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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썸썰

On November 10, 2017 0

서늘한 바람이 불자 문득 떠오른 그때 그와의 추억.

  •  1  모처럼 동네 친구들과 놀다 버스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한겨울이라 추운 날씨에 걸어가기에는 조금 먼 거리였지만, 썸남을 보유하고 있던 나는 집으로 향하는 내내 그와 통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 핑크빛 대화가 오갔고, 약 20분쯤 지났을까. 저 멀리 서 있는 썸남을 발견했다. 편의점에 다녀온 듯 그가 내게 건넨 검은 봉지, 안에는 캔커피가 잔뜩 들어 있었다. “바로 마시지 말고, 손난로로 써.” 그때 그 말이 캔커피보다 훨씬 따뜻하게 느껴졌다.
    - 손OO(28세)

  •  2  약 5년 전, 설레는 마음을 안고 대학교 MT를 떠났다. 그 당시 풋풋한 대학생이던 나는 하얀 피부에 까만 생머리, 전형적인 ‘보호본능자극형’ 외모의 같은 과 오빠와 썸을 타는 중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여느 MT의 전통이 그러하듯 모두가 잠든 밤 몇몇 학우는 매직펜을 꺼내 들었고, 나 또한 그의 얼굴에 낙서를 시도했다. 조용히 잠든 썸남에게 숨죽여 다가가던 찰나,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뜬 그. 내 손목을 덥석 잡으며 눈웃음을 날리는 모습에 마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물론 현재 모습은 전형적 ‘아재’지만 말이다.
    - 박OO(26세)

  •  3  이집트를 여행한 적이 있다. 특별한 경험을 꿈꾸던 내게 홍해 근처의 바다 스킨스쿠버 체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유명 외국 배우를 닮은 잘생긴 이집트인 강사라니. 일말의 고민 없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하필 그날따라 모자란 인원 탓에 단둘이서만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짧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금세 가까워진 우리는 고요한 바다 아래로 내려가 강습을 빙자한 스킨십을 나눴다. ‘바다 속 연인’이라는 그의 달콤한 농담에 로맨틱한 결말을 기대한 것도 잠시. 알고 보니 그, 아니 강사님은 진작 품절된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 박OO(23세)

  •  4  썸을 타는 중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코스가 있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영화 보기. 순항 중이던 그와 나의 데이트는 꽤 긴 영화의 러닝타임 덕분에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결국 썸남은 집 앞까지 나를 바래다주었고, 잘 자라는 인사를 하려는 순간 대뜸 그가 말했다.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나를 향해 썸남이 내뱉은 질문은 어마어마했다. “근데 우리 언제 사귈 거야?”
    - 이OO(25세)

  •  5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고등학생일 적, 친구의 소개로 한 살 연상의 오빠를 알게 되었다. 사진 속 그는 웃을 때 귀여운 덧니가 보이는, 매력적인 미소의 소유자였다. 꽤 여러 통의 문자 메시지를 매일매일 주고받던 우리는 드디어 직접 만날 날을 약속했다. 며칠 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의 식당에 들어가 마주 앉은 그와 나. 각각 주문한 돈가스와 햄버그스테이크가 테이블 위에 놓였고, 난데없이 썸남은 내 접시를 가져갔다. 그리고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건 남자가 잘라주는 거야.”
    - 박OO(28세)

  •  6  성년의 날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키스, 향수, 장미. 3가지 선물 중 하나쯤 받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던 나는 머지않아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남자친구가 없는 한 성년 여성은 우울하기 짝이 없었고, 아쉬운 마음에 친한 오빠를 향해 괜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마침내 찾아온 성년의 날 당일, 우연히 마주친 그는 내게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 안에는 향기로운 썸의 기운을 가득 담은 유리병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들어 있었다.
    - 박OO(22세)

서늘한 바람이 불자 문득 떠오른 그때 그와의 추억.

Credit Info

EDITOR
PARK SO HYUN
ILLUST
GANBI

2017년 11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PARK SO HYUN
ILLUST
GAN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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