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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도 좋지만

UpdatedOn July 29, 2019

페스티벌 콘셉트의 러닝 대회는 그룹 런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그룹 런은 다시 시티 런과 나이트 런의 모습으로 건강하게 퍼졌다. 그렇게 그룹 런은 젊은 러너들에게는 놀이터로, 러닝 시장에는 새로운 문화이자 트렌디한 러닝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크루가 많아지면서 이전에 없던 행태가 곳곳에서 보인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행태들이다. 횡단보도를 무리 지어 내달리거나, 차도나 자전거 도로를 달리기도 한다. 물론 일부 크루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심을 내달리는 러닝 크루 모두가 보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에티켓을 공유하지만, 결국 러너들의 편의를 위한 내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즘의 그룹 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트렌디한 러닝 스타일의 탄생? 제어 장치가 필요하다면 어떤 범례가 있을까.

EDITOR 신기호

러닝 붐 2.0

밤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 도심을 질주한다. 음악을 크게 틀고 달리기도 하고 ‘파이팅!’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이제 도심에서 ‘그룹 런’을 하는 러너들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됐다. 가끔씩 한강이나 트랙에서 러닝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으면, 자연스레 ‘러닝 크루인가요?’ 하고 묻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그만큼 그룹 런과 러닝 크루는 이제 보편적인 풍경이 된 것이다. 올해 초,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러닝 크루의 수를 조사했다. 추정하면, 전국을 기준으로 1백여 개 이상의 러닝 크루가 운영되고 있다. 그중 70%가 서울에서 활동한다. 그러니까 서울 시민은 그룹 런을 하는 러너들을 일상에서 몇 번씩 만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때로 불쾌한 경험도 있을 거다. 무리 지어 달리는 크루들에게 위압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러너들에게 과제가 생긴 것이다.

먼저 질문 하나. 그렇다면 모여서 달리는 러너들은 모두 러닝 크루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룹 런은 러닝 크루가 주마다 진행하는 활동이다. 러닝 크루는 2004년 마이크 세이스가 뉴욕에서 야간 런 행사를 주최하면서 시작됐다. 행사에 모여든 사람들은 같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서로를 ‘브리지 러너스’라고 불렀다. 그들은 기존 러너들과는 달랐다. 기록이나 건강 관리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개성을 표현하고 자유롭게 도시를 누비는 것. 그들은 외모, 성별, 인종, 성적 지향 등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고, 러너라면 누구든지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날의 그룹 런은 러닝 문화로 발전했고, 곧 전 세계로 확산됐다. 그리고 이제는 국경을 초월하는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러닝 크루가 아니더라도 시간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달리기도 한다. 물론 모임이 러닝 크루로 성장하기도 한다. 러닝 크루는 이제 모여 달리는 집단 이상으로 사회, 문화적으로 복잡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2014년, 한국에서도 러닝 크루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SNS, 특히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해외 러닝 크루처럼 스트리트 컬처, 음악, 미술, 패션 등 창조적인 장르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한국 러닝 컬처의 기반을 다졌다. 당시 그들이 사회에 미친 커다란 영향 중 하나는 러닝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것이다. 사람들은 러닝을 혼자서 하는 혹독한 운동이 아닌, 여럿이 즐기는 놀이로 여기게 됐다. 늘 새로운 것에 갈증을 느끼는 젊은 세대는 해볼 만한 경험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대부분의 러닝 크루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다. 미리 코스 답사를 하고, 야간에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장비를 마련한다. 대부분의 러닝 크루에서는 그룹 런을 위해 모일 때 멤버들이 발광 팔찌를 준비한다. 야간에 위치를 알리기 가장 쉬운 방법이다. 같이 달리다가 잠시 멈춘 멤버가 다시 합류하기에도 좋고, 차량이나 자전거, 보행자가 러너들의 위치를 알아보기도 쉽다. 러닝 문화를 선도하는 NRC(Nike Run club)에서도 에티켓을 공유한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달리지 않는다든지, 횡대가 아닌 줄지어 달린다든지, 앞선 보행자에게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하고 알리고, 보행자가 비켜주면 감사 인사를 하는 등의 내용들이다.

더 이야기해볼까. 많은 러닝 크루가 음악과 함께 달린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달리는 것은 크루 입장에서 보면 러너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신호이자 러닝 리듬을 돕는 장치다. 하지만 주변 보행자에게는 소음일 뿐이다. 일방적인 편의는 에티켓으로 분류할 수 없다. 그래서 음악을 틀지 않고 달리는 러닝 크루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희망적이다. 그룹 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 모든 러너들이 달릴 때 목소리, 제스처, 발광 장비로 위치를 알려야 한다. 누구나 시야 바깥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 불쾌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러너의 위치를 알리는 것은 그룹 런을 하는 러너들이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러너와 보행자는 적이 아니다. 서로 에티켓을 지키고 배려해야 한다. 지금까지 러너들이 러닝 컬처를 바꿔왔다면 이제는 더 나아가, 보행자와 러너 사이에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갈 시기다. 러닝 붐 2.0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도시를 공유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는 시기다. 4년 전, 나는 밴쿠버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러너들이 지나가면 보행자가 길을 비켜줬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뉴욕에서 처음으로 러닝 크루의 그룹 런에 참가했다. 뉴욕에서도 마찬가지로, 러너들은 보행자를 지나칠 때마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러닝이 일상 속에 자리 잡은 도시에서는 이처럼 러너와 보행자가 서로를 존중하고 있었다.

WORDS 차영우(<러너스월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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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신기호
WORDS 차영우(〈러너스월드〉 에디터)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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