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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밴드 10cm

고교 밴드부터 함께한 17년

On November 22, 2016 0

21세기 대한민국에도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는 존재한다. 2인조 인디 밴드 ‘십센치(10cm)’ 정도면 그렇게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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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스쿨 밴드 선후배 사이로 만나 음악을 함께하기 위해 군대까지 같이 다녀온 두 남자가 있다. ‘두 사람의 키 차이가 10cm라서’ 생각 없이 만든 밴드명 ‘십센치’로 지금까지 함께 음악을 만들고 있는 권정열, 윤철종이 그 주인공이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그룹이나 밴드를 가리켜 ‘인디 밴드’라고 한다. 십센치도 처음엔 인디 밴드였다. 그러나 독특한 음악 세계와 위트를 갖춘 이 두 남자는 인디 음악계의 새로운 아이콘을 넘어 명실상부 인기 뮤지션으로 자리 잡았다. 때로는 ‘찌질하다’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면서도 위트 있는 가사, 귀에 꽂히는 멜로디, 흔치 않은 보이스 톤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다. 음악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던 시절을 지나 이젠 7년 차 뮤지션이 됐다. 작업실에서 만난 그들은 여전히 재기 발랄했다.

두 분 다 살이 빠진 것 같아요.
권정열(이하 권) 갑자기 살이 빠진 건 아닙니다. <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통통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많은 분이 실제로 저를 보면 왜 이렇게 말랐냐고 해요. 원래 날씬했습니다.(웃음)
윤철종(이하 윤)
저는 원래 심하게 말랐는데 살이 좀 찌면서 적당히 마른 정도가 됐죠. 봄부터 가을까지 일정이 많아 쉬지 못했는데 환절기가 되니 그간 쌓인 피로가 독이 되어 돌아오네요. 지금 몸살 기운이 있어요.

신곡 ‘길어야 5분’을 듣고 놀랐어요. 이렇게 달달한 노래를 들고 나올 줄 몰랐거든요.
슬픈 발라드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곡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길어야 5분’은 예전에 미리 써둔 곡이었는데 발표할 때가 아닌 것 같아 쟁여둔 거였어요. 이렇게 선보이게 되네요.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 감사한 마음으로 지냅니다.
곡에 대한 반응이 좋다고 하는데 저는 못 느끼고 있어요. 라디오를 들으면서 운전하는 게 취미인데, 단 한 번도 우리 노래가 흘러나오는 걸 들은 적이 없거든요. 잘되고 있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있어요.

정열 씨는 이제 3년 차 유부남이에요. ‘유부 월드’, 어떤가요?(권정열은 여성 듀오 ‘옥상달빛’의 김윤주와 2014년에 결혼했다.)

행복합니다! 제 대답이 좀 늦었나요? 빨리 말하려고 노력했는데!(웃음) 결혼했다고 제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난 건 아니에요. 저나 그 친구(아내)나 바쁘고요. 연애할 때보다 안정감이 있어서 좋아요.

정열 씨를 보면 철종 씨도 결혼하고 싶진 않나요?
글쎄요. 딱히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는데…. 결혼은 제 인생에서 아직 중요한 화두가 아니에요. 정열이가 진짜 행복한지 의심될 때도 많고요.(웃음)
행복합니다. 진짜예요.

나이를 먹고 결혼하고 가장이 되는 과정이 음악 활동에 영향을 미칠까요?
결혼이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르겠어요. 물론 아빠가 되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런데 당분간 자녀 계획은 없어서요. 저는 스트레스를 풀 줄 몰라요. 수다를 떨면 기분이 좀 좋아지는 것 같기는 해요. 보기와 달리 소소한 취미죠?
젊을 때는 너무 몸조심하지 말자는 주의예요. 힘이 있을 때 굴러도 봐야죠. 저는 몸을 움직여야 해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깁니다.

“더 이상 십센치는 인디 밴드가 아니다”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사실이죠.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우리 둘이 모든 것을 알아서 했지만 이젠 소속사도 생겼고요.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자존심이 상했어요. ‘하나에서 열까지 다 우리 힘으로 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소속사에 들어온 건 잘한 결정이에요.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편해요. 대중적으로 성공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어요. 하지만 탄탄한 팬덤을 지닌 건 아니에요. 공연 때 “저희 콘서트에 처음 오신 분?” 하면 대다수가 손을 들어요. 인지도 때문에 티켓 파워는 있는 거죠.
우리 힘만으로 모든 걸 꾸려나가는 데 한계를 느꼈어요. 그 노력을 좋은 음악을 만드는 데 쏟아 붓고 싶었죠. 그리고 소속사 사장이 저희를 잘 꼬드겼어요. “너희는 지금 위기다.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하다” 이러면서요.(웃음) 틀린 말은 아니었죠.

“예술가가 배가 부르고 몸이 편해지면 절박함이 사라진다”고 말하기도 해요.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도 맨날 우스갯소리로 “가진 돈을 모두 기부하면 처음 음악 하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라고 이야기해요.
정열이는 그럴지 몰라도 저는 아닙니다. 여전히 절박한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조금만 노력해도 재미있는 곡이 많이 나왔는데 요즘은 아니에요. 역시 재산을 기부해야 하는 걸까요?(웃음)
권정열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윤철종도 동참했다. 두 남자는 한참을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담담하지만 끈끈한 유대감이란 것이 둘 사이에 있었다.

솔직히 많이 싸우죠? 너무 오래 알아서 지겨울 때는 없나요?(웃음)

서로에게 질릴 때가 되긴 했죠. 반평생을 알고 지냈으니까요. 이전에는 한 팀이니 모든 것을 같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늘 부딪혔죠. 이제는 거리를 두며 지내고 있어요. 서로를 더욱 잘 알게 됐고 이젠 싸우지 않아요. 
“두 분은 언제까지 음악 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아요.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해체는 안 할 거예요. 잠깐 십센치 활동을 쉴 수는 있겠지만. 


음악 말고 다른 걸 해보고 싶지는 않나요?
아니요. 다시 태어나도 음악을 할 것 같은데요. 물론 지금과 똑같은 음악은 안 하겠지만요. 힙합을 할까 봐요.윤 다시 태어난다면 기타는 안 칠 거예요. 들고 다니기 번거로우니까. 하지만 음악은 할 거예요. 밥 딜런이 노벨상을 탄 걸 보고 다시 한 번 다짐했어요. 음악을 해야 한다고.권 와, 진짜! 노벨상위원회 대단해요.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저는 밥 딜런이 문학상 받아서 정말 좋아요.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좋은 가사 쓰는 작사가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격이잖아요. 음악인들에게 정말 고무적인 일이라고 봐요.

촬영이 시작됐다. 인터뷰 때는 잘만 웃더니 카메라 앞에서는 무표정해졌다. “치명적인 콘셉트”라나. 포토그래퍼는 두 남자에게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볼 것을 요청했지만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면 둘은 시선을 돌리거나 어색하게 웃었다. 음악이 필요한 순간임을 인지하고 그들에게 신청곡을 물으니 동시에 이렇게 답한다. “걸 그룹 노래 틀어주세요!” 권정열이 좋아하는 ‘레드벨벳’의 ‘러시안룰렛’, 그리고 윤철종이 좋아하는 ‘러블리즈’의 멤버 케이가 부르는 ‘아틀란티스 소녀’를 반복해서 틀었다. 그들의 표정이 마치 얼음이 녹듯 온화해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무슨 음악 들어요?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건데, 요즘 제게 가장 자극을 주는 게 ‘방탄 소년단’의 음악이에요. 이렇게 잘 만든 음악을 들으면 나태해지다가도 정신을 차리게 되죠. 권 9월 28일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인 ‘메탈리카’의 신보가 나왔어요. 요즘 계속 듣고 있죠. 그렇게 오랜 기간 음악 하면서 매번 스스로를 경신하는 모습이 놀라워요.

십센치의 음악도 발전하고 있잖아요.
어제보다 오늘 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꼭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음악을 잘하는 것과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거든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실력이 떨어져도 좋은 음악을 만들 수는 있어요. 윤 잘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거라면 열심히만 하면 되죠. 시간이 해결해줄 테니까. 그게 아니라는 게 딜레마죠. 녹음 스킬이 늘었다고 음악이 좋아지는 건 아니니까. 권 아이러니한 게 리스너들이 말하는 ‘십센치의 최고 명반’은 1집이에요. 그런데 저는 1집을 못 들어요. 어설픈 게 다 들려서 괴롭거든요. 지금 우리가 그때의 우리보다 훨씬 음악을 잘할 거예요. 근데 1집만큼 좋은 음악을 못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아요.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를 기억하나요?

고등학생이던 누나가 “학교 친구들이 밴드를 만들어 공연하는데 정말 멋있더라”라고 한마디했는데 갑자기 ‘밴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친한 친구와 화음을 맞추면서 노래 부르는 재미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보컬로 지원했는데, 밴드 선배가 올해 보컬은 여자를 뽑을 거라고 선언하더라고요. 그래서 기타를 치게 됐어요. 다들 기타가 비싸서 안 사려고 했는데, 저만 “기타 사 오겠습니다”라고 말했거든요. 취미로 하던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건 고3 봄방학 때였어요. 지금 현관문을 나가면 학교를 가야 하는데, 정말 너무 싫어 죽겠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집으로 들어와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했어요. 부모님은 놀라셨지만 결국 제 편이 돼주셨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누나는 아직도 자신의 말이 동생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모르고 있어요.(웃음)

형이랑 고등학교에서 함께 밴드를 할 때부터 죽이 잘 맞았어요. 둘 다 열정이 넘쳤죠. 형은 실용음악과로 진학했지만 저는 마음만 있었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공부해서 대학을 갔는데 음악을 하다 보니까 다른 건 못 하겠더라고요. 의욕도 없고 재미도 없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음악 말고는 재밌는 게 없어요.

아니, 음악이 그렇게 좋으면 음악이랑 결혼하지 윤주랑은 왜 결혼했어?
30대 중반의 남자 둘이 킥킥킥 하고 웃었다. 잠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뭔가요?

(한동안 침묵) 녹음실 장비 업그레이드한 거? 그 외에는 없어요. 갑자기 확 반성이 되네요. 윤 후회하는 일은 너무 많은데 말이죠.

음악을 듣는 분들이 십센치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조금은 ‘찌질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가사를 담은 노래들. 그걸 한번 깊이 파고들고 싶어요. 시도는 많이 했지만, 막상 우리의 아이덴티티로 파고들어보지는 못한 것 같아서요.
저랑은 정반대네요. 저는 더 멀리 나가보고 싶어요. 새로운 시도를 과감하게 해보고 싶거든요. 지금까지 저는 음악을 즐기면서 하지는 못 했던 것 같아요 남들한테 잘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에 늘 사로잡혀 있었어요. 이젠 좀 편하게 즐기며 하고 싶어요.

10년 뒤 십센치는 어떤 모습일까요?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아도 한국 음악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산울림의 김창완 선생님이나 김진표 씨처럼요.

가끔 팬들이 제 음악을 듣고 자신의 미묘한 감정선과 통했다고 피드백을 해주시는 팬들이 있어요. 그럴 때 가장 행복해요.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권 저는 남자분들이 십센치의 노래가 오글거린다고 할 때 가장 행복해요. 여자분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거든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윤 어떤 음악이든 십센치만의 색깔로 소화하고 있을 거예요.
맞아, 그것만은 확실해.

인터뷰가 끝나자 30대 중반의 두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작업실 앞 인형 뽑기 기계 앞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갔다. ‘진정한 친구란 세월이 흘러도 그 앞에서는 소년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이’라는 문구가 문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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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취재
정지혜 기자
사진
이동현
헤어
구예영(뮤제네프)
메이크업
배지희(뮤제네프)

2016년 11월호

이달의 목차
취재
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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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헤어
구예영(뮤제네프)
메이크업
배지희(뮤제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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