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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질환(치매) 전문 용인 효자병원 한일우 원장 인터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치매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이 늘고 있다. 평생 치매 치료와 연구에 매진해온 한일우 원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모든 환자와 가족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 치매 환자와 가족의 일상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그의 제안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On January 10, 2014


지난 9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치매를 진단받은 40~50대가 해마다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2천6백18명이던 40~50대 치매 환자 수가 2012년 4천1백85명으로 약 60% 증가했다. 단순히 환자의 수만 따지면 소수에 국한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단순한 수치 외에 발병률의 증가 폭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65세 이전에 발생하는 ‘조발성 치매’ 환자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전체 치매 환자 수도 2008년 42만 명에서 2012년 52만 명으로 4년 사이 10만 명이나 증가했다. 65세 이상 노인 11명 중 한 명이 치매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오는 2050년까지 매년 5만 명의 치매 환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일찌감치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몇몇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 치매가 심각한 사회적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대한치매학회가 발족한 지 올해로 11년. 역사는 짧지만 치매 연구에 매진해온 전문의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병리연구와 임상치료가 이루어진 결과, 현재 국내 치매 치료와 환자 관리는 해외 유수의 의료 선진국과 겨룰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그리고 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치매 치료에 대한 연구와 투자는 더욱 활발히 이루어질 예정이다. 건강한 100세 시대를 누리기 위해 치매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현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용인 효자병원 한일우 원장은 국내 최고의 치매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동일 학문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학식과 인품을 인정받은 명의 중의 명의로 손꼽히기도 한다. 기자에게는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 연재 칼럼을 진행하면서 가장 정성스럽고 진심 어린 ‘추천사’를 받은 경우라 그와의 만남은 더욱 기대되었다.

나이 들어서 아픈 것은 당연하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근교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병원을 찾았다. 용인 효자병원은 그가 16년째 몸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두 번째로 개원한 노인요양병원이다. 현재는 전국에 1천2백여 군데의 노인요양병원이 있다. ‘요양병원’이라는 말 때문에 단순 요양 시설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곳은 의료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노인 전문 의료기관이다. 중풍, 파킨슨병, 치매 등 신경계통 질환과 내과 질환, 재활의학과 질환을 아울러서 치료하는 것이 주된 업무로, 국내 노인의학 정립에 있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보통 노인요양병원이라고 하면 단순 요양 시설로 아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노인의학’이라는 것 자체는 ‘나이가 들면 노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질병’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노인 환자나 소아 환자나 똑같이 접근하는 거예요. 관리나 케어 위주가 아닌 분명한 치료 목적을 가지고 있죠. 노인 질환을 다룰 때 ‘요양’이라는 말에 너무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은 안타까운 점이에요. 치료할 때 일반 성인이나 소아 환자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건 적극적으로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거든요.”

노인 질환을 다룰 때는 노인 환자가 갖는 독특한 신체적·심리적·환경적 상황을 포괄적으로 감안해 치료해야 한다. 같은 질병이라도 더 복잡한 병리구조를 가지는 경우도 많고 증상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 세심한 관찰을 요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끊임없는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최근에는 노인 질병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 과거에는 노인이 아플 경우 치료를 거부하거나, 복잡한 검사 등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했다. 또 중병에 걸리더라도 치료보다는 ‘편하게 여생을 마감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높았다고. 하지만 요즘은 검사나 치료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한 기대수명이 높아지고, 장기요양보험제도 등과 같은 복지 기반이 마련되면서 생긴 변화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 질병의 치료 수요가 급증한 것도 한몫했다.

“본격적인 저출산 고령 사회가 되면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거예요. 다만 자연스러운 신체 기능의 저하, 정상적인 노화에서 발생하는 기능의 퇴화까지 적극적으로 치료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상 노화의 경우 ‘항노화’ 콘셉트로 접근하는 것이 맞겠죠. 따라서 어떤 질환이 단순히 노화에서 발생하는 것인지, 병으로 인한 것인지 구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중 ‘치매’는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 중 하나다. 심각한 경우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이는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다. ‘치매’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정신이 없어진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지적 능력이 낮은 경우를 ‘정신지체’라고 부른다면, 치매는 정상적으로 생활하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인지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생기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기억력, 언어 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 판단력 및 사고력 등의 지적 능력이 퇴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고 더욱 심해지면 감정 조절이 안 되거나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치매증후군의 원인 질환을 세분화할 경우 70여 가지에 이른다. 가장 많이 알려진 질환으로는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가 있다. 이 외에도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질환과 뇌종양, 감염성 질환, 중독성 질환 등도 치매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조발성 치매가 급증해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치매는 더 이상 ‘관리하는 병’이 아니다
치매에 걸리면 약물 치료 등으로 병의 진행을 최대한 늦추거나 인지능력 향상 훈련을 하고 가능한 경우 수술 등으로 치료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알츠하이머병은 발병 후 지속적으로 병이 진행돼 ‘진행성 치매’로 분류되고, 혈관성 치매는 뇌경색·뇌출혈 등 뇌혈관 질환을 예방하면 발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예방 가능한 치매’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알츠하이머병이 전체 치매 환자 수의 70%가량을 차지하고, 30% 정도가 혈관성 치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인이 뚜렷한 치매는 치료를 통해 발병 전의 일상생활로 회복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간 질환, 신장 질환 등의 약물로 인한 치매, 수두증으로 인한 치매, 내분비 이상으로 인한 치매 등이 그것이다. 이는 조기에 진단하면 치매로부터 환자를 구할 수 있는 ‘치료 가능한 치매’다. 물론 치료가 오랫동안 지체되면 뇌세포가 파괴돼 치료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치매 치료는 병이 발생하고 나서 사후 관리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치매 치료 연구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면서 치매에도 점차 적극적인 치료와 예방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고.

“2~3년 전에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어요. 일반적으로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아밀로이드 단백’이 과도하게 형성되면서 ‘노인반’이나 ‘신경섬유매듭’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치매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어요. 이상 혈관다발이 만들어지면서 정상적인 신경세포가 위축되고 망가지는 것이죠. ‘타우 단백’은 실같이 가는 것이 세포 내에 분포하면서 신경세포 자체를 망가뜨리죠. 이 중 아밀로이드 단백이 도대체 언제부터 뇌에 형성되고 축적되는지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이것이 상당히 오랫동안 뇌 속에서 축적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길게는 20~30년 전부터 치매의 원인이 뇌 속에 형성되기 시작한 거라는 말이죠. 그 사람이 형성하고 있는 아밀로이드 단백을 모니터링해 나가면 치매로 발전하기 전에 병을 아예 차단하는 겁니다.”

발병 자체를 막는 것은 의학적으로 파격적인 시도다. 치료 가능한 치매뿐만 아니라, 퇴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병 등도 적극적인 치료와 예방을 통해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노인성 질병 치료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을 맞은 것임에 틀림없다. 이미 미국에서는 아밀로이드 단백을 이용한 약물이 개발돼 환자에게 쓰이고 있다. FDA의 승인까지 받은 정식 의약품이다.

“이 논문이 발표되고 난 뒤 처음 시도한 치료가 ‘면역요법’이에요. 아밀로이드 단백을 먼저 투여해서 몸이 스스로 항체를 형성해 아밀로이드 단백을 제거하도록 하는 ‘능동 면역요법’이 실시된 거죠. 하지만 바깥에서 이종 단백이 투입되면서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고, 그로 인한 수막뇌염이 발생하는 등 부작용 때문에 포기했어요. 그럼에도 당시에는 센세이션한 시도였죠. 그다음은 아예 아밀로이드 단백 항체를 외부에서 만들어 직접 몸에 투여했습니다. 이게 약으로 개발되어 미국에서 쓰이고 있고요. 타우 단백의 경우 과인산화 작용을 억제하는 효소 약제가 개발되고 있어요. 이런 분위기라면 퇴행성 신경 질환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극복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보기도 합니다.”

반면 ‘조발성 치매’의 경우 유전적 소인에 의한 경우가 많다.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치매와 병의 원인이 오랫동안 축적돼 발병하는 치매는 분명 원인은 다르지만 증상은 똑같다. 따라서 조발성 치매의 치료나 예방법도 조만간 나올 것이라는 게 한 원장의 의견이다. 특히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치매는 원인이 한 가지이기 때문에 특징이 뚜렷한 집단을 구성해 연구할 수 있고, 이미 상당히 연구가 진행된 상태라는 것이다.

“당뇨 환자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은 이미 통계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치매 예방 방법으로도 당뇨를 잘 관리하라는 것이 나와 있고요. 또 콜레스테롤이 치매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정신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확실히 치매 예방이나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젊을 때부터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수 있다면 가장 좋고, 그렇게 까다롭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어도 40대에 접어든 중년기부터는 생활 패턴을 관리해야 치매를 예방할 수 있어요.”

이는 혈관성 치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혈관성 치매는 치매 증후군이 나타나기 전, 뇌졸중 단계에서 수술중제법을 통해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뇌졸중이나 뇌경색 증상이 보일 때 세 시간 이내로 병원에 가는 이유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 결국 주변 부위의 괴사가 시작되고, 부종으로 인해 주변 세포가 눌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알츠하이머병은 질병의 메커니즘이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혈관성 치매에 비해 관리하기가 쉽다. 이종 단백 형성을 억제하거나, 유전자 이상만 검사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관성 치매의 경우 타입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훨씬 더 복잡한 원인과 치료 양상을 보인다.

“혈관성 치매는 수술을 하더라도 워낙 혈관이 미세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철저한 성인병 관리를 통해 웬만한 발병은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아주 가까운 예로 일본을 들 수 있죠. 병도 나라별로, 민족적 특성에 따라 호발되는 것이 따로 있는데 일본의 경우 우리와 반대로 유독 혈관성 치매 환자 비율이 훨씬 높았어요. 우리와 중국은 알츠하이머병의 비율이 높고요. 하지만 일본의 혈관성 치매 환자는 1980년대부터 성인병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지금은 그 수가 현저하게 줄었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지금은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더 많아졌고요. 거의 모든 질병이 마찬가지이겠지만, 가족 전체의 삶의 질과 행복을 망가뜨리는 치매는 이처럼 환자 본인, 전문가 집단, 정부, 가족 등 다각적인 면에서 접근해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치매를 예방하는 방법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신 활동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다. ‘고스톱을 치면 치매 예방에 좋다’는 말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또 사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좋다. 혼자 있으면 자연히 정신 활동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일주일에 3일, 30분씩 젊은 사람은 빠른 속도로, 장년층 이상은 숨이 가쁠 정도로 걷는 것이 좋다. 물론 성인병 관리는 필수다.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과 ‘치매 연구’에 몰입
치매 예방과 조기 치료를 위해 한일우 원장은 20년 가까이 치매 환자의 병세 완화와 생활 개선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는 고려대학교 의학과에서 정신건강의학을 전공한 뒤 치매 연구에 관심이 생겨 신경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케이스다. 이미 정년퇴임을 한 의사들 가운데 정신과에서 신경과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신경과에 대한 추가적 수련 없이 신경과 전문의 자격이 주어진 적은 있지만, 한 원장처럼 두 과의 수련을 정식으로 받고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풍부한 임상 경험과 연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까지, 대형 병원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동일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가 훌륭한 평가를 받는 이유다.

“치매 분야에서는 저 말고도 훌륭한 선생님이 많이 계신데, 그분들에 비하면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가 민망합니다.(웃음) 치매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이 벌써 20여 년이 됐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저도 모르게 관심이 가고, 마음이 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네요. 어려서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홀로 어렵게 자식을 키우는 것을 가까이 보면서 어르신들에 대한 공경심이나 애잔한 마음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아요.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 자체가 모두 그 세대의 노력과 희생이 있기에 가능했으니까요.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결정을 할 때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선택했어요.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고요. 마음이 있으니 더 집중해서 깊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로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 등을 치료하는 정신과는, 당시만 해도 편견과 오해를 많이 받던 의학 분야였다고 한다. 그때도 그는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전공을 선택했다.

“정신과 치료라고 하면 흔히들 전문의와 상담하는 ‘면담요법’을 떠올리는데, 저는 약물학적 치료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것도 물론 특별한 이유는 없었죠.(웃음) 심리보다는 감정이 작용하는 메커니즘, 뇌신경계 분야가 흥미로웠어요. 그러다가 1990년대 초반 ‘노인정신의학’ 분야를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그전부터 그동안 없었던 독특한 임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그래서인지 사회적으로 노인 인구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기 전임에도 자연스럽게 노인정신의학 분야를 공부하게 됐죠.”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마땅히 연구할 만한 인프라가 전혀 구축돼 있지 않았다. 그는 지체 없이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의 남가주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치매강좌를 전공하면서 치매에 대한 병리학, 임상실험 등 전혀 새로운 학문을 접하게 된다. 다시 국내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신경 계통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집단 토론회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때가 1996년인데, 이때 만들어진 것이 현재 대한치매학회의 전신 격인 ‘치매연구회’다. 당시 이 모임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면면도 쟁쟁하다. 뇌신경 분야의 권위자이자 수많은 저서의 출간을 통해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삼성서울병원의 나덕렬 교수, 현재 건국대학교 병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한설희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김상윤 교수,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재홍 교수,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양동원 교수 등 현재 국내에서 뇌신경 및 치매 치료의 1인자로 손꼽히는 명의들이 모두 이 모임 출신이다. 대한치매학회의 1·2대 이사장을 역임한 한설희 교수에 이어, 한일우 원장은 현재 대한치매학회의 3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금은 다들 그 분야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분들이지만, 저희가 처음 치매에 대해 연구하고 논의할 때는 거의 기초적인 수준에서 시작했어요. 당시 핸드아웃 자료를 보면 지금 일반인이 알고 있는 ‘치매’에 대한 정보보다 조금 나은 정도예요.(웃음) 그만큼 국내 연구 환경이 척박했죠. 이분들과는 지금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습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이나 아산병원 등은 저희의 협력병원이기 때문에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고요.”

대가로 칭송받는 그들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본다. 끈질기게 몰입해 한 분야를 파고드는 그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과가 가능한 것이리라. 또 환경이 너그러웠다면 그토록 치열하게 뛰어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오로지 자기 혼자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그의 말이 더 깊이 와 닿는다.

치매 조기 치료, 환자와 가족의 인생을 바꾼다
이들의 노력으로 국내 치매 치료 수준은 현재 거의 선진국 수준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 하지만 외관상의 성장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치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와 환자 가족의 ‘행복추구권’이 얼마나 잘 지켜지느냐이다.

“단순히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차원의 논의에서 그다음 단계인 환자와 주변 사람들의 행복과 일상을 어떻게 보장해줄 수 있을까 하는 논의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병을 올바르게 치료하고 관리하는 방법이기도 하거든요. 환자의 행동 심리 증상에 따라 보호자의 대처법도 있습니다. 무조건 환자의 수발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디테일한 행동 양식이 있어요. 모든 보호자가 꼭 알아둬야 할 것은 치매에 걸린 환자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그분의 자존감과 위신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고 그분의 인격이 다 무너진 것으로 인식하면 안 돼요.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격체인 인간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존감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환자가 계속 화를 낼 때는 단순히 아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때에도 환자는 자신의 불만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시선을 맞추고 천천히, 적당한 톤으로 대화하는 스킬이 필요하다. 언어 기능이 퇴화하는 치매 환자의 경우 예후가 더 빨리 나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억력이 감퇴하더라도 의사 표현을 하면 불편함을 보완해줄 수 있는데, 언어장애의 경우 자칫 잘못하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치료가 진행되는 경우도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병세가 심해져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면 추가 질병에도 쉽게 노출된다. 양치질을 혼자 하지 못해 치주염에 걸리거나, 영양 불균형에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치매 또한 조기 치료가 관건이다. 조기에 잘 관리하고 원인을 치료하면 일상생활 유지가 가능하다. 또 예후가 좋은 경우는 병에 걸리기 이전 상태로 회복되기도 한다.

“치매 환자는 세심한 관찰이 필수입니다. 대부분 어르신들을 상대하다 보니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어요. 도대체 환자가 어떤 이유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감을 못 잡겠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왜, 엄마들이 갓난아기 표정이나 울음소리만 듣고 뭘 원하는지, 뭘 표현하는지 딱 알잖아요.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은 어르신들 표정이나 제스처만 봐도 무엇이 불편한지 파악해서 바로 처방할 수 있죠. 그러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 어린아이들보다 어르신들에게 눈이 더 가고, 존경심도 크고요.”

무엇보다 치매는 환자 자신뿐만 아니라, 환자를 보호하는 가족에게도 심각한 후유증과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반드시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 질병이다. 가정 경제의 파탄을 넘어 일상생활의 수행 능력이 떨어진 보호자를 돌보느라 경제·사회 활동이 줄어든 가족이 환자를 원망하는 단계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치매 환자를 학대하거나 동반자살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대한치매학회가 치매 환자와 가족의 ‘일상 지킴이’ 역할을 자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회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지난해, 한일우 원장은 ‘일상예찬’이라는 이름으로 치매 환자, 가족과 함께 봄소풍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에게 ‘명의’란 단순히 환자의 질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행복을 찾아주고 유지해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당장 눈앞에 닥친 병이 너무도 큰 사람들에게는 ‘행복’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행복이라는 것이 기분 좋은 상태만 말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인생에서 행복은 희로애락이 모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잖아요. 고통이나 분노가 아예 없다면 기쁨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때로는 힘들고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그 와중에 또 기쁘고 희망적인 일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바쁜 외부 일정에, 상대하기 만만치 않은 환자를 종일 대하다 보면 정작 자신이나 가족에게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한 원장은 묵묵히 자신의 곁을 20년 넘게 지켜준 아내와, 자신을 따라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아들이 더욱 감사하다.

“아들이 의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 적극 후원했어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대화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또 아무도 모르는 저만의 ‘힐링 비법’은 산책이에요. 이른 새벽, 서울 시내를 걸어본 적 있으세요? 없으면 한 번쯤 꼭 해보세요. 제가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최근 서울의 역사와 유적지를 다룬 책을 몇 권 읽고 그 매력에 홀딱 빠졌어요. 우리가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던 길이 아주 예전 고려시대 때부터 있던 길인 것도 있고, 무심코 지나친 등산로가 사실은 추사 김정희 화백의 작품에 배경으로 등장한 곳인 경우도 있고요. 정동을 따라 쭉 올라가면 홍난파 선생의 생가도 있어요. 예전에는 틈나는 대로 등산을 즐겼는데, 요즘은 한적한 새벽에 서울을 산책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에요. 강남은 온통 콘크리트라 매력이 없고, 강북은 역사의 보고라고 할 수 있죠. 이런 소소한 기쁨을 환자들과 나누고 싶어요. 환자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을 되찾는다면, 지금보다 고통이 훨씬 줄어들 거예요.”

그와 이야기를 마치면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일상의 작은 행복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많은 사람들이 성취와 행복을 혼동한다. 물론 성취에 비례해 더 큰 행복을 누릴 수는 있지만, 그것이 행복의 완벽한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질병을 정복하려는 무수한 노력보다,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작은 시도가 더 값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치매 환자를 위한 일상생활 지침

대한치매학회는 지난 9월 21일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치매 환자를 위한 ‘일상생활 지침’을 발표했다. 이는 치매 환자의 일상생활 수행능력 유지와 치매 환자 및 보호자가 지켜야 하는 항목을 정리한 것이다. 치매 초기 단계부터 꾸준히 실천하면 병세의 악화를 막고 환자와 보호자의 생활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자세한 ‘일상생활 지침’에 대한 내용은 가까운 병원 신경과나 치매지원센터, 보건소, 대한치매학회 홈페이지(www.dementia.or.kr)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치매 발병 여부는 가까운 보건소에서 치매 선별검사를 무료로 받거나, 대한치매학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자가진단 리스트를 통해 체크해볼 수 있다.

  • 치매 초기단계(1단계)
    1_환자 스스로 좋아하는 음식, 옷, 음악 등을 선택하도록 한다.
    2_익숙한 생활환경에서 가족사진이나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며 기억력을 자극한다.
    3_간단한 요리나 집안일, 은행일 등 익숙한 일은 스스로 하도록 둔다.

    치매 중증도 단계(2단계)
    1_자주 사용하는 물건에 대해 항상 말해주고 사용법을 설명해준다.
    2_세탁물 접기, 음식물 차리기 등 일의 절차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한다.
    3_‘오늘 어떤 옷을 입을까’ 등의 선택이 필요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치매 중증도 단계(3~4단계)
    1_몸에 통증이나 불편함이 있을 때 말할 수 있도록 신체에 대한 명칭을 알려준다.
    2_잘하지 못해도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하도록 격려하고 의미가 있는 익숙한 활동을 통해 기억, 언어훈련을 지속한다.
    3_신체의 다양한 감각(커피 향, 아로마 오일 등)을 이용해 행동과 수면을 돕거나, 타악기 또는 조용한 음악을 틀어줘 뇌를 자극한다.
    4_환자가 가장 좋아하거나 행복했던 사진을 보여주고
    발성과 집중력을 키워준다.


우먼센스 특별기획 |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 7
각종 건강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 그렇지만 막상 나와 내 가족이 아프면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한 게 현실입니다. <우먼센스>는 매달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를 릴레이로 만나고 있습니다.

CREDIT INFO

취재
김은향
사진
이상윤,대한치매학회
2013년 12월호

2013년 12월호

취재
김은향
사진
이상윤,대한치매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