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LIFE MORE+

방구석 작가 일기 에세이 편

사회적 거리를 두는 디제잉이란

UpdatedOn May 04, 2020

3 / 10
/upload/arena/article/202004/thumb/44890-412076-sample.jpg

 

소울스케이프

소울스케이프

DJ
한 분야에 오래 몸담은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전문성, 정확함, 그리고 벼린 날카로움 같은 것들이 필요할 때 DJ 소울스케이프에게 글을 맡긴다. DJ로서 그는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시대에 직격타를 맞은 디제잉 활동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랜선 디제잉’이라는 대안에 대해 숙고한다. 위기가 닥쳤을 때, 주저앉기보다 다음 스텝을 밟는 법. DJ 소울스케이프가 알려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프로듀서로서 나의 일상은 사실상 자가격리인 탓에 다른 부분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지만, 항상 디제이 부스에서 사람들을 만나오던 디제이로서 나의 지난 몇 주간은 처음 경험해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해외 공연이나 출장의 취소는 말할 것도 없고, 디제이 활동 반경을 아우르는 일종의 ‘공동체’가 와해된 것은 물론이다.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사회적 거리 두기의 반의어에 가장 가까운 것을 꼽자면 클럽, 파티일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적절한 보호 장치가 없는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디제이의 활동 시스템은 빠르게 해체되었고, 두어 달간 이어진 정적 속 혼돈과 함께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의 ‘뉴 노멀’을 맞이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최근 데이터를 인용하자면 BBC에서는 ‘라디오 청자는 증가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는 하향세’라는 분석 기사를 내놓았고, 3월 중순의 데이터는 스포티파이의 톱 200 스트리밍 횟수가 약 10~23%라는 유의미한 감소를 기록했다고 한다. 대중음악이 사회적 상호 작용, 그것도 물리적 소통과 충돌을 토양 삼아 발전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워본다. 청각이라는 제한적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자극’으로서의 음악은 소통 도구로서 공통적인 문법을 만들어낸다. 댄스 뮤직이 적절한 예다. 대다수의 팝 뮤직에 쓰이는 리듬은 수십 년간 프로듀서와 디제이, 댄스 플로어에서 사람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입증된 ‘구조물’로서 제작자와 전달자, 소비자 간의 긴밀한 협조와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아마도 지금 나를 비롯한 디제이나 뮤지션들이 느끼는 무력감의 근저에는 이런 ‘사회적 상호 작용’의 부재가 있지 않을까? 많은 디제이들이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정상화되길 기원하고 있지만, 정부의 발표대로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매주 일요일이면 플레이하는 노래인 필리스 세인트 제임스의 곡 ‘Ain’t No Turnin’ Back’도 이전과 다른 의미로 들릴 것이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을 생각해본다. 먼저 음반을 관리할 시간이 생겼다는 점, (하루 종일 음반을 닦고 망가진 커버를 수리하거나 속지를 교체하느라 시간을 보내본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솔직히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동안 잘 꺼내 보지 않던 음반들, 사놓고 들어보지도 못했던 음반들을 재발견하는 공부의 시간이 만들어졌다는 점 역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변화. 프로덕션에 집중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 역시 필요한 시점이었다.

정부의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이 처음 시작된 3월 22일부터 나는 처음으로 유튜브 스트리밍을 시작해보았다. 디제잉 스트리밍 이벤트는 언제나 있었고, 나 또한 오랜 시간 라디오를 진행해왔지만 이렇게 고립된 환경의 제약과 분위기는 생소했기에, 직접 송출 환경을 만들고 DIY 스타일로 진행해본 것은 처음이었고, 모든 면에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랜선 디제잉’의 가장 즐거운 부분은 평소에 클럽을 비롯한 외부로 ‘반출하지 않는’ 아끼는 음반들을 마음껏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라이빗 프레싱(Private Pressing: 아티스트가 레이블과 계약하지 않고 스스로 찍어낸 독립 음반) 소울 레코드라든지, 댄스 플로어를 벗어난 월드 뮤직, 라이브러리 뮤직 등 평소에는 선반에서 잠자고 있을 음악들을 플레이하고 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디제이들의 활동 범위를 늘려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음악들은 여럿이 모이는 자리보다는 ‘작고 개인적인’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 듣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미세 취향’ 음악의 중요성은 뉴 미디어의 전개와 함께 활발한 키워드로 주목받게 될 것이다. 앞서 소개한 톱 200 음악의 스트리밍 횟수 감소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히트 곡 소비 일변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딥 리스너들을 위한 플랫폼이 증가하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지금 내 방 안에는 로니 휴이트의 곡 ‘Newsroom’이 흐른다. 이 곡에 등장하는 가사처럼 지금의 재난은 현재진행형이며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음악의, 우리의 앞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것이 의문부호투성이인 요즘이야말로 인류애, 긍정과 믿음으로 일상의 소중함에 감사하며 새 희망을 꿈꿔야 할 때다.

Quarantine Diary 시리즈

Quarantine Diary 시리즈

얼마나 큰 행운인지

고향에서 고향으로

위로

응답하세요

맞은편 할머니

방구석 작가 일기 그림일기 편

코로나 시대의 사랑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GUEST EDITOR 정소진
EDITOR 조진혁, 이예지, 김성지

2020년 05월호

MOST POPULAR

  • 1
    예술과 기술의 경지
  • 2
    봄의 공기청정기
  • 3
    Thinner
  • 4
    SPRING, SPRING
  • 5
    꽃구경도 식후경

RELATED STORIES

  • LIFE

    연기 없는 저녁

    아이코스는 ‘IQOS Together X’ 이벤트를 통해 어떤 말을 건네고 싶었을까? 그 이야기 속에는 꽤 진지하고 유쾌한 미래가 있었다.

  • LIFE

    아메리칸 차이니즈 레스토랑 4

    한국에서 만나는 미국식 중국의 맛.

  • LIFE

    가자! 촌캉스

    지금 이 계절, 촌캉스를 떠나야 할 때.

  • LIFE

    봄의 공기청정기

    미세먼지가 걱정스러운 계절이라 모아본 오늘날의 공기청정기 4종.

  • LIFE

    꽃구경도 식후경

    눈과 입 모두 즐거운 식도락 봄나들이.

MORE FROM ARENA

  • LIFE

    SUPERNOVA

    지난 10년간 스포츠계의 아이콘은 리오넬 메시, 르브론 제임스, 마이클 펠프스 등이었다. 2020년대의 히어로는 누구일까?

  • FASHION

    태크호이어의 뉴까레라

    태그호이어의 1백60년을 관통하는 클래식과 현대의 조우.

  • LIFE

    2022년 연말 결산

    새해를 맞이하기 전, 짚어 봐야 할 부문별 올해의 1위

  • LIFE

    시리아 Re-Coding Post War Syria

    새로운 도시가 생긴다. 스마트시티로 명명되는 이 도시들은 자원을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자연환경과 어우러지고,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지속가능성을 화두로 삼는다. 그리고 여기에 자율주행이나 주민의 네트워크, 공동체, 민주주의 같은 개념을 이식한다. 기사에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스마트시티들을 소개한다. 나아가 이 도시를 설계한 건축가들과 스마트시티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주민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물었다. 건축가들이 답하는 미래 도시의 조건이다.

  • REPORTS

    동갑내기 메이저리거들

    유년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한다. 고교 시절 땐 라이벌 학교 선수로 격돌한다. 프로에선 각기 다른 팀에서 실력을 갈고닦는다. 그리고 마침내 메이저리그에서 만난다. 청춘 야구 만화의 줄거리가 아니다. 오승환, 추신수, 이대호라는 1982년생 메이저리거 친구들의 이야기다. 셋은 이 이야기를 만화 대신 책으로 내기로 했다. 그 자체로 벅차서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