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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EDITORS

Cha Seung Woo

On April 24, 2017 0

이 시대의 ‘참야만인’이자 본 대담의 발제자.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우연히 들은 단 3분여의 음악이 이후 삶의 모든 시간을 규정해버렸다.

최면의 효과는 꽤 강력해서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8비트 리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음악은 찰나의 쾌감을 가져다주지만 (물론 이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극상의 쾌락이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을 얻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실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다.  불면의 밤과 폭음, 신통치 않은 벌이. 그런 것을 온전히 내 삶의 부산물로 받아들이기 전까지 과거 몇 년 동안 그렇게 밤마다 마음의 기저에까지 들락거렸더랬다. 그런 이야기란 언제나 곁에 함께하는 인생의 파트너에게조차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일단 시답잖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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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우

차승우

  • 이수륜

    명실공히 홍대의 아이돌. 외모지수와 음악적 재능 공히 만렙을 자랑하는 괴물 중 괴물. 창백하고 도도한 느낌마저 풍기는 외모 탓에 종종 츤데레로 오인받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매력 만점 캐릭터다.

  • 한경록

    생활 체육인이자 (다년간 복싱을 연마해 신인왕전 출전 기록도 있는 실력자) 홍대 인디의 개척자 크라잉넛의 핵심 인물. 자신의 생일을 기어이 홍대 3대 명절(크리스마스, 핼러윈 그리고 ‘경록절’)의 반열에 올려놓을 정도의 자타 공인 슈퍼스타. 그만큼 음악계 선후배 사이에서 인망이 두텁다.

  • 방준석

    전설의 그룹 유엔미 블루 출신으로 현재는 음악계와 영화계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훈훈한 옆집 오빠 같은 외모의 미중년. 이번 대담 라인업의 맏형이자 조금은 공격적 포지셔닝으로 토론에 쫄깃한 텐션감을 부여했다는 평가.

  • 김해원

    대한민국 ‘모던 포크’의 기수이자 한대음의 새로운 연인. 솔로 활동은 물론 김사월과의 듀엣 활동으로도 평단, 관객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일견 음유시인·감성 변태의 풍모가 느껴지나 알고 보면 뚝배기처럼 묵직하고 소탈한 사내.

THE KIDS ARE ALRIGHT

사실 객원 에디터 요청을 받고 내심 기뻤다. 대담을 핑계로 나와 비슷한 영혼을 지닌 이들을 만나 소통해보고픈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무속인은 무속인을 알아본다고, 음악 하는 이들 간에는 그렇게 주고받는 시그널이 존재한다. 대부분 비논리적 형태 의식 체계를 지녀서인지 애먼 부분이 발달한 탓이리라. 나를 포함해 홍대 지역에 적을 두고 활동하는 각기 다른 분야의 음악인인 김해원, 방준석, 이수륜, 한경록이 대담에 참여했다.

 

“마음이 담긴 음악은 흡사 마법처럼 작용한다. 음악가에게 노랫말과 가락은 각각 주문을 외우는 행위, 마법 도구일 테다. 무대란 의식을 행하는 제단에 다름 아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마법을 성공적으로 행하기 위해 제물은 필수 불가결의 요소다. 창작에 수반되는 에너지가 곧 그것이며 번민과 고통의 총량만큼 마법에 날이 서게 되는 것이다.”

차승우 우리가 공통적으로 근거지 삼아 활동하는 홍대라는 공간에 대한 얘기로 서두를 꺼내볼까 해요. 모두 적극적으로 얘기해주세요. 사리지들 마시고. 방준석 그치. 뭉쳐도 술이나 마시다 끝나기 십상이지. 이수륜 제가 홍대에서 처음 찾은 곳은 클럽 드럭이었어요. 크라잉넛 형들 군 입대 전 마지막 공연 보러 간 게 기억나네요. 중학생 때였죠. 방준석 드럭? 거기를 아네. 와, 그게 없어진 지가 언젠데. 한경록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애들이 누릴 문화가 너무 없었으니까. 차승우 근데 홍대엔 더 이상 그런 상징적 공간도 없고. 그 당시가 라이브 클럽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전문 레이블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지. 한경록 지금은 삼거리포차가 있지. 이수륜 ‘감주’밖에 없어요. 감성주점.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방준석 그런 의미에서 홍대가 약간 물리적 공간보다는 정신적 공간에 가까운 것 같아. 늘상 오가지만 딱히 갈 데가 없다니까. 차승우 그래도 이 4명은 밴드 신에 몸을 담고 있거나 경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홍대 클럽 문화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도 많겠지만 해원이 같은 경우는 포크 쪽이라 약간 다른가? 김해원 전 클럽 빵에서 공연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바다비에서도 했고요. 드럭에 가본 적은 없어요. 다만 고등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학교에 밴드부가 있었거든요. 2학년 무렵 들어가보니 선배 형들이 크라잉넛, 노브레인 노래를 커버하고 있었어요. 이수륜 저도 커버한 적 있어요.
김해원 그렇게 처음 접했어요.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누군가가 “베이스를 잡아라, 베이스는 칠 수 있을 거다” 하대요. 일단 친구한테 좀 배우고 같이 커버도 하고요. 이수륜 전에 얘기한 적 있는데, 기타를 차차형 때문에 시작한 거예요. 차승우 나?! 어쩌다가 그런…. 김해원 맞아요. 그때 그런 상징적 느낌이 있었어요. 이수륜 노브레인이 ‘아름다운 세상’ ‘청춘 98’을 냈는데, 듣고 “이거 뭐지?” 했어요. 제가 시골에 있는 대안 학교 다니던 때라 그런 음악 접하기도 쉽지 않을 때였거든요. 차승우 홍대 정문을 기점으로 신촌 쪽은 스팽글 있고, 재머스 있고, 더 넘어가면 빵 있고. 한경록 빵은 이대에 있다가 옮겼지. 차승우 우리가 적을 두던 펑크, 하드코어 쪽은 서쪽, 상수 쪽이었지.

방준석 (한경록, 차승우 가리키며) 근데 내가 유엔미블루로 활동하던 블루데빌에서는 너네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 한경록 거기는 너무 럭셔리해가지고. 차승우 양주를 먹는 데라는 인식이 강했지. 지금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도 초반쯤 얘기를 하는 건데. 이수륜 헐, 나 초딩 때네. 김해원 블루데빌이 술집이었어요? 차승우 클럽인데, 너무 고급진 느낌이었달까. 한창 우리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는데 일단 돈이 없고, 알바를 하는 그런 싹싹한 애들도 없었어. 쇠사슬 칭칭 감고 펑크펑크하던 시기였고, 왠지 블루데빌 하면 뭔가 럭셔리하고 그런 느낌이라 우리의 타도 대상 같은. 그러다 드럭이랑 블루데빌이 합쳤는데, 각각 개성을 가지고 있던 게 오히려 퇴색되고 평범한 클럽이 돼버린 거지. 한경록 우리가 군대 갔더니 다 말리더라고, 클럽들이. 이수륜 저는 ‘노브레인이랑 크라잉넛이 그런 움직임을 지속시켜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한경록 그런 클럽 신을 개척하면서? 이수륜 네. 펑크 신이 쇠퇴하면서 싹 밀린 거예요. 저는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이 안 들거든요. 방준석 나는 오히려 반대로 굉장히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선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차승우 수륜이는 최초로 대중음악의 한 자락에서 서브컬처를 동반한 무브먼트가 생기던 때를 설명하려는 거 같아. 나 역시 그때가 펑크 록을 듣고 머리를 염색하고 코 뚫고 귀 뚫고 ‘나는 펑크다’라는 자각을 지닌, 이를테면 그런 별종이 막 나타나던 시기라고 생각하거든. 간단히 말해 음악적 부분 외에도 문화적 측면에서 좀 더 그런 움직임이 지속됐어야 하지 않나 그런 얘기인 것 같아. 방준석 그건 맞아. 그런 식으로 가면 정치로든 문화로든 엄청 풍요로워질 텐데. 차승우 정치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대한민국의 환경 자체가 그런 방종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아니야. 방준석 그니까 난 그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싶었어. 총체적 시스템에 관한 얘기로 들어가야 하는 거라. 음반 시스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는 거고. 그 와중에 모두 선전하면서, 맨땅에 헤딩하면서 여기까지 온 건데. 차승우 초창기였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추진 에너지’가 있었는데, 그 이후로 장르적 다양성은 확보했지만 초반의 역동적 에너지는 사라진 거지. 이수륜 저는 펑크 록이 세상을 정복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중학생 때는 뭘 모르니까 그냥 조선 펑크 음반 사면 거기 있는 밴드들이 다 잘나가는 줄 알았죠. 한경록 뭐 그냥 신나게 놀았지, 잘나갔다기보다는. 이수륜 근데 언제부터인가 좀 아쉽더라고요. 고등학생 때 실용음악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레 그쪽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기도 했고. 차승우 뭔가 코어가 빠진 느낌이라는 거야? 이수륜 빠진 정도가 아니고 없어진 느낌. 그리고 어쩌다가 홍대에 들어오게 됐어요. 저희끼리 신촌 클럽을 빌려 공연했는데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게 칵스고요. 그때는 오디션 볼 만한 곳이 클럽 FF나 프리버드밖에 없었어요. 클럽 빵 같은 곳도 있기는 했지만.

한경록 그러고 보니 해원 씨도 빵에서 시작했다고 했죠. 어떤 음악이었어요? 김해원 저는 2012년부터 솔로로 통기타 치면서 노래했어요. 홍대 언저리에서 이런저런 활동하다 동료도 생겼고 지금 김사월과 듀엣을 꾸린 것도 그 과정에서 만난 인연이고요. 좀 전에 수륜 씨가 한 말처럼 저도 그전에는 어디서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FF나 프리버드는 아무래도 밴드에게 특화된 무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방준석 요새는 대안적인 공간도 꽤 생기지 않았나. 제비다방이라던가. 차승우 그거는 되게 요즘 거지, 제비다방이나 1969 같은 곳들. 이수륜 2000년대 초반에 형들 공연하는 걸 보고 자랐으니 아까 말씀하신 그런 에너제틱한 분위기가 어떤 건지 알거든요. 근데 막상 제가 활동할 시기가 되니 분위기가 영 시원찮은 거예요. 저희같이 일렉트로 개러지류의 사운드를 구사하는 팀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초반에는 극소수의 팬들로 간신히 유지되던 형편이었어요. 신 자체가 없었던 거죠. 한경록 내가 볼 때 요즘은 프로젝트성 유닛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좀 밴드답게 지지고 볶는 맛이 없달까? 방준석 어, 나도 그거 되게 공감하는 게 밴드는 내가 볼 때는 딴 거 없어, (주먹다짐을 하는 시늉을 하며) 지지고 볶고! 밴드 음악의 소울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거야. 이수륜 저는 밴드 신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포크 음악에는 밀렸다고 생각해요. 말랑말랑한 음악들요. 차승우 해원이 입장에서는 과연 수긍할지 모르겠네. 포크는 말랑말랑한 음악이 아닌데, 사실은. 김해원 포크 신 안에는 그런 (말랑말랑한) 친구도 있고, 저 같은 부류도 있거든요. 실용음악을 베이스로 해서 나오는 팀이 있는데, 공연을 어느 정도 하다 결국 음원 위주로 돌리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어둡고 쓸쓸한 옛 감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 반면 트렌디한 경향을 좇는 분도 많으세요. 인디 신 안에도 되게 많아요. 그래서 공연을 하러 가도 위화감을 느낄 때가 많았고요. 차승우 하하. 알 거 같아. 근질근질한 노랫말들. 막 소풍 가야 될 거 같고. 김해원 그걸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제 감성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2010년 이후로 되게 많이 나왔죠. 차승우 나는 여러 사람이 그런 똑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몰개성적이고, 징글맞고. 방준석 확실히 유행이 있기는 하지. 이수륜 저는 진짜 <무한도전> 송이 좀 힘들더라고요…. 방준석 <무한도전> 송…? 그게 뭐야? 차승우 <무한도전> 가요제 이런 거 있잖아. 공중파 방송이 홍대에서 핫한 신예를 데려다가 스타 탄생시키는 경우가 많지. 혁오 같은 경우는 출중한 면모가 있지만 거기 나와서 날개를 단 거지. 방송이란 게 그 정도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방준석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아까 좀 재밌는 대목이 있었거든. 수륜이가 포크 음악을 규정하는 듯한 말을 한 거 같은데 이게 너무 재밌는 거야 난. 포크라는 어원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 포크가 뭐야? 이수륜 사실 잘 몰라요. 김광석이 제가 아는 최초의 포크 음악. 방준석 포크가 무언지 따지자 치면 거슬러 올라가서 딜런 형 나와야 하고 더 위에까지도 가야 하는 거지. 사실 록의 뿌리와도 맞닿아 있는데, 여기서는 말랑말랑한 걸로 규정한단 말이야. 한경록 내 생각에는 수륜이가 말한 게 포크라기보다는 요새 유행하는 어쿠스틱 사운드를 얘기하는 것 같아. 근데 내가 듣기로도 낙원상가에서 일하는 형들이 “누구 떠서 요즘 전자 악기 안 팔려, 통기타만 팔려” 하는데, 나는 그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 록 밴드의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지, 아니면 분위기가 이렇게 만들어져서 그런지, 아님 대중 매체 영향일까? 차승우 음악적 성취도와 상관없이 특정한 것만 양지에 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고, 그렇지 않으면 한 달에 월세 내기조차 힘든 생활이 이어질 때도 많지. 이건 문제가 있다고 봐. 이수륜 요새 경향이 너무 빠르게 바뀌는 거 같아요. 저희 밴드 음악도 진짜 트렌디한 것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고 느끼거든요. 요새 20대 초반 애들 시나위를 아무도 몰라요. 한경록 <쇼미더머니> 보고, 힙한 뮤지션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되게 낯설겠지. 사운드 자체가 이상한 거야. 록 보컬보다는 <나는 가수다> 스타일 보컬을 선호하는 분위기인 것 같아. 차승우 그러면 솔직하게 이야기해봅시다. 예전에는 호시절이 있었다고들 생각해? 몇몇 밴드의 성공 말고 신 자체가 주목받던 때가?
난 이쪽은 언제나 변방이었다고 생각해. 방준석 1990년대 인디 신 초기에는 그런 게 있었지. 이수륜 제 생각에는 노브레인, 크라잉넛이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록이었다고 생각해요. 김해원 변방일 수 있는데요, 저희가 봤을 때는 멋있어 보였어요. 지금은 근데 록을 한다고 해서 멋있어 보이지 않아요. 차승우 뭐 세기말 즈음해서 대중음악의 대안이다 뭐다 하면서 말은 많았지. 이수륜 근데 그걸 모 밴드 노출 사건으로 확 말아먹었죠. 김해원 큰 영향이 있었죠. 이수륜 진짜 큰 영향이 있었어요. 방준석 나는 절대 아니라고 봐. 차승우 나는 그때 유학 중이어서 별 감각은 없고…. 방준석 만약 그게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김해원 밴드들이 좀 더 텔레비전에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방준석 그랬다고 뭐가 변했을까? 난 절대 안 변했을 것 같아. 이 나라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 보자고. 여기까지 버틴 사람들. 편하게 한 사람들 몇 명이나 될 것 같아? 우리가 다 아는 사실 아니야, 불만만 품지 말고 이 판을 제대로 봐야지. 난 정말 홍대에 한동안 굉장히 불만이 많았거든. 판이 이런 걸 어떻게 하겠어, 바꿔야 할 거 아냐. 그럼 뭘로 바꿀 건데? 없어, 음악밖에 없는 것 같아. 좋은 음악 만들고 계속 여기서 즐겁게, 힘들지만 어떻게 즐겁게 살지 고민해야지. 경록절도 있잖아!

이수륜 제가 궁금했던 게, 록 음악으로 재미를 본 적이 있나요? 차승우 조용필 아저씨가 생각나기는 하는데 록을 베이스에 깔고 있었지만 좀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이 되고, 신중현 아저씨는 당대에는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이었지만 그게 너무 금방 끝나버렸고. 수륜이가 하는 얘기 이해가 가는 게 그래, 여기서 몇 분은 인구에 회자되는 명반 또는 그런 리스트에 자기 이름이 올라간 사람도 있을 거고, 크라잉넛은 한국 인디 음악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명성에 부합하는 부를 얻었나요? 한경록 톡 까놓고 얘기해 부와 명성이라고 할 수는 없지. 그냥 겨우겨우, 어떻게 보면 전업으로 음악을 하면서 그냥 신세 안 지고 살아가는 정도? 직업란에 로커라고 쓸 수 있는 정도? (일동 웃음) 차승우 그러면 오늘의 정리를 좀 합시다. 못다 한 얘기가 너무 많은데…. 아무튼 오늘 이런 신박한 조합으로 만남을 가져봤습니다. 모두 음악을 하지만 장르와 세계관이 각각 다른 사람들인데. 앞으로 각자 원대한 계획이 있다면 들어볼 수 있을까요? 김해원 앞으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발표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해서 꾸준히 음악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방준석 방백도 방백이지만 솔로 활동 계획을 세우는 중이야. 어릴 때 기타 치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는데. 20년 전쯤엔가 상처 받고 노래를 놓았어요. 그래서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고. “Rock’n’roll, change the world”라는 문구가 생각이 나네. 음악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어린 나이에. 사실 맞아. 음악이 세상을 바꾸고 있어. 지금도. 이 힘이 그나마 세상을 지탱해주는 것 같아. 상상해봐. 홍대 음악 신이 사라진다면. 그건 이 나라에서 그나마 위태롭게 숨 쉬고 있는 청년 문화의 바닥이 꺼지는 거라고 생각해. 그 지점에서 우리가 굉장히 자만하고 이런 게 아니라, 역할을 하고 싶은 거지. 한경록 정규 8집 음반 작업 중인데, 일단 노래 한 곡은 완성한 상태고. 3년 만인 것 같아. 올해 안에 발표할 계획이야. 내가 보기에는 오늘 다 멋있는 사람들만 온 것 같은데 그 멋을 오래도록 지켰으면, 그런 게 트렌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 멋있는 사람이 되려면 즐기자. 재미없으면 왜 해? 나는 지금 무대가 너무 재밌어요. 그래서 어떤 짜증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재미를 기억하면 버틸 수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계속 재밌게 까불겠다는 얘깁니다. 이수륜 전 줄곧 외부인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너무 외딴곳에 있는 것 같은. 건강 관리도 하고. 저는 기타리스트로서 더 발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착하게 살자는. 차승우 착하게 살지 마. 이수륜 그리고 지기 싫어요. 상업적 음악에 밀리고 싶지 않아서. 한경록 그게 있어야지, 당연히. 좀 더 솔직해지면 좋겠어. 어떻게든 돈도 벌고 싶잖아. 그러면 타협하라는 게 아니라 벌 수 있는 뭔가를 구상한다든가, 노력한다든가. 근데 멋있게 하면 좋겠어. 같이 고민하고, 같이 술 마시자. 차승우 오늘 이렇게 모여 얘기 나눌 수 있어 영광입니다. 모두 저마다의 음악, 저마다의 즐거움이 있잖아요. 그거 잊지 말고 부디 화끈하게 살면 좋겠어요. 좋은 곡 많이 쓰시고.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 시대의 ‘참야만인’이자 본 대담의 발제자.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우연히 들은 단 3분여의 음악이 이후 삶의 모든 시간을 규정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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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SIN JEONG WON

201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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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 JEONG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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