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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오의 지금

애니메이터, 작가, 감독…, 에릭오는 자신에게 붙는 호칭에 개의치 않는다. 다만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표현에 집중하며, 이미 알려진 매체의 특성에 국한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스스로 즐겁다.

UpdatedOn August 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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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버드노트, 데님 팬츠는 선플라워, 티셔츠와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한국은 얼마 만인가요?
반 년 정도?

2006년 한국에서 서울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직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거죠?
맞아요. 졸업하고 완전 가게 됐죠. 미국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한국에 왔다가 대학 졸업 후 석사 과정을 밟으러 다시 미국에 갔어요. 그게 2007년이니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 국적은 미국 사람이에요.

정서적으로는 한국인답게 멋진 것 같습니다만.
정체성의 60% 정도 한국 사람인 것 같아요.(웃음) 미국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가치관이 섞인 것 같은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럼 이번 한국 방문은 어떤 계기인가요?
제 최근 작품인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를 전시 형태로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날짜는 아직 미정이에요. 사실 펜데믹 이후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체계에 적응해서, 기존에 하던 일들을 어디서든 할 수 있어요. 전시에 대한 힌트를 드리자면 미디어아트 형식이 될 거라는 것. 큰 공간을 활용할 예정이에요.

2021 오스카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노미네이트, <오페라>는 엄청난 성과를 냈죠.
생각지도 못한 결과라 감사한 마음이 크죠. 사실 애니메이션의 기준으로 보면 워낙 다른 시도를 한 작품이거든요. 이 부분에 스스로 의미 부여를 하는 것 같아요. 작품의 퀄리티는 자신 있죠. 다만 오스카에서 후보로 선정하던 스타일과 다른 작품이라는 점에서 놀라워요. 만들 때부터 오스카를 목표로 한 게 아니기도 하고요. 감독으로서 영화의 문법을 확장하고 싶다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애니메이션 하면 떠오르는 ‘서사’도 좋지만 새로운 시도도 멋지니까요. <오페라>를 전시 형태로 확장하는 것도 애니메이션을 공간으로 가져오겠다는, 어떤 개념을 허무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기획 단계부터 생각한 일이죠.

예측을 벗어나는 시도 또한 작가로서, 감독으로서, 아티스트로서 중요한 점이네요. 돌아보면 커리어의 시작부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나 해요. 서울대학교 서양학과 졸업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을 했으니.
그러게요, 맞는 것 같아요. <오페라>는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명확하고 스마트하게, 동시에 왜곡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한 결과예요. 표현에 집중하면 매체에 구애받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새로운 시도의 중요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게 매체의 표현 방식을 확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오페라>의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피라미드 꼴 구조에서 신화든 종교든 여러 키워드가 읽혀요. 어떤 생각에서 출발한 작품인가요?
시작은 단순했어요. 4년 전에 기획했는데, 당시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30대이기도 하고, 세상이 더 넓게 보이기 시작한 거죠. 자연스럽게 정치, 종교, 자연, 나아가 우리가, 인류가 봉착한 상황과 문제가 진지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이걸 작업으로 기록해야겠다 생각한 거죠. 사명감을 가진 건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생각이 든 거죠. <오페라>의 주제라면 사회와 역사라는 큰 카테고리로 볼 수 있겠죠. 사회 안에 종교, 교육 등이 포함되잖아요. 이 애니메이션이 전형성을 띠지 않는 것도, 역사와 사회는 어쩌면 순환 구조이기도 하잖아요. 계속 흐르고요. 그래서 <오페라>도 낮밤이 순환되는 구조를 띤 거고, 사회문제는 순서대로 터지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오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기도 하고요. 희로애락이 순식간에 펼쳐지는 게 우리 삶이고 사회니까, 이미지적으로 한 번에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 거예요.

<오페라>는 피라미드 꼴에 여러 방이 있어요. 그중 콕 집어 설명할 만한 곳이 있을까요?
모든 방이 설명이 가능하죠. 관객 입장에서 눈에 확 띄는 건 밤이 찾아왔을 때 가장 아래층에서 등장하는 큰 물고기인 것 같은데, 그건 자연을 상징하는 거예요. 낮에는 물고기가 앙상한 뼈만 남을 때까지 다 뜯어먹어 사회를 순환시키고, 마지막에는 인간의 탐욕과 욕망의 끝장이라 할 수 있는 전쟁이 펼쳐지고, 서로 다 죽이다 물고기가 나타나서 인간을 다 잡아먹어요. 그리고 다시 낮이 오면 사람이 물고기를 뜯어먹고요. 그런 순환 구조는 자연의 섭리를 표현한 거예요. 인종 문제는 작품에서 자주 다루는데, <오페라>에서 머리 색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어린애들인데 줄 세워놓고 하얀색으로 칠해버려요. 사상과 창의력의 학대일 수 있죠.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자르고 이렇게만 생각해’라고 하는 것일 수 있고요. 인종 문제로 보일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죠.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어요. 해석하기 나름일 것 같고요.

비슷한 의미로 캐릭터들의 성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표현이 아닌가 했죠.
<오페라>는 남녀를 거의 구분하지 않아요. 새로운 삶이 탄생하는 장면과 몇몇 장면만 구분하죠. 탄생은 생리학적으로 여성이 하는 거니까요. 이 부분도 50년, 100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겠죠. 몇몇 장면 외에는 젠더에 관한 건 다 무너트리려고 했어요.

 

“예측할 수 없기도 하고요.
희로애락이 순식간에 펼쳐지는 게
우리 삶이고 사회니까.”

 

음악도 주목할 만하지 않을까요? 상황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오리지널 스코어 같은 음악이 어쩌면 <오페라>의 척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요.
맞아요. 피라미드 꼴 안에 다양한 이야기가 담기니까, 그걸 음악으로 묶고 싶었어요. 음악을 시각적인 요소와 동등한 비율로 중요하게 생각할 정도로요. 그래서 한 음악감독과 모든 사운드를 작업했어요. 뮤지션인데 전문 분야는 사운드 디자인이거든요. <오페라>에 맞게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더라고요. 음악적 요소가 서사 중 두 가지 구조를 잡아줬어요. 화면으로 보면 낮 시간에 벌어지는 일이 있고, 전쟁 등 밤에 벌어지는 클라이맥스가 있잖아요. 그리고 동이 트고 하루의 역사적 흐름을 음악이 담당한 거죠. 음악에 세계 각지의 사운드를 담았어요. 그래서 음악에 사용된 악기도 다양해요. 중국 전통 악기 소리도 있고, 스칸디나비아 사운드도 있죠. 이 모든 소리를 세련된 음악으로 만들어준 거예요.

악기가 아닌 비주얼과 어떤 메시지들로요?
그렇죠. 네, 앙상블 같은 느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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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은 구찌, 셔츠는 시스템 옴므 제품.

한 인터뷰에서 “<오페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희망이다”라고 한 적 있죠?
바람이죠.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만든 아티스트는 공감할 텐데, 희망적인 메시지는 관객이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둔 거예요. 처절한 장면도 있지만, 그게 우리 삶의 거울처럼 보이기도 하니까요. 누군가는 <오페라>를 역사의 악순환에서 못 벗어나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고, 어떻게 하면 그 순환 구조를 더 좋게 만들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길 원하는데, 이건 감독으로서의 바람이에요. 인류가 과학적으로 이만큼이나 발전했지만, 인류가 정녕 발전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한편으로는 <오페라>를 희망으로 보는 관객도 있을 거예요.

앞서 말한 <오페라>를 전시 형태로 선보이는 게 더 궁금해지네요.
단편 애니메이션이 공간에 확장되는 거죠.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오페라> 전시를 월드 투어 형태로 하고 싶어요. 그 시작을 한국에서 하는 거죠. 이후 파리, 뉴욕 등 다른 도시로 확장하고 싶은 마음. 다만 펜데믹이니까 그 일정을 계획하는 게 쉽지 않아요. 확실한 건 잘 될 것 같아요. 느낌이 좋아요. 최대한 멋지게, 잘 해보려고 시기를 보고 있는 거니까.

 

“스스로 감독이구나 생각해요.
목표는 장르를 허문 예술을
하는 거예요.”

 

차기작도 예정됐죠. <나무>, 10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쓴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들었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 죽음을 곁에서 체감했죠. 예고편에도 나오는 나무는 기억의 나무예요. 그대로 자라는 게 아니라 기억과 오브제를 가지에 건 채로 크는.

이런저런 질문을 나누다 보니 묻고 싶은 게 생기네요. 에릭오를 감독, 애니메이터, 작가 중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하나요?
작가, 애니메이터로 일하는 것보다 연출하는 일이 더 많아졌어요.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 감독이구나 생각해요. 목표는 장르를 허문 예술을 하는 거예요.

에릭오가 처음 알려진 건 픽사 애니메이터라는 커리어도 있어요.
픽사에서 7년 정도 일했어요. 졸업 직후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의 첫 직장이니까 제 일부가 됐죠. 많은 걸 배웠어요. 창작자로서 창의력 넘치는 사람들과 일하며 배운 것도 많아요. 무엇보다 애니메이션 작업은 혼자 할 수 없는 거니까, 타인과 소통하며 세계적인 결과물을 내기 위한 팀워크를 경험한 게 큰 도움이에요. 대단한 창작자임에도 협업을 위해 자신의 자아를 덜 드러내는 방법도 배웠고요. 협업에서의 좋은 소통 스킬이죠.

협업을 잘 이끄는 것도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죠.
감독으로서 개인의 창작에 매몰되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을 이끌고 한 가지 지향점으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물론 픽사는 자유로운 회사였지만, 회사는 회사니까 여러 고민과 노력이 있었죠. 회사를 다니면서 개인 작업도 꾸준히 했어요. 회사 소속이 아닌 제 이름을 건 작품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기회를 기다리기도 했고요.

어떤 기회가 왔나요?
감독 제안이 왔죠. 애니메이션 시리즈 <댐 키퍼>의 연출을 맡아달라는 연락이었어요. 제 첫 상업 프로젝트인데, 이 일을 맡으면서 픽사를 퇴사했어요. <댐 키퍼> 시리즈 중 제가 애니메이션을 총연출한 작품은 아카데미 후보가 됐고, 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은 2018년 프랑스 안시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그렇게 감독 인생이 시작된 거죠.

에릭오의 커리어에서 재밌는 점은 소속사가 바나(BANA)라는 점도 있어요. 래퍼 이센스, 빈지노 등이 소속된 레이블이죠.
바나의 대표와 어릴 때부터 친분이 있었어요. 지향점이 비슷한 사이였죠.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 하는 면과 비전이 닮았달까. XXX를 비롯한 소속 뮤지션들과 호흡을 맞추다 자연스럽게 바나에 합류하게 됐어요. <오페라>도 기획 단계부터 바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저희의 시너지가 이 작품에서 돋보이지 않았나 싶어요.

더 해보고 싶은 게 남았나요?
너무 많죠. 지금 제작 초기 단계인 넷플릭스 시리즈 <오니>를 준비하고 있고, <오페라> 미디어 전시도 있고요. 마무리되면 장편 영화를 준비하려고요. 시나리오 작업 중인데, 저도 상업적인 장편 애니메이션을 성공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제가 작품 잘 만드는 건 여러 면에서 증명받았다면, 이제 대중적으로도 제 목소리를 알릴 수 있는지에 대한 도전이죠. 재밌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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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GUEST EDITOR 양보연
PHOTOGRAPHY 이수환
STYLIST 이잎새
HAIR&MAKEUP 김민지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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