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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와인 드셔 보셨습니까?

UpdatedOn August 30, 2019

그리스 와인, 조지아 와인, 체코 와인까지. 그 유명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만드는 와인이 아닌 ‘제3세계 와인’이 뜬 적도 있었다. 희귀성? 남들과는 다른 것을 마신다는 차별성? 결국에는 와인도 취향이고, 맛이 있어야 한다. 한국 와인 시장이 요즘 수상하다. 물어물어 어렵게 구입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옛날이다. 이제는 특급 호텔에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이 한국 와인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CONTRIBUTING EDITOR 백문영

일단 한 번 마셔봐

‘한국에서도 와인을 만든다고? 와인 하면 유럽의 프랑스, 이탈리아나 하다못해 미국, 뉴질랜드 정도는 되어야 생산하는 것이 아닌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통 소비자들의 반응이었다.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굴에는 60여 개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한국 와인 2백30여 종이 모여 있다. 전국에서 생산하는 한국 와인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다. 이런 광명동굴에서 근무하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우리나라에서 와인이 나와요?”였다. 한때 그 유명한 ‘마주앙’이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유일한 한국 와인인 줄만 알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한국 와인이 소비자들에게 익숙하고 친숙해졌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막걸리와 청주같이 소비자에게 계속해서 노출시킨 덕이다. 한국 와인이 제대로 정착한 지는 1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 짧은 세월 동안 와인 농가는 물론 국가에서 한국 와인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2015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와인 시장에 한국 와인을 전문적으로 판매하기로 결정한 광명동굴이 그 시발점이었다. 2017년에는 상황이 더 나아졌다. ‘우리 술’이라고 불리는 전통주의 통신 판매가 허용되면서 한국 와인의 판로도 넓어졌다. 이런 흐름을 타고 한국 와인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양조 방식 역시 다양해졌다. 처음에 비해, 그리고 몇 년 전에 비해 지금 한국 와인은 놀라울 정도로 품질이 높아졌다. 내로라하는 국내 유명 소믈리에들도 인정할 정도다. 외국 와인을 주로 다루는 소믈리에가 한국 와인을 칭찬해서 놀랍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와인의 품질과 격이 그만큼 상승했고, 어떤 술과 비교해도 충분히 즐길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놀랍다. 세련된 레이블과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다. 특급 호텔에서 판매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이런 흐름 때문일까? 지난해 말부터 그랜드 하얏트 서울, 파크 하얏트 부산에서 안산 그랑꼬또 와이너리의 청수와인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 와인으로는 특급 호텔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부터는 더 플라자 호텔에서 한국 와인 13종을 무려 글라스로 판매한다. “이렇게 좋은 와인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라는 사실에 놀라는 손님이 많다”고 더 플라자 호텔 로비 라운지와 바를 총괄하고 있는 최정원 지배인은 말한다. 올 8월부터는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에서도 이와 비슷한 한국 와인 셀렉션을 판매할 예정이다.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에서 음료를 총괄 담당하는 정하봉 지배인은 “꾸준한 노력과 헌신으로 발전해온 한국 와인을 소비자에게 소개할 때가 된 것 같다. 한국의 소믈리에로서 한국 와인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갑자기 왜 한국 와인이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호시절이 갑자기 이뤄졌을 리는 없다. 한국 와인을 알리기 위해 국제대회에 한국 와인을 출품한다든가, 한국 와인의 독특함과 다양성을 알리는 행사를 꾸준하게 진행해왔다. 2018년 2월에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강레오 셰프의 정찬과 광명동굴 와인연구소가 고른 7가지 한국 와인으로 ‘한국 와인 메이커스 디너’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시도를 시작으로 꾸준히 한국 와인과 한식은 물론 외국 정찬이 조화를 이루는 행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매년 우수 양조장을 선정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에 한국 와이너리들이 선정된 것도 호재다. 와이너리 투어, 와이너리에서 하는 팜 파티 등 다양한 형태로 한국 와인은 소비자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 와인은 외국 와인과 품종 자체가 다르다. 흔히 알고 있는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같은 외국의 양조용 포도 품종과는 아주 다르다. 우리가 식용으로 즐겨 먹는 캠벨, 머스캣, 우리 토착 포도 품종인 산머루 등을 주로 사용한다. 품종의 차이는 풍미의 차이로 다가온다. 달고 산미가 적고, 흔히 텁텁하다고 하는 타닌 느낌이 적다. ‘한국 와인이 음식을 먹을 때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편견이 아직까지도 풍문처럼 회자되고 있는 이유다. 소믈리에로서, 한국 와인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잘 아는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요즘 한국 와인 드셔보셨습니까?’ 간장과 고추장 베이스의 맵고 짠 한국음식에는 오히려 타닌과 산도가 강한 외국 와인보다, 향미가 풍부한 한국 와인이 잘 맞는다. 그 속성상 강할 수밖에 없는 한국 음식의 향을 잘 받쳐주는 한국 와인은 외국의 수입 와인과는 그 결이 또 다르니까 더욱 그렇다.

유럽 그 어딘가의 유명하고 값비싼 와인이든 소소한 한국 시골 저녁상에 오른 와인이든, 와인의 본질은 그 나라 음식과 그 식탁에 어울리는지다. 한국 와인은 한국 식탁에서 빛을 발하고, 한국 와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우리가 한식을 즐기는 한, 계속될 것이라 믿는다.

WORDS 최정욱(광명동굴 와인연구소장·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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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NG EDITOR 백문영
WORDS 최정욱(광명동굴 와인연구소장·소믈리에)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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