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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의 파도

강남 한복판을 전 세계가 주목하게 만든 거대한 파도 ‘웨이브’, 코로나19로 침체된 삼청동 갤러리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 ‘에이스트릭트’, 제주도를 미디어아트 성지로 만든 ‘아르떼뮤지엄’. 모두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제작사 디스트릭트의 공이다. 디스트릭트가 일군 도전과 성공을 이성호 대표와 이상진 부사장이 말한다.

UpdatedOn January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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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하운즈투스 체크무늬 벌룬 재킷·벨벳 소재 팬츠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 제품. 레터링 프린트 스웨터·회색 팬츠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 제품.

2020년 미디어아트 신에서 디스트릭트만큼 뜨거운 이름이 있었을까? 에이스트릭트라는 유닛으로 펼친 개인전도 인산인해였다.
이성호 그동안 커머셜 디자인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디스트릭트의 크리에이터들이 고객사를 만족시키기 위한 작업을 진행해왔다. 2020년에 들어서면서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회사와 크리에이터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웨이브(Wave)’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국제갤러리가 우리의 작업을 미술관에 전시하는 현대미술 활동을 제안했고, 상업적인 활동을 해온 디자인 에이전시 디스트릭트가 아닌 ‘에이스트릭트’라는 작가 브랜드를 출시해 아트 신에서 활동했다.

아트 신에서는 지속적으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도 결국은 동일어가 아닐까.
이성호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아티스트보다 크리에이터가 적절한 용어가 아닐까 한다. 회사 내부에서 제작 담당 직원들의 호칭으로 크리에이터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디스트릭트가 보여준 작품들은 규모가 거대하다. 큰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객사의 의뢰를 받아서 만드는 작업이 아닌, 작가로서 작업할 때는 비용이 부담되었을 것이다.
이성호 아르떼뮤지엄은 2019년 9월부터 본격적인 제작을 시작했는데, 지난해 에이스트릭트 브랜드로 선보인 ‘스태리 비치(Starry Beach)’도 아르떼뮤지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함께 만든 작품이었다. 개인전에는 장비와 인테리어 예산 정도만 집행했다.

많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지 고민이 깊을 것이다.
이상진 그렇다. 처음부터 코로나19를 염두에 두고 주제를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소재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에서 출발하게 됐다. 넓은 공간에 전시하는 큰 규모의 작품이라는 점,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소재여야 한다는 점도 자연을 선택한 배경이다. 자연을 우리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게 과제였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 시대이기 때문에 쉽게 여행을 떠나고 자연을 접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연유로 에이스트릭트의 개인전에서 선보인 ‘스태리 비치’와 코엑스 광장의 거대한 파도 ‘웨이브’ 등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AR이나 VR 등 가상현실을 정의하는 용어들이 많다. 아르떼뮤지엄의 작업은 다양한 가상현실 기술 중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이성호 프로젝션 매핑, 홀로그램, 증강현실, 가상현실, 3D 입체영상 등 이런 것들을 실감미디어 솔루션이라고 한다. 아르떼뮤지엄은 주로 프로젝션 매핑을 많이 활용했다. 아르떼뮤지엄은 실감미디어 기술을 적용해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는 소재를 1천4백 평 공간에 펼친 곳이다.
이상진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지향점은 같다. 현실에 없는 공간을 체험하기 위해 특정 장비 활용의 유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 전시는 관람객이 추가적인 장비 착용 없이 작품을 경험하게끔 그래픽으로 풀어냈다.

2020년 디스트릭트의 전시는 잇따라 흥행했다. 특히 아르떼뮤지엄은 하루 평균 방문객이 2천5백 명에 달했다.
이상진 아르떼뮤지엄은 외진 공간에 세워진 공장 같은 건물이다. 요즘 트렌드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전시를 준비하며 걱정이 많았다. 우리 전시가 성공할 수 있을까? 첫날에 몇 명이나 방문할까? 하루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 같다가도, 다른 날에는 아무도 안 올 것 같았다. 우리 전시를 아무도 안 좋아하면 어떡하나?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그런데 오픈한 지 50일 만에 1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주었다. 무척 감격스럽기도 하지만 복잡한 마음이기도 하다. 과거 실패의 경험도, 아픔도 있어서인지 기쁘면서도 잊은 감정까지 떠올랐다.

왜 하필 제주도였을까? 아르떼뮤지엄을 제주도에 만든 이유도 궁금하다.
이성호 사람들이 자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려면 작품 교체 주기가 짧아야 한다. 우리 전시는 엄청나게 많은 장비들이 사용되고,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도심에서 6개월만 전시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제주도는 관광객이 굉장히 많은 곳이고, 평균적으로 2, 3년에 한 번 찾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작품 교체 주기와 비슷하다. 방문 시기에 맞춰 작품을 교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주도를 택했다. 또 다른 이유는 아르떼뮤지엄 정도의 건물을 육지에서 찾기 힘들다. 그리고 우리 작품이 ‘자연’을 소재로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자연’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지역이 제주다.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9m 화면을 통해
보는 것은 감동의 크기가 다르다.
큰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층고가
높은 건물을 찾아다녔다.”

 

아르떼뮤지엄에서 압도된 것은 규모다. 거대한 작품들을 관람하면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웨이브’ 역시 거대한 파도라는 점에서 강한 울림을 전했다고 생각한다.
이상진 AR이나 VR은 규모가 필요 없다. 우리는 기존과는 다른 경험을 선사하고자 규모와 생경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성호 규모는 중요하다. 아르떼뮤지엄의 작품을 일반 건물에서 보는 것과 9m 화면을 통해 보는 것은 감동의 크기가 다르다. 큰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층고가 높은 건물을 찾아다녔다.

지난 4월 코엑스 광장 전광판에 공개한 ‘웨이브’는 SNS 조회 수 1억 뷰 이상을 올리며 해외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전 세계에 디스트릭트를 알린 작품이다.
이상진 2020년 기대 이상의 관심을 받았는데, ‘웨이브’가 그 출발점이 된 작품이다. 전광판에 작품을 올린 것은 4월인데, 한 달 뒤 갑자기 전 세계 언론들이 다루기 시작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우리에게는 매우 뜻깊은 작품이다. 이어서 ‘에이스트릭트’도 감행할 수 있었고, 그전부터 준비해온 아르떼뮤지엄도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정말 회사에 의미가 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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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코트·흰색 셔츠·벨벳 소재 팬츠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 제품.

‘웨이브’를 기점으로 디스트릭트의 사업 방향도 달라졌다.
이성호 2019년까지 상업 디자인 활동만 했다. 상업 디자인만으로는 회사가 성장하기 쉽지 않았고, 구성원도 지쳐가는 와중에 옥외 전광판이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때 발견한 것이 전광판 사업자들이 광고만 상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트 콘텐츠도 원하지만 값비싼 제작비가 부담이었다. 옥외 전광판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니 합리적인 비용으로 가능한 아트 콘텐츠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가 ‘웨이브’였고,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에이스트릭트 전시를 열고 자신감이 더 커졌다. 그리고 아르떼뮤지엄을 통해 확신이 생겼다. 2020년은 디스트릭트 4.0의 시기다. 커머셜 디자인을 하던 회사에서 자체 콘텐츠 제작 서비스 회사로 성장했다. 회사의 모습이 많이 변한 해였다.

2020년 디스트릭트는 만사형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쉬운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이상진 아르떼뮤지엄으로 시작해 아르떼뮤지엄으로 끝난 해다. 아르떼뮤지엄 프로젝트 초반에는 시간이 없었다. 오픈 시기를 4월이나 5월 정도로 예상하고 기획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그 외에 여러 이슈가 발생하면서 오픈 일정이 늦어졌고, 9월 말에야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9월 오픈을 예상하고 진행했다면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여유 있게 진행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런데 기대보다 좋은 결과를 얻어서 만족하고 있다.

작품의 소재를 찾는 것도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영감은 어디서 얻나?
이성호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기술의 ‘에지’든, 아트의 ‘에지’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새로운 것들을 많이 보고, 경험하고자 한다. 새로운 경험이나 자극을 받으면 기록하기도 한다. 우리가 성공만 한 것은 아니기에 냉철한 비판도 거리낌 없이 수용한다. 만약 성공만 해왔다면 스스로 비판하는 태도를 견지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실패의 원인을 찾고 분석하는 과정이 자양분이 되었다. 또 업력이 쌓이다 보니 평소에 데이터도 많이 축적되었다. 주제에 맞춰 빠르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알고리즘을 짠다. 예를 들어 다음 작품의 주제를 ‘불’이라고 한다면, 아름다운 불 이미지를 찾고, 불을 소재로 한 작품을 찾고, 불을 다룬 작가의 아카이브도 면밀히 관찰하며 새로운 키워드를 찾고, 키워드의 어원을 살펴본다거나, 지금 시대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지금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작업을 전개한다.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이상진 실패의 경험이 밑거름이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논문을 뒤지고, 성공했던 사례를 찾아보는 게 습관이 됐다. 또 회사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이 수평적으로 이루어진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동료들을 설득하려면 충분한 데이터를 추적해야 한다. 우리는 협동 작업을 하기 때문에 동료들과의 정확한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상진 최근 만난 지인이 아르떼뮤지엄에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 작품이 왜 좋냐고 물으니 작품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순간이 있는데, 좋다고 하더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분인데, 멍 때리며 감상할 작품을 찾는 것 같았다. 지금 사람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멍하니 보고 있을 수 있는 ‘불멍’ ‘물멍’ ‘꽃멍’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르떼뮤지엄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디스트릭트’에게 2020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까?
이상진 잊지 못할 한 해다. 숫자도 2020 딱 떨어진다. 수치상으로도, 회사 내부적으로도 잊을 수 없는 한 해다.
이성호 디스트릭트의 크리에이터들은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왔다. 두 번의 실패 과정을 함께했고, 이번 마지막 시도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진행했지만, 결국은 우리의 응집력이 폭발한 한 해였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한 덕분이다. 우리의 역량을 잘 포장해서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게 쉽지 않았는데, 마침내 이루어진 것 같다. 회사가 발전할 기틀을 만든 것 같아 그 어느 해보다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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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빔 소재 재킷·회색 팬츠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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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FEATURE EDITOR 조진혁
FASHION EDITOR 최태경, 이상
PHOTOGRAPHY 레스
HAIR&MAKE-UP 구현미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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