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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엔의 옷장

프랑스에 와서 살기 전까지는 “옷 좀 입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런데 파리에 와서 완전히 절망하고 말았다.

On December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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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비싼 옷은 아니지만 개성 있는 옷들로 옷장을 가득 채우고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하이힐을 고수했다. 그렇지만 처음 파리에 와서 일 년 동안은 꼬마 아이처럼 입는다는 식의 빈정거림을 들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내게 서툰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즉, 한눈에 봐도 ‘외국인’이었던 것이다. 파리 생활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옷을 고르는 법과 취향이 자연스럽게 현지 여성들처럼 바뀌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프랑스 사람들이 필자에게 길을 물을 때면 어느새 ‘나도 파리지엔’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잠깐 한국에 들어갈 때도 옷을 싸지 않는다. 서울 부모님 댁에 옷장이 있고, 파리의 집에도 옷장이 따로 있는 것이다.

파리 옷장을 열어보면 대부분 어두운 계열의 옷이고 반드시 스카프가 들어 있다. 컬러가 들어가도 한 톤 다운된 컬러가 대부분이다. 신발장도 마찬가지다. 하이힐은 없다. 대신 단화, 앵클부츠, 롱부츠가 가득 하다. 옷의 가짓수도 적다. 대신 전부 필자에게 잘 맞는, 오래된 친구 같은 옷들이다. 주변 사람들이 볼 때마다 “클라스(Classe, 멋지다)!”라고 말해주는 고급스러운 코트 두 벌로 무난히 겨울을 난다.

이런 경험은 단지 필자만의 경험이 아니다. 파리에서 프렌치 패션 디자인과 스타일리즘을 전공하고 한복과 프랑스 패션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 브랜드 ‘몽한복(Monhanbok)’을 론칭한 이지예 디자이너도 파리 생활 7년 차가 되면서 한국에서 고수하던 자신의 스타일이 얼마나 고루하고 유아적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선 의류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길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렴한 옷을 여러 벌 사서 매번 기분에 따라 다른 콘셉트로 스타일링했다면, 여기선 특별한 느낌을 주는 좋은 옷을 한 벌 구입해 아껴 입어요.”
 

편안한 듯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듯 공을 들인 것이 바로 파리지엔 스타일이다. 파리지엔 패션 블로거 켄자(Kenza)는 큼직한 단색 스웨터에 디테일한 액세서리로 분위기를 살렸다.

한복의 단아함을 모티브로 했다 하더라도, 파리지엔들이 일상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일상복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제작한 이지예 디자이너의 옷에도 파리지엔의 컬러와 세련미가 담겨 있다. 이렇듯 파리 여자처럼 입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관찰이 필요하다. 심지어 프랑스 타지방에서 온 여성들도 “파리 여자들은 뭔가 잘 차려입는데 그 비결이 뭔지 모르겠다”라고 한다.

편한 듯해 보이면서도 우아하게, 검소한 듯하면서도 독특하게, 헤어도 자연스러운 듯 공들인, 심플한 듯 고급스럽게. 자칫 궤변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게 파리 여자들의 알 듯 모를 듯한 스타일이다. 몇 가지 조언을 하자면, “베이식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차림새에 약간의 위트를 살려줄 패션 아이템을 하나 더하고, 액세서리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는 것으로 선택하면” 좋다. 프랑스 패션 블로거들이 해주는 조언이다.

지난 1977년 디자이너 아네스 베(Agne‵s B)가 한 인터뷰에서 입은 의상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부드러운 오버사이즈 스웨터에 거친 느낌이 나는 살로페트(Salopette) 차림이었는데,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과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의 패션 철학도 밝혔다. 


“눈에 띄도록 화려한 옷은 나한텐 너무 과한 옷이에요. 너무 많은 걸 집어넣었어요.” 아네스 베 외에도 꽁뜨와 데 꼬또니에, 끌로디 피에로, 우리나라에는 유아복으로 더 잘 알려진 쁘띠바또 등이 파리지엔 스타일을 잘 살린 정통 프랑스 브랜드들이다.

글쓴이 송민주 씨는…

글쓴이 송민주 씨는…

통·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2년 전부터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EHESS)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 <Portraits de Seoul>의 저자이며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서로 다른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사랑한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사진
송민주
2016년 12월호

2016년 12월호

기획
하은정 기자
사진
송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