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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영과 티타임

On May 16, 2018 0

이유영은 꾸밈없이 솔직했다.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상대와 눈을 맞춘 채로 이야기하는 그녀는 햇살처럼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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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적인 자세의 인터뷰이와 하는 인터뷰는 늘 어렵다. 어딘가 꽉 막힌 대화에 숨이 막히곤 했다. 반면 있는 그대로 속마음을 내보이는 인터뷰이와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이어간다. 그럴 땐 준비한 질문지를 확인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질문의 꼬리가 꼬리를 물게 된다.

배우 이유영과의 인터뷰는 후자였다. 어색하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러는 동안 소속사 관계자는 걱정스러운 눈빛이 역력했지만 이유영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예쁘게 써달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이유영이 현실적이어서 더 무서운 영화 <나를 기억해>로 돌아왔다. 그녀가 맡은 ‘한서린’은 고등학교 시절 채팅으로 만난 남학생이 건넨 음료수를 먹고 정신을 잃은 뒤 윤간을 당한다. 그 후 그녀는 ‘희원’에서 서린으로 이름을 바꾸고 트라우마를 숨긴 채 고등학교 교사로 살아갔고 결혼까지 앞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체불명의 발신자로부터 셔츠가 풀어헤쳐진 자신의 사진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받고, 제자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음을 알게 되면서 범인의 실체를 밝히려고 고군분투한다. 이 영화는 청소년 성범죄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 음란물 유포 등 실제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사건을 다룬다.

“사회문제를 담은 의미 있는 작품에 출연해 뿌듯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해요. 촬영하면서 화도 났고, 눈물이 날 것 같았죠. 왜냐하면 영화 속 내용이 누군가에겐 현실이니까요.”

<나를 기억해>는 성폭행 피해자의 그 이후를 다뤘다. 주인공 한서린, 그러니까 성범죄 피해자인 희원은 숨죽인 듯 살았지만 또다시 성범죄에 노출된다.

“제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건에 또다시 노출됐을 때의 공포심이 상상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서린은 선생님이니까 우리 반 학생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건의 해결사로 나서요. 서린이 강한 여자로 보이길 원했는데 많이 부각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어요.”

이유영은 자신의 연기를 보는 게 무서운데 <나를 기억해>는 특히 더 두렵단다. 영화가 지닌 사회적 메시지를 잘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극을 이끄는 자신이 연기를 못하면 영화의 의미가 퇴색되니까 두려움이 컸다.

“제가 연기를 못할까 봐 겁이 나서 즐겁게 촬영할 수 없었어요. 시사회 때 영화를 보는데 아쉬운 점 투성이였죠. 서린이 절망했다가 제자를 구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의 계기가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반대로 서린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장면은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 속 숨겨진 반전이었거든요. 희원이와 서린이가 동일 인물인지 몰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어요.”

영화는 범죄를 저지른 13살 청소년이 “아무것도 모르고 범죄를 저질러서 다행”이라는 직접적인 대사로 촉법소년(범법행위를 저지른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를 지칭하는 말로, 촉법소년은 형사책임 능력이 없기 때문에 형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받는다)이라는 이유로 죄를 용서받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게 한다.

“저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사였어요. 머리로는 이해됐지만 공감이 되지 않았죠. 그런데 청소년 범죄자에게 처벌을 내린다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청소년들이 감옥에서 죗값을 치루고 세상에 나왔을 때 바르게 성장한 모습일까요? 무조건적인 처벌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영화를 준비하면서 한 아이가 범죄를 저지른 이유를 쓴 글을 봤는데, 아이가 못된 마음으로 나쁜 행동을 한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고 한 행동이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잘못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거죠. 결국 어른들의 잘못인 것 같아요.”

지난 2014년 데뷔한 이유영은 영화 <봄> <간신> <그놈이다>에 이어 tvN 드라마 <터널>까지 늘 트라우마를 갖고 사는 강한 여성을 연기했다. 얼굴을 알린 <간신>에서는 연산군의 여자가 되기 위해 ‘단희(임지연 분)’와 대립하는 ‘설중매’ 역을 맡았고, 첫 드라마인 <터널>에서는 부모님을 잃고 사고를 겪으며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무감각하고 냉정한 ‘신재이’ 역을 맡았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여배우이기에 밝고 명랑한 역을 맡을 법도 한데 그녀는 조금 달랐다.

“서린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이끄는 캐릭터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의도적으로 센 역할만 맡는 건 아니에요. 늘 끌리는 작품을 선택했지만 대체로 강하고 힘든 일을 당하는 캐릭터 제안이 많이 들어왔어요. <간신>에서 보여준 강한 여성의 모습을 많이 기억하시는 것 같아요.”

이유영은 상처가 있고 그를 극복하기 위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강한 여성을 연기하다 보니 자신도 캐릭터의 성향을 따라가게 됐다. 캐릭터가 하는 고민을 그대로 하다 생각과 마음가짐이 바뀐 것이다.

“배우가 역할을 따라간다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저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어두운 역할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 역시 촬영이 끝나면 대본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둬요. ‘끝났다’라는 해방감이 당시의 감정을 훅 털어버리게 만들지만 아무래도 촬영 때는 캐릭터의 심적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던 것 같아요. 최근 단막극에서 유쾌한 성격을 지닌 인물을 연기했는데, ‘조울증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촬영하면서 방긋방긋 웃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역할의 영향을 받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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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지나가는 사람의 눈도 못 쳐다볼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고 소심했어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오히려 괴롭힘과 왕따를 당하기도 했어요.

친구가 필요한 소녀

이유영은 언젠가 일상적인 멜로를 해보고 싶고, 빈틈이 많은 허당 역도 소화하고 싶다. 또 소심한 성격의 인물도 연기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따로 있다. 실제로 과거에 상당히 소심했기 때문에 더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하는데, 어렸을 때 지나가는 사람의 눈도 못 쳐다볼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고 소심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사회성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오히려 괴롭힘과 왕따를 당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할 이야기가 없어요. 기억하기 싫은 일투성이죠. 아직도 겁이 많고 소심하긴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고 생각하며 위축되죠. 그렇지만 연기하면서 안 좋은 기억을 떨쳐내고 또 위안을 얻고 있어요. 학창 시절에 왕따였다거나 소심한 성격이라고 말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니 많이 치유된 것 같아요.”

가볍게 답할 수 있는 질문에도 상대와 눈을 맞추며 진중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녀였기에 부끄럼이 많고 소심한 이유영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여기엔 친구와 어울리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남다른 노력이 숨어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를 사귀고 싶어 환심을 살 수 있는 행동을 많이 했죠. 그 과정을 겪으면서 성격이 바뀌었어요. 그런데 그 시절 저만의 고충이 있었어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조금만 집에 늦게 들어가도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엄하셨는데, 당시 용돈을 굉장히 적게 주셨거든요. 친구랑 놀아야 되는데 용돈이 턱없이 부족했죠. 그래서 20살이 되면 스스로 용돈을 벌어 자유를 만끽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을 골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더해졌고 이유영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부모님이 “누구 아들이 좋은 대학에 갔다”라고 이야기하는 걸 듣고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저도 부모님이 자랑할 수 있는 딸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부보다 좀 더 쉬운 방법을 찾다가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제가 중학생 때 길거리 캐스팅을 열 번 이상 받았거든요. 사실 데뷔 전엔 제가 예쁜 줄 알았어요.(웃음) 그래서 연예인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나 봐요. 어쨌든 연기학원을 다니는데 배우고 이해할 게 많더라고요. 이렇게 하나씩 채우면 평생 배우면서 발전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배우를 하게 됐어요.”

하나씩 배워나가겠다던 소녀는 어느덧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연배우로 성장했다. 다시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유영은 이번 영화에서 유독 또래 친구를 많이 만났다. 다만 그녀는 선생님, 그들은 학생 역할이었다.

“이학주(‘김동진’ 역)는 동갑이고 오하늬(‘양세정’ 역)는 한 살 어린 동생이에요. 또래 친구들은 고등학생으로 나오는데 전 선생님이어서 불만이었어요. 심지어 극에서 저를 쫓는 고등학생들, 노래방 패거리는 저보다 언니, 오빠예요. 감독님께 ‘왜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고등학생으로 캐스팅하셨어요?’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는데, 제가 성숙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또래 친구가 많아 선생님 역할에 몰입하기 힘들었지만 현장에서 쉬는 틈틈이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이유영은 ‘브라운 아이즈’의 소유자다. 밝은 갈색 눈동자에 흰 피부가 오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두고 “사연이 있어 보인다”고 말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눈은 아빠를 닮고 얼굴형은 엄마를 닮았어요.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축복이니까 감사하게 여기죠. 저는 친구 같은 딸이에요. 특히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엄마와 모든 것을 공유해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나이를 먹고 바뀌었어요. 어쩔 때는 엄마가 저보다 어린 것 같아요.(웃음)”

어느새 이유영은 애교가 가득 섞인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흥이 나서 신나게 이야기하다 보니 본래 모습이 나왔단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나 친구들하고 있을 때 애교를 부리는데 지금 편안해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아요. 늘 이러는 건 아니에요. 함께 있는 사람, 자리에 따라 많이 바뀌고 때로는 조용히 있기도 하죠. 사실 제가 인터뷰하면 걱정하는 분이 많아요. 솔직한 편이라 2시간 동안 연애 이야기만 한 적이 있는데 기자님이 오히려 ‘너무 솔직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하시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 저 잘하고 있나요?”

낯을 가려 인터뷰하는 것도 힘들었다는 그녀는 예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배우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도 있지만 스스로를 드러내고 어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예능에 출연할 때마다 청심환을 두 알씩 먹었어요.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 기절할 것 같았죠. 이럴 때 보면 유년기의 성격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장기자랑을 해야 된다고 하면 며칠 전부터 ‘나한테 춤이나 노래를 시키면 어떡하지?’라면서 걱정했거든요. 얼마 전 영화 홍보차 브이라이브에 출연했는데 웃기거나 장기를 보여주지 않고 영화 이야기만 하니까 괜찮더라고요. 언젠가 라디오 DJ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어느새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넘어갔다. 그녀는 하늘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응원할 이를 생각하며 열심히 배우 생활을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밝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녀, 이유영은 봄 햇살처럼 따뜻했다.

이유영은 꾸밈없이 솔직했다.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상대와 눈을 맞춘 채로 이야기하는 그녀는 햇살처럼 맑았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오아시스이엔티

2018년 05월호

이달의 목차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오아시스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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