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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부터 비평, 클래식 음악, 토속신앙까지. 대중의 관심과 가장 먼 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출판물을 만드는 이들에게 푹 빠져있는 주제, 지면이라는 물성, 소소하지만 창대한 계획과 앞으로 굴러가는 힘까지 궁금했던 것들을 들쭉날쭉 물었다.

UpdatedOn May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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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리알>
(편집인 정경담, 함연선, 다함께 차차차)

“‘아버지'가 ‘죽일만한 아버지’인지는 자식들이 판단할 문제다.” 창간호 행사 ‘비평의 비평’ 때부터 그 기세가 어찌나 맹렬한지, 불똥이 튄 자리마다 하얗게 탔다는 소문이 방구석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씨네21식 비평 비판’, ‘듀나와 이동진 비판’, ‘정성일 평론가에 대한 반면교사!’…, 행사 후, 마테리알 웹사이트에 게시된 모든 글을 클릭하고 말았다. 어쩐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테리알은 1990년대 생 젊은 비평가들이 뭉쳐 새로운 세대의 비평을 선언하는 영상 비평지다. 비평은 죽었다는 낡은 선언을 비집고 나타난 이들은 영 아티스트와 영 크리틱이 패스를 주고 받는 ‘스루패스’를 제안한다. 마테리알은 이제 막 빳빳한 2호 신문을 냈다.

왜 이름을 마테리알로 지었나?
‘material’의 1980년대식 한글 음차로, 영화학자 루돌프 아른하임의 <예술로서의 영화>의 국역본 초판이 ‘material theory’를 "마테리알테오리"로 표기한 것에서 따왔다. 한편으론 영상 비평을 하는 데 있어 작업의 물질성에 집중하는 비평을 개진하고 싶다는 포부를 담았다.

새로운 시선을 지닌 젊은 비평가들이 뭉쳤다는 게 마테리알의 첫 인상이다.
영화비평계는 고여 있고, 아직도 중년의 평론가들이 분위기를 쥐고 있다. 지난 영화사와 미술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새로운 세대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선배 세대와 우리를 구분하는 게 필연적으로 선행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비평의 비평’ 기획으로 정성일, 이동진, 듀나, <씨네21> 등 기존의 아이코닉한 영화 비평가 혹은 기성 매체들에 대해 거침 없이 평해 화제를 모았다.
이동진 평론가가 이미 영화사에서 평가가 내려진 걸작들에 대해서는 말을 얹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그런 비평적 태도를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선배들의 평가와, 그 평가로 인해 규정내려진 ‘걸작’들을 ‘받들겠다는’ 자세가 비평가로서 신뢰할 만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 세대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기성 평론계와 우리를 단절시키는 선언이 가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어떤 86세대 평론가가 요즘 세대가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것에 대해 “과연 죽일만한 아버지”인지 먼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무슨 상관인가? ‘아버지'가 ‘죽일만한 아버지’인지는 자식들이 판단할 문제다.

분야를 막론하고 “비평은 죽었다”는 오래된 선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비평은 언제나 근근이 살아왔다. 한국에서 90년대 초중반 비평지가 잘 팔리고 모두가 비평을 읽던 시기가 있었지만 잠시뿐이었고 지금은 소수가 읽는 문학 장르다. 영화계의 ‘비평의 죽음' 논의를 쭉 살펴보았는데, 2000년대 초반에도 비평의 죽음을 논한 글들이 있더라. 비평의 죽음에 대한 선언은 기존의 비평(가)의 존재 양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현실 인식에서 오는 불안의 반증에 가깝다. 어쨌거나 비평은 늘 그래왔듯 근근하게 나마 살아갈 것이다.

허문영, 정성일처럼 아이코닉한 비평가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대해선?
그런데 스타 비평가가 꼭 나와야 할까? 스타는 무빙 이미지 안에 등장하는 걸로 족하다.

편집인 정경담, 함연선, 다함께 박차차가 펴내는 출간물이다. 어떻게 뭉치게 됐나?
18년 5월경, 망원동의 심야카페에서 졸업을 위해 논물을 준비하던 정경담과 함연선이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 모두 비평에 대한 관심 때문에 뒤늦게 영화와 영상매체 이론을 전공했지만, 등단이나 공모 같은 바늘구멍 게이트키핑을 통과하고도 '선생님'이나 '선배'들이 정해주는 글만 써야 하는 현실, 마흔 살이 되어도 '루키'여야 하는 현실을 스스로 극복해보고 싶었다. 다함께 박차차는 콘텐츠 회사에서 프로듀서로 재직 중이고, 2호 준비과정에서 영입했다. 기존의 두 편집인들과 달리 대중이나 프로덕션 과정에 대해 천착하는 면이 있어 빈 곳을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정경담과 함연선은 91년생이고 다함께 박차차는 95년생이다.

오래된 영화, 다큐멘터리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영화, 지금 스트리밍 서비스 중인 넷플릭스 드라마까지 비평한다. 선정하는 텍스트의 기준은?
3인의 편집인들 각자가 생각하기에 ‘실험적'이라고 생각하는 작업들을 비평한다.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미술 영상 작업 등 매체를 막론하고 무빙 이미지 전체에 대한 비평을 하고자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왜 웹진이 아닌 출간물을 택했나?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글이 물질화되는 과정에서 실험할 수 있는 부분들을 고민하고 있다. 창간호의 경우 양면의 대칭성을 강조했고, 이번에 발간된 2호에서는 잡지가 아닌 ‘신문’으로서만 할 수 있는 시도로서 모든 종이를 낱장으로 펼쳤을 때 각 장이 하나의 콘셉트를 가질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물질성과 관련해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을 확장해가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웹사이트에 과월호의 글을 업로드하여 온라인 플랫폼으로서의 기능도 하고자 한다.

잡지가 아닌 신문 형식을 택한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잡지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2013년 이후 영화잡지들이 많이 등장했다. 차별화 전략이기도 했고, '비평'을 가볍게 손에 들고 읽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창간호에 “우정이 아닌 동업을 제안한다”는 말이 있다. 신문이라는 형식이 ‘동업’이란 건조한 말에 어울린다고 느꼈다.

영 아티스트와 영 크리틱이 서로 공을 패스하는 홍보 영상이 인상적이다. 비평을 ‘스루 패스’에 비유함은 어디서 착안했나?
EPL의 아스날에 메수트 외질이라는 선수가 있다. 이 선수가 ‘스루 패스'로 기가 막히게 어시스트를 한다. 스루패스에서 제일 중요한 게 ‘공간'의 창출인데, 개개의 필자나 감독, 작가들이 상대편 선수들에 둘러싸여 고립된 비평적 지형에서 우리의 새로운 비평도 공간 창출, 나아가 어시스트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메모해 놓았던 것이 ‘스루 패스'로서의 비평 선언문의 초안이었다.

플랫폼이 산재하는 시대에 작가들도 개별적인 채널로서 텍스트를 메일링하며 독자적으로 살아남으려 하는데, 마테리알은 “동업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유가 뭔가?
그런 개별적인 채널, 특히 메일링 서비스는 이미 상징 자본을 조금이나마 획득한 이들에게 유용한 플랫폼이다. 우린 그런 것을 거의 가지지 않고 시작했다. 동업에 대해 말한 것은 무엇보다 우정에 대한 안티테제였다. 어떤 맥락에서든 매번 우정을 말하는 영화비평들에 질려있었다. 최종 목적지가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들의 우정"인 비평들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그 우정의 호모소셜한 성격뿐 아니라 낭만성이 싫었고, 따라서 덜 낭만적인 단어와 목표를 세우고 싶었다. 우린 그런 것 대신 동업에 대해서 산뜻하게 주장하자고 하고 싶었다.

‘한국영화비평사 돌아보기’를 끝맺는 “일단은 우리의 불운으로부터 시작하자”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마테리알은 어떤 불운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나아가는가?
86세대 비평가들에게는 개인을 뭉칠 수 있게 한 외부의 '적'(영화 사전검열제도 같은 것)이 있었고, 어느 정도 활동이 무르익자 각종 기관에 ‘프로페셔널’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마디로 '운'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운을 바라기는 어려운 세대다. 대신 우리는 ‘불운'하고 열패감과 만성적 무기력에 시달리는 세대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처럼, 그런 ‘불운’이 오히려 우리 세대의 ‘동업'의 조건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선은 스루패스에 걸맞은 힘과 속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젊은 비평가들이 주축이 되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고, 새로운 독자들과 사유를 나누며 담론장을 환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경기장만 새로 지으면서 플랫폼을 늘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경기 자체를 늘리는 것, 재미있는 게임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해나가고 싶다.

타깃층이 협소할 수 있겠다는 우려는 없나?
그 우려는 최초단계부터 해왔다. 명확하지 않은 타겟팅으로 우리의 정체성이나 지향하는 바가 흐려지는 것보다는 협소한 독자층을 감수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창간호, 2호를 내면서 미술계 젊은 작가나 비평가, 큐레이터들도 관심을 가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독자층이 확장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비평을 보여주려는 마테리알의 야심이 있다면?
편집인들끼리 욕심내지 말고 999호까지만 내보자고 한 적이 있다. 솔직히 모든 글이 스루패스에 성공할 순 없을 거다. 목표는 성공적인 스루패스 999개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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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오리
(운영자 신우승)

“그치만 엄마, 배꼽티는 진짜 예쁘잖아요!”라는 제목의 철학서를 맞닥뜨렸을 때 눈을 의심했다. 이토록 경쾌한 타이포그래피, 도발적인 제목만큼 매끈한 디자인, 저자 샐리 해스랭어, 그리고 전기가오리.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의 실험적이고 논쟁적인 논문들을 번역해, 집어 들지 않을 수 없는 디자인으로 만드는 출판사의 이름이었다. 철학공부모임으로 시작해 공역한 논문이 쌓이며 출판사를 겸한 전기가오리는 철학 공부, 번역, 교육과 관련한 문제 해결 집단을 표방하며 ‘철학 구몬’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전기가오리는 어떻게 지어진 이름인가?
‘전기가오리’라는 이름은 플라톤의 <메논>에서 따왔다. 자신이 제대로 알고 있다고 확신하던 메논은 소크라테스와의 연이은 문답 끝에 어안이 벙벙해진 채 할 말을 잃는다. 메논은 자신의 말문을 잃게 한 소크라테스를 전기가오리로 빗댄다. 거기서 이름을 착안했다.

네 가지 시리즈 철학서를 발간한다. 이중 <서양철학의 논문들>은 전기가오리가 출판하지 않으면 결코 국내에선 볼 수 없을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의 문헌, 정통적 해석에 얽매이지 않은 논쟁적 연구 등 도전적인 주제를 다룬다. 어떤 기준으로 선정해 출판하나?
한국의 철학 교육은 고대 그리스 철학, 독일 근대 철학, 프랑스 현대 철학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와 달리 전기가오리는 영미 분석 철학의 접근 방식을 수용하며, 주제의 측면에서도 의학, 페미니즘, 인종, 언어 등의 대상을 선호한다. 학문이 행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나는 언어 분석이 철학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나긴 철학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철학적 활동 중 모든 것에 현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전기가오리가 주목 받은 데엔 철학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예쁜 커버과 날렵한 판형으로 뽑아낸 것도 큰 몫 했다. 아름다운 철학 책을 지향하는 까닭이 있나?
나는 내용과 형식이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정 수준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내용은 애초에 내용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전기가오리의 정기 시리즈는 프랙티스, 이기준, 코우너스가 디자인하고 있다. 디자인에 대한 강조는 전기가오리의 정체성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많이들 오해하시는 지점인데, 각 시리즈의 내용과 표지 디자인 사이에 별다른 연관성은 없다. 조형과 구도가 주는 미적 쾌감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다만 일반적인 단행본 디자인 문법에서 벗어나달라는 주문은 어떤 디자이너를 만나더라도 꼭 해둔다.

전기가오리는 단순한 출판사가 아닌 철학 공부, 번역, 교육과 관련한 문제 해결 집단이라고 소개한다. 단순히 출판에 그치지 않고 교육, 격차 해소, 장학혜택 등 지식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이유는 뭔가?
여유롭지 않은 경제 상황에서 철학 공부를 이어나가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난 이제 기성세대라고 불릴 만한 나이가 되었고, 경제 상황, 지역 격차, 장애 때문에 철학이든 무엇이든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게 되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다. 어떠한 의미에서든 지식은 특정한 계층의 소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역 격차를 좁히고 싶다. 그렇기에 서울 외 지역에서도 공부 모임을 열어 운영자가 직접 찾아가고, 온라인 설명도 여는 것이다.

‘철학 구몬’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체계적 학습체계를 가지고 있다. 후원자는 출판하는 모든 도서와 온라인 강의, 설명 소책자, 번역 피드백 등을 제공받고, 공부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웬만한 대학 커리큘럼 이상이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왜 아무도 논문 읽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지?’, ‘다같이 틀리고 있는데 왜 누구도 지적하지 않지?’ 같은 의문이 들었다. 혼자 공부하며 이러한 한계를 깨고자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고, 그 시도를 판매 가능한 상품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했다. ‘텍스트에 담긴 내용이 독자에게 온전히 전달되는가?’라는 최상위의 물음을 품고, 나 자신이 그 물음에 부정적인 답을 내놓을 때마다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그 시도들의 결과물이 하나씩 쌓인 것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건 곧 굶는 일이란 자조가 당연해진 시대다. 이 시대에 철학을 공부한다는 건 어떤 일인가? 철학에 대한 애정은 어떻게 가졌나?
철학에 대한 애정은 그냥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재즈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별달리 극적이거나 명확한 이유는 없다. 철학을 공부하는 행위에도 메타적 관점을 취하지 않는다. 그냥 한다.

공부 모임은 꾸준히 이어지나?
지방에서 진행하는 경우 10명 정도, 서울에서 진행하는 경우 40명 정도 참여한다. 온라인 공부 모임은 300명 정도 참여하고. 상호 존중을 잃지 않는 공부 모임이라고 자부한다. 선생과 학생 사이 위계는 역할의 측면에만 제한될 뿐 인격의 측면으로 넘어가지 않는 공부 모임을 꼭 꾸리고 싶었다.

후원체제로 운영되는데, 후원금이 큰 금액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운영하나?
학생도 부담 없이 후원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을 꾸리기에는 1만 원이 적절한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이윤이 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유지될 수가 없겠지? 후원자는 4천 명을 훌쩍 넘었고 대기자가 몇 백 명 정도된다.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인 단계에 들어섰으며, 이 단계에 오기 전까지는 과외를 스무 개 정도 하면서 적자를 메웠다. 날 제외한 누구도 무급으로 일하지 않게 하겠다는 원칙을 버린 적은 없다.

사람들이 철학을 잊은 이 시대에, 그럼에도 철학은 왜 필요할까?
사람들은 철학을 잊은 적이 없다. 그보다는 철학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에 가깝다. 철학은 거창한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철학자를 신봉하는 것도 아니며, 철학 지식을 암기하는 것도 아니다. 철학은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공동의 합리적 활동이라는 점을, 그리고 그 문제가 어떤 것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다. 철학적 문제가 성립하는 한, 철학의 필요성은 굳이 설명할 이유조차 없다.

이 시점, 전기가오리가 현대 철학에서 주목하고 있는 이슈가 있나?
영미 철학의 분석적 방법을 활용하는 언어 철학, 형이상학, 의학 철학, 페미니즘 철학이다. 철학이 다루는 문제 중 우리의 사회적 삶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을 다루기를 선호한다. 추상적인 문제를 추상적인 방식으로 다루기보다는 구체적인 문제를 추상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데 흥미가 있다.

전기가오리의 야심이 있다면?
야심은 없다. 그날그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일을 해보기 전에 실패하리라는 걱정을 굳이 사서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야심이 전혀 없지는 않다. 분석 형이상학, 언어 철학, 의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논문 모음집을 내고 싶다. 30년 정도 운영한 뒤 흔히 ‘앤솔로지’라고 불리는 논문 모음집을 출판해, 그 뒤 몇 십 년 동안 학생들이 자료로 쓸 교과서를 만든 다음 이 사업을 접으려 한다.

코로나 시대에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전기가오리의 책이 있나?
크리스토퍼 부어스라는 의학 철학자가 쓴 <이론적 개념으로서의 건강>을 추천한다. 우리가 ‘건강’이나 ‘질병’ 같은 단어를 쓸 때 가능한 한 가치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질병에 걸린 것은 질병에 걸린 것일 뿐, 그러한 사실 진술이 질병에 걸린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증오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이 논문은 비매품으로 지금 구할 수는 없다. 어떤가? 전기가오리의 후원자가 되면 이런 논문을 매달 받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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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쿠문고
고성배 편집장

<잃어버린 조선의 부적들>을 사자, 고성배 편집장은 누런 부적지에 새빨간 부적을 쓱쓱 그려줬다.무슨 뜻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받았다. 영험한 기운이…, 느껴졌나? <동이귀괴물집>부터 <서울 미스터리 가이드북>, <한국요괴도감>, <괴초록>까지 스스로를 ‘덕후’라 말하는 더쿠문고 고성배 편집장은 온갖 미스터리하고 이상한 걸 만든다. 1902년 파리의 일년 치 신문을 수집해 신작 도서를 준비 중인 그는 여든이 되어도 꾸준히 이상한 책을 만들며 그걸 읽어주는 사람들과 껄껄 웃고 싶다.

<잃어버린 조선의 부적들>을 샀을 때, 이름을 묻더니 부적지에 직접 부적을 그려주더라. 도대체 어떤 의미의 부적이었나?
이름은 자신의 것이지만 남에게 불리며, 죽고 나서도 기록된다. 이름으로 부적을 만들면 힘을 지닐 것 같지 않나?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과거엔 무속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집에서 부적을 그렸다고 하더라. 옛사람들은 부적은 그 자체, 문자나 도형만으로도 힘을 지닌다고 믿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요괴를 정리한 <한국요괴도감>부터 묘약을 담은 <괴초록>까지 한국토속신앙에 애정이 깊어 보인다.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어릴 때부터 괴상한 것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이런 소재로 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이왕이면 한국의 것으로 만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컬트, 마법, 괴물 하면 주로 서양의 것들을 떠올리지 않나? 서양의 판타지는 흔히 접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먼 이야기다. 반면 한국토속신앙은 마치 옆에 존재할 것 같은 친숙함이 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익숙한 한국의 민간신앙이 보일 거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마을을 수호해주는 당산목이 있고, 사람들은 어릴 적 할머니가 해준 달걀귀신과 구미호 이야기를 여전히 기억한다. 장산범이나 자유로 귀신처럼 구전되는 괴물들도 있다. 일상에서도 손 없는 날에 이사하거나, 문지방을 밟지 않거나, 지갑 안에 부적을 넣어 다니는 등 우리는 알게 모르게 토속신앙을 접하고 있다. 난 단지 이것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 뿐이다.

도감을 만들 만큼 방대한 자료와 사료를 어디서 찾아냈는지 궁금하다.
다양한 고서들을 참고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같은 역사서부터 야담집인 <어우야담>, 의서인 <의림촬요>까지, 괴물과 요괴 이야기를 샅샅이 뒤져 찾아냈다. <잃어버린 조선의 부적들>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이 기록한 <조선의 귀신> 및 논문을 참고해 만들었다. 한국의 미신이나 민간신앙들을 저속하게 평가하고 깎아내린 식민사관에 기반한 저서들이다. 일제가 깎아 내린 우리의 토속신앙을 복원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잃어버린 조선의 부적들>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적은?
물고기 세 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부적이다. 충북지방에서 사용되던 것인데 몸을 보호해주는 호신부이다. 부적이라기보다 회화와 같은 느낌이 들어 매우 좋아한다. 가끔 하나씩 그려서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제일 좋아하는 한국의 요괴는 뭔가?
혼쥐를 좋아한다. 혼쥐는 자고 있으면 혼이 쥐로 변해 코에서 나와 돌아다니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 쥐가 겪은 일을 꿈으로 착각한다고 한다. 또 혼쥐가 여러 마리일 경우 그 중 한 마리를 죽이면 성격이 변한다고도 한다. 어릴 적 잘 때 낙서를 하면 혼이 돌아오지 못해 죽는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괴물이다. 실제 있을 법하지 않나?

키치적으로 접근해 괴짜 같고 매력적인 콘텐츠들도 만들어냈다. <괴궁> 같은 보드게임 북이나 좀비와 살인마로부터 숨는 법을 알려주는 <하이드 킷 북> 같은 콘텐츠 같은. 어떤 태도로 접근했나?
책을 만들 때 내 모토는 ‘쓸모 없는 것을 만들자’다. “이런 걸 왜 사? 사면 어디에 써?”라는 말이 나오는 것들을 만든다. 과거엔 정말로 혀를 차며 안타깝게 보는 친구들이 있었다. 오기가 생겨서 더 만들었다. 쓸모 없는 것들을 모아 책을 만들고 그것을 누가 사게 된다면 그것은 쓸모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쓸모가 있고 없고는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다. 모든 이가 쓸모 없지만 자기에게는 쓸모 있는 일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독특한 것에 대한 관심을 ‘덕후’로 묶어 스스로를 덕집장, 더쿠문고라고 명명했다. 마이너리티에 관심을 깊게 갖는다는 점에 대해서 ‘덕후’라고 명명했나?
지금은 덜하지만 과거에는 ‘덕후’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았다. 사회 부적응자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맛집, 드라마, 의상 등 누구나 좋아하는 게 있고 몰입하는 게 있지 않나? 그렇다면 모두가 ‘덕후’다. 그렇기에 더쿠라는 레이블은 <십만덕후양병, 본격 덕질 장려 프로젝트>라는 캠페인과 함께한다.

스스로를 물고기머리라고 하는 까닭은 뭔가?
이유는 없다. 닉네임을 지을 때 생각난 게 물고기와 머리였다. 개인적으로 가시 때문에 생선을 잘 안 먹는데 왜 이런 닉네임을 지었는지 잘 모르겠다.

건축학과를 졸업해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다 마케터, 지금은 독립출판사 편집장이 된 이력이 흥미롭다.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됐나?
인생은 흘러가기 나름이다. 건축사무소에서 설계와 디자인을 하다가 강압적인 회사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어 그만뒀다. 오로지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 독립출판도 취미로 시작했는데, 이 일로 먹고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릴 때부터 남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관심이 많았나?
그랬다. 남들이 다 알고 관심을 갖는 건 재미가 없다. 남들이 모르는 것, 남들이 안 하는 것, 남들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 재미있다. 게임 할 때 다들 남들이 없는 아이템을 가지려고 며칠을 투자하는 거랑 비슷하다.

관심사가 방대하다. 다음엔 파리에서 1902년 1월부터 12월까지 매주마다 발행한 신문들을 수집해 이 신문 속 패션 일러스트를 모은 <La Monde>를 출간할 예정이다. 지금은 없는 것에 애착이 있나?
고서나 고문헌, 과거의 기록들을 경매나 골동품점, 고 시장에서 구매하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은 늘 사라진 것을 그리워한다. 나는 잠에서 깨고 조각 난 꿈을 모으듯, 이런 기억과 흔적들을 모으는 일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집에 이상한 고서적, 누군가의 일기장, 모르는 사람들의 사진, 누군가의 오래된 낙서들이 잔뜩 있다. 이런 것들을 모아 책으로 내기도 한다.

독특한 서브컬처를 다루는 독립출판사로서 야심이 있다면?
야망은 없다. 다만 내년에도 이 일을 하면서 생활하고 싶다. 늘 좋아하는 것이 떠오르고 그걸 끊임없이 책으로 만든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거다. 나이 여든이 되어도 꾸준히 이상한 것으로 책을 만들며 그걸 구매해주는 사람들과 껄껄 웃는 것. 이것이 내 소망이다.

다음 책으로 내보고 싶은 새로운 관심사는?
더쿠 매거진 9호를 제작 예정이다. 8호가 나온 지 4년이 지나가니 이제 9호가 나와야 한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폐간을 의심하고 있다. 더쿠 9호의 키워드는 권법이다. 더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데 먼저 말하면 재미없으니 그만 말하겠다. 한국 괴물을 넘어서 동양 괴물을 다루는 책, 우주선과 관련된 책 등 다양한 작업들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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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프란츠
김동연 대표

프란츠는 클래식 음악을 지면으로 담아내는 출판사다. 바이올리니스트인 김동연 대표가 큐레이션한 악보집부터 1500년대부터 현대까지 직접 정리한 클래식 음악 연표,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혐오> 같은 빛나는 번역서까지, 그가 듣는 클래식 음악을 가지런히 종이에 옮겨 쓴다. “음악 밖에서 음악을 듣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키냐르의 질문에 “프란츠의 책을 본다”고 답해본다. 서정과 낭만의 음악가, 슈베르트의 이름을 따왔다.

출판사 이름이 프란츠다. 슈베르트 좋아하나?
맞다. 슈베르트의 이름인 ‘프란츠’로 출판사 이름을 지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깊은 서정성과 현대적인 사운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즉흥곡 3번이나 현악사중주 13번 ‘로자문데’ 같은 곡을 들을 때면, 슈베르트가 평생 이 한 곡만을 작곡했어도 그에게 매료되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프란츠라는 이름을 가진 예술가가 많다는 사실도 한 몫 했는데, 리스트든 카프카든 각자가 떠올리는 프란츠로 자연스럽게 기억되어도 좋겠다.

전공자인가? 출판사를 하기 전엔 무슨 일을 했나?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일은 지금도 프란츠 일과 병행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바이올린 강의 채널도 운영하며, 음악 강연을 하기도 한다.

왜 클래식 음악이 좋나?
어릴 땐 막연히 클래식이 주는 편안함이 좋았다. 음악이 주는 감동의 크기는 장르와 관계없다고 생각하지만, 클래식 음악만이 가진 매력이라면 생생한 울림을 꼽겠다. 클래식 악기는 지금도 여전히 나무를 깎아 만들며, 전기 장치로 소리를 왜곡하지 않는다. 좋은 작품을 들으며 균형 있는 화성과 악기 간의 조화로움을 온전히 느낄 때면, 내 안의 무언가가 가지런히 정렬되는 느낌이 든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어떻게 생각하게 됐나?
예전엔 대형 음악 음악사를 통해 바이올린 교본과 악보집들을 출간했었다. 그러다 다양한 컨셉의 악보집을 기획하고 싶어졌고, 더 나아가 음악에 관한 단행본들도 만들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클래식 음악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진 책을 만들고 싶어 직접 출판사를 열게 됐다. 예술을 다루는 책이라면 더욱 더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구글에 검색하면 악보가 나오고 유튜브에 검색하면 연주 실황을 볼 수 있는 시대에 클래식에 대한 책과 악보집을 출간하는 이유는 뭔가? 물성을 가진 책으로 클래식 음악에 접근하고 싶었나?
스마트폰으로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해도 직접 만나는 것과는 다르듯, 종이를 넘기며 책을 읽는 것은 시대나 테크놀로지의 발달과는 크게 관계없는 고유의 가치를 지닌 일이다. 또한 무형의 예술을 텍스트나 물성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지닌 것도 맞다.

프란츠의 악보집은 QR코드를 스캔하면 해당 곡의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책이라는 고전적인 매체를 동시대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어떤 고민의 과정이 있었나?
아직도 서점에서 명곡집을 사면 부록 CD가 붙어 있다. 책은 손과 눈만 있으면 읽을 수 있지만 CD는 플레이어가 없으면 무용지물인데 요즘엔 CD플레이어가 없는 집이 더 많지 않나. 그걸 모른 척하고 책에 CD를 붙여 판매할 순 없었고, 악보집에서의 음원은 악기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가이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용자가 듣기 편한 방법을 생각한 것이 음원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QR코드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한편 아직 CD를 원하는 분도 계실 것 같아 CD도 따로 제작했다. 앞으로도 독자 입장에서 고민하고 시도할 것이다.

<바이올린을 위한 밤의 노래> 악보집의 선곡이 좋더라. 텔레만에서 드뷔시, 모차르트, 라벨, 바흐, 차이콥스키, 포레로 이어지는 흐름이 부드러운 밤의 서사 같더라. 어떻게 기획했나?
그렇게 들어주셨다면 내 의도를 다 느껴준 셈이다. 혼자 있는 밤에 드는 감정의 흐름을 상상하며 선곡을 했다. 이 악보집은 연주자뿐 아니라 감상자 또한 염두에 둔 기획이다. 그만큼 음원의 질이 무척 중요했기에 뛰어난 연주자들을 섭외해 클래식 전문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했다. 또한 피아노 반주 트랙을 따로 만들어, 바이올린을 하시는 분들은 반주를 틀어놓고 연주해볼 수 있도록 했는데, 의외로 피아노 음색을 좋아하는 분들이 그 트랙들을 즐겨 듣기도 하시는 걸 보고 제작자로서 예상 외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오월의 한낮으로 악보집을 기획한다면 어떤 레파토리를 짜겠나?
즉흥적으로 떠올려보자면 피아노가 주를 이루되 단 한 곡만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가는 건 어떨까. 이를테면 사티나 드뷔시로 조금 나른한 기분으로 시작해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잠을 깨우듯 쇼팽을 거쳐 스크랴빈으로 색다른 낭만을 즐기다, 절정의 순간 슈만의 ‘헌정’을 아름다운 소프라노로 듣는다. 아찔한 오월의 낮이 될 거다.

1500년대부터 현대까지 클래식 연표를 만든 건 엄청난 공이 들었겠더라.
한눈에 클래식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핸드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왔다. 노동에 가까운 일이라 다른 분에게 부탁할 수 없어 직접 하게 되었다. 인물들의 생몰 연도나 주요 작품 발표 시기뿐만 아니라 연주자들의 정보, 악기의 탄생 시기, 심지어 클래식 음반사의 정보까지 넣고 싶어 시간이 많이 걸렸다. 크기는 작지만 뿌듯함은 큰 책이다.

프란츠에서 출간한 번역서들 모두 인상적이지만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혐오>는 날카롭고 귀한 책이다. 많은 이들이 키냐르가 음악을 사랑했다는 건 알지만, 음악을 증오할 만큼 심원한 의미에서 탐구했다는 걸 아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어떻게 이 책을 출판하게 됐나?
음악 혐오는 여러모로 프란츠에 의미 있는 작품이다. 첫 단행본이었던데다 관심도 가장 많이 받았다. 음악의 기쁨이나 즐거움에 대해 다루는 책은 많고 또 그것이 당연하기에, 첫 단행본으로는 음악의 이면을 곱씹어 볼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었다. 2015년, 파리 서점의 음악 코너에서 이 책을 처음 봤다. 책을 손에 들고 제목에서부터 강한 이끌림을 받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자리에 서서 ‘이 책을 첫 단행본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현실이 됐다.

아파트먼트 프란츠에서 청음회를 진행한다. 분위기는 어떤가?
한 작품을 깊이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여러 번 들어보는 것이다. ‘살롱 골드베르크’는 일 년에 한 곡을 선정해 매달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이다. 올해의 음악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매달 신청을 받는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나 애호가부터 입문자까지 참여자의 구성은 다양하다. 클래식 애호가뿐 아니라 이제 막 듣기 시작한 분들의 순수하고 신선한 감상이 이 모임의 중요한 활력이다. 2월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하프시코드 연주로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마침 그 자리에 하프시코드를 배우는 분이 오셨다. 덕분에 익숙하지 않은 악기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어 다들 즐거워했다.

클래식 음악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문화는 아니다. 클래식 서적을 출간하는 출판사로서 지닌 야심이 있나?
만 명의 고정 독자를 확보하는 것이다. 프란츠를 지지해주는 분들이 만 명이 계시다면 좋은 책에 꾸준히, 또 신나게 집중할 수 있을 거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한 명만 꼽기는 어렵고 그때그때 달라지는데, 몇 달 전까지는 모차르트였다가 요즘은 슈만의 음악을 자주 듣고 있다. 꽃은 피었는데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요즘, 낭만적인 실내악과 가곡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독자들에게 지금 이 시기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 한 곡을 추천해준다면?
아이슬란드 출신 피아니스트인 비킹구르 울라프손이 연주하는 바흐의 오르간 소나타 4번(BWV. 528)을 추천하고 싶다. 이 곡을 듣고 있자면 각자의 마음에 있는 슬픔을 이기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음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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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예지
PHOTOGRAPHY 최승혁
ASSISTANT 김인혜

202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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