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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위인들

‘병맛’은 본래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상대방을 비아냥거릴 때 사용하던 신조어였으나 요즘은 이 시대의 유머 코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과거 위인들도 상당히 ‘병맛’이었다.

On November 13, 2015

병맛이 대세긴 대세다. 요즘 잘나가는 예능 스타들은 하나같이 2% 부족해 보이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유병재. 그는 tvN 의 ‘극한직업’이라는 코너에서 억울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연기로 인기를 끌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다소 ‘찌질해’ 보이는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 그의 인기 비결이다.

장수원은 또 어떤가? 그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겨준 것은 연기자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는 ‘발연기’였다. 게다가 강균성의 다중이 캐릭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백종원의 잔실수와 어눌한 말투도, 김풍의 허세 캐릭터도 결국엔 ‘병맛’이라는 코드로 귀결되는 것이다.

역사 속 위인들도 알고 보면 ‘병맛’ 같은 면모가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일생을 떠올려보자. 지금이야 그의 그림 한 점이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지만, 고흐는 살아 있을 당시 찌질남의 결정체였다. 그는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뛰어든 이후 10여 년의 세월 동안 금전적인 부분을 동생 테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았다. 살아생전 그가 판 작품은 딱 한 점. 그 시대에 ‘병맛’이라는 단어가 있었다면, 대중은 그의 그림을 두고 그렇게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유명 화가 이중섭도 마찬가지다. 그는 서른이 되어가도록 집안에서 한 번도 돈을 버는 역할을 해본 적이 없는 철부지였다. 하지만 형이 갑자기 죽고부터는 집안의 살림이 궁핍해졌고 철없이 살았던 이중섭은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 정도면 눈에 불을 켜고 살아도 모자랄 판에 생기는 돈은 족족 술값으로 탕진해버리기도 했다. 말년에 그는 이따금 지인들과 진탕 술을 마시고 유곽에 드나드는 일이 잦았는데, 벌거벗은 여자를 눕혀놓고 가만히 보거나 옆에서 자는 것을 좋아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결국 그는 정신분열증으로 시달리다가 마흔의 나이로 요절했다.
 

스티브 잡스는 일적으로는 크게 성공했지만,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 혹자는 그를 두고 ‘가장 성공한 소시오패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종의 자기애성 인격장애자라는 이야기다. 그는 타인에 대해서는 평가 절하, 자신에 대해서는 과대 자각과 열등감을 번갈아 가지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쩌면 그런 성격이 그를 성공으로 이끈 것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노인과 바다>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한마디로 ‘병맛 같은 남자’였다. 일생 동안 네 번 결혼했는데 첫 번째 부인 해들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자 신분의 여성과 불륜으로 맺어진 관계였다. 헤밍웨이는 지적이고 활동적인 여성에게 끌렸다. 그러나 막상 결혼한 뒤에는 아내에게 가정적인 역할만을 강요했다. 그러고는 자신은 다시 밖에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심지어는 내연녀를 데리고 가족 앞에 나타나 아내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불륜녀를 보며 가정주부가 된 그의 아내들은 상대적으로 초라함을 느끼고 절망에 빠졌다.

한국의 시인 김수영도 아내를 대할 때만큼은 ‘찌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6.25전쟁이라는 근현대사의 아픔을 겪으며 아내와 한동안 떨어져 지냈는데, 돌아와 보니 아내가 자신의 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아내는 다시 김수영의 곁으로 돌아왔는데, 김수영은 그때의 충격으로 툭하면 아내를 두들겨 패곤 했다. 심지어 길거리 한복판에서도 말이다. 그래도 김수영이 그나마 나은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 보려고 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바로 시인 김수영이 위인에 이름이 오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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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취재
정희순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
참고서적
<찌질한 위인전>(위즈덤하우스)
2015년 09월호

2015년 09월호

취재
정희순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
참고서적
<찌질한 위인전>(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