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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이브

이센스는 요즘 개운하다. 전부 즐겁다. 그렇게 잘 살고 싶다.

UpdatedOn Augus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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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티셔츠는 레이시소, 패치워크 팬츠·골드 네크리스는 모두 아와시안 제품.

질문하면, 생각을 정리해 최대한 많이 들려줬다. 그러니까 이센스 스스로 할 이야기가 많은 건 아니었다. 말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됐을 때, 그 시간은 더 재밌고 새롭다. 이날 인터뷰가 그랬다. 핑퐁처럼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 탄성이 붙자 어느 순간 이야기는 데굴데굴 잘도 굴러갔다. 별다른 힘을 주지 않아도, 방향을 잡지 않아도 대화는 괜찮았다. 재밌었다. 한 시간 남짓 이센스와 대화를 나눴을 때 그는 개운하다고 말했다. 할 일 끝내놓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눌 때가 특히 그렇다고 했다. 이센스의 결과물 <이방인>은 잘됐다. 할 일을 잘 마친 이센스는 요즘 개운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방인>(한정반) 1만7천 장이 3일 만에 전부 소진됐다. 음원 시대에 이센스는 음반 이야기를 꺼내게 했다.
내 음반을 첫 트랙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긴 대화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싱글로 만드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청자와 내가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다. 그렇게 음반을 들었다면, 아마 내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1집 때도 2만 장이 금방 판매됐다. 사람들은 이센스 앨범에 어떤 기대를 하는 걸까?
그런 생각 때문에 좀 괴롭다. 앨범을 내면 이런저런 얘기가 있지 않나. 거기에 신경을 쓰다 보니까 작업이 꼭 숙제처럼 느껴지고 불행해지더라.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도 있지만, 나는 안 그렇거든. 분명 그런 건 앨범 작업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열두 시간 이상 할 수 있지만, 그 열두 시간이 명쾌하지 않게 흘러갈 게 뻔하다. 속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생각하지 않으려는 쪽으로 결정했다. 답이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여주고 들려주는 직업이다 보니, 계속 신경 써왔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음악이 숙제가 되지 않게. 그렇게만 접근하고 싶다.

<The Anecdote>와 <이방인> 사이, 이센스는 어떤 시간을 지나왔나?
<The Anecdote>와 <이방인> 전부가 내 인생과 깊이 밀접돼 있는 앨범이다. 그래서 앨범을 내 인생과 동일하게 두고 봤다. 그러니까 마치 앨범이 잘되면 나는 사람으로서, 뮤지션으로서 가치 있고, 앨범이 잘 안 되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생각이 감정의 밸런스를 굉장히 심하게 깨트리더라. 그런데 또 어쩔 수 없고. 음악이란 게 사람들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면도 있으니까. 두 장의 앨범을 지나오는 시간은 그런 것들을 게워내는 과정이지 않았나 싶다. 모든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하지만 신경 쓰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 같기도 하고.

<이방인>에 대한 반응은 어떤 것 같나?
걱정했던 것보다 잘된 것 같고, 또 반대로 기대했던 것보다는 성에 안 차고.

<이방인>을 준비하면서 예상했던 것과 반대의 일들이 있다면?
예상 밖은 출소 후에 인생 전부가 개운해졌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한 일이라곤 책 읽고 생각한 것뿐이지, 사실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거든. 근데 난 착각했던 거지. 마치 어떤 행동을 한 것처럼. 뭔가 세탁된 것 같고. 그런데 나와보니 전혀 아니더라고. 유예된 정도. 인생이 잠시 멈춰 있었던 것뿐이더라고. 그래서 그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정신력이 뚝 떨어진 적도 있었다. ‘여전히 뭐 같잖아?’라는 생각에. 결국 이전과 똑같이 살게 되더라. 모든 걸 음악적인 부담으로 치환하고… 이런 부분이 내 기대와는 반대였다. 예상했던 건 모르겠다. 예상대로 인생이 흘러가진 않는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하면 염세적이라고 하는데 그건 반쪽만 알아들은 얘기지. 예상대로, 기대대로 흘러가면 전부 부자고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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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XX 아들같이’ 중 이센스는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나?
두 번째 프리 훅에 똑같은 템포가 있다 ‘다 지가 잘나서 된 거라 생각하네. (그 XX) 아들같이’ 이때 어떤 쾌감이 있거든. 나름의 멋이라고도 생각했다. 술 먹고 방송한 인스타그램 라이브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 ‘내가 짱이야’라고 했던 거. 그게 나한테는 어떤 폭발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네가 뭘 했다고’ ‘네가 잘나서 된 줄 알아?’라는 반응도 있었고. 솔직하게 나는 그 반응들에 좀 이죽대고 싶었다. ‘그래 맞아. 내가 잘나서 된 거야’ 이렇게. 차라리 그렇게 보이길 바랐다. ‘어, 너희들한테는 내가 어떻게 살고, 어떤 고통을 가졌고, 그런 짠내 나는 소리 안 할게. 그런데 나 너보다 잘나서 잘된 거 맞아’ 이렇게.

그거였네.
비트도 리와인드되거든. 그 부분만 강조하고 싶었으니까. 내 실력에 대한 자신감, 자부심, 노력을 잘 아니까. ‘와 쟤 아직도 힙합해?’ 같은 반응에 ‘난 있다가 없어지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봐왔는데 난 10여 년째 하고 있다고. 너희들이 없어져도 난 역시 남아 있을 거라고’ 이런 메시지.

그런데 요즘 차 알아보고 있다고 들었는데. 하하.
지프, 멋있는 것 같다. 덩치 큰 차를 좋아하거든. 내가 마르고 구부정해서 그런지 단단해 보이는 차가 멋있다. 하하. 지프가 그 끝인 것 같다. 지바겐 이런 것도 멋있는데 너무 비싸고. 미친 가격! 그런데 아직 집도 못 샀는데 차를 산다는 게 조금 딜레마다.

오, 현실적인데?
주변 사람들 덕이다. 기분파가 별로 없다. 하하. 대표에게도 ‘레인지로버다!’ 하면, ‘아니다, 돈 모아라’라고 얘기하니까. 그런데 정말 어릴 땐 ‘집 사기 전에 차는 안 사!’ 이랬거든. 주택 가격을 무시했던 것 같다. 어릴 땐 돈 개념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세금도 내야 하고, 내가 정년퇴직이 보장된 회사원도 아니고. 막말로 앨범에 투자했다가 폭삭 망해버리면…. 어떻게 보면 이 직업이 살얼음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차를 사기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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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님 재킷은 겐조, 카키색 티셔츠는 헬무트 랭 by 매치스패션, 검은색 비니는 C.P. 컴퍼니, 골드 네크리스는 아와시안 제품.

다시 앨범 얘기로 돌아와서. <이방인> 작업 전과 작업 중, 그리고 작업이 끝난 지금 생각의 변화가 궁금하다.
아까 답변이랑 정확히 이어진다. 그러니까 작업 전에는 출소 후 내가 모든 걸 개운하게 정리했다고 착각했으니까.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할 거야!’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작업 중에는 결국 다시 이전 작업의 연장선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스트레스고, 진실한 음악을 만들었지만, 또 싫고. 그래서 만들어놓고 엎은 음악이 정말 많다. 발매 직전에는 ‘못하겠다, 여기까지다’ 하고 번아웃되기도 했고. 근데 트랙 리스트를 정리하니 내가 해놓은 것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짬뽕돼서 녹아나온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정말 굉장히 개운한 거지. 이제 정말 <이방인> 준비하기 전처럼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그 정도로 개운해졌다. 기분도 생각도.

술이 약한데 좋아하지?
술을 좋아한다기보다 맨 정신이 괴로울 때 먹지.

요즘도?
아니. 요즘은 맨 정신에도 바이브가 좋아서. 하하. 사람들 많이 만나고 얘기하니까 기분 좋더라고.

또 기분 좋은 게 있다면?
제이통의 바이브. 제이통 요즘 물질하러 다니거든. 제이통은 정말 꽂히는 건 다 하는 성격이다. 제이통 보면서 ‘인생 저렇게 살아야 되는데’를 정말 많이 느낀다. 하하. 서핑에 빠지더니 올여름 내내 바다에서 산다. 그러다 갑자기 조개 캐고, 해삼 줍고, 전복 캐고. 사진 보내면서 ‘형 부산 옵시다’ 하는데, 문득 난 너무 음악에만 몰두해서 재미없게 사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 나도 제이통처럼 변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취미가 없거든.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그 정도로 개운해졌다. 
기분도 생각도.”

반면 가장 별로인 거.
깊이 이해하지 않고, 할 생각도 없으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관심들. 아니, 음악이 얼마나 많은데. 내 음악이 와닿지 않으면 안 듣고 넘어가면 될 텐데, 꼭 ‘얘는 어떤 것 같다’ 항상 이런 식이다. 뭐 이런 얘기들. 그럴 때 웃길 때가 종종 있지. 비슷한 게 ‘염세적’이라는 말. 평론가인 척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떤 범주 안에 묶어버리는 것 같아서 별로다. 정말. ‘이센스는 염세적이야.’ 물론 어느 정도 그렇게 느낄 수 있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회색일 때 그럴 수 있지. 그런데 그걸 프레임화, 카테고리화시켜서 나에 대해 색안경 낀 채로 말하면 정말 짜증나더라. 내가 정말 염세적이면 앨범을 만들어서 팔고, 공연도 하고 그럴까. 그들도 힘들 때가 있듯이 나도 힘들 때가 있는 거고, 또 그걸 풀어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인데. 세상을 어둡게만 보고 ‘넌 그냥 그런 애야’라고 뱉어놓고, 그에 맞는 근거를 찾는 모습이 좀 안타깝지. 세게 말하면 멍청해 보이고.

그래서 요즘은 어떻고?
정말 다 즐거운 것 같다. 친분이 없던 친구들과도 만나고. 그런데 그 친구들도 ‘와 센스 형 의외네요’라고 말한다. 술 먹고 노는 거 보고. 그럼 난 웃으면서 얘기한다. ‘야, 나 원래 이래!’ 물론 나도 어둡고 소심한 면이 있지. 그런데 염세적인 사람은 아니거든.

<이방인>이 나온 2019년 여름을 이센스는 어떻게 기억할까?
개운했던 한 달.

이유는?
앨범 작업 끝내고 축하 파티를 한다거나, 고생한 사람끼리 모여서 ‘와~!’ 이런 거 하지 않았거든. 그냥 초저녁에 맥주 한 캔 마시는데 엄청 개운한 거지. 고민도 없고. 그런 거 같다. 치킨에 맥주 한잔하면서 한강에 돗자리 깔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하면 그게 행복이지 뭐. 대신 할 일 끝내놓지 않으면 그 기분이 안 나는 거고. 할 일을 마치고 마시니까 기분이 정말 좋더라. 그날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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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티셔츠는 스톤아일랜드, 실버 링은 아와시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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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색 트랙 수트 재킷은 메종 유레카 by 1LDK SEOUL, 흰색 티셔츠는 레이시소, 베이지색 팬츠는 유니버설 프로덕트, 카무플라주 캡은 C.P. 컴퍼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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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신기호
PHOTOGRAPHY 한종철
STYLIST 성은비
MAKE-UP 최민석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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