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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만난 동양의 봄

On May 29, 2014

‘봄은 나에게는 취기의 계절, 광기의 계절로 느껴진다. 비가 오던 날 뮌헨의 회색 하늘빛 포도에 망연히 서서 길바닥에 뿌려진 그 전날의 카니발 색종이 조각의 나머지가 눈처럼 쌓여 있는 것을 바라보던 슬픔은 잊히지 않는다’.

수필가 전혜린의 자전적 에세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과연 봄은 그녀의 말처럼 ‘광기의 계절’일까? 유달리 자의식이 강했던 저자는 축제가 끝난 뒤 흩뿌려진 쓰레기에서 봄의 숨은 얼굴을 발견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봄은 축제 그 자체일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의 봄을 알리는 신호는 여럿이다. 해는 나날이 길어지고 한국인지 스위스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수많은 벚나무가 벚꽃을 흐드러지게 피운다. 좋은 날씨 덕에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잔디밭에 드러누워 온몸 가득 햇살을 받는다. 그리고 또 하나, ‘스위스 안의 중국’이라 불리는 ‘차이나 가든(China Garten)’이 겨우내 굳게 닫았던 문을 연다. 1994년 처음 생긴 이래, 올해로 꼭 20번째 문을 열고 봄 방문객을 맞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취리히 호수 동쪽에 자리 잡은 차이나 가든은 겉보기에는 중국 자금성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바깥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중국식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정원 중앙엔 작은 연못이 자리 잡고 있고 연못 주변으로 아담한 정자와 돌다리가 놓였다. 유럽에선 그리 흔치 않은 매화나무와 소나무가 곳곳에서 자라고 대나무도 숲을 이루고 있다. ‘세한삼우(歲寒三友 : ‘추운 겨울의 세 벗’이란 뜻으로 매화나무, 대나무, 소나무를 뜻함)’를 모티브로 이 정원을 지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 같은 중국식 정원이 땅값 비싼 취리히 시내 한가운데 자리 잡게 됐을까. 차이나 가든은 취리히와 자매도시 결연을 맺은 중국의 쿤밍 시에서 취리히에 보낸 선물이다. 1990년대에 취리히에서는 쿤밍 시에 기술자들을 파견해 도시 상하수도 시설을 설계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쿤밍 시에서는 취리히에 조경 기술자들을 보내 중국식 정원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차이나 가든 내에는 중국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는 작은 레스토랑이 있으며 행사나 파티, 결혼식 등을 목적으로 정원 전체를 빌리는 것도 가능하다. 유럽의 한가운데에서 동양의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인 셈이다.

글쓴이 김진경씨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중앙일보> 기자로 일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난 스페인 출신 해커와 결혼해 현재 취리히에서 남편, 딸과 함께 살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정희순
글, 사진
김진경
2014년 06월호

2014년 06월호

기획
정희순
글, 사진
김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