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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FINITE MAN

On April 28, 2017 0

신예 아티스트 인피니트 콜스는 이른바 ‘래퍼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스스로 아이덴티티를 개척해낸 것이야말로 그의 진짜 성공 비결이다.

“다들 진짜가 되고 싶어 하지만, 세상을 향해 눈뜨는 법은 모르는 것 같아요.”
맑은 겨울 오후, 브루클린의 로프트에 앉아 있는 스물세 살 알앤비 싱어이자 배우, 댄서 겸 모델인 인피니트 콜스(Infinite Coles)는 사색에 잠긴 듯 말한다. 그래서 무엇이 진짜라는 이야기일까?
“사랑, 충성, 존경요.” 그가 대답한다. 꽤 직설적이게 들리는 답변은 아버지이자 힙합 뮤지션 그룹 우탱 클랜 멤버 고스트페이스 킬라의 노랫말에도 등장한 말들이다. 진짜가 된다는 건 여러모로 그 의미가 복잡하다.
개인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지만, 사회적 기준을 이기고 비로소 성공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콜스의 경우, 당대 전설적 래퍼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는 일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콜스는 줄곧 게이로 알려졌다. 분노와 불만으로 가득한 10대 시절, 우탱의 데뷔 음반 은 거의 10년 이상 거리에 울려 펴졌다. 멤버는 각자의 영역을 구축했고, 거리 위 소년들의 시선을 모으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거친 도그마는 그에게 개인적 모욕이자 상처로 다가왔다.
“게이를 경멸하는 단어 ‘패곳(Faggot)’은 그들이 하는 랩에 쉴 새 없이 등장해요.” 콜스는 아버지와 동료 래퍼를 가리켜 말한다. “저를 당황시켰어요. 스스로를 옷장 속에 처박아야 할 것 같았죠. 마치 제게 하는 말 같았거든요.”
이런 일 때문에 콜스와 우탱 사이에는 늘 적당한 거리가 있었고, 오히려 조금 떨어진 현재 두 사람은 더 좋은 관계가 되었다. “아버지는 용돈도 주고 서로 대화도 나누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거의 없어요.”

물론 그의 어린 시절은 뉴저지의 우탱하우스(그룹의 홈타운인 스태튼 섬이 아닌)에서 보냈다. 수많은 래퍼가 드나들던 그곳이다.
“가족 여행은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 수단이었어요.” 콜스가 회상에 잠긴다. “르자(RZA) 삼촌은 우리를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도미니카공화국의 카사 데 캄포, 디즈니 월드에도 데려갔죠.” 전 우탱 하우스에서 처음 노래를 불렀어요. 가족끼리 크리스마스 축하 인사를 건네는 중이었는데, 제가 ‘O Holy Night’을 부르자 ‘와, 목소리가 정말 좋구나!’라고 삼촌이 말해줬어요.”

르자에 대한 콜스의 존경심은 확고하다. 뛰어난 래퍼이자 프로듀서, 필름 제작자, 배우 겸 작가인 르자는 그의 인생뿐 아니라 음악적 재능을 갈고닦는 데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이다. 고스트페이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콜스의 음악에 드러나는 모든 것은 <피치포크(Pitchfork)>에서 “지금껏 접한 최고의 다채로운 스토리텔링 랩”이라며 극찬한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어릴 적에는 스티비 원더, 마빈 게이, 루더 밴드로스, 아레사 프랭클린의 곡을 즐겨 듣느라 깨닫지 못했다고. 나중에야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아버지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으면 좋았을 테죠. 더 좋은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아버지는 주변 것들을 기록해내는 작사 능력이 탁월했어요. 아마 나무를 보면서도 마리화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걸요.”

콜스는 여전히 틈새 공격에 열중한다. 올봄 콜스의 새 음반이 발매될 예정이고, XL 레코딩스에 헌정하는 프로젝트 ‘Everything Is Recorded’도 선보인다. 레코드 레이블 소유주 리처드 러셀의 진두지휘로 컬렉티브 프로젝트에서는 콜스, 샘파, 이베이 등 신예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만나볼 수 있다. 이제 그의 커리어는 음악 분야를 넘어섰다. 프로젝트 그룹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의 멜라 머더와 매거진 <데이즈드>의 단편 필름 <갱(Gang)>에 캐스팅되었고, 넷플릭스 영화 <헤드리스(Headless)>에서는 이른바 ‘게이 갱스터’로 등장한다. 비비 보렐리(Bibi Bourelly)의 곡 ‘Sally’의 뮤직비디오에서도 그의 그루브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패션계에서도 꾸준히 인지도를 쌓았다고. 집시 스포츠(Gypsy Sport)와 로스앤젤레스의 떠오르는 브랜드 위아모탈스(We Are Mortals)의 모델을 맡았고, 스트리트 웨어 레이블 왓에버21(Whatever21)의 홍보대사로도 발탁됐다.
아직 커리어를 쌓은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콜스는 이미 자신이 정한 의무 3가지를 이뤘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고, 가혹한 음반 산업 시장에서 스스로를 확립했으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세웠다.
“사람들은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요. 가장 힘든 건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었어요. 내가 누군지 알면, 기회는 알아서 오더라고요!”

신예 아티스트 인피니트 콜스는 이른바 ‘래퍼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스스로 아이덴티티를 개척해낸 것이야말로 그의 진짜 성공 비결이다.

Credit Info

EDITOR
JILL DI DONATO
PHOTOGRAPHER
MIKEY ASANIN
STYLIST
SAM BATES

2017년 04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JILL DI DONATO
PHOTOGRAPHER
MIKEY ASANIN
STYLIST
SAM B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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