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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바다

BEACH LIFE

해변에서 산다. 더위를 피해 해변으로 가는 여름의 삶, 새벽부터 저녁까지 바다에 몸을 담그는 열정적인 삶, 해변의 풍경만 그리는 창조적 삶, 해변에서 읽고 마시는 향락 생활까지. 해변의 삶을 조명한다.

UpdatedOn July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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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불과 형은 1990년 여름 경포대에 머문다. 아버지 회사 워크숍이었다. 당시에는 회사 임직원이 함께 휴가를 보내는 문화가 있었던 것 같다. 의무적으로 참가해야만 했던 것일 수도 있고. 친척들과 함께 갔는데 사촌들 중 내가 가장 어렸다. 내가 파도 앞에서 망설이는 동안 형들은 일찌감치 바다에 뛰어들었고, 튜브를 두르고 파도 위에 올랐다. 나는 물이 싫었고, 뜨거운 모래를 밟는 것도 싫었다. 볕을 피해 숨은 콘크리트 건물의 얄팍한 그늘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텐트 안은 덥고, 텐트 밖은 눈이 부셨다. 그늘 아래 웅크리고 자면, 형들이 돌아왔다. 이모가 주는 무언가를 먹었는데, 뭘 먹었는지 모르겠다. 형들은 땀인지 바닷물인지 물을 뚝뚝 흘렸고, 형들이 집어던진 고무 튜브의 거친 마감에 피부가 쓸렸던 것도 같다. 바다가 싫어서 피서가 끝나길 기다렸다. 밤에는 모닥불이 타올랐고, 람바다가 들렸다. 사람들은 둥글게 둘러앉았고, 형들은 앞에 나와 춤을 췄다.

나는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다녔다. 아침에는 해무가 찾아왔다. 해변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텐트 행렬은 안개 속에 지워졌다. 피서철에만 생기는 마을. 축축하고 가벼운 곳이다. 이슬에 젖은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우리 텐트를 찾을 수 없었다. 텐트는 모양도 색도 비슷했다. 우리 텐트를 찾으려면 텐트 앞 신발을 보고 구분해야 했다. 남의 텐트 앞을 기웃거리는 건 초조하면서도 짜릿한 일이다. 왜 어릴 때는 집을 못 찾을까. 모래가 익기 시작했고, 두리번거리는 엄마를 발견하고서야 아무렇지 않은 듯 텐트로 들어갔다. 물이 싫었던 건 수영을 못해서였다. 형들은 억지로 나를 작은 튜브에 넣고, 바다로 밀었다. 형들은 내게 수영이 재밌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애썼다. 그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했을까. 고개를 끄덕이고 알아들었다고 해야 했을까. 싫다고 꺼내달라고 울어야 했을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무리에서 밀려났다. 내 자신이 지루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형들과 멀어지자 이안류가 나를 끌고 갔다. 해변의 소란이 점점 작아졌다. 해변과 멀어질수록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이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임을 알았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밀려났다. 바람이 물을 스치는 소리 정도만 들렸다. 당황하고 놀라기에는 바다가 너무 조용했다. 나도 바다와 함께 침묵했다. 한참 뒤 형들이 나를 발견하고 헤엄쳐 왔다. 형들에게 그건 모험이고, 놀이였을 것이다. 뭍에 도착하고 나선 모래성을 지었던 것 같다. 민망해서였는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그랬던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동안 모래를 쥐고 있었다.

다시 경포대를 찾았을 때 아버지는 회사원이 아니었고, 사촌 형들도 없었다. 모래는 여전히 뜨거웠지만 해변 폭은 기억보다 좁았다. 텐트 설치 구역은 해변에서 떨어져 있었고, 일시적으로 생겨나는 마을 같은 것도 없었다. 파라솔 아래 가방을 두고 바닷물에 들어갔다. 파도를 넘으며 헤엄치고, 때로는 파도 아래로 잠영했다. 부표까지 헤엄치기도 했다. 부표에서 해변을 돌아보니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 소리도 들리고, 물결 소리도 들리고, 기억보다 고요하진 않았다.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내려갔던 걸까. 해변으로 돌아와 파라솔 아래 누웠다. 잠들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평선을 바라보다 책을 펼쳐 몇 장 읽은 다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형들은 무얼 하며 지낼까. 형들은 왜 나를 웃게 만들려 애썼을까. 모래성을 짓는 아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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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정소진
ASSISTANT 강예진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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