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EATURE MORE+

도시 기억하는 법

도시의 이면을 보았다. 앞으로 더블린은 등 굽은 노인들의 뒷모습으로, 요하네스버그는 슬럼가 주민들의 표정으로, 뉴욕은 그라비티가 새겨진 지하철의 갱단들로 기억될 것이다. 요하네스버그, 뉴욕, 런던, 키예프, 더블린,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를 독특한 시선으로 기록한 사진가들의 책을 들췄다. 도시 사진집 7선이다.

UpdatedOn February 19, 2021

3 / 10
/upload/arena/article/202102/thumb/47311-443602-sample.jpg

 

/upload/arena/article/202102/thumb/47311-443603-sample.jpg

요하네스버그 <Ponte City> Patrick Waterhouse, Mikhael Subotzky

요하네스버그 <Ponte City> Patrick Waterhouse, Mikhael Subotzky

여전히 ‘폰테 시티’는 요하네스버그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한다. 도시의 고지대인 베이라 지역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1975년 54층 규모로 지어졌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절정에 달한 시절이다. 남아공을 지배하던 백인 상류층을 위한 호화로운 거주 시설이었다. 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1990년 이후 백인들은 도망치듯 떠났고, 빈집은 이주민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이들, 전쟁을 피해 온 가난한 이민자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수도도 전기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폰테 시티의 빈집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슬럼화됐다. 도시는 붕괴했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랜드마크는 매춘, 마약, 범죄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재개발 움직임이 일었다. 대부분의 거주민이 쫓겨났지만 개발은 허투루 돌아갔고, 이듬해 2008년 비디오그래퍼 미카엘 수보츠키와 작가 패트릭 워터하우스는 폰테 시티에 남아 있는 주민들의 초상화를 촬영했다. 폰테 시티는 미디어에선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슬럼가로 다뤄졌지만 거주민의 생활은 다른 지역의 주민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폰테 시티의 폭력과 범죄는 아파트가 아닌 TV 속에 있었다. 책에서는 폰테 시티 주민들의 일상과 아파트에서 바라본 요하네스버그 전경, 개발 흔적이 무덤처럼 중정에 쌓인 폰테 시티를 관찰한다. 지배자들의 꿈, 미디어에겐 디스토피아, 피난민에게는 등불인 폰테 시티는 여전히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다.


/upload/arena/article/202102/thumb/47311-443604-sample.jpg

런던 <Shoreditch wild life> Dougie Wallace

런던 <Shoreditch wild life> Dougie Wallace

이스트런던은 런던에서 가장 이상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쇼디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해괴한 지역이다. 더럽고, 재밌고, 활기차고, 괴팍하고, 자유롭다. 사진가 두기 월레스는 쇼디치의 기묘한 생명력을 좇는다. 가게 주인의 놀란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라비티를 그리는 남자, 버려진 기내용 캐리어에서 자는 개, 헬멧을 쓴 늙은 노점상, 경찰을 향해 아랫도리를 벗고 서 있는 사람. 쇼디치의 거리는 혼란하다. 두기 월레스는 납득할 수도 추측할 수도 없는 것들을 포착한다. 그는 쇼디치로 이사하기 전까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책에 담긴 혼돈의 쇼디치는 런던의 야생성이다.


/upload/arena/article/202102/thumb/47311-443605-sample.jpg

키예프 <Kachalka. Muscle Beach> Kiril Golovchenko

키예프 <Kachalka. Muscle Beach> Kiril Golovchenko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는 머슬 비치가 있다. 말 그대로 근육을 키우는 해변이다. 카찰카라고 불린다. 규모는 3천 평에 달하며 녹슨 아령과 강철로 만든 운동기구들이 해변을 점거하고 있다. 운동기구들은 누가 훔칠까 두꺼운 체인으로 묶여 있다. 왜 운동기구를 모두 파란색으로 칠했는지는 알 수 없다. 바다가 푸르러서? 그럴 수도 있다. 카찰카는 1970년대 초 조성됐다. 역도 기구를 놓기 시작한 것이 점차 종류가 늘어났다. 많은 고철이 기증되었다. 군용 탱크의 부품, 거대한 기어, 크레인 훅, 파이프 같은 것들이다. 고철들을 용접해 기괴한 운동기구를 만들었다. 실패한 성형수술처럼 보이는데, 무엇이 됐든 간에 파란색을 칠하면 완성이다. 조잡하지만 무거우니 됐다. 운동기구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서지기 때문이다. 현대식 체육관도 늘어나고 있지만 야만적인 카찰카를 찾는 사람은 줄지 않았다. 무료로 하루 종일 운영되기 때문이다. 카찰카에는 사회적 계급이 없다. 아이, 노인, 여성, 마피아, 유명 운동선수, 보디가드 등 누구나 와서 근육을 키운다. 키예프에서 근육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upload/arena/article/202102/thumb/47311-443606-sample.jpg

뉴욕 <Subway> Bruce Davidson

뉴욕 <Subway> Bruce Davidson

1980년대 초 뉴욕 서브웨이 풍경이다. 열차는 그라비티로 도색되었고, 낙서와 낙서 사이에 머물러 있다. 스프레이 페인트와 매직 마커로 쓴 낙서들은 사실 갱단의 태그다. 갱단들의 언어는 그림처럼 보이고, 죽고 사라진 갱의 이름 위에 또 다른 이름을, 숫자를 덧씌운다. 1980년대 뉴욕 서브웨이는 저승으로 가는 카론의 배와 같았다. 사진가 브루스 데이비드슨은 그라비티의 주인들, 갱단을 주시하면서도 이따금 서브웨이 탑승객들을 바라본다. 카메라를 든 저승사자 같기도 하다. 그는 창밖으로 코니 아일랜드의 원더 휠을 바라보는 세 아이들이나 눈을 잃은 열차의 악사들, 카메라를 의식하는 사람들, 연인, 형제, 이민자, 체포하길 기다리는 경찰견, 체포된 갱, 죽음에 근접한 사람을 사진에 담았다. 책에 담긴 사진들은 서사가 명확하다. 인물과 배경의 절묘한 배치는 그가 얼마나 가까이 접근하고, 많이 셔터를 눌렀는지 짐작하게 한다.


/upload/arena/article/202102/thumb/47311-443607-sample.jpg

더블린 <Made IN Dublin> Eamonn Doyle

더블린 <Made IN Dublin> Eamonn Doyle

사진가 이몬 도일은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집 근처 거리를 배회한다. 더블린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멀리 나가거나 특별한 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가 북부 더블린에서 보고 느끼고, 겪는 일상을 찍는다. 책은 ‘I’ ‘ON’ ‘END’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I’에서 그는 노인들을 내려다본다. 구부정한 자세로 이동하는 노인의 뒷모습이나 바닥을 향하는 노인들의 시선을 따른다. 노인의 뒷모습처럼 사진은 고요하다. ‘ON’에서는 올려다본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은 대부분 이민자들이며, 명암의 대비를 한층 강조한 흑백으로 촬영해 인물들은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비장함과 힘이 교차된다. ‘END’에선 그가 일상에서 겪는 사건들을 담았다. 다른 행인을 피하고, 걸으며 보게 되는 앞사람의 팔이나 옷자락 등이다. 북부 더블린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닥을 보며 걷는다. 그렇게 걷는 것이 북부 더블린의 삶인 것처럼.


/upload/arena/article/202102/thumb/47311-443600-sample.jpg

도쿄 <TO:KY:OO> Liam Wong

도쿄 <TO:KY:OO> Liam Wong

사진가 리암 웡은 스코틀랜드인이다. 도쿄에 간 것은 게임 관련 업무 때문이었다. 이후 다시 도쿄를 방문한 2015년 12월, 그는 카메라를 들고 자신만의 도쿄를 보았다. 간판으로 가득한 유흥가 골목이지만 고요하고, 고인 물웅덩이에 반영된 번화가의 네온사인은 조용하며, 투명한 우산을 쓴 사람들의 실루엣에선 어떠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리들리 스콧의<블레이드 러너> 속 무명의 행인들처럼 보인다. 빗물 웅덩이에 비친 도시의 조명은 가스파 노에의<엔터 더 보이드>를 닮았다. 나아가 발전소의 풍경, 도쿄 중심으로 폭발하는 듯한 거대한 에너지의 모습은 오토모 가츠히로의 애니메이션<아키라>의 일부 같다. 현실에 없는 색감과 마젠타빛 도시의 이미지는 게임처럼 느껴진다. 리암 웡의 사진들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촬영 이후 후반 작업에 더 많은 공을 들였음이 짐작된다. 그는 자신의 세계관에 비추어 도쿄를 그렸다. 그의 도쿄는 리들리 스콧과 가스파 노에, 오토모 가츠히로의 세계와 교차하며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원형을 자처한다. 그래서인지 책에 담긴 도쿄의 이미지는 익숙하고도 낯설다.


/upload/arena/article/202102/thumb/47311-443601-sample.jpg

펜실베이니아 <American in a Trance> Niko J. Kallianiotis

펜실베이니아 <American in a Trance> Niko J. Kallianiotis

흥망성쇠가 끝난 뒤에 무엇이 남을까. 미국이 제조업으로 흥하던 시절 러스트벨트는 미국 경제를 견인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펜실베이니아는 미국 제조업을 이끄는 축 중 하나였다. 뉴욕과 가까운 지리적인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제조업은 쇠락했고, 러스트벨트는 녹슨 채로 남았다. 간판도 광고도 없는 건물, 부서진 폐공장, 텅 빈 상점, 황량하고 으스스한 도시를 걷는 사람만이 흥망성쇠 이후 남은 도시의 조각들이다. 제조업을 부흥시키겠다고 주장하는 공화당의 목소리만이 도시를 울린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성조기가 내걸리지만 사람들은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사진가는 빛바랜 유산만이 남은 러스트벨트의 풍경을 모은다. 도시에는 결말이 없다. 책은 해피엔딩 이후 세월이 흐른 뒤 변화한 도시의 지금을 보여준다.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ASSISTANT 전소현
PHOTOGRAPHY 박도현
COOPERATION 파티클(@particle_seoul)

2021년 02월호

MOST POPULAR

  • 1
    SHOOTING STAR
  • 2
    드라마 <빅마우스>로 복귀! 이종석, 화보 미리보기
  • 3
    NEW FORMALITY
  • 4
    사막과 자유
  • 5
    FUTURE - chapter4. Unsupervised Learning AI

RELATED STORIES

  • FEATURE

    메타버스, 욕망의 CtrlC-CtrlV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회사가 될 것이라 선언했다. 모바일의 용도가 소셜 미디어에서 메타버스로 옮겨간다는 주장이다. 저커버그는 메타버스에 관한 소설을 읽은 중학생 때부터 메타버스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럼 메타버스는 환상적인 곳인가? 그렇다. 가상현실은 환상을 충족시킨다. 누구나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권력에 대한 환상이 충족되는 곳이다. 그럼 메타버스는 유토피아인가? 권력욕을 비롯한 현실 욕망이 복제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디스토피아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메타버스에선 익명으로 권력을 가진 사용자들이 어떤 해악을 저지를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기대, 아니 걱정된다.

  • FEATURE

    웃는 얼굴, 우상혁

    24년간 2m 34cm에 멈춰 있던 높이뛰기 한국 신기록이 올해 도쿄 올림픽에서 비로소 깨졌다. 우상혁이다. 1997년에 이진택 선수와 함께 얼어붙어 있던 그 기록을 1996년생 우상혁 선수가 부쉈다. 7월 1일에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우상혁은 자신 있었고, 그 자신감은 앞으로 달려나가며 그가 띤 미소에서 발견됐다. 한국 신기록이 깨지기까지의 과정,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를 돌아본다. 기대되는 우상혁에 대해 말해본다.

  • FEATURE

    BOTTOM TO THE STAR

    BTS의 빌보드 장기 집권 소식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당연한 사실로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팝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서, 그것도 63년간 탄탄하게 이어져온 빌보드 차트의 시스템을 허문 아시안 케이팝 스타 BTS의 퍼포먼스를 의심하는 축도 존재한다. 인기의 본질을 단순히 팬덤의 든든한 지원만으로 한정하기도 하며, 오히려 미국 시장에서 타 팝스타에 비해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간과한다. 하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에, 바닥부터 별의 자리로 오르기까지 요구된 긴 시간과 노력에 집중한다면, BTS의 성공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 FEATURE

    위버스, 경쟁을 거부하는 1인자의 힘

    위버스는 아티스트와 팬덤 간 소통의 장 역할을 하는데, 이 소통의 장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BTS를 비롯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세븐틴, 그리고 하이브 소속이 아닌 매드몬스터나 최근에는 블랙핑크까지 품었다. 이외에 맥스, 뉴 호프 클럽 등 해외 아티스트까지도. 거대해지는 위버스는 단순히 입점 아티스트 수로만 승부하는 게 아닌,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는 위버스샵, 아티스트가 라이브를 선보이는 브이라이브 등 다양한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위버스의 몸집이 어디까지 불어날지. 또 몸집만큼 위대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위버스를 들여다본다.

  • FEATURE

    제임스 건의 도발적인 유머에 접속하기

    전작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지만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다르다. 제임스 건이 감독을 맡아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마블 영화 패러다임을 흔든 제임스 건은 오락 영화의 문법을 잘 이해하고 쓰는 감독 중 하나다. 영화에 꼭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면 웃기고 세련되게 담아내는 것도 그의 힘. 가장 큰 힘은 특유의 유머다. 등장인물이 많아도 웃음으로 꽁꽁 묶어 이야기가 새어나가는 걸 막는다. 제임스 건의 웃기는 기술을 파헤친다.

MORE FROM ARENA

  • CAR

    벤틀리는 진화한다

    럭셔리 SUV의 원조 신형 벤테이가가 국내에 공개됐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벤틀리모터스코리아 총괄인 워렌 클락(Warren Clarke)에게 물었다.

  • ARTICLE

    Test Shooting

    2018 S/S 시즌의 새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나서는 순간.

  • TECH

    스타트업 - AGRIPREDICT

    환경, 빈곤, 질병 등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들을 기술로 해결한다. 채팅 앱으로 아프리카의 허기를 채우려는 농업테크, 전기차 시대에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모빌리티 기업, 착한 박테리아로 식품 유통기한을 늘리는 푸드테크, 저소득층 아이들의 발달장애 치료를 위한 에듀테크, 중력을 사용한 신개념 청정 에너지까지. 인류애를 품은 스타트업을 소개한다.

  • FILM

    폭스바겐 x 아레나

  • ARTICLE

    [A-tv] 제냐 x 7models

    지금 가장 주목받는 일곱 명의 모델과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포트레이트.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