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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권장 사회

On December 19, 2016 0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캐릭터가 눈에 밟힌다. 아무래도 우리는 덕후가 되기를 권장받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플래그십 스토어 

맘 놓고 편하게 구경해본 적은 없다. 카카오프렌즈나 라인프렌즈 스토어를. 강남역이나 이태원, 가로수길이 시원스레 발길을 내디딜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 플래그십 스토어는 유독 유별나다. 그런데 등을 돌리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 하늘색 후드 티를 입고 서 있는 라이언을, 입을 삐죽이며 나를 보는(보고 있다고 하자) 샐리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사견은 아닐 거다. 강남역에 생긴 카카오프렌즈의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는 오픈 한 달 만에 45만 명이 다녀갔다.

국내에만 벌써 매장 12곳을 오픈한 라인프렌즈 스토어는 하루 방문자만 어림잡으도 2천 명에 달한다. 요즘 같은 때 커피 한 잔에 웃도는 가격으로도 제법 괜찮은 제품을 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메리트다. 양손을 한껏 올린 라이언이 새겨진 데스크 매트나 천의 얼굴을 한 레너드 스티커를 사는 데 굳이 거창한 이유는 필요 없다. 옆집 남자의 퇴근 시간은 궁금하지 않지만, 캐릭터의 사연에는 관심이 간다. 작은 발이 콤플렉스라 큰 오리발을 착용하는 튜브, 부끄러움 때문에 토끼 옷을 입고 다니는 무지, 부잣집 도시개 프로도는 모두 우리처럼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허당끼 충만한 제임스, 소심한 성격 뒤로 미스터리한 비밀을 숨긴 브라운, 다이어트에 푹 빠진 코니에게도 무관심할 수 없다.
 

 편의점 

계획 없는 소비가 제일 무서운 법이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들른 편의점에는 곳곳에 요주의 구간이 있다. 올 초부터 디즈니와 손잡은 GS 25는 디즈니 덕후를 위해 출구 없는 지대를 만들고 있다. 주로 잿밥에 관심을 가지기에 제격이다. 미키 마우스의 귀를 포인트로 디자인한 물병에 너츠를 담은 미키·미니 보틀 너츠는 6만 개만 한정 제작했다. 미니와 미키를 마주 보게 돌리면 키스하는 그림이 연출되기 때문에 세트로 구매한 덕후가 많다. 역시 케이스가 핵심인 미니언즈 우유는 진열대에 두자마자 미니언즈 빵과 자취를 감춘다. 필기구 케이스, 꽃병이나 물병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의 SNS 후기도 적지 않다.

세븐일레븐은 개콘프렌즈와 덴마크 픽미 우유를 출시했다. 어디서 본 듯 낯익은 얼굴의 캐릭터는 카카오프렌즈를 만들어낸 작가 호조의 손에서 탄생했다. 다 마시면 종이 우유갑은 버려지겠지만, 먹는 동안 희한하리만치 기분이 좋아진다. 각자 원래 먹던 우유보다 맛있어 이 우유를 선택하지만은 않았으리라 본다. 3만 개 한정으로 만든 헬로키티 보조 배터리나 12종으로 출시한 원피스의 피겨는 품절 직전까지 SNS에서 행방을 추적당했고, 지금은 경매 사이트에 이름을 올리는 중이다. CU는 꼭 찾으면 귀한 생활 소품 시리즈를 카카오프렌즈와 함께 제작했다. 머리끈이나 실핀, 네일 케어 세트, 기름종이처럼 방 한번 뒤지면 나올 법한 친근한 물건이지만 무지, 어피치, 네오, 라이언의 옷을 입어서인지 달라 보인다.
 

 맥도날드 

롯데리아나 KFC에서도 더러 캐릭터 컬래버레이션 소식이 들리지만 덕후라면 맥도날드의 해피밀을 외면하지 못한다. 다들 해피밀 세트에 딸려 나오는 장난감으로 집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다 엄마의 등짝 스매싱과 인사한 경험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어릴 때뿐 아니라 지금도 해피밀 세트 사은품의 정체를 알면 인기 드라마의 결말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마음이 뿌듯해진다.

실은 <나일론> 편집부도 한 해에 4번 정도는 예고된 해피밀 세트의 장난감을 타기 위해 점심 장소를 신사역 맥도날드로 정한다. 요즘은 산리오 장난감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린다(물론 요기를 조금 했다 싶은 정도로 작은 치즈버거와 음료, 사이드 메뉴만 시키지는 않는다). 해피밀 장난감 라인을 채우려고 감당도 안 될 정도로 햄버거를 사재기하던 사람들이 장난감만 가져오고 햄버거를 버리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슈퍼마리오 장난감이 딸려온 해피밀 대란을 기점으로, 사재기가 사회 환원으로 전환됐다. 8가지 세트를 다 모아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슈퍼마리오 장난감을 사던 사람들은 사회 환원가의 훈훈한 아이디어에 힘입어 햄버거와 주스를 소외층에 기부했다. 덕후들의 수집을 향한 열의가 선례를 만든 케이스였다.
 

 예능 프로그램 

덕후를 히키코모리 같은 외톨이로 치부하다가 좋아하는 분야를 파고드는 귀여운 전문가로 바라보기 시작한 건 예능 프로그램의 힘이 크다. 지난 9월에 접었지만 이 땅을 짚고 선 괴상한 덕후란 덕후는 모두 소개하던 MBC <능력자들>도 그중 하나다. 방 하나를 온갖 지우개로 채우던 지우개 덕후, 화면 없이 대사만 듣고도 어떤 드라마인지 알아맞히던 드라마 덕후, 눈을 가린 채 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맛만 보고 알아맞히는 도시락 덕후 등 별별 특이한 사람을 다 집합시켰다. 쓸데없는, 그러니까 돈이 되거나 어떤 이력이 되는 능력이 아닌데도 한 가지 영역에 이렇게 몰두하는 덕후를 독특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침 드라마에서 버림 받은 유부녀의 키다리 아저씨가 돼주던 멀끔한 심형탁을 친근하게 바라본 것도 MBC <나 혼자 산다>의 덕택이다. 그는 조그만 복층 원룸에 모아둔 도라에몽을 열심히 닦고 진열하면서 말까지 건넨다. 힙합 비둘기 데프콘은 스스로를 애니메이션 덕후라고 밝혔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다코타 패닝이 되지만) 험악한 인상에 묵직한 덩치를 가진 그가 키티 이불을 덮고 잘 줄이야. 덕후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덕밍아웃을 자유롭고, 자랑스럽게 하게 되었다. 유치하고 쓸데없는 것만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순수한 동심을 가진 사람으로 새 옷을 입은 셈이다.

Credit Info

EDITOR
KIM JI YOUNG
ILLUSTRATOR
KIM EUN HYE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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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KIM JI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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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EUN H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