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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파문! 숨 쉬는 것조차 두려운 시대

나날이 심해지는 미세먼지부터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가습기 살균제 사건’까지, 대한민국은 지금 ‘숨 쉬기 힘든’ 나라다.

On June 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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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SF 영화 <설국열차>는 신빙하기가 찾아와 얼음 세상이 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신빙하기의 1차적 원인은 지구 대기 온도를 낮추기 위해 살포한 인공 냉각제의 부작용이며, 더 근본적인 원인은 그처럼 강력한 냉각제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해진 지구 온난화에 있었다. 2014년에 개봉해 국내에서 1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또 한 번 SF 열풍을 일으킨 영화 <인터스텔라> 역시 생명체가 살기 어려워진 지구의 미래를 그렸다. 지구는 식물들까지 말라 죽게 만드는 미세먼지로 뒤덮여 사막과 다름없어진 상태이며, 과학자들은 제2의 지구를 찾아 인류를 대이동시킬 계획을 세운다.

이처럼 SF 디스토피아 영화의 배경이 바뀌고 있다. 과거의 SF 영화는 지구 종말을 초래하는 원인을 주로 전쟁이나 인공지능의 지배 등으로 묘사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압도적 파괴력 체험, 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대한 두려움 등 시대에 따른 대중의 감수성이 반영된 결과다. 최근에는 이 같은 묘사가 환경적 요인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지구온난화, 대기오염 등이 초래할 재앙에 대한 공포가 그만큼 인류의 보편적 고민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환경 재앙에 대한 공포의 중심에 있다. 근래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미세먼지 사태의 심각성이 상상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가습기 사건은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생물학적 독극물) 사건’으로 규정되어 세계가 사건의 향후 전개 양상을 주시하는 상태다. 미세먼지 사태도 만만치 않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대기오염 연구를 위해 내한까지 했다. 나사가 다른 나라에서 현지 과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펼치는 것은 창설 이래 최초다. 나사 측은 “서쪽에선 중국 미세먼지, 북서쪽에선 황사, 러시아와 북한의 산불 연기까지 유입되는 한반도는 대기오염 연구를 위한 이상적 실험실”이라고 말했다.

단언컨대 우리는 지금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과 미세먼지 사태 모두 단순한 환경 재앙이 아니라는 데 있다. 최근 검찰 조사로 그 전말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감사원의 보고서 발표로 밝혀진 미세먼지 사태의 배경은 이 재앙이 생각보다 훨씬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요컨대 각종 사회적 재난과 참사 때마다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어온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 상황’이 다시 한 번 증명된 사례라는 점이 진정한 재앙이자 비극이다.

먼저 가습기 살균제 사건부터 살펴보자.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수치로만 1백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잠재적 피해자는 2백27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참사는 ‘옥시 게이트’로도 불린다. 본래 청소용으로 개발된 살균 제품을 무단으로 용도를 변경해 제일 많이 팔아치운 사건의 주범이 ‘옥시’다. 그러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기업, 연구기관, 로펌이 함께 뒤얽힌 다발성 비리 사태로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옥시로부터 유해성 연구 조사를 의뢰받은 서울대 교수는 뇌물을 받고 실험 결과를 조작한 혐의로 구속 수사 중이고, 옥시 변호인 측인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역시 조작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돼 학계, 법조계로까지 비리가 확대되는 모양새다.

물론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정부 부처의 책임 방기와 무능함이 더 큰 문제다. 제일 큰 피해를 불러온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무단 전용 과정에서 유해성을 검증해야 할 관련 부처는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당시 살균제를 담당했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며 변명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신뢰의 ‘KC마크’까지 부여해 사태를 키웠다. 원인 미상의 집단 폐질환에 대한 의학계의 지속적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본부는 옥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지 10년 뒤인 2011년에야 역학조사에 나섰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환경성 질환임을 부인하며 내내 책임을 미루다 뒤늦게야 피해자 지원 대책을 논의 중이다. 치명적 유해 물질을 무단 전용하고도 제재를 피해갈 수 있었던 관련 법제도의 미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사태를 ‘안방의 세월호’라 부르는 이유다. 총체적 부실로 인한 인재임이 증명되었음에도 피해자 지원과 관련 책임처 제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미루는 대처마저 세월호 사건과 똑같다. 미세먼지 사태의 본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5월 10일 감사원이 발표한 수도권 대기 환경 개선사업 추진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면 미세먼지 사태 역시 국가의 총체적 부실 인증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의 오염 물질 유입도 문제지만 국내적 요인 역시 절반을 차지하는 가운데 환경부는 기본적인 오염원 파악이나 미세먼지 농도 측정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국내 대기오염의 주범 중 하나인 석탄발전소에 대한 관리 대책은 전무하고, 또 다른 주범인 경유 차량에 대한 매연 감소 사업도 투입 예산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졌다. 심지어는 미세먼지 측정소가 엉뚱한 곳에 설치됐거나 성능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도 절반에 달했다. 미세먼지 삭감 실적도 배로 뻥튀기해 보고한 것이 드러나 무능할 뿐만 아니라 부도덕성까지 드러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10년 동안 수도권 대기오염 해결을 위해 혈세 3조원을 쏟아 부은 결과라는 점은 더욱 분노를 일으킨다. 그러고도 정부는 지난 5월 16일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2016년 ‘환경성과지수’에서 전 세계 180개국 중 최하위권인 173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의 43위에서 대폭 하락한 순위로 정부 대책이 오히려 퇴보 중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더 암담한 것은 앞으로도 이 문제가 크게 개선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미세먼지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라는 대통령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대기오염의 주원인인 석탄발전소는 앞으로도 계속 증설될 계획이다.

대기오염은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로 지목될 정도로 지구촌 최대 관심사다. 세계보건기구는 2012년 사망 원인 조사 보고서에서 8명 가운데 1명이 대기오염 관련 질환으로 사망했다고 밝히며, 수치도 놀랍지만 이전 조사에 비해 두 배로 수치가 급증한 사실이 더 심각하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전 세계 195개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는 ‘파리 협정’을 채택하고, 세계 주요 도시들이 새해부터 엄격한 대기오염 방지 대책 시행에 나선 것도 이러한 심각성을 인지한 결과다. 우리나라만이 이러한 추세에 역행 중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미세먼지 사태에 대해 우리가 더 예민하게 대응하며 해결하기 위해 뜻을 모으는 이유는 어린 내 자녀를 지켜내기 위함일 것이다. 문득 영화 <설국열차>가 오버랩된다. 절망의 시대에도 구원의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어른들이 목숨을 바쳐 아이들을 지켜냈고, 그렇게 인류의 미래를 지켜냈던 이야기 말이다.
 

CREDIT INFO

기획
정지혜 기자
취재
김선영(프리랜서)
일러스트
최희정
2016년 06월호

2016년 06월호

기획
정지혜 기자
취재
김선영(프리랜서)
일러스트
최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