커머스를 운영한다고 해도 접속자, 그리고 판매량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결국 하나의 이야기가 담긴 온전한 ‘백종원의 콘텐츠’가 상거래를 일으키는 셈이다.

온라인을 통해 가장 활발하게 유통되는 상품인 ‘의류’도 마찬가지다. 의류 쇼핑몰은 유행에 아주 민감하다. 쇼핑몰이 파는 것은 ‘옷’이라는 물건이지만 실제로 판매되는 것은 ‘패션’이라는 무형의 가치다. 패션 역시 ‘나도 저 옷을 입으면 더 멋있어 보일 것’이라는 이미지가 큰 영향을 끼친다. 이른바 ‘유행’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더 멋드러지게 만들어내기 위해 패션모델과 연예인이 연결되는 것은 아주 오랜 전통이다.

라이브커머스가 다른 가치를 갖는 이유는 상품을 파는 주인공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예인처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이웃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심지어 나와 키도, 몸매도 비슷해 보이는데, 저 옷을 멋드러지게 소화한다? 상품을 사지 않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는 콘텐츠인 셈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구매 버튼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성장해온 온라인 쇼핑은 늘 ‘판매자와 구매자의 더 가까운 거리’를 추구해왔다. 이 흐름은 유통을 더 단순화했고, 가격 비교를 통해 같은 상품의 가격 격차를 줄였다. 엇비슷한 경쟁 구조 속에서 더 나은 상품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소비자가 느끼는 값어치다. 이는 ‘가성비’ 같은 단어로도 표현되지만, 때로는 이성을 누르고 감성을 자극하는 ‘가심비’가 더 주목받기도 한다. 가치의 범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라이브커머스는 바로 그 가치를 만들어내는 많은 요소들이 라이브 플랫폼을 탔다고 보면 된다. 상품의 가치는 기본으로 깔려 있고, 거기에 판매자에 대한 신뢰, 직접적인 소통, 적극적인 스토리텔링과 입담까지 더해진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만나온 친구처럼 친밀감이 모든 것을 완성해낸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플랫폼으로서는 위기의 상황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용자를 만날 수 있는 채널을 선점하고, 그 접근권을 판매하던 기업들은 이제 판매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새로운 플랫폼이라며 저마다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인플루언서들을 끌어들이지만, 이제는 플랫폼이 게이트웨이가 되어 상품과 판매자를 골라내는 권력이 사라진 것이다.

상품을 잘 팔 수 있는, 플랫폼에 관심을 끌어줄 ‘출연자’로서의 판매자를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가 관건이 됐다. 몇 년 전 개인방송 플랫폼들이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을 끌어모으는 데 집중했듯, 쇼핑도 판매자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인터넷의 ‘탈권력’ 흐름은 이를 이끌어냈던 초기 플랫폼들의 입장을 바꾼 셈이다. 그 플랫폼들도 어느새 ‘권력’이 되었나 보다. 결국 인터넷의 중심은 콘텐츠에 있다는 아주 단순한 가치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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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WORDS 최호섭(IT 칼럼니스트)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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