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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 격돌 - 북경식 자장면 vs 사천식 탄탄면

다 같은 중국 음식이 아니다. 북경식은 달달하니 느끼하고, 사천식은 칼칼하게 매콤하다.<br><br>

UpdatedOn September 08, 2009

평창동 | 한성

평창동 한성에 들어서면서 나는 클리블랜드에 있는 한인 식당 ‘서울뚝배기’를 생각했다. 얼핏, 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창동에 있으니 중국 관광객들을 상대할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한국에 사는 중국 사람들을 염두에 둔 상호가 아닐까? 그러나 평창동 부자들이 더 환장한다는 이 집은 매력 덩어리 중국집이다. 첫째 자장면의 향기, 둘째, 탁! 탁! 탁! 리듬도 흥겨운, 주방장 팔뚝에 솟은 핏대가 보기 좋은 수타면 만드는 소리, 셋째는 당연히 맛이다. 한성의 수타 자장면은 세상에서 세 번째로 맛있다. 첫 번째 맛은? 그건 누구도 모른다. 어디엔가 있겠지. 그렇다면 두 번째 맛은? 그것은 군대에서 첫 휴가 나와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먹어치웠던 곱빼기 자장면의 맛이었다. 첫 휴가 때 맛보는 자장면 맛은 그곳이 서울이든, 백령도든, 마라도든 똑같이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 한성 자장면은 이 두 번째 맛 이후에 경험한 것 중 최고다. 한성의 수타면을 보면 그 내공의 깊이를 알고 또 알게 된다. 수타에도 퓨전이라는 게 생겨서, 최근에 생긴 수타면 중국집에 가면 일부러 굵기를 다르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수타면의 면발은 모두 지름이 일정한 게 최고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면발 굵기가 일정해야 양념이 골고루 섞이며, 그렇게 비빈 자장면이야말로 첫맛에서부터 자장면 그릇에 남은 춘장을 핥아먹을 때까지 맛이 똑같다. 또한 한성의 자장면은 번지르르한 기름기의 향연이 ‘지대로’다. 더 번쩍거렸으면 좋겠다. 옛날에는 기름 뚝뚝 떨어지는 돼지비계로 춘장을 볶았는데, 센스 있는 주방장이 볶다 남은 큼직한 돼지비계 몇 점을 자장면 속에 은폐, 엄폐해두면, 그것이 감자인 줄 알고 덥썩 씹었다가 움찔 놀라며 기뻐한 기억도 있다. 트랜스지방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한성’에서도 옛날 방식을 절제하고 천연 조미료만 사용하는 게 오히려 불만이지만, 아무튼 한성의 자장면은 그 옛날 인천에서 시작된 자장면 스타일과 제대로 닮아 있다. 강력한 포스의 검붉은 색깔, 번뜩이는 컬러, 혀의 돌기는 물론 오감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춘장의 향기…. 이것을 한 젓갈 잡고 후루룩 짭짭 입 안으로 빨아 당기면 함께 쓸려오는 큼직한 양파, 완두콩, 채썬 오이, 물컹 감자… 그리고 혓바닥을 돌려 입가에 묻은 춘장마저 완전히 삼켜버리는 스토커적 즐거움이란! 솔직히 세 젓갈이면 끝내버릴 자신도 있지만, 역시 자장면은 한 번에 대여섯 가닥씩, 천천히 음미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먹는 게 최고다. 자장면 먹고 또 다른 요리도 먹겠다고? 아서라! 오늘은 여기서 끝! 춘장 향기 달아난다. words 이영근(여행 작가)

삼성동 | 레드 페퍼 리퍼블릭

한때는 자장면 곱빼기를 단숨에 들이 삼키던 시절이 있었다. 음… 이런 장면은 언뜻 연예인 장영란을 떠올리게 하지만, 여하튼 당시에는 그 정도로 잘 먹었고, 건강했다. 그렇게 즐겨 먹던 자장면을 멀리하기 시작한 건, 그 안에 어마어마한 조미료가 들어 있다는 얘기 때문은 아니었다. 공개하기 껄끄럽지만 나는 요즘 자장면을 먹으면 매번 소화가 되지 않는다. 먹었다 하면 바로 체한다. 돼지기름과 MSG에 대한 거부 반응일까.

그렇다고 중국집을 멀리할 것이냐, 그렇지 않다. 차선책이 여기 있다. 레드 페퍼 리퍼블릭은 그 유명한 ‘매드 포 갈릭’으로 호응을 얻은 썬앤푸드에서 내놓은 사천식 레스토랑이다. 이탈리아 요리에 마늘을 슬쩍 넣은 메뉴로 인기를 끌더니, 이번엔 중국 요리에 고추를 대놓고 투입했다. 일단 아이디어는 수긍이 간다. 여기가 어딘가. 바야흐로 서울. 자극적인 맛이라면 음식의 국적이 어디든, 종목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동네 아니던가. 한때 불닭이 유행하고, 매운 갈비가 사랑을 받고, 여전히 해주 냉면 앞에 줄이 백 미터는 선다는 바로 여기, 서울이란 말이다!

가장 맵다는 마라탕을 시켰다. 각종 고추가 냄비 한가득 담겨 나온다. 그러나 이쯤에서 그 모양새를 보고 놀라지 않은 것은, 나는 이미 대련에서(사천 지역도 아니건만) 이와 같은 형상(?)의 안주를 먹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튼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집 중국 음식은 무난하게 맵다. 한때 불닭에 소주를 마시던 시절엔 혀가 데이는 줄 알았다면, 마라탕은 그 정도는 아니다. 스쿨푸드의 길거리표 떡볶이를 먹으면 땀이 좍좍 나지만, 마라탕은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정도. 집에 갈 때까지 입 안이 얼얼하기보다는, 매웠다가 금방 가라앉는 정도. 그쯤이다.

연이어 사천식 탄탄면을 맛보고는 이 집 장사 좀 되겠다고 느꼈다. 이 집 음식엔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양념 맛이 가득했다. 다진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등등이 한데 어우러진 한국 특유의 양념들! 그것들이 마라탕에든, 탄탄면에든 들어 있으니, 우리 음식의 글로벌화? 아니, 글로벌 음식의 우리화 정도가 되겠다. 나처럼 자장면만 먹었다 하면 체하는 자, 매운 음식 앞에서 성질 내지 않을 수 있는 인내력을 지닌 자에게 이 집 음식을 권한다. 웬만한 메뉴든 먹기 좋게 깔끔하며, 동시에 간간하다. Editor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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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지영
PHOTOGRAPHY 김지태,김린용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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