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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시승기

올해도 어김없이 새 차는 쏟아졌고, 무수한 시승회가 열렸다. 시승기 써서 먹고사는 기자들의 손은 바빴고, 언제 무슨 차를 탔는지 가물거릴 정도로 많은 차와 바이크를 타고 한국 곳곳을 달렸다. 시승기 좀 쓴다는 사람들이 꼽은 올해 최고의 시승회다.

UpdatedOn December 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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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8일
페라리 F8 트리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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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유난히도 장마가 길었다. 거친 비바람은 내 계획에도 큰 상처를 냈다. 하필 페라리 F8 트리뷰토를 받아서 인제스피디움으로 향하는 날 장마는 절정에 달했다. 시승 당일 아침부터 먹구름이 드리웠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낮부터 폭우가 예상된다는 방송이 나왔다. 페라리 F8 트리뷰토를 타고 신나게 질주하려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서둘러 서킷에 도착했지만 두 바퀴를 채 돌지 못했는데 장대비가 쏟아졌다.

시승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제아무리 멋진 그림을 만들어도 안전을 무시한 결과라면 의미가 없다. 맹렬히 코너를 공략하고 최고속도로 달리려던 다짐은 마음속으로 묻어야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운전 모드를 웻(WET)으로 돌렸다. 해당 모드로 전환하면 접지력이 떨어지는 노면에서도 차가 자동으로 출력과 자세를 바로잡는다. F8 트리뷰토는 기대 이상의 실력으로 또 다른 매력을 전달했다. 빗길을 가르면서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보여줬고 스릴과 재미 사이를 줄타기하며 짜릿함을 선사했다. 놀랍도록 안정적이면서 페라리 특유의 사운드와 거친 감각은 그대로다. 색다른 즐거움에 취하고 강력하면서도 깔끔한 가속 성능에 매료돼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빗줄기는 더 강해졌고 결국 서킷은 잠정 중단됐다. 패독으로 들어와 우산을 쓰고 하염없이 차를 바라봤다. 비에 젖은 새빨간 페라리가 유독 섹시해 보였다. 투명 엔진룸에 떨어진 빗방울이 운치를 더하고 브레이크에는 아지랑이가 일렁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맑은 날 차를 시승했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부분이다. 세상 만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감성에 젖어 페라리를 바라보니 비 오는 날 마음껏 달리지 못해 속상했던 마음은 눈 녹듯이 사그라졌다. 오히려 새로운 유혹의 기술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인제에서 서울로 복귀하는 길에는 비가 더 강하게 내렸다. 콘셉트를 바꿔 여유로운 크루징에 나서기로 했다. 일상 주행 속 F8 트리뷰토는 생각보다 얌전했다. 차곡차곡 변속하면서 내는 엔진음은 제법 칼칼했지만 이를 제외하면 주변 차들과 잘 어울려 여유롭게 달린다. 묵직한 가속페달 덕분에 신경질적으로 튀어나가는 느낌도 덜하다. 가속페달에 힘을 빼고 정속 주행을 하면 일반 세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행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 차분한 주행과 함께 실내도 한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계기반과 은은한 조명이 주변을 비추고 고급스러운 가죽과 정교한 스티치가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탄소섬유 소재를 두른 패널도 감각적인 슈퍼카 분위기에 힘을 싣는다. 고개를 돌려 창문을 보니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옆 차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 페라리를 끌고 도로를 달리는 나를 보며 주변 차들과 사람들도 적잖이 당황했을 듯하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 차는 슈퍼스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퍼붓는 비가 야속했지만 오히려 날씨 때문에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F8 트리뷰토의 특별한 장점을 발견했다. 차는 침착하게 자세를 낮추고 조건에 맞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만큼 페라리 특유의 강한 성능을 다루기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거친 배기음과 빠른 속도감 등은 여전하다. 필요에 따라서 운전 재미도 언제든지 누릴 수 있다. 주변 상황에 맞춰 변모하는 카멜레온처럼 극과 극의 성격을 지닌 F8 트리뷰토가 더욱 자랑스러워 보였다. 무엇보다도 폭우 속에서 페라리와 함께 서킷을 즐겼다는 꽤 자랑스러운 무용담도 하나 챙겼다.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은 여름날의 추억이다.
WORDS 김성환(<오토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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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기다린 소개팅
BMW 모토라드 R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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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소개팅에 나가는 설렘 같았다. 그것도 아주 오랜 기다림 끝에 성사된 소개팅. 그럴 만하다. 자그마치 1년 넘게 기다렸으니까. BMW 모토라드 R 18 시승 얘기다. R 18은 2019년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에서 콘셉트 R 18로 첫선을 보였다.

2016년에 같은 자리에서 공개한 R5 오마주보다 양산형에 가까웠다. 친구에게 소개팅 상대의 사진을 받아 들었을 때의 두근거림이랄까. 게다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아름다운 자태에 어안이 벙벙했다. 때론 사진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가 있다. 그러기에 충분한 자태였다. 물론 사진은 실물보다 우월한 경우가 허다하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 졸이는 시기도 있었다. 양산형 사진이 공개됐을 때 불안했다. 다른 각도 사진에선 달라 보이는 소개팅 상대 사진처럼. 하지만 출시 행사에서 실물을 봤을 때, 다시 기대감이 타올랐다. 소개팅 전에 상대 몰래 바라본 모습에 두근거리는 그 마음. 그렇게 1년 하고도 몇 개월을 보냈다. 이제나저제나 소개팅 디데이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BMW 모토라드 R 18은 내게 그런 모델이었다. BMW 모토라드의 헤리티지와 크루즈라는 장르를 섞은 새 모델. 2020년 최고 기대주 모터사이클이었다.

드디어 연락이 왔다. 소개팅 디데이가 잡혔다. 그사이, 기대감은 비등점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소개팅 전에 몰래 바라본 실물의 영향이 컸다. 처음 본 콘셉트 모델의 환상적인 사진에는 못 미쳤지만, 이해했다. 소개팅 상대가 사진 이상의 미모를 뽐내는 경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니까. 대신 실물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흥이 남달랐다. 예상보다 생동감 넘치면서 굴곡도 풍만했다. 교감할 수 없는 사진보다 소통할 수 있는 실물이 더 끌리는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눈 마주치고 대화하며 같이 걸을 수 있으니까.

만난 직후에는 어색하긴 했다. 모든 것을 새로 설계한 모델인 만큼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소개팅에서 공통 관심사를 찾아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건 철칙 아닌가.

R 18과도 접점을 찾아야 했다. BMW 모토라드만의 인장은 이때 주효했다. 브랜드 역사를 관통하는 복서 엔진과 R 18의 발화점이 된 모델인 R5. 두 지점이 R 18과 친해질 계기로 적절했다. R 18을 이해하고 함께 교감할 지점이었다. 크루저라는 장르에 앞서 밑바탕에 깔린 정서랄까. 말문이 트였다.

R 18은 1,802cc 복서 엔진을 품었다. R 18을 위해 새로 설계했다. 보통 R 엔진은 1,170cc 복서 엔진을 뜻했다. 좌우로 툭 튀어나온 엔진은 BMW 모토라드의 상징 같은 형태. 커진 배기량만큼 R 18의 복서 엔진은 더욱 우람했다. 전에 없던 엔진이기에 전에 볼 수 없던 육중한 실린더 헤드의 물성이 돋보였다. 경이롭기까지 한 거대한 엔진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복서 엔진을 안다는 사람이라도 처음 접하는 생경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신선함. 1,802cc 복서 엔진이 활기차게 돌아가자 또 새로웠다.

처음에는 부드러워서 놀라고, 나중에는 공기를 짓이기며 튀어나가는 가속력에 놀랐다. 고전적 외관에서 무지막지한 출력을 발휘할 줄이야. 소개팅에서 점점 대화할수록 반전 매력을 뽐내는 상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R 18은 오른손을 비트는 대로 출력을 뿜어내며 시트에 앉은 날 자극했다. 내 한마디에 소개팅 상대가 까르르 웃어대는 그런 긍정적인 반응. 그 반응에 다시 오른손을 과감하게 비틀며 온몸 떨리는 교감을 주고받았다. 처음 만났는데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짜릿한 자극만 느낀 건 아니었다. 그 사이사이, 배려와 위트가 양념처럼 관계를 감칠맛 나게 했다. 열선 그립은 서늘해진 날씨에 소중했다. 록(Rock)과 롤(Roll), 레인(Rain)으로 나눈 주행 모드는 발상이 참신해 미소 짓게 했다. 후진 기능은 든든하기까지 했다. 이런 요소들이 교감하는 와중에 쉼표처럼 다가왔다. 크루저 장르의 기본적인 편안함도 빼놓을 수 없었다.

소개팅 같은 R 18과의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보통 기대가 크면 실망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R 18은 기대를 긍정적인 짜릿함으로 이어나갔다. 소개팅에서 심장 떨리는 상대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되려나. 하지만 씁쓸한 면 또한 깨달았다. R 18은 내가 접근하기에는 가격대가 높다. 소개팅 상대가 다 마음에 드는데, 왠지 내 위치가 초라해 주눅 들었달까. 이번 만남이 일회성임을 알기에 더 잊을 수 없다.
CONTRIBUTING EDITOR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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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다시
포르쉐 718 박스터 GTS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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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718 박스터 GTS 4.0 포르투갈 시승 행사 초청장’ 메일 제목만으로 심장은 쿵쾅거렸고. 6년 전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현실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수평대향 6기통 4.0L 자연흡기 엔진을 품은 718 박스터 GTS 4.0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탄다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나를 들뜨게 한 또 다른 이유는 시승이 이루어진 신트라 때문이었다.

내가 신트라를 방문했던 건 8년 전 프랑스에서 체류 중일 때다. 파리에서 1년 6개월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의미 있는 여행을 해보고자 포르투갈 북쪽에 있는 포르투에서 유라시아의 최서단인 호카곶을 향해 해안 도로를 걷고 또 걸었다. 거리는 약 450km로 기억하는데 더운 날씨가 문제였지 체력적으로는 가장 혈기 왕성할 때라 큰 무리가 되지 않았다. 걷는 동안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목과 어깨, 팔 부위는 뙤약볕에 피부 껍질이 벗겨지기도 했지만, 미래에 대한 많은 생각과 고민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라고 할까?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에디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고. 외국 잡지 번역 기사나 영상으로만 봤던 에스토릴 서킷 앞에 섰다. 패독 앞에 도열된 형형색색의 718 박스터 GTS 4.0이 우릴 반겼다. 시승 직전 드라이브 코스가 공개됐다. 예상대로 신트라의 해안 도로를 지나쳤다. 에스토릴 서킷에서 해안 도로로 나가 호카곶을 찍고 복귀하는 코스다. 바닷가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가슴은 파도처럼 일렁였다. 한 번 흔들린 감정이라는 바다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함께 시승했던 선배 기자는 그런 내 모습이 낯설었는지 “너 괜찮냐?”는 걱정 어린 물음만 계속 던졌다.

이번 해외 시승은 유독 자격 조건이 까다로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건 ‘수동변속기 조작 가능자’였다(그래서 신청 인원도 평소보다 훨씬 줄었다고 한다). 우리가 시승하는 박스터 GTS 4.0은 수동변속기가 들어간다. 4.0L 대배기량 차를 수동으로 변속해본 적은 없었지만 2년간 수동변속기를 품은 차로 출퇴근한 터라 큰 문제는 없었다. 대신 넉넉한 힘을 내는 엔진과 스포츠 성향이 짙은 변속기를 얼마나 잘 다독이며 성능을 뽑아내느냐가 관건이었다.

에스토릴에서 페냐 국립 왕국으로 가다 보면 외국 자동차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완만한 초원과 나지막한 건물 사이 와인딩 로드가 펼쳐지는데 8년 전 걸었을 땐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길은 기껏해야 2차선, 대개는 1차선 도로였는데 신호등이 적고, 크고 작은 코너가 다양해 차를 가지고 놀기 정말 즐거웠다. 기어레버 위의 오른손과 클러치 페달에 올린 왼발이 부단히 움직이고, 코너의 완만함에 따라 리듬을 달리해야 했다.

박스터 GTS 4.0은 스펙보다 생각 외로 다루기가 쉽다. 이런 성능의 스포츠카를 수동변속기로 조작한다는 건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로터스를 타본 사람이라면 안다). 하지만 포르쉐는 PSM(포르쉐 스태빌리티 매니지먼트), PTV(포르쉐 토크 벡터링 시스템) 등 보이지 않는 기능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운전자에게 운전을 잘하는 것 같은 환상을 선사한다.

연속된 굽잇길을 몇 차례 더 지나가자 북대서양이 햇볕에 반사돼 보석처럼 빛났다. 이 도로의 특징이라면 바다를 바라보는 데 장애가 되는 가드레일이나 나무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버튼 하나를 눌러 뚜껑을 열고 달리면 꼭 요트를 타고 바다 위를 스치는 기분이다. 등 뒤에서 터져 나오는 배기음은 아무런 장애물을 거치지 않고 귀에 꽂힌다. 가끔은 으르렁대고 때로는 앙칼진데 소리로 차의 상태를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충실하고 명료하게 반응한다. 해안 도로를 따라 더 아래로 달리니 내 기억 속 깊은 곳에서 한동안 잊혔던 호카곶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역시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았다. 괜히 가슴 한쪽이 뭉클했다. 그때는 걸어서 이곳을 왔었는데, 이번엔 포르쉐 박스터 GTS 4.0을 타고 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성공해서 고향을 다시 찾으면 이런 기분일까? 호카곶 십자가 탑 앞에서 사진을 찍는 한 무리의 배낭여행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사이에서 구릿빛 피부에, 머리는 어깨까지 기르고, 한쪽 어깨엔 카메라를 멘 8년 전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WORDS 김선관(<모터트렌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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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코미디 영화처럼
페라리 포르토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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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동차 하면 페라리야? 누가 물었고, 나는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술에 취하기도 했고, 또 페라리가 아름답다는 소리 외에는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싸움 못하는 사람들은 집에 와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야 반론이 떠오른다는데, 내 얘기더라. 아름다움이야말로 이동 수단을 뛰어넘는 자동차의 가치라고, 그 고귀한 가치에 도달한 자동차이기에 페라리가 대단한 거라고. 사실 이 말도 반론할 여지는 많다. 더 멋진 말로 포장하고 싶었지만, 내가 페라리 오너도 아닌데 얼마나 대단한 변론을 해야 하나 싶어 관뒀다. 어쨌든 그렇게 세월은 지났고, 여름의 끝에서 페라리 시승회에 초대받았다. 소규모 기자 시승회였고, 차량은 세 종류였다. 포르토피노, F8 트리뷰토, GTC4 루쏘. 청담동에서 인제스피디움까지 왕복하는 동안 기자들은 차를 바꿔 타며 모든 차량을 시승하기로 했다.

시승회의 취지는 레이싱 트랙에서 F8 트리뷰토의 성능을 체험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F8 트리뷰토는 대단했다. 내 실력에 감히 이런 머신을 다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즐거운 경험이었고, 내리기 싫을 정도로 짜릿했다. 출력 높은 자동차를 타고 트랙을 달리는 것은 언제나 두근거린다. 하지만 주최 측의 취지와 달리 나는 그날 포르토피노를 첫 대출 심사처럼 영원히 기억하게 됐다. 우리는 일상에서 영화 같은 순간을 겪곤 한다. 비 내리는 극장 앞에서 우산을 들고 짝사랑 그녀를 기다리는 멜로 영화 같은 순간이나, 만취한 동기가 내 등에 토하는 벤 스틸러표 코미디 같은 순간. 홍보담당자와 포르토피노를 타고 달린 2020년의 여름은 영화 <그린북>에 가깝다. 어쨌든 시승회가 끝나고 강남으로 복귀할 때 나는 포르토피노의 운전대를 잡았고, 조수석에는 페라리 홍보담당자가 앉았다. 포르토피노는 페라리 엔트리 모델로 2억9천9백만원에 달한다. 입문용 차량이라기엔 납득 안 되는 가격이다. 그러나 시승회인 만큼 가격은 잊고, 그 아름다움에 취하기로 했다.

로쏘 코르사라 불리는 새빨간색으로 도장된 자태는 눈을 감아도 한동안 뇌리에 남는다. 로드스터 특유의 낮고 긴 자태, 도로를 보고 비웃는 듯한 전면부(양 측면 상단으로 치솟은 헤드램프와 완만한 U자 곡선을 그리는 그릴에서 웃음기가 느껴졌다), 슈퍼카보다 살짝 높은 차고 그리고 하드톱 컨버터블이라는 점도 매력이었다. 4열 시트지만 뒷좌석은 에르메스 파우치 정도만 앉힐 수 있는 크기다. 나는 그 자리에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에코 백을 놓았다. 내용물이 쏟아지든 뒤집어지든 상관없는 나의 에코 백을 뒤로하고 시동을 걸었다. 우렁찬 엔진음이 쏟아졌다. F8 트리뷰토로 트랙을 달린 이후였기에 그 소리가 앙증맞게 느껴졌다. 인제스피디움을 빠져나와 고속도로 입구로 향해 가는 길은 조금 길다. 그리고 늦여름 오후 6시의 햇살은 느긋하게 기운다. 산을 깎아 만든 인제의 도로는 굽이지고, 능선 너머의 햇살은 도로를 빗맞고 가드레일 옆 강줄기에 떨어진다. 강의 윤슬과 강변의 한적함, 바람에 춤추는 억새, 원거리 풍경을 만드는 푸른 산세 그리고 청량한 공기가 포르토피노 실내를 채웠다. LA 메탈이었나? 1980년대 가벼운 록 음악을 틀었고, 30대 중반의 우리는 할리우드 탐정 버디 무비의 인트로처럼 스포츠카를 타고, 선글라스를 쓴 채 웃고 있었다. 아니 그는 풍경 사진을 열심히 찍다가 내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받았는데, 바람에 휘날린 산발 머리 귀신처럼 보여 여기에 실을 수 없는 게 아쉽다.

우리는 2020년 업무 출장 중 이토록 행복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식 없는 미소를 지었다. 포르토피노는 굽이진 산길을 가볍게 이동했다. 운전대를 돌릴 때마다 조향은 정확했다. 7단 DCT 자동변속기는 부드럽게 속도를 높여주지만 기어를 낮추고 RPM을 높인 상태로 ‘S’자 코너를 빠르게 주파했다. 600마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77.5kg·m의 토크를 슬쩍슬쩍 맛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최대속도가 320km/h라지만 좁은 산길을 빨리 달리고 싶지도 않았다. 자연을 품으며 운전을 즐기는 것. 이기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만끽하며,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그것이 페라리 포르토피노의 가치일 것이다. 우리는 음악을 크게 틀고, 날쌔게 달렸지만 풍경은 느리게 흘러갔다.
EDITOR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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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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