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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알고 싶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지한 모습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낯설지만 무겁지 않고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김상중과의 만남.

On October 26, 2015

SBS <힐링캠프>에서 입담 좋기로 유명한 이경규와 김제동을 웃기는 김상중의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지난 7년 동안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을 맡아 줄곧 무거운 이야기, 암담한 소식을 전해온 그였기에 남을 웃길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터였다. 

김상중은 방송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자와 만났다. 진중한 성격과 잘 어울리는 진한 회색 슈트에 단정한 헤어스타일, 갈색 구두로 멋을 낸 그는 누구보다 친절했고, 누구보다 밝았다. 혹여 자신이 동문서답할까, 직접 준비해온 노트에 기자의 질문을 받아 적은 뒤 또박또박 말을 이어가는 김상중. 데뷔 25년 차 배우에게서 느낄 수 있는 매너와 배려였다. 

김상중에게 <그것이 알고 싶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신 같은 프로그램이다. 2008년 3월, 전 MC 박상원에게서 마이크를 넘겨받은 뒤 7년 5개월 동안 명맥을 이어왔다. 거액의 출연료를 준다고 해도 프로그램에 해가 되는 캐릭터라면 고사했고, 드라마 스케줄도 철저히 조율했다. 과연 김상중의, 김상중에 의한, 김상중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처음 출연했을 때 함께 했던 CP님이 지금은 SBS의 국장이 되었어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진행자고요.(웃음) 제가 몸담고 있는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 존재의 가치를 발휘하는 이유는 결국 제작진의 열정이라고 생각해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사명감으로 취재에 열과 성을 다하는 제작진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 때문에 지난 7년간 꿋꿋하게, 흔들림 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저널리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제작진이 준비한 내용을 세상에 알리는 것뿐이잖아요. 그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저 또한 무너졌을지도 몰라요. 또 아닌 것은 아니라고 질책하고, 어떤 사건에 공분하고, 슬픈 이야기에는 함께 우는 시청자가 있었기에 1992년에 시작한 프로그램이 20년 넘게 방송될 수 있는 것이죠.” 

김상중은 스스로를 “<그것이 알고 싶다>와 함께 진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난 7년 5개월 동안 고민과 발전을 거듭해온 프로그램을 따라 자신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 “예전에는 방송에서 보여주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워낙 SNS와 인터넷이 발달해 조금이라도 허투루 하면 안 되죠. 사연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는 ‘재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설명하는 수준의 재연이었다면, 지금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죠. 방송이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발전하는 프로그램을 7년 이상 해왔으니 당연히 저도 진화하고 있는 거겠죠.” 김상중은 변화하는 프로그램에 걸맞은 진행자가 되기 위해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포맷의 변화에 따라 진행 방식을 달리하려고 했고,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사건 현장에 직접 나가 발로 뛰기도 했다. 가장 앞에서 사건을 하나둘 알릴 때마다 스스로 조금씩 정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약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오롯이 <그것이 알고 싶다>의 남자가 됐다. 

“저와 제작진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아이들에 얽힌 사건을 취재할 때입니다. 1천 회 동안 얼마나 많은 소망과 희망을 이야기했겠어요. 앞으로도 즐겁고 밝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다만 아쉬운 건 좋지 않은 사건이 매회 반복되고 있다는 거예요. 왜 나쁜 이야기는 줄어들지 않는 걸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는 매주 무거운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가 쉽게 말할 수 없는 것들, 감히 언급할 수조차 없는 예민하고 민감한 사안을 속 시원히 해부한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효자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진행하면서 여러 사연을 접했고, 관련된 피해자도 만났죠. 그들은 굉장히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다시 말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결국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죠. 그래서 흥미 위주의 살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꼭 알고 넘어가야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요.” 

김상중이 기억하는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지난해 4월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이다. 당시 미흡한 대응 방식 때문에 숱한 논란과 각종 의혹이 불거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충격과 상처를 안긴 사건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2회에 걸쳐 세월호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했고, 김상중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과감하게 진행하며 국민과 함께 울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입니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에요. 지금까지 방송하면서 가장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던 사건이기도 하고요. 제가 지난 7년 동안 꿋꿋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방송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 때문이었는데, 세월호 사건을 다룰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책임감이 투철했죠.” 

그 책임감과 의무감은 결국 바른 생활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려면 스스로 반듯하고 떳떳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그를 착실하게 살게 했다. 실제로 김상중은 술자리에서 소주 한 잔 하지 않고 끝까지 머물 정도로 흐트러짐 없다. 그 대신 사람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공감과 소통의 자세가 몸에 밴 진정한 젠틀맨이다.

“방송하면서 제 자신이 업그레이드됐어요. 그동안 제가 지닌 것 이상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도 이 프로그램이기 때문이죠. 제작진의 피와 땀으로 만든 방송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자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대표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자질이 없다면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성이나 진정성이 떨어질 테니 말예요. SNS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연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은 <그것이 알고 싶다>뿐입니다. 그래서 더 애착이 생기고 책임감도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그는 송해를 뛰어넘는 최장수 MC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런데 말입니다”라고 외치고 싶다고. “기록이라는 건 깨지라고 있는 것 아닌가요?(웃음) 저보다 잘하고 준비된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하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하고 싶어요. 제작진과, 시청자와 함께 오랜 시간 공존하고 싶어요.” 

한 시간가량 그를 관찰한 결과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김상중의 이미지는 프로그램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재치와 유머를 빼놓지 않았기 때문. 그가 던지는 한마디에 사람들이 웃었고, 그의 표정 하나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그의 모습은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나 <힐링캠프>에서 보여준 모습이 제 전부는 아니에요. 김상중이라는 사람에게는 진지하고 무거운 부분도 있고 익살스러운 부분도 있죠. 재미있게 사는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진행하고 싶기도 하고요. 가벼운 소재를 재미있게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전하고 싶은데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알려지는 내용은 대부분 암울하잖아요. 웃으면서 소개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아, 또 한 가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꼭 알리고 싶은 건 북한의 소식이에요. 북한에 있는 우리 동포들은 통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려드리고 싶어요.”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이 통한 걸까? 그는 생애 처음으로 O tvN 예능 <어쩌다 어른>에 출연한다. 그것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리얼 예능 프로그램이다. 김상중은 부릉부릉 소리와 함께 바이크를 타고 등장하는가 하면, ‘깨방정’을 떨며 웃기도 하는 등 중후한 무게를 벗고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이야기도 물론 사람 사는 이야기지만 대부분 어두운 이야기였어요. ‘언제쯤 우울하지 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죠. 그런데 마침 기회가 생긴 거예요. 좀 더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출연하게 됐어요. 삶의 철학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너도 나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에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함께 고민하면서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제 스스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암울한 이야기를 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작진도 그를 응원하고 있다. 희망을 전하고 싶은 바람은 일맥상통하기 때문. 생애 첫 예능 프로그램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보다 김상중이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오기를 바라는 제작진의 엄마 같은 마음일 게다. 

“정말 어쩌다가 어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요. 내가 어쩌다가 어른이 됐을까’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나는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된 걸까’ 하는, 일반 사람들이 흔히 할 수 있는 생각들을 바탕으로 제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슴이 찡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제 삶과 비슷한 것 같아 ‘아, 우리는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하죠. 앞으로 할 이야기가 어마어마할 것 같아요.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우리가 어쩌다 어른이 됐듯 김상중도 어쩌다 어른이 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데뷔 25년 차 중견 배우가 됐고,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졌다.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내가 정말 어른이 됐을 때가 언제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몸에 변화가 생겼을 때 어른이 됐구나 하고 느꼈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회적 지위가 생기고 경제적 자립을 했을 때 ‘이게 진짜 어른인가’ 하고 생각했고요.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는 아직 어리다고 자책하기도 했죠. 그래도 이제는, 이쯤이면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웃음)” 

그는 ‘어떤 어른이 되느냐’에 초점을 맞춰 고민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어른이 되긴 했는데 어떤 어른이 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면 시간에 몸을 맡기면 되는 게 아니겠는가. 다만 시곗바늘이 허투루 흘러가느냐, 의미와 무게를 갖고 흘러가느냐는 스스로 하기에 달려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하고요. 아무래도 배우이다 보니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건 연기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인데, 후배들에게도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친한 선배님이 ‘배우는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게 배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성인이 되지 않는 한 끊임없이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더 어른이 되겠죠. 책임질 줄 아는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김상중에게서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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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
2015년 10월호

2015년 10월호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