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EATURE MORE+

Gamers

게임하는 작가들: 조형예술가 차슬아

기술 발전과 가장 밀접한 매체는 게임이다. 사실적인 그래픽과 정교한 구조는 사람들을 게임에 깊이 몰입시킨다. 이제 게임은 사용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직접 만들게끔 유도하고, 사용자는 오직 자신만의 서사를 갖게 된다. 비록 로그아웃하면 그만인 휘발성 강한 서사라 할지라도 사용자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 시나 소설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설치미술로 눈앞에 등장하기도 한다. 미래에는 게임이 선도적인 매체가 되리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지금, 게임에서 영감을 받는 작가들을 만났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게임과 예술의 기묘한 연관 관계를 추적했다.

UpdatedOn November 12, 2020

3 / 10
/upload/arena/article/202011/thumb/46495-433265-sample.jpg

<원신>

<원신>

<젤다의 전설>에서 <원신>으로

<원신>에 꽂혔다. <원신>을 시작한 이유는 <젤다의 전설>에서 영감받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젤다의 전설>은 내가 오랫동안 플레이한 게임 중 하나로 <원신>과는 조작 방식부터 비슷하다. 캐릭터를 육성하고 모험하며 장비와 무기를 구하고 미로를 통과해야 한다. 미로를 통과하기 위해 풀어야 할 퍼즐 게임들이 촘촘하고 섬세하게 펼쳐져 있어 조작이 까다로운 게임과 달리 이야기에 몰입된다. 뚜렷한 서사를 읽는 재미와 캐릭터가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과정은 내게 거대한 쾌감을 선사한다.

3 / 10
/upload/arena/article/202011/thumb/46495-433266-sample.jpg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게임과 전시

첫 번째 개인전은 게임 속 아이템에서 영향받았다. 게임에서 내가 가진 아이템을 확인할 수 있는 인벤토리 창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에 놓인 작가의 작품이 인벤토리 창에 채워진 아이템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개인전에서는 동일한 크기의 박스들을 나열한 후 각 박스 속에 광물이나 칼 같은 게임 장비들을 놓아두었다. 이어진 두 번째 전시에서는 게임 속 맵을 주제로 기획했다. 

우리는 게임처럼 걷는다

두 번째 전시에서는 화산 지대나 용암으로 게임 맵을 구현했다. 캐릭터가 모험하는 게임 맵은 아주 광활하다. 제작자는 게임 맵 속에 장비나 도구를 얻을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 플레이어가 그 장치만을 따라가도록 교묘히 설정했다. 하지만 오픈 맵이라 할지라도 플레이어가 가지 못하는 곳은 무수히 많다. 전시장도 마찬가지다. 관람객은 모두 비슷한 방향으로 걷고 입구에는 ‘전시 보는 순서’가 그려진 맵을 노골적으로 비치하기도 한다. 전시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트, 백화점 등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동선에 따라 그날 경험할 수 있는 스토리가 달라진다. 이렇듯 게임 속 맵과 일상 속 맵의 유사성을 개인전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바닥에는 검은색과 빨간색의 네모난 카펫을 교차하여 깔았다. 검은색은 밟아도 되는 돌을 의미하고, 빨간색은 밟을 수 없는 용암을 의미한다. 색을 달리하여 관람객의 동선을 정함으로써 내 캐릭터가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듯 넓은 전시장에서도 내 작품을 보기 위해선 밟을 수 있는 곳이 한정된다는 것을 표현했다.

3 / 10
/upload/arena/article/202011/thumb/46495-433267-sample.jpg

2019년 개인전 <The Floor is Lava>, 사진 안효주.

2019년 개인전 <The Floor is Lava>, 사진 안효주.

만지는 게임

전시장을 방문할 때면 작품을 만지고 싶은 갈망에 휩싸인다. 이러한 갈망을 앞서 말한 개인전에도 녹여냈다. 한 가지 예로 캐릭터가 사과를 집어 들었는데 사과가 캐릭터에 비해 비대하게 크다면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 캐릭터는 심지어 자신보다 아주 큰 사과를 한 손으로 들고 먹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인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모습을 관객이 직접 만져보고 체험해보기를 바랐다. 거대한 사과를 그대로 본뜨는 대신 무게를 최대한 줄여 캐릭터의 퍼포먼스를 이해하게끔 만들었다. ‘아 그래서 캐릭터가 사과를 한 손으로 들고 먹었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만지고 직접 느껴보는 걸 중시해 내 작품도 관객에게 선뜻 내어준다. 이 때문에 큐레이터는 반복해서 되묻는다. ‘정말 괜찮겠냐’고.

게임을 미술로

RPG, 퍼즐, 슈팅 등 모든 게임에는 미술이 녹아 있다. 영상미를 돋보이게 하는 것도 미술의 영역이다. 하지만 미술에 게임을 담아내는 건 쉽지 않다. 특히 게임 세계관을 예술로 표현하는 건 내겐 어려운 영역이었다. 세계관 없이는 전시를 구상하기 힘들다. 게임 속 아이템과 풍경까지 게임의 스토리나 세계관에 따라 파생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 그 어려움에 직격탄을 맞았다. 게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세계관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게임의 내용으로 구성한 내 전시를 위해선 나만의 세계관을 구축해야만 했다. 그래서 판타지 소설 같은 내용을 담았다. 스토리에 맞게 작품도 몇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쳤다. 캐릭터는 산에 올라 중요한 열쇠를 얻어 와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산에 올라야 한다면 처음 기획했던 단순한 바위 배경이 아닌 거대한 풍경으로 인식될 만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기획 시 조명으로 어둡게 만들려 했던 전시장 벽에 커다란 현수막을 걸었다. 화산과 용암이 펄펄 끓는 사진으로, 중대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캐릭터의 극단적인 상황을 극대화했다.

3 / 10
/upload/arena/article/202011/thumb/46495-433268-sample.jpg

2018년 개인전 <Ancient Soul++>, 사진 홍철기.

2018년 개인전 <Ancient Soul++>, 사진 홍철기.

조각과 기운

두 번의 게임 시리즈 개인전을 마친 후 두 가지 고민을 했다. 첫 번째는 게임 속 조각을 빚어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게임은 특정 마을에 들어서면 돌로 만든 조각상이 하나둘 자리하고 있다. 부족적인 성격이 강한 마을에는 뼈로 만든 조형물이 있듯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가상의 조각상들을 실제 조각으로 빚어보고 싶다. 두 번째는 게임 속 이펙트를 실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펙트는 무형의 ‘기운’ 같은 것이다. 레이저나 장풍 쏠 때 발현되는 빛의 움직임이나 바람의 형상을 말하는데, 이를테면 드래곤볼의 에네르기파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게임에서 캐릭터가 특정 기술을 사용할 때 플레이어가 타격감을 실제로 느끼기 위해선 이펙트는 필수적이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구현할 수 없어 물리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선 구상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두 가지 고민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면 게임 시리즈 전시는 막을 내리지 않을까.

차슬아 조형예술가

차슬아 조형예술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차슬아에겐 재료다. 철사를 꼬고 실리콘으로 모형을 만들며, 석고로 온갖 모양을 본뜬다. 투박한 점토는 그녀의 작은 손을 거치면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현실과 가상을 오간다. 게임 속 가상 세계를 떠돌며 마주치는 풍경, 캐릭터가 구사하는 기술, 장비와 무기 같은 아이템을 점토로 빚고 조각으로 깎아냄으로써 현실 세계를 구축한다.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이예지
GUEST EDITOR 정소진

2020년 11월호

MOST POPULAR

  • 1
    <불가살>의 김우석
  • 2
    LAZY SATURDAY
  • 3
    모던 럭셔리의 재정의
  • 4
    부트커피
  • 5
    BODY ARMOR

RELATED STORIES

  • FEATURE

    NFT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착취당하나

    NFT가 게이머를 ‘현질’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리라 기대했다. NFT는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통용될 화폐이자, 빛이었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현재 출시된 NFT 게임들은 게이머를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에 더 단단히 종속시킨다. NFT 게임이 공격적이고 착취적이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 FEATURE

    축구판 뜨는 해

    ‘메날두 시대’가 저물고 있다. 슬퍼하지 말자. 이제는 21세기 태생의 뉴 히어로 시대가 시작된다. ‘메호대전’ 이후 축구계를 이끌 2000년대생 선수들이다. 이미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우리는 신성들의 플레이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 FEATURE

    처음이라서요

    세상 모든 처음은 아름답다는 말을 연애에 대입해도 맞을까? 여덟 명의 청춘이 보내온 생애 가장 독특한 첫 만남에 대하여.

  • FEATURE

    왜 넷플릭스를 못 넘을까

    디즈니플러스 다음은 HBO맥스다. 국내 OTT 시장에 글로벌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존 영화 시장의 공룡 기업들이 참전했고, 애플과 같은 소프트웨어 공룡들도 OTT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이 넷플릭스를 위협하리라, 넘어서리란 예측이 많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들은 넷플릭스를 넘어서기는커녕 위협조차 되지 못했다. 왜일까.

  • FEATURE

    쿨하지 못해 미안해

    젠지들이 꼰대스러워질 때는 언제일까. 설문조사를 통해 행동 양상을 세 항목으로 분류했다.

MORE FROM ARENA

  • INTERVIEW

    구피

    이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자. 독특함으로 무장한 네 팀의 뮤지션과 세 명의 배우다. 올해 <아레나>가 주목할 신예들이다.

  • FASHION

    명랑 스니커즈와 돋보이는 팬츠

    명랑한 스니커즈와 시선을 확 끄는 팬츠의 조합.

  • SPACE

    유연하고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주택 Cabin Anna

    다시 숲으로, 흙으로 돌아갈 계절이다. 작은 텃밭을 일궈도 좋고, 산을 관망해도, 강물의 윤슬을 보기만 해도 좋은 곳. 그곳에 작은 쉼터를 꾸린다. 집은 아니지만 집보다 안락한 곳. 오두막이든 농막이든 그 무엇이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작고 단단한 집이면 된다. 전 세계 숲속에 자리 잡은 작은 집들을 찾았다.

  • REPORTS

    소소한 생활서

    눈 가린 경주마처럼 앞으로 달리기만 하라는 자기 계발서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이미 어른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생활의 아주 작은 지점을 파고드는 소소한 생활서일지도 모른다. 굳이 알 필요 없는 일상의 요령, 집요한 탐구 생활, 생활을 키워드로 푼 글과 그림… 여기 활자와 생활이 묘하게 몸을 섞은 책 열일곱 권이 있다.

  • DESIGN

    Go Out, Man

    바삭바삭한 계절에 홀연히 누린 어떤 외출.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