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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X파일

On October 26, 2017 0

“1천원씩 70만 명이 후원하면 제 딸은 살 수 있습니다.” 얼굴뼈와 치아틀 사이에서 거대 종양이 자라는 희귀병을 앓는 부녀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러나 방송 카메라가 꺼지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찍으면 더 불쌍해 보이지 않을까요?” 딸의 친구인 여중생을 성추행하고 살해·유기해 충격을 준 이영학. 그의 엽기적인 이중 생활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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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나 팔 등 보이는 곳까지 문신이 있었으니 누가 그 사람을 좋게 봤겠느냐.
(고인이 된) 아내 역시 온몸에 문신이 있어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동네에서 이영학 아내의 죽음을 두고 이런 저런 말이 많았다."

동네 주민에게 직접 들었다

평화롭던 동네의 일상은 한 가족이 이사를 오면서부터 깨졌다. 이들이 살던 건물에는 한 달 사이 사람이 둘이나 죽어 나갔다. 동네 주민은 "분위기가 흉흉해졌다"는 말로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하도 경찰과 기자가 드나들다 보니, 무언가를 물어보려 하면 "기자냐?"라는 날 선 대답이 돌아온다. 딸의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살던 동네 분위기다. 그는 자신의 딸 친구인 A양을 불러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를 먹인 뒤 성추행하고 살해·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사건이 있기 전부터 이영학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이영학의 집 맞은편 건물에 사는 한 주민은 "우리 가게 앞에 수시로 자기 차를 세워놓는 바람에… (갈등이 있었다)"면서, "TV에 나왔던 바로 그 외제차였다"고 떠올렸다.

이영학은 외모부터 호감을 줄 수 없었다. 그는 "목이나 팔 등 보이는 곳까지 문신이 있었으니 누가 그 사람을 좋게 봤겠냐"며 "(고인이 된) 아내 역시 온몸에 문신이 있어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영학이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몇 달 되지 않았다고 한다. 동네에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워낙 인상이 강렬하고 튀는 행동을 하다 보니 동네 주민 사이에서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또 다른 주민은 "뉴스에서 보니 정신지체 2급이라고 하는데,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면서, "평소 행동을 보면 분명 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이영학이 살던 건물을 찾았다. 5층짜리 상가 1층에는 자동차 정비소, 2층부터 4층까지는 태권도학원, 미술학원, 보습학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들이 수시로 오가는 상가다. 이영학의 가족은 이 건물 맨 위층인 5층에 살았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엔 불이 꺼져 있었다.

이영학의 아내는 5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실제로 살펴본 5층의 창문은 일반 아파트 창문과 달리 높고 작아서 창문틀에 오르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주민들도 이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한 주민은 "동네에서 이영학 아내의 죽음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두 얼굴의 '어금니 아빠' 스토리

이영학은 아이를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는 '어금니 아빠'로 알려졌던 터라 그 충격은 더 컸다. 이영학 부녀는 얼굴 전체에 종양이 자라나는 병인 '유전성 거대백악종'을 앓고 있다. 이 병은 우리나라에 환자가 단 3명뿐인 희귀병으로, 얼굴뼈와 치아틀 사이에서 거대 종양이 자라 계속 뼈를 깎아내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방송에 출연한 이영학은 숨 쉬기조차 힘들어하는 딸의 콧구멍을 밤마다 뚫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거대백악종은 살기 위해 평생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한 번 수술하는 데 2천5백만원가량이 든다고 한다. 그가 적극적으로 방송에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영학의 대대적인 모금이 시작됐다. 그는 자전거 국토 대장정을 나서거나 명동 한복판에서 인형 탈을 쓰고 거리 모금에 나서 내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가게를 마련해줘 자립을 도와준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치킨집도 열었다.

홈페이지나 카페를 개설해 지속적으로 딸의 상태를 알리고 후원금을 모금했다. 지역 맘카페 등 자신의 이야기가 통할 것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어디든 후원 요청의 글을 올렸다. "우리 딸 수술비가 만들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홈페이지에 오시면요, 1천 원씩 후원이 가능하거든요. 70만 명이면 됩니다." 모두 한결같은 내용이었다.

더 나아가 부녀의 사연을 담은 책 <어금니 아빠의 행복>을 직접 만들어 판매에 나섰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재단에 찾아가 자신을 모델로 하는 광고를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이영학의 이러한 행동은 딸을 꼭 살려내야만 하는 부정으로 보였지만, 그 모습이 지나쳤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여기저기 복사해 올리는 그의 글은 스팸과도 같았다. 후원금이 줄어들 때면 본인이 아닌 아내 최 모 씨를 사칭해 "아이 아빠가 치매를 앓고 있어서 힘이 든다. 후원을 해달라"는 요지의 내용과 함께 같은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동정심을 더욱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방송에 나올 때마다 "고아원을 설립하고 싶다" "후원금 중 일부를 재단에 기증한다" "치킨 가게를 할 때 결식아동과 양로원에 무료로 치킨을 배달했다" 등 스스로 미담을 만들어내 아름다운 사연의 퍼즐을 맞추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증거는 없다.

과거 이영학을 취재한 제작진은 한 방송에 출연해 그가 "이렇게 찍으면 더 불쌍해 보이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던 사실을 기억하며 "당시 방송을 너무 잘 아는 이영학 씨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영학의 모금 활동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의 사연을 들은 하트하트재단, 세이브더칠드런 등 몇몇 단체가 수술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를 단호히 거절해왔다. 대신 아내와 딸아이 명의의 계좌로 후원금을 '직접' 받았다. 개인 계좌로 보내진 후원금의 경우, 구체적인 모금액과 후원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등을 확인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눈먼 돈이었다.

이영학은 이 돈으로 고급 외제차를 구입했다. 한 대가 아니었다. 그는 수시로 고가의 외제차를 구입했고 이를 튜닝하는 데 많은 돈을 썼다. 실제로 그는 '아연아빠'라는 닉네임으로 '중고나라' 거래를 많이 했는데, 고가의 자동차 튜닝 아이템을 수차례 되팔기도 했다.

부부는 온몸에 2천만~3천만원에 달하는 문신도 했다. 또한 자신의 성형 수술로 모금한 돈을 썼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10년 전 방송에 나온 얼굴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없던 쌍꺼풀이 생겼고 코의 모양도 완전히 달라져 있다. 게다가 그는 수차례 성기 변형 시술을 통해 성 기능 장애가 왔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10년 전 월세 30만원짜리 단칸방에 산다고 보도됐으나, 그가 최근까지 살았던 상가 건물의 등기부등본상 5층 넓이는 152㎡(46평)였다.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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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계부에게 보내 다시 성폭행을 당하게끔 유인한 뒤, 이를 몰래카메라로 찍었다.
아내가 투신했을 때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구급차에 동승하지도 않았다.

이영학은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중생 살인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아내 최 씨가 억울하게 자살했다며 이에 대해 수사를 해달라고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건은 알면 알수록 엽기적이다.

그가 주장하는 아내의 자살 이유는 의붓시아버지의 성폭행이다. 최 씨는 경찰서에 의붓시아버지에게 추가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신고했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새벽, 자신의 집에서 투신해 숨졌다.

이에 앞서 최 씨는 의붓시아버지가 자신을 지난 8년간 성폭행했다는 고소장을 접수한 바 있다. 고소장에는 의붓시아버지가 총기로 위협해 성폭행했다는 사실도 담겨 있었다. 실제로 경찰은 의붓시아버지의 집에서 미신고된 총 2자루를 포함해 총기 5자루를 발견했다. 의붓시아버지는 "손끝 하나 건드린 적 없다"면서 성폭행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최 씨의 몸에서 본인의 DNA가 확인되자 "성관계는 있었지만 성폭행은 아니다"라고 진술을 뒤집었다.

당시 이영학은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며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렸고, 탄원서까지 썼다. 탄원서엔 "17년 동안 아내를 사랑했다" "계부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게다가 그의 홈페이지에는 아내의 영정 사진을 끌어안거나 입을 맞추며 "그립다" "사랑한다" "곧 따라가겠다"는 식의 모습을 보여 아내를 정말 사랑하는 남편처럼 느껴졌다.
 

이영학의 개인 SNS에 올라온 사진. 온몸이 문신이다.

이영학의 개인 SNS에 올라온 사진. 온몸이 문신이다.

이영학의 개인 SNS에 올라온 사진. 온몸이 문신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행동 뒤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 행동이 있었다. 성폭행당했다는 아내를 다시 계부에게 보내 다시 성폭행을 당하게끔 유인한 뒤, 이를 몰래카메라로 찍었다. 아내가 투신했을 때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구급차에 동승하지도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당시 아내가 자살한 사람의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게다가 CCTV 영상에는 최 씨가 투신하기 1시간 반가량 전 집을 나와 슈퍼에서 우유, 담배, 탄산음료를 구매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식료품 가게 주인은 "전혀 어두운 표정은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또한 이영학은 아내가 투신한 직후 "성폭행을 당해서 자살한 것"이라며 인근 주민들에게 일일이 이유를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가 하면 아내의 시신을 수습하는 119 구급대원 곁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상식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행동을 보였다. 게다가 의붓시아버지의 성폭행으로 임신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 소견을 듣고 아내가 자살했다고 했지만 최 씨의 부검 결과 임신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거짓말이었다.

이영학은 아내가 죽고 나서 2~3시간 후 침대 밑에서 아내의 유서를 발견했다면서, A4 용지 4장 분량의 문서를 경찰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집에 있던 컴퓨터를 압수해 분석했는데, 해당 문서가 작성된 흔적은 없었다.

이런 정황을 통해 경찰은 이영학이 아내의 자살을 사실상 방조했거나 부추겼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숨진 최 씨의 이마에서 발견된 상처에 대해 이 씨가 "계부와 8년간 성관계를 맺고 숨겨온 것이 화가 나 때렸다"고 폭행 사실을 자백한 바 있다.

이영학이 아내를 학대한 정황은 그 밖에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최 씨는 이영학을 14세에 만나 동거를 했고, 17세에 아이를 출산했다. 그와 부부로 사는 17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폭행과 성매매, 가정폭력을 겪어 왔지만, 단 한 번도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영학은 아내에 대해 "엄마는 일찍 죽고 아빠의 폭력으로 가출한 상태였다"고 말해왔다.
 

성매매 포주, 닉네임은 '양아오빠'

아내에게 계부와 더불어 성적 학대를 가한 것은 정작 이영학 자신이었다. 경찰은 그의 집에서 아내에게 성적 학대를 가하는 동영상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계부가 아내에게 했다는 변태적 성행위를 오히려 본인이 아내에게 시킨 뒤 이를 촬영해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 다만 경찰은 실제로 강압적인 상황에서 촬영이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영학이, 가족이 생활하고 있는 집에서 버젓이 '포주' 노릇을 하며 10~20대 여성들을 모집해 성매매를 알선해왔다는 것이다. 여기에 아내까지 동원됐다. 경찰이 확보한 증거물에서는 수십 건의 성관계 동영상이 발견됐으며, 이 중에는 아내 최 씨가 자택에서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맺는 영상도 있었다. 특히 자택 문 바로 옆 창에는 CCTV 카메라가 달려 있는데, 경찰은 이 카메라를 통해 손님을 확인하기 위해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SNS를 통해 성매매 여성들을 모집했는데, '양아오빠'라는 닉네임을 가진 트위터에는 '14~20세 함께할 동생 구함, 개인 룸과 샤워실 제공'이라는 문구를 버젓이 올려놓았다.

한편 자신의 친구를 유기하는 데 가담한 이영학의 딸은, 아버지에 대해 도덕적 비난을 하는 걸 못 견뎌하며, 조금이라도 도덕적 비난이 가해지면 "우리 아버지 그런 사람 아니다"라고 할 만큼 강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경찰은 "딸은 제대로 된 가치 판단을 하기 훨씬 전부터 물려받은 유전병(딸은 아버지가 앓는 희소병 '거대백악종'을 함께 앓고 있다)에 대해 고민을 상담하거나 정보를 획득하는 통로가 오직 아버지뿐이었다"고 분석하면서 "본인이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아버지에 의존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아버지가 모금 활동으로 생계를 책임진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아버지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상황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딸은 이영학의 형이 돌보고 있다.
 

이 사건은 워낙 충격적이고 경찰의 초동 수사에도 문제가 많아 국감장에까지 등장했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국정감사에서 "초동 수사 부실, 인수 인계 미흡 등 부실로 인해 이런 결과가 발생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러다 보니 이영학의 과거 잔혹한 행적에 대한 증언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이영학이 재학했던 중학교의 학생부장이었다고 하는 사람은 "이영학이 또래 학생을 성폭행한 정황이 있어 직접 조사했다"고 밝혔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이영학이 여학생을 성폭행한 뒤 셔츠에 피를 묻혀 왔고, 그 사건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 퇴학을 시키려고 했으나 교장이 반대해 경미한 징계에 그쳤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 때마다 "교도소에 들락거렸다"고 밝힌 바 있다. '어금니 아빠'로 포장하며 살았지만, 그의 인성이 어렸을 때부터 포악했다는 증거다. 그는 사이코패스 테스트에서 40점 만점에 25점을 받았다.
 

“1천원씩 70만 명이 후원하면 제 딸은 살 수 있습니다.” 얼굴뼈와 치아틀 사이에서 거대 종양이 자라는 희귀병을 앓는 부녀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러나 방송 카메라가 꺼지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찍으면 더 불쌍해 보이지 않을까요?” 딸의 친구인 여중생을 성추행하고 살해·유기해 충격을 준 이영학. 그의 엽기적인 이중 생활을 취재했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취재
두경아(프리랜서)
사진
임준선(<일요신문 기자>)

2017년 11월호

이달의 목차
에디터
하은정
취재
두경아(프리랜서)
사진
임준선(<일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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