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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경의 시간

신세경이 턱을 괴고 앉았다. 분위기가 묘했다. 큰 눈을 치켜뜨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에요.” 정적 속, 그녀가 더 알고 싶어졌다.

On May 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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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경을 처음 만난 건 3년 전이다. 한 번은 영화 홍보차 진행한 인터뷰 자리였고, 다른 한 번은 영화 관계자들과 함께한 술자리였다. 그때 그녀가 기자에게 남긴 인상은 두 가지였다. 털털하다. 그리고 날씬하다. 그녀는 가식 없이 웃었고, 진솔하게 말했다. 움직일 때마다 드러나는 몸매는 당시 인생 최고 몸무게였던 기자에게 자극이 되었다. 그러니까, 예쁜데 성격까지 좋은 그녀가 남긴 인상은 강렬했다.

신세경을 다시 만난 건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가 종영된 직후였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향기를 풍겼다. ‘오프더레코드(Off The Record)’라며 서슴없이 말하는 톡톡 튀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차분했고 신중했다. 큰 의미 없이 건넨 질문도 곱씹어 생각했고 정제된 말투로 똑똑하게 말했다. 3년 전 신세경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녀’였다면 지금의 그녀는 조숙한 향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

“긴 호흡의 드라마를 끝내고 나니 여운이 많이 남아요. 제가 연기한 ‘분이’ 캐릭터에 애정도 많았고요. 최근 저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대신 발견해준 대중의 반응을 전해 들었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싶어서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 요즘처럼 묘한 기분은 처음이에요.”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보였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만난 신경수 감독, 이영현 작가와의 재회라서 좋았고 그때 호흡을 맞춘 스태프들과의 작업이라 더욱 의미가 컸다. 드라마 <패션왕>에서 만난 유아인과의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도 끌렸다. 모든 게 완벽했지만 가장 좋았던 건 캐릭터였다.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진취적인 여성 ‘분이’. 신세경은 개혁을 위해 목숨을 거는 여자, 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캐스팅됐을 때부터 분이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있었어요. 상황에 끌려다니는 인물이 아닌,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상이라 좋았죠. 끝까지 그런 캐릭터일 거라고 확신했고 연기하면서도 변함없이 개혁을 꿈꾸는 여성이라 애정이 갔어요.”

방송 기간만 6개월. 제작 준비 기간을 합치면 족히 1년을 <육룡이 나르샤>에 몰두했다. 16부작 미니시리즈 세 편을 찍고도 남을 기간이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분이가 적극적인 캐릭터잖아요. 모든 배역과 관계가 얽혀 있기도 하고요. 그녀의 감정 상태를 잠시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쉴 때도, 먹을 때도, 잘 때도 긴장하고 있어야 했죠. 긴장 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멘탈에 한계가 오더라고요.”
분이의 행동 하나, 목소리 하나에도 감정을 담으려고 했다. 대본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이방원(유아인), 정도전(김명민), 땅새(변요한) 등 다양한 캐릭터가 있는데 그들과 모두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특이했어요. 저로선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죠. 결코 가볍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중립을 지키려고 했고, 그 안에서 분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죠.”

신세경은 “분이에게 빠져 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끝났고, 신세경은 캐릭터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다. 그녀는 분이와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을까?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옷을 벗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내일도 바빠요. 삼성동에서 리빙페어를 한다기에 가보려고요.(웃음)”
 

깔깔거리는 그녀의 웃음소리에 분위기가 금세바뀌었다. <육룡이 나르샤> 속 연기에 대해 아쉬웠던 점은 없느냐고 묻자 신세경은 특유의 미소로 슬쩍 피해 갔다. “비밀”이라고 했다.

“연기적으로 했던 실수나 문제점을 제 입으로 이야기하는 순간 대중은 그것만 보시더라고요. 눈동자의 움직임, 숨 쉬는 횟수처럼 사소한 건데도 유독 크게 부각되죠. 그래서 제 입으로는 말하지 않으려고 해요.(웃음) 물론 제 문제점을 지적해주시는 분들의 의견은 소중히 간직해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오답 노트처럼 가지고 있죠.”

재치 있는 답변이다. 회피하듯 말했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작품마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거예요. 모험이나 변화를 즐기지 않는 제가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저 자신에겐 칭찬거리죠. 실제의 저와는 다른 성향의 캐릭터를 선호하고 그걸 해냄으로써 희열을 느껴요.”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말하는 모습이 귀엽다. 현재에 만족하고, 현재를 즐기고 있다는 신세경에게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에 대해 묻자 그녀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3~4년 전쯤이에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 때문에 힘든 시기였어요. 그때 제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진심은 그냥 통하기 마련이라고 믿었던 제가 바보였어요.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제가 3년 전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고 하셨죠? 맞아요. 그때부터 저는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진지했다. 이어서 입을 열었다.
“어려서부터 활동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무엇을 요구한다는 게 잘못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다 보니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고요. 의문이 들어도 바로 확인하지 못하고 혼자서 고민하고 갈등했어요.” 그런 고민은 결국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일에서 얻는 성취감보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받는 감동이나 사랑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그녀에게 낮은 시청률보다 괴로운 건 흐트러지는 인간관계였다. 신세경은 현재 자신의 삶을 ‘혼돈의 27세’라고 정의했다.

“제 나이가 그런가 봐요. 사람들은 어른으로 보는데 실제 저는 아직 어리고, 이룬 일이 많은 것 같은데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멀죠. 그렇다 보니까 외로워지고, 외로운 감정이 쌓이면 결국 사람들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제 감정의 바이오리듬을 분석해봤어요.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을 때죠. 상대방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을 때 크게 상처받고, 믿었던 사람의 배신이 저를 가장 힘들게 해요. 일의 성과보다는 친구, 가족, 연인과의 관계가 좋으면 더 큰 행복을 느껴요.”

지금보다 어렸을 땐 담아두는 편이었다. 소통 방법을 몰라서, 자신의 말 한마디에 상대방이 받을 상처가 두려워서 솔직히 말해야 하는 시기를 놓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기는 후회는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었다. 요즘에는 나름대로 ‘폭발’하는 방법을 터득했단다. “속으로 끙끙 앓다 보면 언젠간 폭발하더라고요. 참다 참다 대폭발이라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하죠.(웃음) 나의 불만을 잘 설명하는 것도 지혜라는 걸 알았어요.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말하는 스킬 같은 거요. 부드럽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죠.”

신세경이 부리는 가장 큰 욕심은 역시 사람의 마음이다. 그녀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가볍게 여긴 지난날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했다. “저는 배역보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커요. 작품이나 연기가 제게 명예와 지위를 주고, 덕분에 돈과 인기를 얻고 보람도 느끼지만 그것들은 금방 꺼지는 불꽃 같아요. 하지만 옆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불꽃이 꺼졌을 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거잖아요.”

남들 앞에 드러나는 삶을 사는 여배우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고민이다. 겉으로 화려한 삶을 살아도 그 안에 감내해야 하는 것이 많은 삶. 신세경은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웃어야 하고 대중의 차가운 손가락질에도 당당해야 하는 여배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배우의 삶은 폭풍의 언덕 위에 있는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버라이어티한 삶이죠. 힘들어도 감당해야 하는 일상이에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도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을 꼭 붙잡고 이겨냈어요. 지인들의 소중함을 또 한 번 느꼈죠.”

우정과 의리, 사랑을 1순위로 꼽는 신세경의 곁은 온기로 가득할 게다. 그녀가 이토록 따뜻한 여인이 될 수 있었던 건 함께 고민하고 울어준 가족과 지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건 엄마, 아빠의 교육 방식과 제가 자라온 환경, 어릴 때부터 촬영 현장에서 혼나고 채찍질당하면서 터득한 경험들이에요. 데뷔 후 지금까지 찬찬히 단단해져온 것 같아요.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을 얻었죠. 엄마는 칼 같은 분이세요. 엄마 눈에 안 예쁘면 절대 예쁘다는 말을 안 하시는 분이죠. 어떤 때는 너무 독하게 말씀하셔서 상처받을 때도 있지만 그게 저를 더 발전시킨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드러나는 이미지나 느낌, 인터뷰 멘트 하나까지도 꼼꼼히 모니터링해주시는 분이에요. 가장 주관적인 상황에서 가장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분이죠.”

1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여운이 오래 남았다. 연속되는 고민 속에서 사는 그녀의 진심이 기자의 마음을 훔친 게 분명했다. 어지러운 스물일곱 살을 살고 있다는 신세경. 혼돈이 걷힌다면 어떤 모습일까? 다시 만날 그날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CREDIT INFO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제공
나무엑터스
2016년 05월호

2016년 05월호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제공
나무엑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