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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찾아서: 건축가 문훈

영화 한 편, 소설 한 권은 벽돌 하나에 불과하다. 그것들이 쌓이며 성을 이룬다. 작가의 세계는 그렇다. 때로는 인상적인 작품이 성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고, 벽돌의 배치에 따라 기발한 아이디어가 발견되기도 한다. 우리는 작가와 함께 그의 성을 투어하며, 작품의 토대가 된 벽돌들을 하나씩 뽑아 들었다. 지금 각 분야에서 가장 유별난, 돋보이는 작가들의 영감 지도다.

UpdatedOn September 02, 2020

건축가 문훈

 건축가 문훈 

건축가 문훈은 종종 그림을 그린다. 긴 다리를 가진 걸어다는 정자, 다리와 몸이 합쳐진 조개 건축, 노란 배경에 새빨간 선으로 그린 평면도 같은 부적 건축, 건축물을 배경으로 한 만화도 있다. 그의 건축적 상상력을 담은 그림은 뉴욕 현대미술관에 영구 소장되기도 했다. 그림 ‘걷는 정자’와 ‘부적 건축’을 토대로 그의 세계를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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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정자

정자는 산속 깊은 곳처럼 풍경 좋은 곳에 놓인다. 정자는 풍경을 내다보는 장치이며, 밖에서 바라봐야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외부에서 보면 풍경 속에 정자가 있다. 풍경 안에서 감상해도 풍경이 함께 보이는 두 가지 입장에서 걷는 정자는 출발한다.

 워킹시티 
1970년대 건축 사조 중 ‘워킹시티’가 있다. ‘아키그램(Archigram)’이라는 건축 집단이 콜라주 그림 ‘워킹시티’를 건축계에 발표했는데, 상당한 파급력을 발휘했다. 히피 문화와 팝아트 등 당시 자유로운 문화 흐름 속에서 등장한 덕분이다.

 SF 
정자에 사이언스 픽션적인 요소가 더해진다. 쉽게 말하면 정자가 걸어다니는 것이다. 걸어다니는 집이 나오는 SF 애니메이션인 셈이다.

<아키라> 
<아키라>에서는 일단 빨간색이 나오고,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오토바이, 증폭하는 에너지가 있고, 그로테스크, 사이키델릭도 있다. 사이콜로지, 정신과 물질이 연결된 장치, 미래적이면서 말세적이기도 하며, 기계적인 것들이 바이올로지컬하다. 그런 것들이 섞이며 만들어내는 감성이 좋다.

 <블레이드 러너> 
<블레이드 러너>의 인상적인 점은 강렬한 로맨스다. 레이첼이 나오는 장면은 굉장히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또 로이 배티가 “타임 투 다이”를 외치며 죽는 모습, 죽기 직전 새를 날리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매트릭스>
<공각기동대>와 비슷한 영화들에 장자를 섞어놓은 듯하다. 도교적 가치관이 뚜렷하다. 동양 고전과 연결된 사이언스 픽션이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면 인도 철학이 양념처럼 버무려진다. <우파니샤드> <바가바드기타> <불경> 등 죽음에 대한 것들이 떡처럼 뭉쳐 있다. 이런 영화들이 내게 영향을 끼쳤다.

샤머니즘
동양 철학에선 주역, 노자, 장자가 있고. 여기에 인도 철학이 섞이고. 서양 철학에선 니체가 주도적이었다. 니체가 감성에 맞았던 것 같다. 한국 샤머니즘도 더한다. 똥이 돼도 현세에서 구르는 게 낫다는 현세 지향적인 에너지가 우리에게 있다. 내 세계의 총체적인 구조는 이렇다.

 <우파니샤드>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는 인도 왕이 어느 날 어김없이 전투에 나섰는데,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갑자기 적군들이 누군가의 오빠이며, 아버지라는 것을 느끼자 죽일 수 없었다. 그 왕은 이 끝없는 반복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열반이나 공즉시색이라는 개념이 있다. 하나의 현상을 따지고 들면 근원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내 작업의 근본은 이런 것들에서 출발한다. 그 뼈대 위에 살이 붙으며 지금까지 왔다.

 걷는 듯 마는 듯 
걷는 것 같아 보이지만 다리가 땅에 박힌 듯 분명하지 않다. 다리를 보면 걷는 게 연상된다. 하지만 이 그림은 다리와 몸이 분리됐다. 다리는 다리이고, 몸은 몸이다. 별개의 장치로 봤다. 조개 건축 그림은 다리와 몸이 합쳐져 있다.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상태다. 완전히 분열되기 직전의 세포 같다. 뭐가 될지 모르겠는 상태 말이다. 완결성이 아니라 완결되기 전 단계를 표현하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단계의 상태다.

의인화
만약 건물도 껍질을 통해 느낀다면, 그다음엔 뭐가 될까. 건물을 의인화하면, 건물이 춥네, 덥네 반응할 것이다. 나는 내가 있고, 거대한 건축화된 내 모습이 있다. 내가 만약 건축이라면 어떻게 느낄까 생각한다. 그림은 건물 내부 공간을 상상할 여지를 준다. 그림에선 건물 내부가 완성되진 않았지만, 이미 내 마음에선 지어진 건물이다. 내게는 어떤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장면을 담은 건축물이고,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나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왜냐면 남들은 내가 아니니까.


건축에는 틈이 있고, 틈은 호기심을 일으킨다. 왜 이런 틈을 만들었을까? 생각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 그 틈을 탐할 수도 있을 거다. 집의 문과 창문은 역할이 다르다. 문은 닫아서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고, 창문은 소통은 되는데 환기 정도지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게 묘한 것이다. 창문은 보이지만 닫혀 있고, 문은 닫기 위한 것이지만 열 수 있다. 그림에도 입구는 없다. 어떻게 올라가는지 알 수 없다. 내 건축에는 생물학이 들어오고, 기계도, 애니메이션, 공상과학영화도 들어온다.

에너지
건축물을 기계로 보거나 생명체, 벌레로 보기도 하고 우주선으로 볼 때도 있다. 이렇듯 건축물은 계속 변하는 것이기에 가능성이 있다. 변하는 모든 건 에너지고, 에너지는 계속 변화한다. 우리는 죽으면 없어진다. 죽음은 곧 물리적 해체다. 벌레들이 우리를 해체하면 우리는 사라지지만, 우리의 에너지는 땅의 영양분으로서 식물로서 또 동물로서 존재한다. 파도는 해변에 밀려와 사라지지만 바다의 관점에서 보면 파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파도는 계속 있다. 형태만 바뀔 뿐 본질은 같다.

자살 체험 다리
그림 ‘자살 체험 다리’에서는 사람이 다리에서 뛰어내리면 죽는다. 시체는 화장터로 옮겨지고, 그 화력 에너지가 도시를 밝힌다. 이 다리에는 죽음에 대한 열망이 있다. 사람들은 위험한 곳에 가면 동시에 두 가지를 느낀다. 죽고 싶다와 위험하다는 것. 죽는다는 것은 근본적 고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으로 살면서 겪는 고민과 번민으로 죽음을 통해 항복하는 행위다. 또 어떤 큰 에너지에 속하고 싶다는 욕망이기도 하다. 죽음이라는 출구가 있기에 인간은 괜찮은 거다. 만약 못 죽는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괴롭겠나.

<티베트 사자의 서>
끝까지 살겠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은 미래에 자신을 다운로드하며 살겠다고 할 거다. 의식을, 그러니까 뇌 정보를 다운로드한 다음 새로운 육체에 이식하는 식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는 어디서 태어날지 선택하는 내용이 나온다. 안 태어날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선택할 수 없는 상태니까 이렇게 살지만, 선택 가능한 순간부터는 달라질 거다.

 달라이 라마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를 린카네이션이라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이전 생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들 세계에선 환생을 믿는다. 테크놀로지 없이도 이미 생을 연장하는 개념은 세상에 존재한다.

 마스터피스 
작가는 나이 들면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별로일지라도 점차 완성도를 높이며 결국에는 마스터피스를 만든다. 하지만 마스터피스라고 해서 더 강렬한 에너지를 갖는 건 아니다. 마스터가 자각 증상 없이 편하게 스케치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짜인 것 같다. 대가든 대가가 아니든 자유로운 상태, 편한 상태, 자각 없는 상태가 좋다. 불확정적인 상태 말이다. “당신은 건축가인가요?” 물으면 나는 “아니요. 건축을 다룰 수 있는 예술가죠”라고 말한다. 그것이 내가 즐기는 지점이다.

도인 
우리말로 ‘도인’이라 하면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처럼 들린다. 그런데 ‘도인(道人)’은 길 도자를 쓴다. 자기 길을 만드는 사람이 도인이다. 대부분이 도인이라 불리지 않는 이유는 이미 만들어진 길을 걸어가기 때문이고, 도인은 굳이 애써 자기가 길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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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이예지
GUEST EDITOR 정소진

202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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