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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조선펑크(노브레인)

대한민국의 세기말을 누구보다 시끌벅적하고 요란하고 뜨겁게 보낸 펑크 로커들이 있다. 이들이 있기에 ‘조선 펑크’라는 단어가 탄생했고, 세계에서 제일 말 잘 듣기로 소문난 한국 젊은이들이 공연장에서만큼은 몸 부딪히고 땀 흘리고 소리 지르며 허공에 가운뎃손가락을 날렸다. 펑크라는 음악 장르가 짧고 굵게 엿을 날리고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이들은 20년 가까이 ‘황당무계’ 펑크 정신으로 산다. 바로, 노브레인이다.

UpdatedOn November 13, 2014

2014년을 세 달여 앞두고 1996년을 돌아본다. ‘홍대’라는 단어가 지금과는 달리 그저 학교 이름을 일컫는 의미였을 때, 지금의 ‘DGBD’라는 클럽이 홍대와 극동방송국을 잇는 길 한가운데 언덕배기에 자리했을 때, 빨갛게 노랗게 물들인 닭벼슬 머리 젊은이들이 스터드가 박힌 가죽 재킷을 입고 가능한 모든 곳에 피어싱을 하고 그 언덕배기를 자신들만의 세상인 양 점령해가고 있었을 때, 가진 건 오로지 ‘펑크’뿐이어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오로지 손바닥만 한 무대 위에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불태워버리는 것뿐이었던 소수의 젊은이들, 그중에서도 노브레인과 크라잉넛은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왔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이라는 것도 옛날 얘기지, 요즘 20년이면 강산이 아예 없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들에게 인디 정신을 버리고 상업주의에 물든 배신자라며 손가락질을 했고, 한국에서 펑크라는 장르를 대중화시킨 주인공이라 엄지손가락을 들기도 했다.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이라면 ‘왕년에 홍대 좀 다녔던’ 이들이 대부분일진데 자신에게 먼저 질문해봐야 할 것이다. 20여 년 전 홍대를 휘감았던, 불안감에 치를 떨며 어떻게든 그 기운을 악을 질러 떨쳐내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던, 지금은 죽어도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내일이 없는 것마저도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그때의 노브레인을 그리워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때 무대 아래에서 뛰어다니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인가. 자신은 변해가면서 누군가는 계속해서 그 모습 그대로 멈춰 있길 바라는 얄궂은 바람은 아닌가.
옳고 그른 건 없다. 지금 여기서 그들이 여전히 뛰어다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에디터 생활 중 가장 많이 본 공연의 주인공인 노브레인은 ‘펑크 하는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장 크게 깨운 이들이다. 공연장이나 대기실에서 이따금씩 만나 인사를 나눌 때면 멤버들은 언제나 신사답고 점잖았다. 홍대 주변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는 이들을 마주치곤 했다. ‘노브레인은 공연 뒤풀이를 커피숍에서 한다’는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무대만 올라가면 돌변하는 이들의 에너지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20년 가까운 시간, 이들에겐 무엇이 변하고 또 무엇이 변하지 않았을까. 그동안 흉가(드러머 황현성)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불머리(보컬 이성우)를 상징했던 빨간색 머리는 세련된 잿빛 염색 머리로 바뀌었다. 보보(기타리스트 정민준)와 뽀글(베이시스트 정우용)은 굴곡 많았던 노브레인의 멤버 교체 역사를 말 그대로 ‘역사’로 만들어버릴 만큼 굳건히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유독 이날이 그랬다. “오늘 내가 아들을 돌보는 날”이라며 흉가가 두 살배기 아들을 안고 왔다. 갑자기 망원동 일대에서 술 먹고 시비 걸기로 유명한 할아버지가 사무실로 찾아와 소동을 피우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 유쾌했다. 흉가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 “1996년엔 오늘 같은 상황이 한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고. 황량했던 홍대에서 이들은 뮤지션으로서 펑크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펑크를 삶의 무기로 삼았다. 선택지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 선택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지금 여전히 무대 위에서 펄펄 나는 노브레인의 모습이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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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풍의 그림이 그려진 스리피스 수트·셔츠 모두 가격미정 돌체&가바나, 검은색 구두 가격미정 루이 비통 제품.

▲ (시계 방향) 보보가 입은 가죽 재킷과 티셔츠·팬츠는 모두 본인 소장품. 흉가가 입은 점퍼는 라이풀, 터틀넥은 아페쎄, 팬츠는 본인 소장품, 슈즈는 컨버스 제품. 뽀글이 입은 재킷은 페더딘인펄, 티셔츠와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슈즈는 언더그라운드 제품. 불머리가 입은 가죽 재킷은 누드본즈, 민소매 티셔츠와 팬츠는 모두 본인 소장품,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크라잉넛과 ‘1996’을 주제로 삼은 스플릿 앨범을 ‘20주년 기념’으로 2016년에 내지 않고 갑자기 낸 게 참 노브레인답다고 생각했다.
불머리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두 팀이 함께 공연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하자 했지. 하고 나니 뭔가 이대로 끝나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 서로 편곡한 곡들도 아깝고. 그러다 ‘앨범 내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와 진행된 거다.

지금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나?
불머리
예전에 했으면 재미없었을 거다. 지금 해서 더 재밌고 멋있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좀 더 있다 냈으면 좋겠다 하고, 어떤 사람들은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하고. 그런데 어떤 일이든 정확한 때를 알고 하는 사람이 어딨겠나. 좀 더 있다 내자, 했다간 아마 영영 못했을 거다.
보보 돈 벌려고 마음먹었으면 이렇게 안 했겠지.

아니, 앨범을 냈는데 돈을 벌어야 하는 거 아닌가?(웃음)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보보
벌써부터 이런 앨범을 내면 ‘노년의 느낌’이 나는 거 아니냐,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헌정 앨범으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계시고.
불머리 그냥 점 한 번 찍고 가는 거다. 지금까지 같이 음악 하면서 늙어온 사람들끼리 가족사진 찍는 거지. 결과물을 남기고 허물을 남기는 거니까. 타투 하나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슴속에 똑같은 타투 하나씩 했다고.

얼마 전 카페에서 보보를 만났는데 옆 테이블에서 책을 읽다 사라지더라. 나갈 때 보니 우리 테이블까지 계산을 했고.
불머리
너 나한텐 안 그랬잖아!
보보 아니, 너무 반가워서….
불머리 아, 근데 기억은 하던가, 이 사람이? 가끔씩 나 보고 “형! 몸에 타투가 갑자기 왜 이렇게 많아졌어요?” 하는 친구다.
보보 정확히 기억한다.
불머리 그런데 이런 거 난 좋다고 생각한다. 꿈이었다. 인터뷰할 때마다 ‘나중에 누군가한테 밥을 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랬었다. 하도 신세지고 얻어먹어서. 지금은 밥 사줄 수 있다. 술도 사줄 수 있고.

1996년은 어떻게 기억되나?
불머리
드럭에 있던 시절? 그땐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경록(크라잉넛)이가 쓴 ‘96’ 가사처럼 우린 말 그대로 ‘시한폭탄’ 같았다. 진짜 그런 느낌이었다. 언제 어디서 뭐가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어떻게든 애들이랑 같이 있어야 했다. 도망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걔네들 집에 가서 자야 했으니까. 동네방네 별난 애들이 다 모였으니. 매일 매 순간, 그걸 보고 있어야 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 느낀 게 언제쯤이었나?
불머리
잘 수 있는 곳이 생겼을 때. 그때가 1999년, 아니면 2000년쯤 됐겠다.

그때에 비하면 ‘펑크 로커’로 사는 게 좀 나아졌나?
불머리
외모나 문신 때문인지 오해받을 때도 많다. 며칠 전 새벽에 어떤 할아버지가 길에 누워 계셔서 걱정돼서 다가갔는데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시더라.
보보 이 형, 예전엔 그냥 걸어가다가 불심검문도 받고 그랬다. 펑크 로커들 인생이 고달픈 시기가 있었지. 1990년대 말엔 싸움을 말리는데도 머리 삐죽하다고 제일 나쁜 놈으로 오해받기도 했고.

왜 ‘펑크’를 택했나.
불머리
당시 펑크가 전 세계적으로 붐이기도 했고, 한국엔 아직 소개되기 전이었다. 느낌 자체가 너무 좋았다. 자기 할 것만 딱 하고 빠지는 느낌. 간결하면서 메시지도 짧고 굵게. 펑크에선 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많지 않나. 어떻게 보면 SF 영화 같은 거다. 어떤 밴드 가사 보면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너와 내가 어쩌구저쩌구, 갑자기 하늘에서 악마가 나타나고. 나한테는 생전 본 적 없는 풍경이고 이야기였다. 그런 허무맹랑함이 나에겐 매력이었다. 그런데 난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우리의 이야기를.

요즘엔 펑크를 패션으로 접근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보보
펑크가 비주얼로 인기를 얻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아이돌이 펑크 밴드 티셔츠 입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그들은 펑크를 패션으로 이해하고 소화하는 건데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것 같다. 펑크의 정신이나 라이프스타일 자체에 대해선 전혀 모르면서 패션으로만 좋아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괜찮다.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거니까.

패션으로 펑크를 즐기는 사람들은 유행이 바뀌면 또 다른 스타일로 바뀌겠지만 한국에서 한 밴드가, 그것도 인디 신에서 출발해 20년 가까이 한길을 걸어온 건 분명 의미가 있다.
보보
이곳에 오래 있다 보면 ‘내가 바로 펑크다!’ 하는 느낌 같은 건 없어진다. 사람들이 보기엔 ‘쟤들 펑크다!’ 하겠지만 우리한텐 특별함이 없어지는 거다. 더 이상 ‘펑크를 해야지’ 의도하지 않는다. 그냥 일상이 되는 거지.

저항 정신으로 대변되는 펑크를 해오면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불머리
시야가 넓어졌다.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라든지 영역이라든지 여러 면에서. 예전에는 단순하게 ‘부숴라!’였다면 이젠 ‘부쉈으면 뭔가를 새로 만들자’로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모든 걸 다 파괴하고 부순다고 좋아지는 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보보 각 나라마다 저항의 표현 방식이 다르다. 우리가 영국 펑크처럼 했다면 지금 음악 못하고 감옥에 있겠지.(웃음) 펑크의 원조인 나라의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한국의 펑크 점수가 낮은 건 아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인 펑크의 유행이 짧고 굵게 끝난 것 같다.
불머리
그렇지. 하지만 그 잠깐의 유행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있다.

‘내일은 없다’던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내일을 생각하는 건가?
불머리
그럼. 내일 또 재미있는 거 해야 하니까. 다시 살아야, 또 죽도록 놀 수 있으니까.
보보 우린 완벽한 밴드가 아니다. 욕도 많이 먹고 칭찬도 많이 듣고 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까지 왔다.
흉가 미국 활동을 앞두고 음악 작업을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노브레인은 아무것도 없지 않나. 인지도도 없고 스타일도 없고. ‘노브레인이니까 이러이러해야 한다’가 없는 거다. 전적이 없는 백지 같은 밴드. 와, 정말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한 게 아닐까 하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우리는 하기 싫은 걸 한 적은 한 번도 없더라. 당시 우리가 하고 싶었던 걸 한 거다. 하기 싫었다면 안 했겠지.

‘완벽한 펑크 밴드’라는 정의 자체가 세상에 없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Jdz Chung
STYLIST: 남궁철
HAIR: 김혜미(위드뷰티살롱)
MAKE-UP: 권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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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Jdz Chung
Stylist 남궁철
Hair 김혜미
Make-up 권인경

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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