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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작가, 육준서

본능적인 색감, 과감한 붓질. 육준서는 주저하지 않는다.

UpdatedOn May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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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셔츠·회색 팬츠 모두 코스 제품.

미술을 업으로 삼은 이유는?
그리는 행위를 좋아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볼펜으로 달력 뒷면을 채우는 게 일상이었고, 학창 시절에도 그림 그리길 좋아해 친구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게 내 일이었다. 만화 그리기도 좋아했다. 학교에서 미술 활동이나 대회가 있으면 늘 참가했다.

수상도 많이 했나?
상을 많이 타지는 못했다. 그와 상반되게 운동도 좋아했다. 군인을 동경했었고.

군인은 어떤 점에서?
군인은 사명감을 갖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 거기서 매력을 느꼈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을 별로 안 좋아했다. 진취적으로 성취해나가며 살고 싶었는데, 군인은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UDT에 대해 알게 됐고, 고3 때 준비해서 필기시험 보고, 겨울방학에 입대했다. 훈련을 수료한 후 UDT 의장을 달고 생활하며 군인으로서 멋진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군복무를 하며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스물넷에 전역했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다. 미대에 입학해 정석적인 코스를 밟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대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아트 신을 경험해보고 대학에 가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전역 후 곧바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분출에 가까웠다. 5m, 10m 길이의 합판에 대형 작품을 토해내듯 그렸다. 그렇게 전시도 했고, 무작정 활동했다. 아는 것 하나 없이. 전시를 하니 미술 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미대 출신, 그러니까 정석적인 코스를 밟아온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대학의 역할에 대한 얘기를 듣고, 대학이 미술가로서 살아남는 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도 들었다. 비전공자로서 극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갖춰야 할 요소에 대해서도. 그렇게 경험을 쌓고 있다.

아트 신에서 신인 작가로서 주목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시도를 하는 것. 기술적인 부분이나 미술 사조의 철학,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 등 많을 거다. 작가가 남들과 차별화되는 명확한 특징을 보유했다면 그것 또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요소고.

본인 작업의 남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직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비전공자로서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고, 그만큼 기술이 부족할 수는 있다. 하지만 표현 방식만큼은 틀에 구애받지 않는 면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또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그림을 겁내지도 않는다. 제도권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친구들 중에는 큰 화면을 채우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교육에서 강조하는 규칙성이나 순수성, 이런 게 내게는 없다. 컬러도 손에 잡히는 대로 쓴다. 주변 미술인들은 육감적이라고 표현하더라. 내가 정말 재능이 있는 건가? 생각한 적도 있다. 물론 자만일 수도 있지만.

미술은 어떤 발언이 되기도 한다. 육준서의 그림에는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아직 말을 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옹알이하는 수준, 비명 지르는 단계가 아닌가 싶다. 발언을 하려면 더 많은 공부와 시간이 필요하다.

자화상을 그리는 것은 소리 지르는 자신을 자각하려는 시도일까?
아직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나에 대해 파악하고 싶다. 어떤 부분에서 울고 웃는지. 행복하고 불행한지 명확히 알고 싶은데,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한다. 또 그것을 깨닫는 과정으로서 내 삶에 그림이 존재하는 듯하다.

육준서 그림의 첫인상은 어둡고 혼란스러웠다.
내가 깨야 할 숙제인 것 같다. 어두운 그림이 미술사적으로 봤을 때 문제될 건 없다. 그림을 팔아서 먹고살고자 한다면 화풍의 변화는 필요하다. 대중의 시선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된다. 하지만 그걸 완벽히 수행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고. 대중에게 나라는 사람을 먼저 보이고 나에 대한 인상이 그림으로 연결된다면 마냥 어두워 보이기만 하는 그림을 조금은 이해해주지 않을까. 사실 전위적인 작품을 많이 작업했기에 화풍의 변화는 앞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발표한 작품은 스스로에게 솔직했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시선을 수용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순간도 생길 것이다. 일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그 간극을 잘 설정하고, 중심을 단단히 지켜가는 게 내가 풀어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언제 솔직한가?
매사에 솔직하려고 노력한다. 거짓말하는 거 정말 싫어한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곁에 두지 않으려고 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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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 2019, 524×246cm, mixmedia on woodboard.

‘허상’ 2019, 524×246cm, mixmedia on woodboard.

‘Red portrait’ 2020, 240×170cm, oil on canvas.

‘Red portrait’ 2020, 240×170cm, oil on canvas.

‘Red portrait’ 2020, 240×170cm, oil on canvas.

‘Self Portrait’ 2021, 5360×5045px, digital art work.

‘Self Portrait’ 2021, 5360×5045px, digital art work.

‘Self Portrait’ 2021, 5360×5045px, digital art work.

현재 화두는?
TV 방송 출연 이후 내 안에서 혹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스스로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이 변화에 잘 녹아들 수 있을까. 녹아든 다음 그 이상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5월 중순에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인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화풍을 선보이려 한다. 전시회에선 느끼는 게 정말 많다. 관객의 피드백을 직접 받고, 다시 한번 내 작품을 다른 시선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런 기회가 오길 기대하고 있다. 또 <강철부대>의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작품으로 나를 접했을 때 어떻게 느낄지도.

그나저나 <강철부대> 반응이 아주 좋다.
<강철부대>는 용기 내서 출연한 것이라 의미가 크다. 시청자의 관심이 도전에 대한 보상 아니겠냐고 팀원들끼리 얘기한다.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의미 있고, 확신만 있으면 열심히 해서 안 될 건 없다고 생각한다.

<강철부대>의 육준서는 목표가 뚜렷한 강직한 사람으로 보인다. 반면 작가 육준서의 그림에선 두려움과 혼란이 보이고. 무엇이 더 본인과 가깝나?
미술가로 살겠다는 결심은 변함없다. 그림을 그릴 때가 너무 좋다.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 하지만 미술가로 살겠다는 것은 내 자신에게 베팅하는 거다. 모든 시간과 돈을 불확실한 미래에 거는 거다. 무섭다. 두려울 때도 있고. 부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나이 들고, 늙어가는 모습이 눈에 보일 때면 괴롭다. 직장 생활하며 일정한 수입을 얻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입장이 아니라서, 또 장남인데 맏이 노릇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오는 형용할 수 없는 죄송스러움을 느낀다. 그런 감정들이 결국에는 작품에 투영되는 게 아닐까 싶다.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기 전에 유명인이 되면, 대중은 의심 어린 시선으로 작품을 보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런 말을 나눌 수 있다. 그것 역시 내가 작가 활동을 더 열심히 해서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왠지 그렇게 될 것만 같다고 생각하는 건 예감대로 되더라.

그림을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했을 때도 확신이 들었나?
그냥 잘될 것 같았다. 내 그림 실력이 부족한 건 스스로도 잘 알고, 배워야 할 건 너무 많다. 그래도 분명 남다른 점이 있다고 확신했다. 나는 물감 쓰는 걸 주저하지 않고, 결과물에 부족함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감도 있다. 그리고 작은 확신을 더할 수 있었던 계기는 5m 길이의 대형 작품이 팔렸을 때다. 구매하신 분께서 나에게 제안을 했다. 비영리로 대가 없이 무조건 지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후원자가 생겼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생긴 감사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후원자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지금껏 문제 없이 작업을 하고 있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서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엄청 좋아한다.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앞으로도 계속 영향받을 것 같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초등학교만 나왔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고, 그로테스크하고 파괴적인 화풍으로 논란이 많았지만 동시에 관심도 많이 받았다. 내가 지향하는 인간상이다.

최근에는 아이패드로 작업하고 있다. 디지털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더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그림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사진이나 영상으로 변환하기도 수월하기에 재밌는 작업을 많이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시대 흐름에도 맞춰가야 한다. 그게 현명한 창작자의 태도이고. 지금 추세는 NFT 등 디지털 작업이 주를 이룬다. 디지털 작업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시도해봐야 된다. 요즘 디지털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5월 전시에도 디지털 작업을 선보일 계획이고.

디지털 작업과 기존 작업의 차이는 무엇인가. 또 그 차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기존 작업에서 많이 사용한 붓 터치나 색 배합은 내가 바꾼다고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디지털 환경에 그대로 가져왔다. 디지털 작업의 용이한 점은 레이어를 무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레이어에 내 얼굴이나 몸 사진을 두고, 그 위에 나만의 붓 터치와 색 등 그림적인 요소를 더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건 무엇인가?
주체적인 삶이 가장 의미 있다. 끌려 다니며 사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확신하는 장기 하나로 도전하며 사는 삶. 얘기만 들어도 재밌을 것 같지 않나?

시류에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큰 용기가 필요한데.
나는 복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께서 열심히 살아오셨기 때문에 나는 내 인생만 책임지면 작업하는 데 지장 없다. 만약 부모님께서 편찮으시거나 힘드신 상황이라면, 미술을 못 했을 거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복 받은 사람,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심연을 관찰할수록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심연에서 발견한 건 무엇이었나?
사람이 갖고 태어난 이중성에 대해 몰두하는 편이다. 일관될 수 없는 모습,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 모든 사람이 이중적일까에 대한 생각도 한다. 그동안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요즘 작업은 주제가 있다.

무엇인가?
천지창조다. 천지가 창조되는 순서에 맞춰 날짜를 1일부터 7일까지로 설정하고, 각 섹션에 맞게 작업의 구성을 달리해 라이브로 작업할 거다.

천지창조 작업은 언제 시작하나?
5월 오프라인 전시에 앞서 온라인 전시를 먼저 할 계획이다. 온라인 전시는 내가 작업하는 모습과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며 작업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보여주고, 2차적으로 오프라인에서 그 결과물을 공개할 거다. 1일에는 낮과 밤으로 빛이 만들어지는 과정, 2일에는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작업은 층층이 그림을 쌓아 올리며 기존에 없었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드는 방식으로 한다. 천지창조는 희망이다. 없었던 게 새로 생겨나고, 새로운 세계 자체가 희망이라는 모토를 품는다고 생각한다. 팬데믹 시대의 일상에는 두려움이 기저로 존재한다. 그래서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닐까. 그런 주제로 천지창조라는 작업을 계획하게 됐다.

기존 작업에서 혼란과 불안이 읽혔다면, 이번 작업은 낙관적이다.
그렇게 되려는 시도인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을 하자면, 작가로서의 지향점은?
겁내지 않고 도전하는 작가로 기억됐으면 한다. 경험해보지 않은 영역일지라도 주저하지 않고 해내면서 결국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사람.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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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배보영
HAIR&MAKE-UP 채현석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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