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EATURE MORE+

The Critique

삼삼해도 괜찮아

마라샹궈보다는 비건 식단에 가깝다. 알싸하고 자극적인 맛은 없는 삼삼하고 건강한 비건 식단. <라켓 소년단>이 딱 그런 느낌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어 두통을 유발하고, 피 튀기는 전쟁을 치르고, 처참하고 잔인한 연출까지 마다않는 장르물들 사이 <라켓 소년단>이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고 있다. 땅끝마을 농촌 소년 소녀들의 성장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다소 싱거울 수 있는데 왜? 시청자들의 마음에 펌프질할 수 있었던 <라켓 소년단>의 매력을 알아봤다.

UpdatedOn July 23, 2021

/upload/arena/article/202107/thumb/48570-459907-sample.jpg

“요즘 드라마 뭐 봐?” 이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할 자신이 없었다. <라켓 소년단>을 만나기 전까진. 신하균이 충혈된 눈으로 진실을 찾아 헤매던 <괴물>도 진즉 끝났고, <펜트하우스>는 얼얼한 마라탕 같아서 엄두를 못 내던 내게, 맛있게 잘 익은 초록 사과 같은 드라마가 나타났다. 만화로 비유하면 아다치 미츠루의 <H2>에다 <터치>의 감성을 살짝 끼얹고 여기에 <리틀 포레스트> 딱 반 스푼만 넣으면 <라켓 소년단>이 완성된다. 드라마는 땅끝마을 해남에서 배드민턴에 청춘을 건 열여섯 소년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억지스러움은 없지만 만화처럼 과장된 재미는 있고, 이야기들을 인위적으로 엮어 놓은 것 같지만 계곡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농부와 원산지를 강조하는 무공해 식자재를 틱톡으로 홍보하면 이런 감성이 나오려나. 마치 유기농 식재료를 아주 힙하게 버무려 식탁에 올려놓은 느낌이다.

제2의 양현종을 꿈꾸며 야구를 하던 도시 소년 해강(탕준상 분)은 빚에 허덕이는 배드민턴 코치인 아빠(김상경 분)를 따라 해남으로 이사를 간다. 야구를 계속하기엔 전지 훈련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 게다가 똑같이 어려운 처지여도 편의점 알바에 막노동을 해가며 훈련비를 모아온 힘찬이 아빠 덕에 해강이는 한 자리 남은 엔트리마저 뺏긴다. 야구 선수의 꿈을 잠시 유예하고 아빠가 코치로 부임한 해남 서중학교 배드민턴 선수들과 만나게 된다. SNS 중독인 주장 방윤담(손상연 분)과 제2의 이용대를 꿈꾸는 이용태(이강훈 분), 핸드 쉐이크를 즐기는 힙합왕 나우찬(최현욱 분). 딱 이렇게 세 명뿐이라 단체 대회는 꿈도 못 꾸는 상황에서 유년 시절 배드민턴 유망주였던 해강이 억지로 합류한다. 해강의 엄마(오나라 분)가 이끄는 해남 제일여중 배드민턴 친구들과 합숙을 하게 되면서 소년 체전을 향한 힘찬 첫걸음을 뗀다.

드라마는 대회 준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한편, 배달 앱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도시 소년이 서로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시골 마을에 살면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이야기를 곁들인다. 옆집 사는 오매 할머니(차미경 분)는 “여기 오면 재미 없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손주를 위해 와이파이 빵빵한 게임방을 만들어 놓고, 도시 생활에 지쳐 귀농을 결심한 부부는 농촌 생활 또한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각자 일 때문에 떨어져 살던 해강의 부모는 부모 노릇이 처음이라 아직 서툰 것이 많다. 인생은 늘 그렇듯 예상을 빗나가고 의외의 좌절을 안겨주지만 뜻밖의 기쁨을 선사하기도 한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풋내 나는 청춘의 여정 중간중간,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에 관한 성찰도 엿볼 수 있다. 아직은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뜨겁게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는 소년 소녀들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뭐가 됐든 한 단계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늘 감동적이다. 그런데 <라켓 소년단>은 이 드라마를 결코 뻔하게 이끌어가지 않는다. 착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처럼 보여도, 그 안에 바꿀 수 없는 냉정한 현실도 담겨 있다. “돈 없어서 야구 못 한다는 얘기 했어?” 해강이 엄마의 한마디는 “너의 모든 꿈을 응원한다”는 모범 답안과는 거리가 멀다. 해강이 또한 배드민턴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망주로 손꼽혀봤자 “배드민턴은 멋이 없다”는 친구들의 반응에 의기소침해진다. 모두가 멋지다고 할 만한 야구 투수로 전향하게 된 것도, 다시 배드민턴 채를 잡으면서도 “오래 안할 거야”라고 한 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또, 좋아하는 운동을 부모님의 반대로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기도 하고 정체된 실력에 스스로 좌절하기도 한다. <슬기로운 감빵 생활>을 집필했던 정보훈 작가는 작은 시골 마을, 몇 년간 선수가 없어 단체전을 나가지 못 할 정도로 비인기 종목인 배드민턴을 이렇게나 가슴 뜨겁게 다룬다. 있는 듯 없는 듯 살자던 배감독(신정근 분)은 전설적인 지도자 하얀 늑대였고, 오늘만 대충 사는 것 같던 해강 아빠 현종도 점점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에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남 체육사 사장님이 붙여준 ‘라켓 소년단’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도 이들의 면면을 알고 보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오랜 시간 동안 장르물이 유행하면서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좀비나 괴물 아니면 연쇄 살인범을 물리도록 보았다. 또, 욕망의 끝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이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인간을 해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드라마 1회 동안 몇 명이 죽어나가는지 세어보는 재미도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고강도, 고자극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라켓 소년단>은 아무런 자극 없이 착하고 심심한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오매 할머니가 해강이 남매에게 잔치국수를 끓여줄 때를 떠올려보자. 무공해 호박과 당근, 달걀 지단까지 프로페셔널한 자연 밥상처럼 착착 준비했지만 마지막에 무엇으로 요리를 완성했는지 기억하는가? 바로 사랑의 ‘미원’이었다. 여기서 <라켓 소년단>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완전 무공해 드라마지만 마지막의 조미료 반 스푼은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 시트콤처럼 재미있는 대사와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고, 갑자기 곰과 하얀 늑대가 CG로 등장하기도 하면서. 가만 있어도 참 귀여운 소년 소녀들의 캐릭터 성장에 따라 방송 직후 SNS에 <라켓 소년단> 새로운 버전의 단체 포스터를 공개한다. 야구 유니폼을 입던 해강이가 ‘민턴복’을 입은 모습으로 바뀐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을 귀엽게 스포일러하고 있다.

약수터에서 어르신들이 열심히 하는 운동으로만 여겼던 배드민턴이 누군가에겐 청춘을 걸 만큼 소중한 꿈이다. <라켓 소년단>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이야기해준다. 해강이는 시합을 앞둔 세윤(이재인 분)에게 이런 응원의 메시지를 들려준다. “내 생각에 너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했어. 지금도 충분히 충분하고 대단히 대단하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져도 돼.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그동안 고생했다!” 이 대사 속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입안 가득 청량함과 개운함을 느꼈던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정소진
WORDS 서동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2021년 07월호

MOST POPULAR

  • 1
    배정남, 클래식과 스포츠의 조화
  • 2
    MANNER MAKES A GOLFER
  • 3
    SPA THERAPHY
  • 4
    이건희 기증관이 있어야 할 곳
  • 5
    NEW MARK

RELATED STORIES

  • FEATURE

    메타버스, 욕망의 CtrlC-CtrlV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회사가 될 것이라 선언했다. 모바일의 용도가 소셜 미디어에서 메타버스로 옮겨간다는 주장이다. 저커버그는 메타버스에 관한 소설을 읽은 중학생 때부터 메타버스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럼 메타버스는 환상적인 곳인가? 그렇다. 가상현실은 환상을 충족시킨다. 누구나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권력에 대한 환상이 충족되는 곳이다. 그럼 메타버스는 유토피아인가? 권력욕을 비롯한 현실 욕망이 복제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디스토피아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메타버스에선 익명으로 권력을 가진 사용자들이 어떤 해악을 저지를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기대, 아니 걱정된다.

  • FEATURE

    웃는 얼굴, 우상혁

    24년간 2m 34cm에 멈춰 있던 높이뛰기 한국 신기록이 올해 도쿄 올림픽에서 비로소 깨졌다. 우상혁이다. 1997년에 이진택 선수와 함께 얼어붙어 있던 그 기록을 1996년생 우상혁 선수가 부쉈다. 7월 1일에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우상혁은 자신 있었고, 그 자신감은 앞으로 달려나가며 그가 띤 미소에서 발견됐다. 한국 신기록이 깨지기까지의 과정,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를 돌아본다. 기대되는 우상혁에 대해 말해본다.

  • FEATURE

    BOTTOM TO THE STAR

    BTS의 빌보드 장기 집권 소식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당연한 사실로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팝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서, 그것도 63년간 탄탄하게 이어져온 빌보드 차트의 시스템을 허문 아시안 케이팝 스타 BTS의 퍼포먼스를 의심하는 축도 존재한다. 인기의 본질을 단순히 팬덤의 든든한 지원만으로 한정하기도 하며, 오히려 미국 시장에서 타 팝스타에 비해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간과한다. 하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에, 바닥부터 별의 자리로 오르기까지 요구된 긴 시간과 노력에 집중한다면, BTS의 성공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 FEATURE

    위버스, 경쟁을 거부하는 1인자의 힘

    위버스는 아티스트와 팬덤 간 소통의 장 역할을 하는데, 이 소통의 장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BTS를 비롯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세븐틴, 그리고 하이브 소속이 아닌 매드몬스터나 최근에는 블랙핑크까지 품었다. 이외에 맥스, 뉴 호프 클럽 등 해외 아티스트까지도. 거대해지는 위버스는 단순히 입점 아티스트 수로만 승부하는 게 아닌,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는 위버스샵, 아티스트가 라이브를 선보이는 브이라이브 등 다양한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위버스의 몸집이 어디까지 불어날지. 또 몸집만큼 위대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위버스를 들여다본다.

  • FEATURE

    제임스 건의 도발적인 유머에 접속하기

    전작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지만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다르다. 제임스 건이 감독을 맡아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마블 영화 패러다임을 흔든 제임스 건은 오락 영화의 문법을 잘 이해하고 쓰는 감독 중 하나다. 영화에 꼭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면 웃기고 세련되게 담아내는 것도 그의 힘. 가장 큰 힘은 특유의 유머다. 등장인물이 많아도 웃음으로 꽁꽁 묶어 이야기가 새어나가는 걸 막는다. 제임스 건의 웃기는 기술을 파헤친다.

MORE FROM ARENA

  • FASHION

    SUMMER JEWELRY

    한여름 태양 아래 더 눈부시게 빛날,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한국 디자이너들의 쿨한 주얼리 브랜드.

  • ISSUE

    버버리 X 제이비

  • FASHION

    음악이 없으면 섭섭한 컬렉션

    컬렉션을 더 풍성하게 채우는 음악의 힘.

  • FASHION

    TONE ON TONE

    선명한 환희에 물드는 계절.

  • FEATURE

    키카와 댄의 요트 라이프

    목적지가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은 여행 그 자체다. 바람에 의지해 세계를 항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람이 요트를 어디로 이끌지, 무엇을 발견하게 될진 아무도 모르지만 그런 것도 중요치 않다. 눈부신 밤하늘의 별들을 만나고, 망망대해에서 서로만의 존재를 느끼고, 투명한 바다에 뛰어들거나, 돌고래와 유영하며 살아가는 삶. 요트를 집 삼아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자유에 대해 말한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