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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형제들

On February 18, 2011 1

마이크 앞에서 분노하며 불평등을 얘기하던 래퍼들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좀 비싸고 멋지고 잘나가.” 솔직히 말하면, 고등학교 이후로 힙합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학생 때는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답답했는지 힙합에 담긴 가사가 다 내 이야기 같더니 사춘기가 지나고 나서는 눈여겨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작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에미넴을 보았다. 오랜만에 그의 얼굴을 보면서 ‘에미넴은 늙지도 않는구나’ 싶었는데 줄어든 바지통에서 세월이 흐른 게 느껴졌다. ‘예전에도 저런 바지를 입었었나?’ 내가 기억하는 에미넴은 머리에 MLB 모자를 뒤집어쓰고 다리 하나가 더 들어갈 것처럼 큰 바지를 입은 모습이지만, TV 속의 그는 다리 핏이 드러나는 검은 바지에 워커를 신고 있었다. 에미넴이 큰 티셔츠를 입고 인상을 쓰면서 어두운 골목에서 걸어 나오는 촌스러운 모습을 상상하던 내가 거꾸로 촌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힙합 뮤지션인 제이지는 수트를 즐겨 입고, 카니예 웨스트는 패셔니스타라는 사실을 왜 눈여겨보지 않은 걸까. 그들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내리는 뮤지션이라는 것보다 비욘세의 남편으로, 2009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의 테일러 스위프트가 수상하는 순간에 난동을 부린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이런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좀 비싸고 멋지고 잘나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슈프림 팀은 댄디한 스타일로 남자들의 워너비가 되었고, 버벌 진트는 체크 셔츠를 입고 단아하게 서 있는 자신의 사진 위에 분홍색 글씨가 모던하게 쓰여진 음반 재킷을 내놓았다. 하지만 나는 11년 전 허니패밀리의 멤버인 길(지금은 리쌍의 멤버이자 예능인인)이 한쪽 앞니가 없는 무서운 인상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아직도 힙합의 전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시절 힙합 그룹의 뮤직 비디오는 항상 쥐가 나올 것 같은 지하도에서 찍던 걸 생각하면 지금은 얼마나 세련되어졌는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돈데 말이다.

사람들은 ‘힙합이 죽었다’고 얘기한다. 사실 2007년 나스가 싱글 음반 을 발표했을 때 ‘힙합이 죽었다’는 문구가 화제가 되었고, 힙합의 전성기를 지나온 래퍼들은 다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힙합은 1980년대 백인 주류 사회에 반발해 ‘깡패’가 되기를 했다. 미국 내에서 사회적 약자인 흑인은 비참한 거리 생활로 인한 분노와 억압의 감정으로 범죄를 일으켰고, 그런 인생을 살며 마약과 폭력, 섹스 등 추악한 면을 노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의 현실을 비꼬았던 거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왜 그렇게 ‘블링’한 액세서리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하지만 힙합이 R&B와 함께 1990년대부터 2000년 중반까지 미국 음악계를 이끄는 축이 되면서 반복되는 스타일이나 단조로운 비트, 새로울 게 없는 멜로디 등으로 슬럼프에 빠졌고, 점차 대중화되면서 엔터테인먼트사에서는 힙합을 돈벌이로 이용했다. 그때부터 힙합은 애초에 무엇을 위해 태어난 음악인지를 잊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정당화하며 점점 쾌락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불평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가사는 단지 마약·폭력·섹스를 추종하는 음악으로 변질된다. 남부 힙합 같은 경우 중독성은 있을지 몰라도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오직 말초 신경만을 자극하는 클럽 음악이 된 것처럼 말이다.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힙합 음악이 이제 빌보드 차트에 오르내리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힙합은 더 이상 특정 계층의 노래가 아니라 대중가요가 되었다. 대중적인 노래에는 아무래도 사회를 비판하거나 남에게 욕설을 퍼붓기 힘들기 때문에 명분은 사라진 데다 여러 사람에게 팔려야 하기 때문에 귀가 즐거운 곡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듣기에 좋은 음악을 한다는데 말릴 생각은 없다. 오히려 사회적 명분이고 뭐고 따지는 게 머리 아픈 사람들에겐 오히려 더 반가운 얘길지도 모른다. 사회적 명분을 잃은 힙합은 ‘음악적인’ 명분을 찾아가고 있다. 세상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가벼운 일회용 음악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니란 말씀. 작년만 해도 에미넴이 고해성사 같은 가사와 폭발적인 랩을 담은 음반 를 발매해 2010년 미국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했고, 카니예 웨스트는 새 음반 으로 힙합 그 이상의 음악을 천재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힙합이 황금기에 비해 한풀 꺾인 건 사실이지만 아직도 음반 시장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힙합 뮤지션은 더 이상 동네 찌질이가 아니라 파파라치가 따라붙는 스타가 되었다. 그들 스스로도 시대의 반항아라기보다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아티스트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가진 자’가 되고 나서는 ‘블링’한 액세서리에 대한 집착도 잊고 패셔니스타가 되어가는 듯하다. 힙합의 클리셰라면 청바지를 내려 입고 팔에 새긴 문신을 과시하기 위해 입은 슬리브리스 위에 은색 체인 목걸이를 한다거나, 통 큰 바지에 박스티를 입은 모습이지만 그런 클리셰는 깨어진 지 오래다. 재기발랄한 힙합 뮤지션의 선택은 MLB보다는 스투시 쪽으로 기울어졌고, 뉴에라 모자를 쓰지 않으면 직업이 뭔지 모를 정도로 각자가 스스로의 방식대로 입는다. 최고의 제멋대로 룩을 보여주는 사람은 바로 카니예 웨스트. 그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미료가 ‘아브라카다브라’ 무대에 쓰고 등장하는 발광 선글라스를 공연에 쓰고 나타나기도 하고, 위아래가 모두 빨간색으로 된 수트를 입고 자신이 루이비통과 콜라보레이션해서 만든 빨간색 신발을 신는 등 음악만큼이나 천재적인 스타일링 센스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들어 힙합이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일렉트로닉 댄스 곡에 힙합 느낌을 가미하고, 강렬한 댄스 리듬에 랩을 절묘하게 섞은 음악이 유행하는 거다. 블랙 아이드 피스나 파 이스트 무브먼트 등이 퍼트리고 있는 이런 장르의 신나는 음악이 전 세계의 클럽을 흔들고 있다. 그들의 노래를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빅뱅의 지드래곤과 탑이 결성한 ‘GD&TOP’ 유닛이 부르는 노래를 생각하면 된다. 멜로디는 다소 촌스럽고 익숙할지 몰라도 비주얼은 실험적이라고 할 만큼 최첨단을 달린다. 예전처럼 사람들이 힙합 바지를 끌고 다니진 않지만 힙합은 이제껏 멈춘 적이 없다.


EDITOR: KIM YOON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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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YOON JUNG

201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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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YOON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