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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of the year

2016년에 일어난 이슈

On December 29, 2016 0

2016년 TV와 음악, 영화, 출판계에서 일어난 이슈를 필자 8인이 되짚어봤다. 그 안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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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라이즈>

올해의 익숙함

2016년의 극장가를 되돌아보면 익숙함의 대잔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11월 10주년을 기념해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이 관객 32만 명을 동원했을 때(2005년 개봉 당시 관객 수는 약 17만 명이었다), 영화 수입사 사이에서는 재개봉 판권 구매 붐과 함께 이미 보유한 판권의 재개봉 검토가 줄을 이었다. 이를 방증하듯 올해 유독 추억의 영화가 봇물 터지듯 극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터널 선샤인>의 성공에 이어 올해도 극장가에서 가장 힘이 센 추억은 사랑이었다. <500일의 썸머>가 관객 약 15만 명을 동원해 올해 가장 성공한 재개봉 영화로 기록 중이며, 현재 상영 중인 <노트북>이 약 14만 명을 동원하며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이 추억의 영화들이 기록한 관객 수는 올해 개봉한 우디 앨런의 신작 <카페 소사이어티>(약 13만 명),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마이 리틀 자이언트>(약 12만 명),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헤이트풀8>

(약 12만 명)의 관객 수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소위 예술 영화, 다양성 영화로 불리는 시장에서 거장 감독들의 신작이 거둘 수 있는 관객 수 위에 추억의 재개봉 영화가 군림하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올해 <인생은 아름다워>(약 13만 명), <죽은 시인의 사회>(약 6만 명), <비포 선라이즈>(약 5만 명), <굿 윌 헌팅>(약 5만 명) 등의 많은 작품이 다시 극장에 걸려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들의 관객 수 역시 많은 예술 영화, 다양성 영화에게는 멀고도 먼 꿈의 숫자다.

물론 관객이 다시 선택한 이 영화들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매력을 가진 작품들이 분명하고, 이미 경험했던 익숙한 감정을 새롭게 소비하는 관객의 수요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재개봉 붐을 통해 영화를 처음 접하는 새로운 관객도 물론 있을 것이다. 또 다양한 플랫폼과 기기를 이용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재생할 수 있는 추억의 영화를, 굳이 극장에서 관람하는 관객의 움직임도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다.

멀티 채널 시대에 여전히 극장을 최상의, 새로운 경험(그것이 익숙한 영화가 주는 익숙한 감정일지라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관객의 움직임은 영화 업계에는 마치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러브 액츄얼리>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 익숙함을 재소환하는 과정에서 관객이 빼앗기고 있는 새로운 선택지는 없었을까? 극장의 한정된 상영관과 매주 쏟아지듯 개봉하는 영화 10여 편, 재개봉 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멀티플렉스의 단독 개봉 시스템 속에서 관객은 새로운 창작자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이미 조금씩 빼앗기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재개봉 붐에 가려진 반가운 깜짝 뉴스도 있었다. 바로 익숙한 듯 새로운 영화들의 최초 개봉 사례였다. 그동안 영화제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만날 수 없었던 알폰소 쿠아론의 걸작 SF <칠드런 오브 맨>(2006)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데뷔작 <환상의 빛>(1995), 실뱅 쇼메의 혁명적 애니메이션 <벨빌의 세 쌍둥이>(2003) 같은 작품이 올해 국내 스크린을 통해 정식으로 개봉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아직 스크린에서 제대로 만나지도 못한 작품이 너무 많다. 김신형(KT&G 상상마당 시네마 프로그래머)

<분노의 여신들>

<분노의 여신들>

<분노의 여신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올해의 즐거움

바야흐로 페스티벌 전성시대다. 우리나라 이야기를 하려는 건 맞지만, 비단 국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11월 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네온 라이츠 페스티벌에는 폴스, 투 매니 디제이스, 시규어 로스, 유나 등 화려한 라인업을 섭외했다. 그 외에도 올해 프리마베라 사운드를 비롯해 후지록 페스티벌 20주년, 서머소닉 페스티벌 등 다양한 페스티벌이 사랑을 받았다. 올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페스티벌 천국이었다.

봄·가을은 피크닉 지향적인 스타일의 축제가, 여름부터 10월까지는 전자 음악 축제를 비롯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알앤비 페스티벌이 열렸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부터 스펙트럼 댄스 뮤직 페스티벌, 아울 페스티벌 등 음악적인 폭이나 열리는 지역의 다양성도 커졌다. 그 덕분에 예서나 지바노프처럼 무대를 접하기 힘든 한국 음악가부터 헤이와이어, 팻 메시니 등 쉽게 볼 수 없는 해외 음악가까지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음악 팬으로서는, 그리고 음악가로서는 좀 더 갈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진다는 점에서 반길 일이다. 물론 이런 페스티벌 자체가 기쁨만으로 차 있는 건 아니다.

일부 음악가는 많은 축제에 자주 등장했고, 어떤 페스티벌은 아쉬운 점도 남겼다. 올해는 내한 공연 축제이기도 했다. 당장 11월만 해도 갈란트, 혼네, 루시 로즈, 블러드 오렌지, 네온 인디언 등 많은 음악가가 내한했다. 내한에서는 디제이 역시 마찬가지다. 케익샵과 피스틸 등 이태원 여러 클럽에서는 이름난 디제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을 정도다. 시간과 돈을 갖춰야 한다는 다소 어려운 전제가 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던 2016년이었다. 칼럼니스트 블럭

올해의 슬픔

‘프린스, 데이비드 보위, 파이프 독, 존 베리, 모리스 화이트의 죽음’ ‘유난히 길고 더웠던 여름’ ‘혐오와 폭력’. 11월에 들어서며 2016년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강렬하게 남는 기억들이다. 나의 청소년기를 지탱해준 뮤지션들의 죽음은 아직도 믿기지 않고 기억하기조차 싫은 더위 때문에 분노와 함께 여름을 보냈고, 처음으로 환경에 관심을 가졌다. 추모를 위해 방문한 강남역과 시청, 그곳에서 느낀 감정 역시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아노니의 <Hopelessness>가 가장 기억에 남는가 보다. 그녀가 앤서니 헤가티가 아닌 아노니로 발표하는 첫 번째 음반에는 절망과 분노, 슬픔이 매 순간을 이끈다. 음반은 MTF 트랜스젠더인 그녀가 바라본 세상 그 자체다. 드론은 일상의 나를 파괴하고(‘Drone Bomb Me’), 지구는 온난화로 고통 받으며(‘4 Degrees’), 미국은 정치적으로도 체제적으로도 점점 폭력을 향해 나아간다(‘Crisis’ ‘Obama’ ‘Marrow’). 남성의 폭력성(‘Violent Man’) 역시 그녀가 이야기하는 절망 중 하나다. 그녀의 웹사이트에 전곡 한국어 해석을 첨부한 덕에 언어적 제약 없이 그녀의 의도를 천천히 읽을 수 있었다.

음반을 몇 번이나 돌려가며 들은 가사는 이상하리만큼이나 올해 내가 겪고 본 것과 비슷했다. 이후 웹사이트를 닫고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들은 음악은 경쾌하고 어느 순간에는 기쁘기까지 했다. 그녀가 허드슨 모호크를 프로듀서로 참여시킨 의도는 아마 이 순간을 위해서였을지 모른다. 몇 번의 반복 재생으로 얻은 두 번의 느낌은 <Hopelessness>는 메시지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완벽함에 가까운 음반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했다. 아노니는 현재의 문제에 관해 슬픔과 절망을 노래한다. 이 노래가 너무 잘 짜인 탓에, 듣는 이는 그녀의 관점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를 담는 음악 자체는 전자 음악의 댄서블함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 때문에라도 <Hopelessness>가 기억에 가장 남는 건 당연한 일이다. <힙합엘이> <비즐라 매거진> <플라워베드> 에디터 심은보

올해의 당당함

그 누가 알았을까. 꾸준히 세계에서 섹시한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섹시 디바 비욘세가 바람을 맞을 줄이야. 뛰어난 사업가로 어마어마한 재력을 과시하는 리빙 레전드 제이지가 남편이라 할지라도 그 사실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물론, 남녀 관계는 당사자들만 내막을 아는 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다만, 이 톱스타 부부의 해프닝에서 그 누구도 쉽게 깔볼 수 없는 위치의 여자도 오랫동안 세계의 주도권을 잡아온 남자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메시지를 찾아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판단에 인종이라는 또 하나의 기준이 개입되면 ‘흑인 여성은 여전히 가장 많은 차별을 받는 존재다’라는 결론에 도달할지 모른다. 그리고 비욘세는 이를 또 한 장의 완벽한 음반 <Lemonade>로 영리하면서도 격렬하게 풀어낸다. 그것도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뮤직비디오 12곡을 전부 제작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스케일로. 아무리 스웨그가 넘칠지라도 제이지는 분명 섬뜩했을 것이다. 비욘세는 그런 그에게 “Are You Cheating On Me?”라며 돌직구를 던진다. 이어 나오는 ‘Hold Up’에서는 여신의 자태를 뽐내며 야구 방망이로 소화전과 자동차 유리창을 맘껏 부수며 ‘니가 나 아니면 이만큼 됐을 것 같으냐’고 묻는다.

타이트한 운동복을 입고 콘로 머리를 한 채 거칠게 울부짖는 세 번째 곡 ‘Don’t Hurt Yourself’는 말할 것도 없다. ‘한 번만 더 그러면 아내를 잃게 될 테니 스스로 아프게 하지 말라’며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를 토해낸다. 그러니 사랑의 약속이 산산조각이 난 데서 오는 슬픔을 노래하는 ‘Sandcastle’에 제이지가 출연한 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더불어 비욘세는 남편의 외도와 그로써 생긴 자신의 감정에서 더 나아가 켄드릭 라마와 함께한 ‘Freedom’에서처럼 흑인 인권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선보일 때는 음반의 마지막 곡 ‘Formation’을 1960년대 활발하게 활동한 흑인 중심 운동 단체 흑표당 설립 50주년을 기념한 퍼포먼스로 승화한다. 그렇게 비욘세는 개인적 사건을 설령 모든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한 최대 동력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줄기를 뻗게끔 한 도화선으로 삼아 제대로 한 방 터뜨렸다. <힙합엘이> 에디터 김정원(멜로)

<밀양>

<밀양>

<밀양>

<언니들의 슬램덩크>

<언니들의 슬램덩크>

<언니들의 슬램덩크>

올해의 자괴감

시작이 좋았다.우선 보험과도 같은 훤칠한 츤데레 남자 주인공이 있었고, 만년 대리에 결혼 전날 남자한테 차이고(그것도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졌다는 이유로) 집에서까지 쫓겨난 여자 주인공에게는 위화감이 들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 괴팍하지만 마음 약한 엄마와 감수성 예민한 아빠를 볼 때는 시트콤 전성기의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같은 반에 이름이 똑같은 친구가 있어 이래저래 치이는 오해영(서현진 분)의 모습에는 개인적으로 깊은 동요도 느꼈다.

그런데 6회부터 흘러가는 전개는 오해영을 감정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만들었다. 오해영은 사랑만 주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동네방네 화내면서 주사를 부리고 다녔다. 내 사랑이 위기를 맞으면 누구한테라도 들이대서 따져도 된다는 것처럼 술을 마시고 상사에게 폭언을 하고 동네가 떠나가라 울부짖다가도 남자만 옆에 있으면 조울증 환자처럼 굴었다. 이게 사랑이라고 강요하는 걸 시청자로서 가만히 받아들여야 할까.

울다가 웃다가 먹다가 화내는 서현진이 이 드라마로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 된 건 맞지만, 오해영의 감정적 언행에는 도무지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다 알면서도 최종회까지는 봐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이른 나 때문에 제일 화가 났다. 내가 이러려고 시청자가 된 건지 자괴감이 든다. 피처 에디터 김지영

올해의 열정

각종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진 2016년이었다. 그중에서도 예능 프로그램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돋보인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 남성 중심의 예능에서 과감히 탈피해 각 분야의 다양한 사람이 ‘꿈 계모임’을 결성해 이루지 못한 각자의 꿈에 도전하는 형식이었다. 특히 민효린의 꿈 ‘걸 그룹 되기’ 편이 기억에 남는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언니쓰’라는 걸 그룹을 결성하고 노래 ‘Shut Up’으로 가요 프로그램 무대에 섰다.

이 과정이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뜨거웠던 그녀들의 열정과 동료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단순하고 진부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감정이라고 한다면, 맞다. 그렇지만 국내 예능 프로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충분히 신선하며,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뻔하디뻔한 여자들의 암투나 신경선 말고 오로지 꿈 하나로 꿈틀대던 그들은 시청하는 여자들의 마음속에 꼭꼭 숨겨놓은 꿈과 열정을 응원하게 했다. 그러므로 그녀들의 핫한 열정을 2016년 최고의 감정으로 선정한다. <알렛츠 리빙> 에디터 한유진

올해의 통쾌함

28년 인생, 그동안 숱하게 봐온 드라마에서는 언제나 여자는 바스러질 듯 약하면서 캔디처럼 밝아야 했고 남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며 능동적인 사랑을 했다. 이 룰에서 벗어난 드라마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랬다. 하지만 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공효진 분)는 좀 달랐다. 그녀는 좋아한다고 교제하자, 결혼하자 말하는 두 남자에게 “저 마음이 두 개예요”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무릎까지 꿇으며 죄송하다 빈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장면이다. 막장 요소가 다분한, 오후 8시 일일 연속극의 지질한 남자 주인공들의 모습과 아련하게 겹친다.

하지만 표나리는 그 남자들처럼 지질하지 않다. 오히려 속 시원하다. 여자의 마음에는 하나의 방이 있고 남자의 마음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어 남자의 바람기 정도는 눈감아줘야 한다는 근본 없는 문장을 표나리가 뒤집었기 때문이다. ‘왜 남자만? 여자도 방이 여러 개일 수 있어’라고. 또 <질투의 화신>에 나오는 모든 여자는 사회적 지위와 성별에서 벗어난 뜻밖의(?) 행동을 버라이어티하게 선보인다.

예컨대, 연애하고 싶어 했던 계성숙(이미숙 분)과 방자영(박지영 분)은 무성욕자라 밝힌 김락(이성재 분)을 서로 싫다 떠밀며, 김락을 외면한다. 계성숙은 “나 밝히는 여자야. 나 스킨십 좋아해. 윙크만 하는 남자랑 어떻게 사니?”라며 몸서리친다. 격식과 교양 운운하는 재벌집 사모님 김태라(최화정 분)는 본인을 가로막는 차 주인에게 창문 너머로 욕하고, 아나운서 홍혜원(서지혜 분)은 짝사랑하는 이화신(조정석 분)이 본인과의 오디션 연습에 소홀하자 거침없이 지적하고 덤으로 욕도 한다. 그뿐인가. 남자 주인공 이화신은 여자만 앓는 줄 알았던 유방암에 걸리고 심지어 난임 판정까지 받는다.

이렇듯 드라마의 모든 장면에서 여자도 성욕이 있고 때로는 이기적이게 양다리를 걸쳐 사랑하기도 하며 못된 여자가 되기를 서슴지 않는다. 흔히 봐온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의 클리셰를 깨버린 이 드라마는 시청자에게는 꽤나 흥미롭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통쾌하다. 이를 계기로 뻔하디뻔한 로맨스에도 할 말 다하면서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적 지위도 얻는 쿨한 제2의 표나리, 계성숙, 홍혜원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프리랜스 에디터 최선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올해의 분노

한강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으로 올해 출판계는 괜찮을 뻔했다. 출판 시장 전반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O tvN <비밀 독서단> 덕에 의외의 책이 조명받기도 했다. 게다가 유례없는 시 열풍이 찾아왔다. 뜬금없이 웬 시? 이유야 많겠지만, 짧은 문장이 소비되는 SNS의 특성을 간과할 수 없다.

긍정적 분위기는 최근 불거진 문단 내 성추행 사건으로 한 방에 끝났다. 솔직히 적자면 이런 이슈가 도서 판매량을 떨어뜨리지는 못한다. 어차피 도서 판매량에서 한국 문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적다. 하지만 우리 시대 문단은 부끄럽고 참혹한 현실을 문단 외부에 들켜버렸다. 지적인 집단이라고 여겨지던 ‘문단’이 사실은 부도덕하고 몰상식한 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이것이 침소봉대한 표현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은 ‘나는 안 그랬어’라든가 ‘그저 몇몇의 일탈이잖아’라는 푸념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많은 작가가 이 문제를 방조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그렇다. 가해 작가들의 책은 회수되었다. 이들의 복귀는 당분간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 중 몇몇은 가해 사실을 인정했고, 몇몇은 법적 대응 절차를 밟고 있고, 몇몇은 침묵하고 있다. 대한민국 문단은 오랫동안, 너무 오랫동안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언행 속에 존재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분노가, 글을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뻔뻔하게 느끼겠지만, 더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성추행에 대한 고백과 폭로가 문단 내 자정적인 노력에 의해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물론 김현 시인이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발표한 글 ‘질문 있습니다’가 의미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피해자들의 고백과 폭로(라는 단어가 적절한지 모르겠다)는 트위터를 통해 이뤄진다. 트위터를 예의 주시하며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남자 작가가 상당수다.

나 역시 그렇다. 이렇게 적는 거 자체가 창피하고 화가 난다. 여자 작가, 문학을 전공하는 여학생, 팬을 자처하는 여자 독자와의 술자리에서 남자 작가들은 예사로 성적 농담을 해왔다. ‘예사로’라는 단어가 적절할까 고민되지만, 딱히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고백과 폭로는 남자 작가들을 그야말로 벌벌 떨게 했다. 어쩌면 이들 중 일부는 지금 그저 소나기나 피하자는 마음으로 움츠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모면할 수는 없다. 왜 그토록 무지하고 더러웠는지 생각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도서 판매량에서 한국 문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적지만, 출판 시장에서 한국 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높다. 그 위상이 정확하고 정당한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문단은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한다. 물론 걱정은 된다. 진작 망해버린 한국 문학을 다시 한번 ‘폭망’하게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그러나 나는, 남자 작가인 내가 할 수 있을 말은 아니지만, 지금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해도 그건 의미 있는 실패일 것이라고 믿는다.

‘성추행(몇몇 사건은 성폭행이다)’이라는 분노의 이슈 속에서도 올해 기억할 만한 뉴스가 많다. 동네의 작은 서점이 책을 고르고 사는 행위에 변화를 몰고 왔다.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는 건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보다 독자를 행복하게 한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베스트셀러 집계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동네 서점은 선택의 다양성을 생각하게 한다. 대중적인 문학 잡지 <릿터>가 출간됐으며, 오은과 서윤후 등 젊은 시인들의 시집이 사랑을 받았다.

‘역사 선생님’ 설민석의 책이 ‘국정 교과서’ 논란 속에서 건강한 빛이 되고 있다. 그리고 존경받는 학자 신영복 선생이 올 초 타계했다. 우리는 이 죽음을 통해 한 시대의 종언을 깊이 인식해야 했다. 신영복은 민혁당 사건으로 수십 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군사 정권 시대의 헤게모니 안에 있다. 더 큰 절망, 더 큰 분노가 밀려온다. 작가, 프리랜스 에디터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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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KANG YE SOL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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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YE 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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