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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REPORT 자전거로 자유로워라

고백하건대, 필자는 사고의 트라우마로 자전거를 못 탔다. 그랬던 내가 프랑스에 와서 자전거에 빠졌다.

On April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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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배우게 된 이유는 순전히 ‘벨리브(Vélib)’라는 파리의 대여 자전거 시스템 덕분이었다. 파리의 지하철은 불편했고, 버스는 항상 늦었다. 반면에 파리의 대여 자전거 ‘벨리브’(자전거의 ‘vélo’와 자유롭다는 ‘libre’의 합성어) 정거장은 300m 단위로 촘촘히 파리 시내를 연결해줬다. 게다가 몽마르트르와 벨빌 쪽만 빼면 파리는 전반적으로 평평한 도시고, 자동차가 못 가는 길도 자전거는 웬만하면 다 갈 수 있었다.

대중교통으로 시간을 버리느니, 목숨 걸고(?) 자전거의 편리함을 택하자 싶었다. 처음에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어도 자동차들 사이로 달리자니 처음 한두 달은 등골이 오싹했다. 요란한 경적과 파리지앵들의 험악한 욕지거리(그렇다, 프랑스 사람, 특히 파리 사람들은 욕을 참 잘한다)를 들으며 사방에서 나타나는 오토바이를 피해 회전식 교차로를 통과하는 경험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런 시련을 딛고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에 좀 익숙해지고 나니, 파리가 전혀 다른 도시로 다가왔다. 어디든 날씨만 좋으면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고, 대중교통으로는 찾지 못하는 숨은 거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연 29유로(26세 미만은 19유로)의 회비만 내면 파리 각지에 배치된 1만9천여 대의 대여 자전거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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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과의 합동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한다. 얼마 전에는 리바이스와 함께 자전거 라이더에게 이상적인 의상을 소개했고, ‘엑스키(EXKI)’라는 유기농 패스트푸드 체인점과 파리 오페라 극장 근처에 특별히 ‘벨리벡스키(Velib’EXKI)’점을 열었다. 사진은 벨리브×리바이스 컬래버레이션.

기업들과의 합동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한다. 얼마 전에는 리바이스와 함께 자전거 라이더에게 이상적인 의상을 소개했고, ‘엑스키(EXKI)’라는 유기농 패스트푸드 체인점과 파리 오페라 극장 근처에 특별히 ‘벨리벡스키(Velib’EXKI)’점을 열었다. 사진은 벨리브×리바이스 컬래버레이션.

벨리브를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출발지에서 가까운 정거장에 가서 가장 좋아 보이는 자전거를 골라 이동한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가장 가까운 정거장의 빈자리에 자전거를 세운다. 잠금쇠에 자전거를 밀어 넣고 잘 잠겼는지 확인하면 끝이다. 혹시나 자리가 없으면 전용 애플리케이션으로 다른 정거장에 빈자리가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파리에는 1천2백38개의 벨리브 자전거 정거장이 있다.

하지만 코펜하겐이나 암스테르담처럼 자전거가 일상화된 도시에 비해선 분명 한계점도 많다. 연간 유지비로 2천8백만 유로(약 3백50억원)가 들고, 자전거 도난과 분실 피해도 심각하다. 여담이지만, 생마르탱 운하를 대청소하려고 물을 다 뺐을 때 운하 바닥에서 90여 대의 벨리브 자전거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에도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2020년까지 출퇴근용 교통수단의 15%를 자전거로 대체하겠다는 어젠다를 굳건히 실천하고 있다. 덕분에 벨리브 사용 건수는 해마다 증가해, 현재 30만 명이 장기 이용자다.

이렇듯 대여 자전거 제도는 자전거라는 친환경 교통수단을 통해 현대 도시인들의 생활 습관과 문화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프랑스 정책의 일환이다. 단순히 대여 자전거 제도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르는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를 병행한다. 벨리브 공식 블로그는 단순히 대여 자전거에 관한 정보만이 아니라 다양한 생활 정보를 전한다. 춥거나 더울 땐 옷을 어떻게 입고 타야 하는지는 물론이고 봄에 벨리브를 타고 갈 만한 전시회나 공원 등도 알려준다. 그 밖에 자전거 탑승 시 스커트를 고정하는 핀이나 접이식 헬멧, 스타일리시한 안전 재킷 등 자전거 탈 때 유용한 아이템도 알아볼 수 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은 프랑스에서도 유효하다. 파리 시는 2014년부터 만 2~8세의 어린 파리지앵들을 위해 ‘프티 벨리브(P’tit Velib)’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공원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4종의 자전거를 대여하는 시스템이다. 단, 하절기에만 운영되며, 아이들이 자전거를 배울 수 있는 수업도 함께 진행한다.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 대여 자전거 벨리브이지만, 무겁고, 크고, 칙칙한 회색이라고 해서 파리 사람들은 벨리브를 ‘비둘기’라고 부른다. 벨리브의 묵직한 페달을 밟다 보면 ‘기필코 내 자전거를 사고 말겠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선뜻 자전거를 구매하지 못하고 벨리브를 계속 이용하는 이유는 파리에 자전거를 안전하게 주차 및 보관할 곳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용 자전거인 벨리브는 소유로 인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파리 특유의 불편함 때문에라도 당분간은 내 자전거 없이 벨리브를 계속 이용해야 할 것 같다.
(벨리브 블로그 http://blog.velib.paris.fr)

글쓴이 송민주 씨는…

글쓴이 송민주 씨는…

통·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2년 전부터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EHESS)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 <Portraits de Seoul>의 저자이며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서로 다른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사랑한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사진
송민주, 파리 시청(Mairie de Paris)
2017년 04월호

2017년 04월호

기획
하은정 기자
사진
송민주, 파리 시청(Mairie de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