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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남자, 우디 앨런

On December 01, 2016 0

우디 앨런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작 우리는 그와 닮은 영화 몇 편 본 것뿐인데.

 


어디서부터 이야길 꺼내면 좋을까. 우디 앨런에 대해 말이다.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올해도 역시 소소하게 몇 개의 영화관만 차지한 그의 신작 <카페 소사이어티>를 보다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알다시피 그는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서울의 날씨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할리우드 바닥에서 40년을 버틴 백발의 노장 감독. 앨런은 감독이 되기 이전, 스탠드 코미디언이었고 주간지 <뉴요커>에 가끔 글을 썼다. 클럽에서 클라리넷 연주를 한 적도 있다. 직업이 다양한 사람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해낸 행운의 사나이였고, 총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감독이 되고 말았다. 영화 평론가 F.X. 피니의 말처럼 ‘그에게 영화는 필연적인 판’이었다.

그가 잘하는 모든 것을 집대성해서 표현할 수 있는. 앨런이 의사가 되기를 바란 부모의 바람이 산산조각난 건 앨런 자신에게도, 우리에게도 결과적으로 옳았다. 모든 걸 상상만으로 만들어내는 감독도 있지만 그의 영화는 그와 너무도 닮아서 마치 모든 장면을 그의 실제 상황과 대입하도록 관객에게 지령을 내리는 것 같다.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우디 앨런: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 아주 상냥하고 밝은 성격의 아이였다. 그러던 그가 다섯 살이 되면서 심술궂게 변한 건 언젠가 사람은 죽기 마련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과거가 되는 것도 모자라 어떤 존재든 사라져버린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는 인생의 희망도 절망도 무덤덤하게 느꼈다.

영화에서 인생을 표현할 때는 더더욱 그랬다. 시작은 1977년 발표한 <애니 홀>이다. <애니 홀>이 앨런의 첫 영화는 아니지만, 로맨스 영화를 가장한 채 결국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는 서사극의 시작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앨런은 노출증에 걸린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영화에 번번이 드러내는 것에도 능수능란하다. 이 영화에서 희극 작가이자 코미디언인 ‘앨비 싱어’로 출연한 앨런은 극 중에서 엄마의 손에 이끌려 정신 상담을 받는다. 화이트 셔츠에 타이트하게 넥타이를 매고, 타탄체크 재킷을 걸쳐 입은 어린 앨비는 “우주가 팽창하면 언젠가 터져버리고 그럼 모든 게 끝장이에요”라고 시니컬하게 말한다.

앨런을 말할 때, 사랑이라는 주제를 멀리 둘 수 있을까. 상승과 하강의 기류를 선으로 그려본다면, 그의 사랑 이야기는 평행선보다 굴곡선이 훨씬 많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굴곡이 영화에도 심상찮은 영향을 끼친 탓일까. 그는 지금까지 3번의 결혼을 했다. 첫 번째 부인은 철학과 대학원생인 할렌 로젠이었고, 두 번째 부인은 배우 루이스 래서였다. 그러고 보면 그의 영화에서 결혼이 사랑의 종착지인 적이 있었나. <카페 소사이어티>에서는 버젓이 배우자가 있는 바비와 보니가 그랬다. 지금의 사랑을 버릴 자신은 없지만 미묘한 아쉬움을 두고 옛 연인을 그리워했으니까.

하지만 <환상의 그대>에 비하면 밋밋한 전개다. 이 영화에서 유부남 그렉은 비서 샐리에게 부인의 귀고리를 골라달라면서 헷갈릴 만한 눈빛을 주더니, 뒤로는 내연녀의 귀고리까지 산 용한 남자였다. 앨런은 이런 장면들로 사랑에 끝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인이 있어도 매력 있는 남자를 가만히 내버려둘 여자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는 영화 작업을 하면서도 숱한 스캔들을 일으킨 사나이니까. 그리고 세 번째 결혼으로 그의 영화 속 사연보다 커다란 파급력을 일으킨다.

연인 미아 패로와 입양한 딸 순이가 그의 부인이 될 거라는 사실을 그 누가 알았을까. 본래 커플이었던 여자에게 돌아가는 법이 없는 그의 영화 패턴처럼 인생이 마감하는 날까지 그의 사랑에는 마지막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매리얼 헤밍웨이가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우디 앨런의 영화는 별로인 적도 있다. 하긴, 인생에서 상승 곡선만 그려온 사람이 어떻게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 기대감이 도리어 무모하고 대책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후진 그림을 만들더라도 뭔가 있었다.

그는 인생이 결국 끝나버린다는 진리에 절망했지만, 그렇기에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 같기도 하다. 끝없이 사랑해왔고, 쉼없이 영화를 만들었다. 방 안에서 글을 쓸 때는 엄청난 게 나올 것처럼 기뻐했어도, 촬영장에 나오면 그저 끝내는 걸 목표로 삼는다는 걸 알지만 그 패턴은 40년간 도돌이표를 따른다. 그리고 도돌이표 안에는 사랑도 희망도 절망도 함께했다. 나 역시 고작 그와 닮은 영화 몇 편을 본 채로 몇 자 적는다. 여전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디 앨런은 반세기가 넘는 동안 영화 47편을 만들었다.
누구보다 그의 영화를 사랑하는 마니아 4명이 그중 한 작품만 꼽았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
magic in the moonlight, 2014

우선, 나는 우디 앨런(Woody Allen)만큼이나 콜린 퍼스(Colin Firth)를 좋아한다. 이 때문에 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우디 앨런의 영화는 <매직 인 더 문라이트>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어딘가 뒤틀린 우디 앨런과 뻔하지만, 그 뻔함마저도 자신의 캐릭터로 만들어낸 콜린 퍼스의 조합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백치미’를 내세우면서도 은근 정곡을 찌르는 캐릭터 소피(엠마 스톤 분) 역시 매력적이기는 마찬가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우디 앨런 최고의 영화로 꼽기에는 뭔가 좀 부족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게는 의미가 깊다. 다른 걸 다 제쳐두더라도, 영상 속 배경에 반해 촬영지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영화니 말이다. <힙합엘이> <비슬라 매거진> 에디터 심은보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vicky cristina barcelona, 2009

영화 제목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을 우디 앨런 팬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싸구려 성인 영화의 패러디 제목이라고 해도 믿을 이 제목은 사실 영화 내용과 아주 연관이 없지는 않다. 원제는 <Vicky Cristina Barcelona>. 눈부신 한여름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개성이 전혀 다른 두 친구 비키와 크리스티나의 사랑을 둘러싼 한판 소동극이 벌어진다. 주인공 두 사람을 시작으로 시도 때도 없이 사랑만 부르짖는 괴팍한 예술가, 그리고 그보다 더 괴팍한 그의 아내와 주인공의 약혼남까지 하나씩 추가되는 등장인물은 끊임없이 얽히고설키며 사랑을 갈구한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현대로 옮겨 막장극으로 빚으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이 작품은 우디 앨런의 다른 어떤 영화보다 분위기에 집중한다.

등장인물이 서로에게 빠진 만큼 지중해를 둘러싼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풍광에 푹 빠진 듯한 카메라는 시종일관 그곳의 풍부한 빛과 소리를 탐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문득 삶의 무게와 이치를 깨닫게 하는 앨런 특유의 스토리는 변함없지만, 그 이야기를 그가 평생에 걸쳐 애증해온 회색 도시 뉴욕과 정반대에 위치한 장소에서 보는 맛이 쏠쏠하다. 여행지 특유의 들뜬 분위기 연출과 ‘어글리 섹시’의 표본을 보여주는 하비에르 바르뎀의 치명적인 사랑꾼 연기도 훌륭하다. 칼럼니스트 김윤하
 

 카이로의 붉은 장미
the purple rose of cairo, 1985

우디 앨런은 얄미울 정도로 낭만과 환상을 적절히 활용하는 감독이다. 황금시대로 로맨틱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미드나잇 인 파리>와 맥을 나란히 하는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영화 속 세계를 현실로 가져온다. 영화 속 주인공이 스크린 안팎을 넘나드는 포인트도 인상적이지만, 주인공 세실리아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눈을 반짝이며 영화를 이야기하고,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세실리아의 행복한 모습.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사람만 지을 수 있는 표정. 자신을 밥 차리는 식모쯤으로 여기는 남편과 비교하면, 두 남자는 환상 그 자체였을 테다.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도 잠시. 앨런은 여기서 또 하나의 변주를 가한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두 남자의 구애에 한 남자를 선택하지만, 결국 버림받고 마는 결말은 앨런의 장기가 여실히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모두가 떠나버렸지만, 또다시 새로운 영화 속 세계를 동경하는 세실리아를 보며 이상하리만치 고개를 끄덕인 건 왜일까. 상처받아도 또 다른 사랑을 꿈꾸는 결말. 너무나 현실적인 동시에 낭만적인 결말이다. 아, 이 잔망스러운 감독 같으니라고! 작가 신혜진

 범죄와 비행
crimes and misdemeanors, 1989

결코 도덕주의자가 아니라 차라리 쾌락주의자에 가깝지만, 이상하게도 우디 앨런의 영화에는 수많은 도덕 이야기가 있다. 그에게 도덕은 지켜야 할 계율이라기보다는 ‘삶의 아이러니’ 같은 것. 그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집착하는 건 어쩌면 그런 이유다. 제목에서부터 <죄와 벌>에 대한 오마주의 느낌이 풍기는 <범죄와 비행>은 앨런의 1980년대를 마무리하는 걸작이다. 존경받는 안과 의사는 청부 살인으로 자신의 정부를 제거한다. 지혜로운 랍비는 점점 눈이 멀어간다. 속물을 비웃는 다큐 감독은 결국 자신도 속물이었다. 그의 멘토인 철학 교수는 삶의 의미를 말하지만 어느 순간 창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한다. 그리고 묻는다. ‘세상에 도덕은 존재하는가? 신은 있는가?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가?’

이렇게 요약하니 엄청나게 무거운 드라마 같지만, 앨런은 놀랍게도 인류가 수천 년간 고민해온 문제를 너무 쉽게 풀어낸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그저 그런 세속적인 이야기처럼 흘러가다 갑자기 예리한 칼날을 들이댄다. 주인공은 말한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군요. 내 이야기는 현실에 대한 거예요. 해피엔딩을 원하시면 할리우드 영화를 보러 가셔야죠.” 한때의 앨런은 삶의 씁쓸한 뒷맛과 그 서늘한 본질과 무자비한 역설을 드러내는 잔인한 감독이었다. 그 정점은 바로 <범죄와 비행>이며, 나는 이 영화가 <죄와 벌>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칼럼니스트 김형석

우디 앨런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작 우리는 그와 닮은 영화 몇 편 본 것뿐인데.

Credit Info

EDITOR
KIM JI YOUNG, kang ye sol
PHOTOGRAPHER
KIM JAN DEE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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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KIM JI YOUNG, kang ye sol
PHOTOGRAPHER
KIM JAN D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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