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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민의 다짜고짜 교토 - 교토의 집

On January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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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를 조금만 둘러보면 인상 깊은 주택을 여럿 볼 수 있다. 일본인들에겐 집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주택.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온 마음을 다해 집을 꾸민다. 집주인의 시간과 정성이 깃든 정원을 보고 있노라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일본 교토 시는 동네 커뮤니티가 잘 운영되어 주민 의견을 듣기 위해 회람판을 들고 이웃 주민의 집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일본의 방문 문화를 몰라 실수했던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한국에서는 반상회나 주민 모임 때 이웃을 선뜻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이 예의지만, 교토는 다르다. 집주인이 들어오라고 어르신 모시듯 3번 이상 권해도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 들어가면 어찌 되냐고? 다시는 그 집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게 된다.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시간이고 문 앞에 서서 얘기해야 한다. 그것이 미덕이고 예의다.

교토에는 문패 달린 현관에서 주인이 그어둔,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관습이 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하나다. 웬만하면 집으로 찾아가지 않는다. 주택은 일본인들에게 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정원에 대한 일본인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공동의 가족 공간인 거실과 주방을 오픈형으로 두면서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안뜰을 선호해 정원을 꼭 꾸민다. 헤이안 시대에서 무로마치 시대, 모모야마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에 이르기까지 정원은 양식에 따라 바뀌었고, 그 흐름이 지금의 아름다운 일본 정원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정말 조그마한 공간이 생겨도 꽃이나 돌로 소박하게나마 꾸민다. 단순히 빈 마당을 꾸민 게 아닌, 집주인의 시간과 정성이 깃든 곳이라고 생각하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일본에서도 내 집 마련은 한국에서처럼 어렵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집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시골집이라면 논과 밭도 같이 물려받는다. 도시에서는 상속세가 높아 물려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은행 대출이 쉬운 것도 아니다. 알뜰히 모은 돈으로 집을 산다 하더라도 매년 고정 재산세를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자신 소유의 아파트와 멘션을 임대로 주고, 정작 본인은 다른 곳에서 월세를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일본에서는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리기가 쉽지 않다.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자주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데 한 번 리모델링을 할 때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땅의 절반을 팔거나 집을 지어 팔기도 한다. 단독주택에 사는 것이 평생 목표인 40~50대는 20대 때 집을 사서 주택 담보 대출을 30년 동안 갚으며 살아가는 반면, 요즘 20대는 집에 대한 집착이 없는 편이다. 그래도 짓는다면 자연재해에 안전한 층이 낮은 주택을, 그것도 돔 형식인 지오데식(반구형) 목조 건물에 세라믹 외장을 선호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최고로 예와 격식을 중요시하는 천년 고도 교토. 교토 시는 옛것을 그대로 지키기 위해 철저히 계획된 도시다. 간판 색이나 집의 담벼락 색깔까지도 교토 색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높이도 제한돼 있다. 교토 후시미에 본사가 있는 교세라, 닌텐도, 와코르 건물만 유일하게 높은 건물로 허가를 받았다. 교토를 둘러보면 정돈되고 깨끗한 느낌을 받는다. 마치 영화 촬영지에 사는 듯한 느낌도 든다. 중요한 건 이 모든 룰에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교토 시민들이 묵묵히 교토를 위해 무언의 약속을 지킬 뿐이다. 그래서 목조 주택이 대부분이다. 오래된 집을 수리만 했을 뿐 거리도 잘 바뀌지 않는다. 일본 국보의 20% 그리고 중요 문화재의 14%가 교토 시내에 있고, 17개의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주택 대부분이 가로 폭이 매우 좁다는 것이다. 높은 지가로 인해 협소주택 문화가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현관을 벽 안으로 깊이 밀어넣고, 인터폰은 현관 계단 아래에서 누르게 설계되어 있다. 오픈되어 있는 주택인 만큼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고자 함이다.

한 해 5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인구 1백47만 명인 이곳 교토. 이곳에서 집을 지을 때는 문화재를 보호하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튼튼하게 짓는다. 일본 옛 수도이자 박물관의 도시, 자연재해도 비켜 가는 천운의 도시다. 간사이 지방 중 유일하게 지진 발생이 적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적군마저 아름다움에 매료돼 공습을 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한 일화도 있다. 예전에 홍수가 났을 때 이런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온 마을이 떠내려가는데 유일하게 집 한 채만 살아남아, 여러 명의 수해자들이 그 집 지붕에 올라가 구조 신호를 보내는 사진 말이다. 사진 덕택에 이 튼튼한 집을 지은 건축 회사가 홍수 이후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일본의 꽃꽂이 이케바나(いけばな)를 배우는 아들을 위해 유명 작가의 꽃꽂이 전시를 보고 왔다. 사랑하는 남편, 두꺼비 같은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모두 소중하다. 오늘도 난 ‘좌서우 우남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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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기획
이예지 기자
글·사진
김보민
2016년 12월호

2016년 12월호

기획
이예지 기자
글·사진
김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