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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노래

버즈가 ‘가시’를 부르던 그때 우린 무얼 했던가. 2000년대 중반을 복기한다. 우리가 반복 재생하며 듣던 음악과 그 음악을 들으며 했던 고민들, 옛 노래에 새겨진 낡은 감정까지 돌이켜본다.

UpdatedOn July 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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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병 앓던 2000년
 DJ DOC <THE LIFE… DOC BLUES 5%>, ‘비.애(愛) (Acoustic)’

2000년, 나는 지금으로 치면 중2병, 아니 중3병을 호되게 앓고 있었다. 유행가 같은 건 무시하면서 현실은 남들처럼 척테일러를 신고 국민 가방 이스트팩을 맨 16살 고등학교 입시생. 하루 종일 학원과 과외를 오가다 독서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건 가방 속에서 소니 CD 플레이어를 꺼내는 일이었다. 방에 있는 아이와(Awia) 오디오 옆에도 CD가 가득했다.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인 <1999 대한민국> <2000 대한민국>, 허니 패밀리 1집 <남자 이야기> 같은 언더그라운드 힙합 앨범이 대부분이었다. 왜? 난 뻔한 중학생이 아니니까. 리얼 MC가 뭔지, 라임이 뭔지는 정확하게 몰랐지만 그냥 줄기차게 들었다.

유치하고 건방진 중학생에게 DJ DOC의 <THE LIFE… DOC BLUES 5%>는 신세계였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하던 ‘가요계의 악동’ 랩 댄스 그룹이 그들의 상황과 처지를 가감없이 녹여낸 힙합 앨범으로 돌아온 것이다. 뭐, 그때는 장르의 정의 같은 건 둘째 치고 19금 딱지가 붙은 파격적인 가사 때문에 진짜 힙합이라고 덜컥 믿어버렸다. 그 앨범은 ‘뭘 좀 아는’ 중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이었고 그래서 무조건 사야만 했다. 그 노래들은 이른 입시 지옥을 겪고 있는 우리의 노동요가 돼줬다. 청불 앨범을 산다는 게, 친구들끼리 쉬는 시간에 모여서 비속어가 난무하는 ‘L.I.E’의 가사를 음미하는 것이, 가끔 학원 대신 노래방에 들러 ‘포조리’를 열창하는 일들은 소심한 반항심을 충족시켜줬다.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 역시 경찰은 무능해, 안온하게 사느니 힘들어도 내 꿈을 따라가겠어, 같은 패기는 필수였고 말이다.

1번부터 16번까지 거를 곡이 없을 정도로 꽉찬 앨범이었지만 그중에서도 2번 트랙 ‘비.애’를 가장 좋아했다. 요즘 말로 일종의 ‘숨듣명’ 같은 거였다. 친구들과 있을 때는 고난의 현실을 토로하는 독하고 짠한 가사들에 공감했다가 혼자 있을 땐 1번 트랙 ‘와신상담’은 과감히 건너뛰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누군가를 제대로 좋아해본 경험이 전무했으니 이별 후 그리움이 뭔지 알 턱이 없었지만 막연히 슬픔 속의 단맛 같은 것에 취한 채 비 오는 날에, 독서실에서, 학원 가는 길에 그 노래만 무한 재생했다. 사실 ‘비.애’를 좋아한 결정적인 이유는 이거였다. 그 노래가 가장 대중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 부르기도 쉬웠고.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100대 명반에 선정된 <THE LIFE… DOC BLUES 5%>는 LP로 재출시됐고 나는 여전히 2번부터 앨범을 플레이한다. 이젠 ‘비.애’에서 말하는 지질한 미련을 완벽하게 이해한 채로, ‘DOC Blues’의 가사처럼 세상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고 툴툴대면서.
WORDS 권민지(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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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썸 타던 2004년
 임현정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내가 대학에 입학한 2004년엔 싸이월드라는 곳이 살아 있었다. 인스타그램의 증조부 정도 되는 소셜 플랫폼으로, 2000년대 초반 대학 생활을 한 밀레니얼 세대라면 한 번쯤 이곳을 거쳤을 것이다. 나와 가까운 친구 둘은 매일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 침대 머리에 걸터앉아 싸이월드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나누느라 바빴다. “오늘자 투데이 1촌은 뉴욕에서 공부하는 디자인과 학생이더라.” “오늘 알게 된 새로운 1촌은 마크 제이콥스에서 가방을 샀고, 알고 봤더니 다른 1촌 누구와 절친이더라!” 같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안주 삼아 배달로 시킨 김치 피자 탕수육을 나눠 먹는 것이 그 시절 우리의 소소한 낙이고 일상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인플루언서’라 불릴 만한, 많은 것들을 소유한 사람들의 세계를 염탐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를 상상했다.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도토리로 바꿔서 스킨을 사고, 아무도 관심이 없을 게시글 폴더명을 부단히도 교체해가면서 미니 홈피를 가꿨던 그 시절,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에도 내 미니 홈피 배경음악으로 고정돼 있던 곡은 가수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었다. 제목 그대로 사랑은 봄비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와 마음을 적시고, 그러다 겨울비처럼 찾아온 이별은 마음 한쪽에 추적추적 내려앉아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는 이별 송이다.

당시 내가 그 노래에 꽂혀 있었던 건 복수전공을 하면서 알게 된 문예창작과 선배 K 때문이었다. 비평 전공인 K를 따라 나는 관심에도 없던 문학비평 과목 수강 신청을 하고, 우연히 학생 식당에서 그와 만나서 점심도 두 번씩 (따라) 먹었으며, 어렵사리 그의 미니 홈피 주소를 알아내 매일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들었다. ‘썸’ 근처에도 못 갔던 그 관계는 그저 귀엽고 어리숙한 후배 정도로만 나를 인지하던 K의 뒤늦은 입대로 종지부를 찍었다. 입대 사실조차 그의 후배를 통해 듣게 된 나는 그날 저녁 기숙사 책상에 엎드려 대성통곡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니 홈피에 접속해서는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을 반복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웬 감정의 허세였는지 모르겠으나 그 시절 나에게 미니 홈피는 그런 존재였다. K를 향한 내 뜨겁고 흥건한 감정은 미니 홈피 게시판에 그대로 활자로 남아 있을 텐데, 차마 오늘의 나는 다시 열어 읽지 못할 이야기다. 조만간 싸이월드가 부활한다던데, 나의 K는 지금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고른 내 미니 홈피의 배경음악은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WORDS 김나래(<매거진B>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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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훈련병이던 2005년
 이소라 ‘바람이 분다’

2005년 나는 군대에 있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모르지 않겠지만, 군인들은 가요, 그중에서도 여성 댄스 가수의 노래와 부쩍 가까워진다. 오죽하면 ‘밀보드(밀리터리+빌보드) 차트’를 등에 업고 브레이브 걸스가 4년 만에 차트 역주행에 성공했을까.

돌이켜보면 2005년 가요 차트엔 지금도 회자되는 ‘명곡’이 꽤 많았다. 특히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노래’가 많았던 해로 기억한다. 대표적으로 SG워너비의 ‘살다가’와 버즈의 ‘겁쟁이’, 윤도현 밴드의 ‘사랑했나봐’와 izi의 ‘응급실’ 등은 지금도 나를 비롯한 남자들의 노래방 애창곡 1순위로 손꼽히는 노래들이다. 하지만 당시 군인이었던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나는 채연이 ‘나나나나 난나나나나나 쏴~’를 외칠 때 입대했고(흔히 말하는 ‘입대곡’이 채연의 ‘둘이서’이다), 훈련소에서는 이효리의 ‘애니모션’ 뮤직비디오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는 조교들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며(첫 휴가를 나가면 그 뮤직비디오부터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으로 자대라는 곳에 가서 본 풍경은, 마치 이단 종교에 심취한 광신도들처럼 쥬얼리의 ‘슈퍼스타’ 무대를 보며 ‘포효’하는 선임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나도 몇 달 지나지 않아 똑같이 변했지만. 그해 데뷔한 아이비는 섹시하다 못해 선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를 앞세운 ‘어젯밤 일’과 ‘A-ha’로 데뷔와 동시에 ‘군통령’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해, 나의 플레이리스트 제일 위에 있던 곡은 ‘결’이 조금 다른 노래였다. 공군이었던 나는 훈련소에서 유독 정훈교육(국군의 이념을 주입하는 일종의 정신교육)이 많았는데, 훈련 첫 주였나? 하루는 정훈 조교가 모든 훈련병의 눈을 감게 하더니, 노래 한 곡을 틀어주었다. 사실 고단한 훈련병에게 이런 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잠시 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인 것. 어떻게 하면 ‘티 안 나게’ 졸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 귓가에 꽂힌 가사 한 줄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반복되는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라는 가사 때문이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주까지 잘 먹고, 놀던 ‘우리’가 양털 깎듯 똑같이 짧게 자른 머리를 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지르는 ‘윽박’에도 ‘찍’소리 못하고 하나에 ‘군기’ 둘에 ‘확립’을 하고 있으니,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는 것처럼 느꼈을 법도 하다. 아 맞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이런 가사도 있었지. 그런데, 사실 이 노래는 엄청 가슴 절절한 이별노래인데…. 그러고 보면 노래 속 가사처럼 추억은 다르게 적히나 보다. 여하튼, 지금도 이 노래가 들려오면, 바람이 많이 불던 그 겨울, 훈련소가 생각난다. 그때 4중대 1소대 훈련병들은 다들 잘 살고 있는지.
WORDS 이승률(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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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교환학생이던 2006년
 Ne-Yo ‘So Sick’

지긋지긋한 90년대의 망령이 떠나가나 보다. 이렇게 2000년대를 묻는 걸 보니 말이다. <So Sick>은 2006년 1월 1일 발매된 니요(Ne-Yo)의 데뷔 앨범 수록곡이다. 2005년에서 2006년으로 넘어가던 그때,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뉴 이어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아베크롬비 티셔츠 위에 A/X 블루종, 디젤 청바지를 입고 방방 뛰었다. 다행히 부츠컷은 아니고 일자 핏이라 지금 보기에도 과하진 않다. 2010년쯤 되자 ‘아베 좀비’라는 조롱 속에 사라져야 했던 2000년대 패션 아이템들.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뉴욕은 여행으로 갔고, 학교는 캘리포니아 북부에 있었다. 월마트에서 구입한 2만원 남짓한 라디오에선 새크라멘토 방송이 흘러나왔다.

“Sacramento’s No.1 Station for Hiphop & R&B!”라는 멘트 뒤에는 으레 “ ‘Like You (BowWow)’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가장 자주 플레이된 노래는 역시 오늘의 주제곡인 ‘So Sick’. “왜 난 라디오를 끄지 못 하는 걸까(Why Can’t I Turn Off the Radio?)”라는 가사 때문인지 많이도 틀어댔다. 캘리포니아 북부의 밤은 낮은 습도 덕인지 쾌적하다. 니요 특유의 멜로디와 그루비한 사운드가 맥주 거품처럼 일렁였다. 흔히 얻어 타던 토요타 캠리나 혼다 어코드에서 흘러나오던 ‘Sexy Love’도 정숙한 일본 차에 화려한 바이브를 불어넣었다. ‘So Sick’은 미국에서도, 또 한국에서도 2000년대의 정서를 궤뚫었다. 사실 이 노래는 일종의 퇴폐적인 냄새를 풍겼는데, 아무리 들어봐도 이별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굉장히 덤덤하고 당시 유행하던 ‘쿨한’ 태도를 유지한다. 러브송이 지겹다고 하는 건 꽤나 진심 같았다. 정말 지겨워하는 듯했으니까. 2002년의 광기에서부터 시작된 벨 에포크.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쓴맛을 보기 전까지 나름 좋았던 시절. 10대부터 20대까지 시기엔 슬픔을 즐기는 감성이 존재한다. 젊으니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근거 없는 희망. 넘쳐나는 술친구. 가벼운, 혹은 진지한 연애. 만나면 만나는 대로, 헤어지면 헤어지는 대로 콘텐츠가 넘쳐난다. 심심할 겨를이 없다. 니요는 ‘So Sick’뿐 아니라 ‘Because of You’와 ‘Mad’ 등으로 싸이월드와 컬러링을 휩쓸었다. 2012년엔 LG 대 넥센의 야구 경기에 시구자로 등장, 땅볼을 뿌리며 물러났다. 이제는 ‘05학번 이즈 백’ 트루릴리전처럼 그야말로 옛날식 감성이 되어버린 2000년대 사운드. 슬슬 1990년대가 물러나고 2000년대가 떠오르는 걸 보니 그사이에 10년이 더 흘렀나보다.
WORDS 원호연(<에비뉴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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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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