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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지를 구해줘

On November 13, 2017 0

예쁘다. 그리고 솔직하다. 똑 부러지는 말투와 정제된 표현력은 서예지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데뷔한 지 4년이 지났다. 기라성 같은 선배 배우들 사이에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신인 배우에 불과할 뿐이지만 서예지의 존재감만큼은 대배우 못지않다. 중저음의 목소리, 날카롭지만 따뜻한 눈빛, 마른 몸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깡다구…. 대세 스타들만 한다는 SK텔레콤 CF 모델로 얼굴을 알리더니 단번에 시트콤 <감자별 2013>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이후엔 <야경꾼일지> <무림학교> <화랑> 등 굵직한 작품에 연달아 출연했다. 거침없는 그녀의 행보 때문이었을까? 그녀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독종일 것이다’ ‘차가운 도시녀 스타일 같다’와 같은 자신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서예지는 데뷔 후 처음으로 그런 오해에 대해 하나하나 해명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구해줘>가 종영된 직후였다.

“데뷔한 지 4년밖에 안 됐는데 갖가지 루머와 억측이 있어요. 가장 큰 오해는 ‘긴 머리를 너무 고집한다’는 거였죠. 지금까지 한 번도 단발머리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단언컨대 고집은 아니에요. 변화를 주고 싶지만 작품 속 캐릭터가 긴 머리여야 했기 때문에 자르지 못한 것뿐이죠. 제가 단발로 자르고 싶다고 해서 잘라버린다면 작품에 피해가 가지 않겠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머리를 자르지 않는 이유를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더라고요. 이를테면 ‘청순해 보이고 싶어 한다’는 식으로요. 근데 저 털털하면 털털했지 청순한 스타일은 아니에요.”

서예지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말이 나온 김에 모든 오해를 풀고 가야겠단다. 배우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지어내는 말과 억측이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사람들은 왜 저의 ‘과거’에 집착하는 걸까요? 과거에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는데 말예요. 제가 어렸을 때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했다는 말이 있어요. 물론 스페인이 좋아서 유학을 갔던 건 맞지만 대학을 나오진 않았고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적도 없는데 말이죠.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은 더더욱 없어요. 어릴 때 발레를 배웠고 지금까지 발레로 몸매 관리를 한다는 루머도 황당해요. <감자별 2013>에서 발레리나 역을 맡았기 때문에 잠깐 발레를 배운 적은 있지만 어려서부터 발레를 배운 건 아니거든요. 게다가 저는 특별히 몸매 관리를 하고 있지 않아요.”

사실 그런 루머를 바로잡으려 애쓰지 않았던 건 아니다. 데뷔 초에는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번번이 무시당하는 게 문제였다. 사실과 다르다고 말해도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기정사실화되는 걸 보고는 차라리 입을 닫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잖아요. 데뷔 초에는 인터뷰할 때마다 ‘그게 아니에요~’라고 해명했죠. 그런데 정정 기사가 나가도 결국 제가 한 말은 다 무시되더라고요. 너무 많은 오해가 있다 보니 진짜 나는 없어지고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서예지만 있는 거예요. 그때부터 굳이 해명하려 하지 않았어요. 한편으론 어쩌면 저에 대해 판단하고 오해하는 것도 대중에게 주어진 일종의 자유라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좀 더 말을 조심하면 되는 거니까요.”

일부러 멀리하려고 했던 댓글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한 건 최근이었다. 드라마 <구해줘>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어쩔 수 없이 보기 시작한 댓글 속에서 자신에 대한 악성 댓글도 눈에 띄었다. 서예지는 담담하려 애썼다.

“<구해줘>가 사이비 종교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인터넷 기사는 다 검색해서 봤고 댓글도 찾아서 봤죠. 제 캐릭터나 연기에 대한 평가보다 얼굴이나 표정 등을 비방하는 댓글이 있더라고요. 이를테면 숱이 많은 제 눈썹을 두고 ‘눈썹 이식 수술도 있나 보다’ 하는 식이죠. 전혀 신경이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대신 좀 무덤덤해지려고 노력했어요. ‘이런 걸로 상처 받기 시작하면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할래?’ 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했죠.”

긍정적인 성격을 타고난 건 아니다.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후천적 성격인 셈이다. 스트레스에 약한 편이지만 억지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하지 않는다. 스트레스 받아 힘들어하는 자신을 가만히 두고 지켜보는 것. 서예지만의 노하우다.

“저를 둘러싼 오해가 가장 큰 스트레스인 건 맞아요. 해명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더 힘들죠. 그런데 일부러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진 않아요. 특별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도 없고요. 배우는 결국 연기를 잘하면 되는 거니까, 아무리 저에 대한 말이 많아도 누구나 인정하는 배우가 되면 되는 거니까, 사람들의 오해, 억측, 루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무덤덤하게 이겨내려고요.”

스물여덟 살, 결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아직 완전한 어른은 아닌 나이. 서른으로 가는 길목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을 나이지만 왠지 모를 성숙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녀의 분위기가 주는 무게일 것이다.

“저만의 분위기가 있다는 건 장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중저음의 목소리가 한몫하죠. 학창 시절엔 이 목소리가 콤플렉스였지만 지금은 제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목소리 때문인지 또래보다 성숙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선생님들은 저보고 ‘애늙은이 같다’고 하셨을 정도죠.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모두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어른스럽대요. 또래 배우보다 선생님들과 더 대화가 잘 통하는 걸 보면 애늙은이가 맞긴 맞나 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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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지가 친언니와 있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어려서부터 속 깊었던 그녀의 성격 때문에 생긴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세 살 터울의 언니가 있어요. 언니는 애교도 많고 즉흥적인 데 반해 저는 조용하고 생각이 많은 편이죠. 스페인 유학 시절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안 좋은 일이 있어 저한테 고민을 상담하는 전화였는데, 오히려 언니의 화를 돋운 거예요. 언니가 털어놓은 고민을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해결해주려 했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기에 바빴던 거죠. 언니가 ‘네가 동생이 맞는 거냐, 매사에 너무 진지해서 동생이 아니라 엄마 같다’라며 화를 내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 싶으면서도 괜히 미안해지더라고요.(웃음)”

그렇다고 꽉 막힌 성격은 아니다. 변화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개방적이다. 오늘은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이 내일은 파인애플을 좋아할 수 있는 것처럼, 오늘의 서예지와 내일의 서예지가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연기를 할 때는 더욱 거침이 없다.

“어떤 캐릭터가 주어지면 자연인 서예지를 버리고 온전히 그 캐릭터가 되려고 해요. 이를테면 제가 기독교 신자인데, 그게 사이비 종교를 다룬 드라마를 포기할 만한 이유가 되지는 못하죠. 제 가치관에 갇혀 작품과 캐릭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싫어요. 연기는 연기고, 저는 저인 거죠. 연기만큼은 제 안에 갇히고 싶지 않아요. 다만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건 있죠. 비즈니스적인 부분에서의 약속 같은 거요. 특히 금전적인 문제는 칼같이 지켜요. 타협이란 없죠. 적은 돈이라도 빌리면 꼭 갚아야 해요. 때론 융통성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것도 저인걸요.”

대화는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데뷔 후 지금까지 4년간 쉼 없이 달려온 결과 12편의 필모그래피를 만들었다. 보통 배우들이 일 년에 한두 편 출연하는 걸 감안하면 그녀의 행보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운명인 것 같아요. ‘이쯤이면 이런 작품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식으로 제 의도를 가지고 한 작품은 하나도 없어요. 작품을 가리지 않으려고 했고 주어진 작품을 따라 왔어요. 한 가지 신경 쓰는 건 스스로 호기심을 느끼며 연기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거예요. <구해줘>와 같은 작품을 또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죠. 그동안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았던 독특한 소재, 여배우라면 누구나 탐날 만한 개성 있는 캐릭터 등 매혹적인 부분이 많았던 드라마 <구해줘>를 제 필모그래피에 추가했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그녀에게 가장 큰 의미를 주는 작품은 무엇일까?
“<구해줘>는 저의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었던 작품이에요. ‘서예지가 이런 연기도 할 줄 알아?’ 하는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요. 데뷔작인 <감자별 2013>도 의미 있어요. 저와 반대 성격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해야 해서 힘든 부분도 있었는데, 이순재 선생님과 동료 배우들이 도와준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가봉>이에요. 작가님이 그분 어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1부작 단막극이었는데, 방송 후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애정이 큰 작품이죠. 촬영 중 녹슨 재봉틀 바늘이 제 손을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어요. 다들 촬영을 접고 병원에 가라고 하는데 당시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 촬영을 강행했죠. 저 때문에 우는 현장 스태프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서 잊지 못할 작품이에요.”

그녀가 단막극에 출연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서예지는 줄곧 여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놀라긴 이르다. 서예지는 영화 <사도>에서 정순왕후 역을, <비밀>에선 아주 잠깐 나오는 주인공의 약혼녀 역을, <봉이 김선달>에선 유승호가 짝사랑하는 상대 역을 맡았다. 그녀가 주인공만 고집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주인공, 주연에 연연하지 않아요. 작품이 따뜻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면 단막극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상관하지 않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다만 한 가지 염두에 두는 건 있어요. 호흡이 긴 드라마는 피하고 싶어요. 제가 체력이 안 되거든요.(웃음)”

서른을 앞둔 서예지의 고민 역시 체력이었다. 선배 배우들보다 쉽게 지치고 피곤해하는 자신을 보면서 체력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그녀다.
“저보다 훨씬 긴 대사가 많고 체력 소모도 많은 역할을 맡은 조성하 선배님도 끄떡없는데 제가 더 비실거리는 걸 보고 많이 느꼈죠. ‘내가 힘들어하면 현장 분위기도 축 처지는구나’ 싶었어요. 더 재미있게 연기하려면 건강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한약도 지어 먹고,운동을 시작해보려고요. 그래야 더 책임감 있게 작품에 임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서른을 앞둔 여배우의 고민이 건강관리라니. 마주 앉은 우리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부끄럽지만 진짜예요”라며 고개를 푹 숙이는 그녀가 귀여워 보였다. 연기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아보라고 멍석을 깔아주었다.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다.

“어두운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했더니 제 이미지가 점점 무겁고 어두워지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에서 밝은 역할을 하면 또 이미지가 바뀔 거라는 생각에 큰 부담은 없지만 이 무거움을 조금 떨쳐내고 싶어요. 많이 웃는 캐릭터, 좀 더 발랄한 캐릭터를 만나고 싶은 욕심이 있죠. 영화 쪽에서도 가능성을 입증하고 싶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4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거든요. 서른이 되기 전에 좋은 영화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있는데 이뤄질지 모르겠어요. 작품은 운명이니까요.”

서예지의 퇴근 룩은 편안한 추리닝이었다. 화려한 치장보다 민낯이 더 편하다는 그녀. 서예지는 생각보다 수수하고 털털한 여배우다.
 

예쁘다. 그리고 솔직하다. 똑 부러지는 말투와 정제된 표현력은 서예지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사진제공
킹엔터테인먼트

2017년 11월호

이달의 목차
에디터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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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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