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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REPORTS

해를 등지고 놀다

래퍼, 브랜드 디렉터, 스케이터, 무용수, 스타일리스트… 제각각 너무나도 다른 1990년대생 열 명을 만났다. 서울의 가능성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UpdatedOn May 21, 2019

오메가 사피엔

1998년생 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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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 사피엔은 어디서든 자랄 수 있다.

서울에 몇 년 살았고, 몇 년 더 살고 싶나? 8년. 1년.
진짜 ‘서울 사람’다운 건 짜증이 많은 사람.
서울에서 가장 좋은 건 밤 문화.
서울에 하루빨리 생겼으면 하는 건
멕시칸 프랜차이즈 음식점 치폴레.
서울에서 못 견디게 싫은 건
하늘색.
가장 서울다운 곳은 서브컬처의 영향이 없는 곳.
서울에서 가장 좋은 건 택시비가 싼 것.
서울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개미굴.


최종 인류

호모사피엔스가 인간이니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인류라는 의미의 ‘오메가 사피엔’이란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사피엔‘스’가 아니라 사피엔이다. 최종 인류는 나 한 명밖에 없으니까. 뮤직비디오를 직접 감독할 만큼 비주얼적으로 기준이 명확한 편이라,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각인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초록색 빡빡이’가 떠올랐다. 강렬한 이미지를 줄 수도 있고, 어디서든 초록색을 보면 오메가 사피엔을 떠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잡초도 초록색 아닌가. 나는 잡초처럼 어디서든 자랄 수 있고 어디서든 자랐으니, 이제 세계 곳곳에서 내 음악이 뿌리 내릴 일만 남았다.

짬뽕
세계 무대를 꿈꾸는 뮤지션으로서 나만의 특별한 무기는 ‘짬뽕된 문화적 경험’이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여덟 살 때부터 중국, 미국을 거쳐 지금은 일본과 서울을 오가며 살고 있다. 다양한 도시에서 경험한 문화와 삶이 ‘짬뽕’된 게 내 정체성이고 세계 어느 무대에서든 좋은 무기가 될 거라고 믿는다. 뮤지션으로서 내 음악의 카테고리를 ‘힙합&랩’으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 오메가 사피엔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오메가의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 거지?” 이런 궁금증이 들었으면 좋겠다. 물론 베이스는 힙합 음악.

Joyful Delivery
‘조이풀 딜리버리’는 내가 속한 바밍타이거 크루의 파티 브랜드이자,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담은 키워드다. 크루 멤버들끼리 고민하다가 나온 단어인 ‘음식, 아시아 문화, 사이키델릭한 느낌’ 등을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는 말을 고민했고, 미국 배달 음식 포장 박스에서 힌트를 찾았다. 딜리버리 서비스처럼 세계 곳곳에 우리 노래로 행복을 배달한다는 의미다. 곧 배달할 행복은 나의 새로운 싱글 음원이다. 지금까지 선보인 내 음악과 또 다를 거다. 힌트는 유스, 반란, 저항 그리고 좀 더 과격하다는 것.

나원&클로젯

1990년생,1992년생 디제이 듀오 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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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끼의 행보는 예측할 수 없다.

서울에 몇 년 살았고, 몇 년 더 살고 싶나? 23년. 22년. 남은 생의 반.
진짜 ‘서울 사람’다운 건 남에게 관심 많은 사람.
서울에서 가장 좋은 건 이태원.
서울에 하루빨리 생겼으면 하는 건 패스.
서울에서 못 견디게 싫은 건 개저씨.
때리고 싶은 사람은 신청 곡 틀어달라는 사람.
서울의 90년대생이 가진 특별함은 잃어버린 미래. 


셋보다 나은 둘

쎄끼는 프랑스어로 ‘누구야?’라는 뜻이다. 우리가 음악을 플레이할 때 누군가 “이 음악 좋다. 누가 트는 거야?”라고 묻게 만들자는 의미다. 물론 한국어 발음으로도 재밌어서 정했다.(웃음) 다양한 장르를 두루 틀지만 주로 하우스 음악을 플레이한다. 백투백 플레이(즉흥적으로 두 디제이가 음악을 주고받으며 플레이하는 것)의 묘미는 예측불허라는 것. 다음 곡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고 올해로 3년 차를 맞은 만큼 여러모로 안정을 찾은 것 같다. 두 사람이 아닌 한 명의 디제이 쎄끼가 플레이하는 것 같달까?(웃음)

한 번 더
보일러룸 서울 파티에서 플레이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디제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무대니까. 그 이후 아시아 곳곳의 클럽에 초청을 받았고 투어를 다녔다. 홍콩, 방콕, 상하이, 마닐라, 도쿄 등. 그리고 작년 여름에 유럽 투어를 갔다. 이탈리아의 규모가 큰 페스티벌 ‘오르티지아 사운드 시스템’을 거쳐 베를린의 전통 있는 클럽 ‘시시포스’, 암스테르담의 ‘레드 라이트 라디오’ 등에서 플레이했다. 그 외 국내에서도 꾸준히 파티를 기획했고, 해외의 멋진 디제이들을 우리 파티에 초청했다. 우리의 목표는 뭐든 ‘한 번 더.’ 우릴 다시 부른다는 건 우리가 정말 맘에 들었다는 의미니까.

여자 디제이
세계적으로 여성 디제이 수는 남성에 비해 아주 적고, 여성 듀오는 극히 드물다. 또한 여성 디제이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음악이 아닌 외모로 평가받거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그런 디제이 신에서 여자들도 음악만으로 클러버들을 설득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성을 떠나서 재밌고, 쿨하고, 때로는 괴짜 같기도 한 매력의 파티를 보여준 거다.

안다정&유연재

1992년생 램섀클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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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섀클은 불안정해서 더 아름답다.

서울에 몇 년 살았고, 몇 년 더 살고 싶나? 평생, 한 번쯤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
진짜 ‘서울 사람’다운 건 뚜벅이들.
서울에 하루빨리 생겼으면 하는 건 뉴욕 센트럴 파크.
가장 때리고 싶은 사람은 우린 비폭력주의자라능^^.
서울에서 가장 좋은 건 프리 와이파이.
서울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유행.
서울의 90년대생이 가진 특별함은 특별할 게 없는 것.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여자들

램섀클은 2017년에 론칭한 네이티브 인디언 액세서리 기반 주얼리 브랜드다. 이름 뜻처럼 론칭을 준비하던 당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우리의 심리 상태를 담아 지었다. 그땐 불안한 감정을 자주 느꼈는데, 네이티브 인디언의 액세서리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실제 인디언이나 유목민의 장신구는 그들이 대자연에 살며 자신을 보호하거나 위로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외적으로도 딱 우리 취향이었다. 정확하게는 사하라 사막의 투아레그 부족과 아프가니스탄의 쿠치 부족을 좋아한다.

처음과 달라진 것
지난달 공개한 컬렉션부터 직접 디자인한 ‘주얼리 컬렉션’을 추가했다. 이전엔 액세서리마다 각각 고유의 디자인으로 완성된 ‘빈티지 커스텀’ 라인만 있었지만, 이번 시즌부터는 한 디자인당 여러 개의 제품을 생산했다. 하나씩만 있어서 아쉬워하는 고객들을 위한 대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시즌 제품은 모두 금과 은으로 만든 반지와 귀걸이 위주 컬렉션이다. 목걸이는 단 하나. 향수를 담을 수 있는 펜던트 목걸이다. 조향사와 오랫동안 얘기 나누며 램섀클만의 시그너처 향을 만들었다. 향수를 담는 펜던트 이름은 아이 아이돌(Eye Idol), 시리아의 아이 템플(Eye Temple) 신전에서 발견된, 신에게 봉헌하는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오브제다.

서울에서 세계로
우리는 디자인과 커스텀은 물론 촬영, 스타일링 등 모든 작업을 직접 한다. 그래서 취향이 똑 닮은 우리가 함께한다는 게 최고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2년간 브랜드의 개성과 쇼룸도 자리 잡았으니, 이제 다른 목표가 생겼다. 먼저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 우리는 컨버스와 닥터마틴을 좋아하는 편인데, 램섀클 스타일로 커스텀하고, 오프라인 행사를 열어도 멋질 것 같다. 그리고 우리와 잘 어울릴 몇몇 해외 편집숍 입점 계획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인디언들이 해외로 나가는 거지.(웃음)

모키오

1991년생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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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키오는 달릴 준비를 마쳤다.

서울에 몇 년 살았고, 몇 년 더 살고 싶나? 7년 살았고, 4년 더 살다 베를린에서도 살아보고 싶다.
진짜 ‘서울 사람’다운 건 바쁜 사람.
서울에서 가장 좋은 건 24시간 쉬지 않는 곳.
서울에 하루빨리 생겼으면 하는 건 더 많은 테크노 클럽.
서울에서 못 견디게 싫은 건 미세먼지와 교통체증.
서울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혼돈.
서울의 90년대생이 가진 특별함은 그들이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라 특별해 보이는 게 아닐까.


감사한 엄마, 원망하는 아빠

싱어로 데뷔하며 활동명을 떨스데이(Thurxday)에서 모키오로 바꿨다. 프로듀서 시절은 과거에 두고 직접 노래하는 포스트맨이 됐다는 의미다. 데뷔 곡 ‘Something’과 후속 곡 ‘Daddy’의 가사에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를 쓴 건, 부모님이 내게 가장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Something’은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감사한 인물이자, 7년 전에 암 투병 끝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노래다. ‘Daddy’는 아버지를 향한 증오와 원망, 분노를 담은 나의 이야기이자, 나쁜 아버지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두 곡의 가사를 영어로 쓴 건 영어 발음의 몽글몽글한 청각적 질감을 좋아해서다. 장르는 얼터너티브.

H1GHR MUSIC
하이어 뮤직이 힙합 레이블이라고 규정한 적은 없지만, 힙합 성향이 짙은 레이블은 맞다. 하지만 나는 브리티시 록을 좋아하고 얼터너티브 음악도 만드는 사람으로서 하이어 뮤직이 음악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은 회사로 보이는 데 일조하고 싶다. 사실 싱어 데뷔는 독립적으로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이어 뮤직에서 힙합이 아니어도 괜찮으며 원하는 음악으로 데뷔해도 된다는 감사한 제안을 받고 여기까지 왔다. 덕분에 지금 자유롭게 첫 번째 EP를 만들고 있다. 회사 동료 중 음악적, 성격적으로 가장 잘 맞는 건 래퍼 pH-1.

돈보다 먼저인 것
모든 사람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 내 음악적 취향을 타협할 생각은 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어 선보이면 누군가는 좋아할 거라고 믿고, 지금도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다. 돈보단 멋진 결과물이 먼저다. 돈은 어차피 따라올 거라고 믿는다. 비슷한 의미로 요즘 그림 그리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멋진 갤러리에서 전시할 날도 있겠지. 그리고 서울에서 바뀌었으면 하는 게 있는데, 타투와 그라피티를 비롯한 서브컬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더 멋진 문화의 일부로 봐줬으면 한다.

이현신

1994년생 모델 겸 스케이트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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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신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즐기며, 감사하다고 말한다.

서울에 몇 년 살았고, 몇 년 더 살고 싶나? 7년, 평생 살아도 좋을 것 같다.
진짜 ‘서울 사람’다운 건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여가 시간을 즐기는 사람.
서울에서 가장 좋은 건 개성 있는 동네가 많고 서로 가까운 것.
서울에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건 스케이트보드 파크와 보울.
서울에서 못 견디게 싫은 건 내 집이 인천에 있다는 것.
가장 서울다운 곳은 광화문부터 을지로.
서울의 90년대생이 가진 특별함은 문화를 즐기고 넓히고 싶어 하는 것.


스케이트보드라는 해방구

태어나자마자 홍콩으로 가서 17년간 살다 서울에 돌아왔다. 중학교 땐 나와 비슷한 친구들과 몰려 다니는 사고뭉치였다. 그때도 스케이트보드는 늘 곁에 있었다. 내 일상의 해방구 같았달까. 그만큼 스케이트보드 문화는 지금도 소중하다. 아끼는 마음에 이 문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은 적이 있었다. 스케이트보더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나만의 고집이 있었던 거다.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좋아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보더들도 일 안 하면서 보드만 타는 건 아니니까. 내가 잘하면 되는 거다.(웃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처음 한국에 왔을 땐, 흥청망청 지냈다. 그러다 친한 스케이트보드 숍에서 나를 지원해줬고, 지인의 브랜드에서 모델 일을 하게 됐다. 그렇게 조금씩 모델 일이 늘어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스케이트보드 덕에 일도 하게 돼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힘들 때도 늘 곁에 있어줬고 새로운 길을 열어줬으니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스케이트보더들이 진행하는 해외 봉사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싶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스케이트보드 파크를 지어주고, 아이들과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내가 느낀 자유로움을 공유하고 싶다.

미래에 대하여
해보고 싶은 게 많다. 먼저 해외의 멋진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트릭을 하는 장면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 그 외엔 나만의 창의적인 것을 만들고 싶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내 스타일대로 연출하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게 영상이 될 수도, 그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내 그림을 티셔츠에 새길 수도 있고, 더 나중엔 전시회를 열어도 좋을 것 같다. 꿈이라고 말하긴 거창하지만, 30대엔 연기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물론 언제나 스케이트보드를 곁에 두고서.

권민석&김지연

1992년생 바 에이스포 클럽 오너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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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포 클럽은 전 세대를 아우른다.

서울에 몇 년 살았고, 몇 년 더 살고 싶나? 25년, 23년. 평생.
진짜 ‘서울 사람’다운 건 외모만 중동 사람인 완전한 ‘한국 여자’ 단골손님.
서울에서 가장 좋은 건 중고나라.
서울에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건 수십 년 전통의 가게.
가장 때리고 싶은 사람은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운전자.
가장 서울다운 건 서울 4대문 안.
서울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Soul of Asia.
서울의 90년대생이 가진 특별함은 아날로그의 맛을 아는 디지털 세대라는 것.


Ace Four Club

김지연 바 이름의 첫 번째 이유는 남편의 태몽 때문이다. 시아버님이 꿈에서 친구분들과 훌라를 쳤는데, 에이스 포 카드가 나왔다더라. 잭팟이지. 그게 내 남편이다. 두 번째는 런던 달스턴의 ‘포 에이시스 클럽’에서 차용했다. 그곳은 1960~70년대 런던에서 흑인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첫 번째 클럽이었다. 밥 말리, 스티비 원더도 단골이던 술집이자 시인들이 모이는 살롱이기도 했다.
권민석 이 가게의 장점은 전 세대를 아우른다는 거다. 낮에는 이화다방으로 알고 찾은 할아버지 손님들이 죽음에 대해 농담처럼 얘기하는 곳이고, 밤에는 청춘 남녀가 연애와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곳이다.

이화다방
권민석 가게 문에 아직 이전 가게 이름인 ‘이화다방’이 크게 적혀 있다. 낮에 이곳을 찾는 할아버지 손님들을 위해서다. 할아버지들에겐 6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다방이 하루아침에 없어진 거다. 그분들을 위해 이화다방의 명맥을 이어가기로 다짐했다. 할아버지 손님이 이화다방에서 드시던 요구르트를 주문하시면 이화다방 시절 가격 그대로 내어드린다. 지금 을지로에 전통 있는 다방이 한 곳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유라시아를 달려서
김지연 5년 전 런던 유학을 하다 잠깐 귀국했을 때, 남편을 처음 만났다. 첫눈에 내 남편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 대시했더니, 곧 자전거로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할 거라며 거절했다.
권민석 1년 9개월 동안 기다리게 하기엔 아내의 아름다운 청춘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하는 내내 아내 생각이 났다. 1년 반 정도 지나서 터키에 도착했는데, 더는 못 참겠더라. 곧장 런던으로 날아갔다.
김지연 됐거든?(웃음) 어쨌든 3개월 뒤 함께 귀국했고 작년에 결혼했다. 지금은 부암동에서 시댁살이 중인 2년 차 신혼부부다.

김도희

1992년생 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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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는 아직 보여줄 수 있는 게 많다.

서울에 몇 년 살았고, 몇 년 더 살고 싶나? 13년 살았고, 5년 더. 런던에서도 살아보고 싶다.
진짜 '서울사람'다운건 씻고 나와서 옷을 입고 본 거울 속의 나.
서울에서 가장 좋은 건 김도희 그리고 you.will.knovv.
서울에 하루빨리 생겼으면 하는 건 깨끗한 거리.
서울에서 못 견디게 싫은 건 빠른 것.
서울에서 가장 좋은 건 빠른 것.
서울의 90년대생이 가진 특별함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중간 세대라는 것. 자신감을 핸들링할 수 있다.


딘드밀리

자신 있었다. 스타일리스트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이 멋지다는 걸 누군가는 반드시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내 취향을 믿었으니까. 그렇게 재작년에 <쇼 미 더 머니6>가 방영됐고 내가 디렉팅한 딘의 아웃핏이 ‘딘드밀리 스타일’이라는 말로 유행처럼 번졌다. 어렸을 때부터 문화의 작은 부분이라도 내 이름을 걸고 바꾸고 싶었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된 거다. 딘드밀리 스타일이 얼마나 더 유행할지는 모르지만 빨리 끝났으면 한다. 내게는 딘드밀리만큼 멋지고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멋진 총알이 많으니까.

you.will.kovv
요즘 내 삶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건 내가 속한 크루 유 윌 노우(you.will.kovv)다. 딘, 라드뮤지엄, 미소, 태버 등 멋진 뮤지션들이 속해 있고, 자주 붙어 다니는 친구들이다. 이들과 대화하고 미래에 벌일 재밌는 일들을 계획하고 있다. 힘들 때 이 친구들을 만나면 행복하고, 그 반대일 때도 있다. 그만큼 내게 감정적, 작업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소중한 친구들이다.

감정을 전달하는 향수
딘을 포함한 유 윌 노우 크루 친구들과 런던에서 서너 달간 체류한 적이 있다. 그때 개인적으로 최악의 우울함과 최고의 행복함을 느꼈는데 그 감정을 향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100% 전달할 순 없겠지만, 어떻게 하면 향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지금도 연구 중이다. 향수를 만드는 일은 스타일링하는 것과 닮은 점이 있다. 어떤 팬츠에 어떤 아우터를 입힐지 고민하는 것처럼 향수도 한 향에 다른 향을 섞으며 레이어링하는 거니까. 그리고 완성된 향수를 시향할 때 ‘우와’ 감탄하는 것도 내가 디렉팅한 아웃핏을 보고 누군가 감탄해주는 것과 닮았다. 그래서 내가 만든 향수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도 ‘너를 위한 옷장(@wardrobeforu)’으로 지었다.

정회린

1997년생 무용수 겸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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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린은 생각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움직인다.

서울에 몇 년 살았고, 몇 년 더 살고 싶나? 2년 살았고, 15년 더.
진짜 ‘서울 사람’다운 건 유아인.
서울에서 가장 좋은 건 영화관이 많은 것.
서울에 하루빨리 생겼으면 하는 건 가족이 있는 전주 집.
서울에서 가장 때리고 싶은 사람은 “박근혜 석방” 외치며 억지로 동의서에 사인하라는 사람.
서울의 90년대생이 가진 특별함은 요즘 애들 같지 않으면서 옛날 사람 같지도 않은 것.


움직이는 사람

처음 춤을 시작할 땐 팝핍 댄스를 췄다. 이 춤이라면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내 신념과는 다른 춤이었다. 내 생각을 표현할 방법을 찾다가 댄서 동료인 남자친구와 우리의 신념을 움직임으로 표현해보자는 취지로 아트 크루를 만들었다. 우리는 어떤 장르의 춤이라고 단정 짓기 힘든 무용을 한다. 그래서 누군가 “어떤 춤을 추세요?”라고 물으면 고민하다가 “움직임”이라고 답한다.

본질을 찾는 움직임
남자친구는 늘 분홍색의 색약 안경을 쓴다. 그래야 내가 보는 세상의 색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때 ‘색약이 보는 세상’을 검색해봤는데, 색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세상이었다. 남자친구 눈엔 빨간색이 올리브색으로 보이기에, 올리브색을 매운 음식으로 기억할 수 있는 거다. 그때 “우리 모두가 장님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트 크루 이름을 ‘블라인드’라고 지었다. 그 연장선으로 아트 크루 인스타그램 계정의 ‘Looking for Esense’는 장님이지만 본질을 보자는 의미다. 주기적으로 남자친구와 내 생각을 표현한 움직임을 영상으로 찍어서 전시하듯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고, 그로부터 7일 뒤 우리 생각을 적은 글을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의 말을 먼저 읽고 작품을 보면 생각에 제약이 생길 수 있으니, 관객이 자유롭게 감상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여유롭고 자유롭게
여유와 생각은 내 삶에 중요한 의미다. 그만큼 일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델 활동도 즐겁게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앞으로도 생각하고 움직이며 표현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자유로운 것도 경제적인 면이든 뭐든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기반을 쌓아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 더 나이가 들어도, 자유롭게 생각하며.

최행원

1990년생 조거쉬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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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거쉬는 서울의 멋을 위한 또 다른 대안이다.

서울에 몇 년 살았고, 몇 년 더 살고 싶나? 22년 살았고, 1, 2년만 더.
진짜 ‘서울 사람’다운 건 알고 보면 속은 착하고 유순한 사람.
서울에서 가장 좋은 건 생존력이 강해지는 것.
서울에 하루빨리 생겼으면 하는 건 파란 하늘.
못 견디게 싫은 건 기득권.
가장 때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멋진 해프닝이 자신에게 일어나길 바라는 사람.
서울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똥.
서울의 90년대생이 가진 특별함은 없다.


양손잡이

조거쉬의 이번 컬렉션 명칭은 양손잡이란 뜻의 ‘엠비덱스터’다. 나는 남다른 성향 탓에 항상 정상적인 사람이 ‘오른손잡이’라면 평범하지 않은 ‘왼손잡이’로 살았다. 엠비덱스터는 왼손잡이 인생을 살아온 나 같은 사람들도 오른손잡이의 멋진 면을 보여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컬렉션이다. 일반적인 미의 기준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컬렉션은 분명 조거쉬가 말하는 사회적 미의 기준과 타협한 중간 지점이다. 그런데도 일반적인 미의 기준에서 안 예쁘다면, 어쩔 거야. 내 기준에 중간은 이런 건데.(웃음)

커트 코베인과 데이비드 보위
커트 코베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허술해 보이지만 멋진 매력 때문이다. 허투루 한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면밀히 계산된 것 같달까? 커트 코베인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공감할 말이다. 데이비드 보위를 좋아하는 건 다른 이유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돌아보면 엄청 깔끔하게 차려입고 등장할 때도 있었고, ‘이 미친 놈은 뭐야’ 싶을 만큼 독특하게 입고 등장할 때도 있었다. 스펙트럼이 넓은 아티스트라는 면에서 그는 나의 아이돌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리메이크 브랜드 조거쉬를 만들면서 깔끔한 브룩스 브라더스나 아페쎄를 동시에 좋아한다. 커트 코베인과 데이비드 보위처럼 예측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는 것. 그게 내 인생이고 조거쉬다.

조거쉬만의 규칙
옷을 리메이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몸 부분에 화려한 그림이 있다면 가장 외곽 쪽은 깔끔하게 디자인하는 방식이다. 태도는 쿨할 것. 예를 들면 이번 컬렉션에 ‘My Cat is Rockstar & I’m a manager’라고 프린트된 티셔츠가 있다. 문법적으론 록스타 앞에 ‘a’를 쓰는 게 맞지만 디자인적으로 안 예뻐서 뺐다. 이런 걸 멋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이 조거쉬 팬이다. 근데 영어사전 펴고 문법이 어쩌고 하면 조거쉬가 가는 길과는 다른 거다.

신하은

1997년생 비디오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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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하가 갈망하는 것.

서울에 몇 년 살았고, 몇 년 더 살고 싶나? 4년, 10년. 돈 많이 벌어서 아름다운 곳으로 떠날 거다.
진짜 ‘서울 사람’다운 건 나 같은 깍쟁이.
서울에 하루빨리 생겼으면 하는 건 불필요한 건물 싹 밀고 자연이 더 생겼으면 좋겠다.
서울에서 가장 때리고 싶은 사람은 이명박.
가장 서울다운 곳은
한강.
서울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미쳤다.


가장 잘하는 것

어렸을 때부터 패션을 좋아했다. 그러다 패션엔 영상과 사진도 포함된다는 걸 알았다. 점점 흥미를 느끼다, 평소 좋아하던 영상 실장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비디오그래퍼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1년 3개월간 배우다 지금은 독립해서 일하고 있다. 그동안 레드벨벳, 태양, 수지, 콜드 등 다양한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작업에 참여했고 다양한 브랜드 광고 영상 작업도 했다.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 장르가 뮤직비디오인지, 다큐인지 뭔지 정의할 수 없는, 내 맘대로 만든 영상으로 대중 혹은 전문가나 평론가에게 인정받는 거다.

Xin Yoha
주변 패션업계 사람들의 추천으로 모델 일도 병행 중이다. 그리고 한양대 의류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요즘 졸업 작품을 준비 중인데, 일본 양아치가 입을 법한 옷과 수녀복을 조합해서 선과 악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이야길 담고 싶다. 그 외에도 해보고 싶은 게 많다. 사실 지금도 세 가지 신분이 있어서 “모델 아니었어? 영상도 해?” 이런 식으로 묻는 사람도 있다. 상관없다. 어떤 분야든 내가 꿇리지 않을 만큼 잘하면 되는 거니까. 앞으로 내 활동명인 ‘신요하(Xin Yoha)’를 내세운 플랫폼으로 영상 작업은 물론 전공을 살린 패션 일도 해볼 생각이다.

친구이자 뮤즈, 우원재
요즘 가장 집중하는 건, 친구이자 뮤지션인 우원재에 대한 영상 작업이다. 나를 포함해 뮤지션 씨피카, 프로듀서 쿄, 스타일리스트 김요한 등이 자주 모이는데, 나는 우원재라는 인물에 대해 영상 아카이빙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싶고, 하면서 즐거운 일이다. 예전에 원재가 쓴 가사를 토대로 영상 콘티를 그린 적 있는데, 그걸 보고 원재가 “내 가사를 이 정도로 잘 이해하고 영상으로 표현해준 건 처음이다”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친하고 생각하는 게 비슷하다. 우원재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내가 늘 좋아하고 즐겨 듣는 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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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NG EDITOR 양보연
PHOTOGRAPHY 변예슬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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