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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th ANNIVERSARY SPECIAL

낭만에 대하여 변진섭

1988년 공식 데뷔해 ‘발라드 가수’의 길만 걸어온 변진섭. 29년이 지나면서 삶의 중심이 바뀌었다. ‘나’에서 ‘가족’으로, 그리고 ‘팬’으로.

On August 22, 2017


짧은 장마가 끝나고 타들어갈 것처럼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던 7월 어느 날 변진섭을 만났다. 1987년 MBC 신인가요제에서 수상한 것을 계기로 1988년 ‘홀로 된다는 것’으로 공식 데뷔해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발라드 가수’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여름을 맞아 진행할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에서 약속이 있었어요. 공연에 관해 상의했죠. 8월에 파크 콘서트를 하거든요. 공연 준비하느라고 정신없어요.”

더불어 그는 이전보다 특별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다. 팬과 함께하는 ‘국민 참여 앨범’을 준비하는 것. 작사든, 작곡이든, 코러스든 변진섭을 좋아하는 이들이 앨범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작품을 공모했어요. 전문가가 아니어도 돼요. 개인적으로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는 욕심이 있어요. 팬들하고 함께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죠. 듣기론 반응이 꽤 좋대요.”

데뷔 30주년에 맞춰 기획했지만 발매 시기는 미정이다. 아직 마음에 딱 드는 좋은 곡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가 돋보이는 ‘변진섭표 발라드’를 기다리는 것인지 물으니 절대 아니란다.

“변진섭이라는 가수의 느낌이나 갖고 있는 이미지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요. 단순해요. 들어서 딱 느낌이 오는 곡이면 돼요. 결국 그게 발라드인데 딱 떠오르는 템포와 리듬 말고, 더 자유롭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거예요. 좋은 곡이 나오면 제가 맞출 수 있어요. 예전에 노영심 씨한테 ‘희망사항’을 받았을 때, 저한테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부르니까 제 노래가 됐어요. 그게 또 제 스타일이 됐고요. 그래서 ‘변진섭표 발라드’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을 열어두고 있어요.”

‘희망사항’은 대한민국 남자들이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를 찾게 만든 곡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부르는 그의 대표곡이다. 기자의 예전 남자친구도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밝히며 “여자들에게 너무 가혹한 과제를 준 것 아니냐”고 투정을 부리자 재치 넘치는 답변을 했다.

“남자친구 희망 사항에 안 맞았나 봐요?(웃음) 그 가사에 딱 맞는 여자가 어디 있어요? 말도 안 되죠. 그런데 흰 티셔츠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면 웬만한 스타일은 다 잘 소화할 거예요.(웃음)”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이었기에 그만한 성공을 거뒀으리라. 변진섭의 앨범엔 ‘희망사항’을 비롯해 ‘홀로 된다는 것’ ‘너에게로 또다시’ 등 수많은 명곡이 있다. 멜로디와 가사로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노래라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 가요 황금기인 1990년대엔 모두의 가슴을 울리는 낭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낭만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요즘 시대라고 낭만이 없겠어요? ‘낭만’이라는 건 과거 지향적인 말 같아요. 자기가 추억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죠. 시간이 지나면 과거 모습을 다 낭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낭만이 없다, 그때는 낭만이 있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아닌 거 같아요. 세상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감성이 메말랐을 순 있어요. 하지만 로맨틱하고 센티멘털한 거는 인간이 지닌 본능이에요. 충분히 사랑하면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고 피가 뜨겁거든요. 제 생각엔 10년, 20년 뒤에 지금을 돌아보면 낭만적일 거예요. 현재 진행형으로 못 느끼는 게 낭만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변진섭의 낭만은 무엇일까? 가슴이 뜨거운 변진섭을 더 뜨겁게 만들었던 것 말이다.

“음… 포장마차? 포장마차에서 ‘소주 일잔’ 같은 거요. 그때는 그게 저한테 하나의 소통 창구였어요. 당시 밤 12시에 저는 KBS에서, 이문세 씨는 MBC에서 라디오가 끝났어요. 자연스레 자주 만났죠.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요? 모르겠어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뭐가 좋다고 그렇게 히히덕거렸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게 낭만이 아닐까요?”

그의 술친구는 다양했다. 이문세뿐만 아니라 방송 PD와 작가, 그날의 게스트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방송이자 곧 회식이었다. 즐겨 먹었던 안주는 계란탕과 닭똥집. 당시 계란탕과 닭똥집의 맛이 포장마차의 인기를 결정지었단다. 어디 포장마차가 맛있더라 하면서 다 같이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고.

“계란탕도 포장마차마다 레시피가 다 달랐어요. 어떤 집은 물을 많이 부어 국물을 가득 차게 탕처럼 해주고, 어떤 데는 뻑뻑하게 계란찜을 해서 주는 집도 있고요. 닭똥집은 그냥 구워주는 거예요. 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었죠. 그때는 ‘어느 포장마차 닭똥집이 맛있다’는 이야기가 돌았어요. 요즘 말로 ‘어디가 물이 좋더라’는 이야기처럼요. 메뉴 하나에 포장마차 물이 달라졌어요. 그랬던 기억이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어요. 낭만이죠.”

자신의 낭만을 즐겁게 이야기하던 변진섭은 갑자기 기분이 묘하다고 했다.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을 기울이던 때가 어제처럼 생생한데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생각과 마음은 그때와 변함없는데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금은 포장마차도 가지 않고 자녀를 걱정하는 아빠가 됐다는 것.

“제가 나이를 한 스무 살 더 먹었고, 아저씨가 됐어요. 숫자로 생각하면 긴 시간인데 저는 그 시절이 옛날 같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지금까지 쭉 이어져온 것 같아요. 물론 생활은 달라졌죠. 지금은 포장마차도 안 가고 아이들을 걱정하는 아빠의 모습이 많아요. 그런데 낭만을 생각하면 또 그때에 멈춰 있어요. 그런 게 굉장히 묘해요.”
 


변진섭을 그 시절에 머무르게 만든 주역은 다름 아닌 그의 팬이다. 공연장에서 팬과 만나면 과거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변진섭은 이제 아저씨가 됐지만 여전히 팬들에게는 ‘변진섭 오빠’였다. 그에게 주는 엄청난 사랑에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한다고. 그래서인지 그의 팬 서비스는 남다르다. 지난 1993년부터 매년 여름 팬과 함께 캠프를 떠나는 것. 팬 1백 명과 1박2일 동안 함께하면서 공개방송과 레크리에이션도 하고, 밥을 지어 먹고, 술도 한잔한단다.

“처음에는 팬 서비스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횟수를 거듭하다 보니 공식 행사가 됐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재미있고 이 공연이 정말 기다려져요.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에요.”

의무적으로 하던 행사였지만 지금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변진섭 오빠’가 아저씨가 되는 동안 팬들은 유부녀이자 아이의 엄마가 됐기 때문이다. 아내이자 엄마 말고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 같아 책임감이 커졌다.

“제 눈에는 여전히 다들 소녀 같아요. 그런데 현실에선 유부녀가 됐고 아이 엄마가 된 상황이잖아요. 일부러 캠프에 아이를 못 데리고 오게 해요. 남편과 함께 오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의 남편이 아내만 보내더라고요. 그럼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와이프,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거예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느낌? 팬카페를 살펴보면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데 의미를 두고 오는 팬들도 있어요. 자기만의 마음속 보석 상자를 여는 게 아닐까요? 크게 힐링이 돼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팬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변진섭이지만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온라인 팬카페 활동이다. 팬카페의 글을 많이 보지만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다는 편은 아니다. 팬클럽 임원들의 성화에 “알겠다”고 답하지만 약속을 못 지키기 일쑤다. 그런 면에선 영 게으른 것 같다며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덧붙였다. “예전엔 음악을 하는 이유가 100% 음악이 좋아서였다면 현재는 80%가 팬 때문”이라고. 팬의 기운을 받으며 감동과 희열을 느꼈고 거기에 중독됐단다.

“지금까지도 음악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활동해야 한다면 음악을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죽기 전에 다른 일을 해보자고 이민을 갔을 것 같아요. 그런데 팬들이 공연장에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일종의 책임감을 느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공연을 해야겠다고요. 그래서 공연장에서 모든 것을 하는 가수가 되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저 음악이 좋아 음악을 했던 변진섭이 끔찍하게 팬을 생각하게 된 계기엔 가족이 있다. 변진섭은 지난 2000년 12살 연하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수중발레) 국가대표 출신인 이주영 씨와 결혼해 현재 두 아들의 아빠다. 남편이자 아빠로 살면서 ‘변진섭’ 중심의 삶이 ‘가족’과 ‘팬’ 중심으로 이동했다. 즉흥적으로, 흘러가는 대로 살던 삶에 룰(Rule)이 필요하단 것을 느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결혼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비혼족이 증가하는 요즘, 결혼이 꼭 필요하냐고 묻자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말하겠다”며 진지한 답변을 내놨다.

“결혼은 인생에서 맛본 적 없는 행복이에요. 저는 아내를 만나서 ‘이 사람을 위해 희생해도 행복하겠다’고 느꼈어요. 어떤 일을 해도 손해처럼 느껴지지 않았죠. 연애할 때는 아내한테 남자친구이자 친구였고, 보호자였어요. 이전에 해본 적 없는 모든 일을 다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결혼해도 좋아요. 아이를 낳는 것은 축복 그 자체예요. 아이가 자라면서 저를 멀리해 서운할 때도 있지만 좋든 싫든 아이의 인생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행복해요.”

내친김에 아내와 어떻게 만났는지 물었다. 12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변진섭은 띠동갑 나이 차이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인이 아는 동생이었어요. 지인이 와이프랑 약속한 것을 까먹고 저랑 약속을 잡은 거예요. 사정을 설명하면서 다음에 보자는데 왠지 모르게 같이 보고 싶더라고요. 그때 아내는 그냥 귀여운 대학생이었어요.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천진난만하고 내숭이 없는 털털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렇게 몇 번 보다 보니까 어느새 여자로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엔 짝사랑이었죠. 결혼을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도둑놈’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전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했어요. 이 여자가 어려서 좋은 게 아니라 사람 자체가 매력적이었거든요. 만약에 와이프 나이가 많아도 매력적이었다면 결혼했을 거예요. 지금도 제가 보는 여성상에 나이는 없어요.”

아내를 끔찍하게 생각하지만 자신이 100점짜리 남편은 아니란다. 머리와 마음은 100점이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와이프가 알아줘서 고맙다고. 자녀한테도 마찬가지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다음 주부터 자전거를 타자”고 말해놓고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이 밀려와 함부로 약속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단다.

“아이들이 요즘 사춘기라 저랑 많이 안 놀아줘서 서운해요. 스킨십도 줄었어요. 저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서 물고 빨고 하려고 하는데 막 도망가요. 걸걸한 목소리로 ‘아, 왜 그래요’라고 말하면서요. 주변에서 당연한 과정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처음엔 악몽을 꿀 정도였어요.(웃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정 표현을 할 수 있을 때 더 할 걸 그랬어요.(웃음) 어떤 아빠가 되고 싶냐고요? 아이들이 꿈을 능동적으로 자유롭게 꿀 수 있게 해주는 아빠요. 큰아들이 태권도가 좋아 서울체고에 갔는데,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해요. 아내는 많이 걱정하지만 전 괜찮아요. 싫은 걸 계속하면 진짜 하고 싶은 걸 못 찾잖아요.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되니 운명적으로 해야겠다고 느끼는 걸 찾았으면 해요.”

인터뷰하는 동안 변진섭은 가수 변진섭이 아닌, 아빠이자 오빠였다. 틀에 박힌 대답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를 하려고 답변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했다. 이런 진실한 모습에 그의 아내와 팬들이 반한 것이 아닐까? 끝까지 진솔하게 답해준 변진섭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더불어 머리가 하얗게 세도 슈트를 입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싶다는 변진섭의 미래를 응원한다.

CREDIT INFO

사진
J엔터테인먼트
2017년 08월호

2017년 08월호

사진
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