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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의 진화

On May 02, 2016 0

팬덤은 영원하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변모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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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썹이 별로일 때는 포스팅하지 않아요.” 발맹 티셔츠를 입은 마이클 벤야민이 말했다(그는 그냥 발맹이 아니라 H&M과 컬래버레이션한 셔츠임을 자랑스럽다는 듯 얘기했다). 어두운 차이나타운 골목에서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없었던 이유는 흰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검정 퍼 재킷 때문이었다. 재킷을 벗으며 그는 사진을 한 장 먼저 찍겠다며 친구에게 휴대전화를 넘겼다. 벤야민이 다양한 포즈를 취하자 따라 나온 친구는 연신 찰칵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그동안 나는 옆에서 목석처럼 멀뚱히 서 있었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은 그의 계정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 팔로워도 적다. 후에 그가 올린 베스트 사진은 팔로잉 수가 1만을 넘길 것이란다. 나도 이제 소위 SNS 스타의 페이지에 한 귀퉁이지만 오르게 된 거다. 그게, 그러니까 벤야민과 찍은 사진은 레이디 가가와도 연결돼 있으니 말이다.

올해로 21세 된 벤야민은 팔로워에게 ‘메이킵(또는 @maikeeb_kills)’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또 그는 가가의 극성 팬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그는 가장 ‘핫’한 스타일리스트일 뿐 아니라 클러버면서 패션 피플이다. 독특한 것은 그의 다재다능함이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가가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했다는 것. 벤야민과 같은 부류의 팬은 새로운 팬덤의 선구적 역할을 한다. 단순히 팬으로서 응원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예인이 아닌 자신을 추종하는 또 다른 팬을 만들어 낸다는 것. 2015년엔 단지 해리 스타일스나 저스틴 비버를 좋아하는 팬에 지나지 않았다면, 이제 당신도 스타가 될 수 있게 된 거다.
 

팬에서 유명인사로

수십 년간, 팬과 아이돌의 경계는 분명했다. 아이돌은 뉴스거리를 만들고 팬은 이를 좇으며 소비할 뿐이었다. 1950년대에는 만약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을 갖는 방법은 2가지뿐이었다. 잡지에서 오리거나 얼굴이 나온 사진을 사는 것. 60~70년대에는 팬레터를 써 보내거나 팬클럽에 가입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발전했다. 90년대에는 라디오를 통해 실시간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런 다음, 마침내 인터넷 홍수가 시작됐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친구인 것처럼 접근할 수 있는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이 생긴 것.

소셜 미디어는 개인의 바람을 전례 없이 대중적이고 공개적으로 나타낼 수 있게 했다. “팬은 팬덤이라는 가면을 쓰고 악명을 떨칠 수 있어요. 하지만 바깥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죠. “심리학자이자 팬덤 전문가인 린 주버니스의 말이다.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서 작은 팬클럽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바깥에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생겼죠.” 주버니스는 이런 세간의 이목을 끄는 팬을 일컬어 ‘BNF’라고 말했다. ‘Big Name Fans’의 줄임말로 믿을 수 없는 악명을 떨치는 팬을 일컫는다. 실제로 요즘 팬은 더 이상 뉴스거리의 소비자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뉴스를 생산한다. 저스틴 비버의 음반 재킷을 즐기려고만 하는 게 아닌, 음반에 직접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얘기다.
 

연예인 어시스턴트

“가가가 아니었으면 아마 팔로워는 한 명도 없었을 거예요. 아무런 페르소나도 없었을 거고요.” 벤야민이 말했다. 11세에 이집트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뒤 게이로 10대를 보내던 그는 가가의 음악에서 위로를 받았다. 그는 마침내 가족과 살던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먼 여행을 떠났다. 목표는 오직 가가의 공연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그의 대담한 행동은 인생을 바꿔놓았다. 가가의 호텔에서 집요하게 기다린 끝에 콘서트를 앞두고 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가가를 만날 수 있었고, 둘은 믿기지 않을 만큼 통하는 걸 알게 됐다. 이후 파티에도 함께 참석하며 어울리는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그 유명한 뉴스 ‘Yaaas Gaga’가 나온 것도 이때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요. 그녀가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말이에요.” 벤야민이 바인(6초짜리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사이트. ‘움짤’과 다르게 음성도 들어감)에 나온 동영상을 떠올리면서 얘기했다.

벤야민이 가가의 가장 큰 팔로워라는 데 이의는 없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패션위크와 클럽에서 가가와 찍은 사진으로 넘쳐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벤야민의 팬이 길에서 그를 목격하고 파파라치 스타일의 사진을 찍거나 보낸 편지가 올라 있다. “난 그냥 팬이 아니에요. 그녀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에요. 요즘 어떠냐고 물을 수 있을 만큼 가깝죠.” 벤야민은 자신이 다른 팬과 달리 가가와 얼마나 가까운지 설명했다. “그리고 내 팬 역시 나를 통해 가가와 같은 뭔가를 본다고 생각해요.”벤야민은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묻자 스타일리스트 일을 더하고 싶다고 했다. 또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점점 늘어나는 팬을 통해 영향력을 더 키우고 싶다는 말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가에 대한 빚을 잊지 않았다. “가가가 트위터를 무시할 때 나는 하루에 1백 번씩 트윗을 날렸어요. 그건 내 권리였어요. 앞으로도 계속할 겁니다. 내 뿌리가 거기 있으니까요.”
 

1인 미디어

6세부터 사진가이자 프로페셔널 팬으로 알려진 ‘스토커 사라’(또는 @stalkersarah로 인스타그램에, @sarahmonline으로 트위터에)는 마일리 사이러스, 드레이크 등 연예인과 함께 찍은 사진 수천 장으로 유명하다. 12세에 그녀는 플리커를 시작하며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가족의 사진도 올리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점차 전 세계에서 그녀의 콘텐츠를 본 팬의 문의가 쇄도했다. 그녀가 데미 로바토의 17세 생일 파티 사진을 올렸을 때 입소문은 절정에 달했다. 머잖아 잭 에프론과 바네사 허진스 같은 스타가 그녀를 파티에 초대했다. “처음에는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그런 파티에 갈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리고 함께 사진 찍을 줄도 몰랐고요. ‘사라, 고마워’라고 하고,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들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파트타임 파파라치와 컬렉터만으로도 사라는 바쁘다. 연예인 셀카 전문 사진가로서 명망이 높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는 흑갈색 머리에 뿔테 안경 그리고 다크 아이라인이다. 그런데 왜 이름이 스토커 사라냐고? 그녀가 13세 되던 해 가수 조나스 브라더스의 팬이 그녀가 찍은 사진을 갖다가 스토커 사라라는 이름으로 게시판에 올렸다. “한 방 먹은 것 같았죠.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어요. 기발했거든요. 헛갈리는 이름 때문에 방문자가 많은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번 방문한 사람은 바로 알더라고요. 어울리는 이름이라는걸.”

20세의 소녀는 미디어 생리도 꿰뚫었다. 그녀는 현재 트위터에 버금가는 기능을 갖춘 앱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과 구글의 검색 기능이 주류를 이룬 이 시대에 그녀의 셀카 사진 컬렉션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연예인 대리인으로서 사는 그녀에게 답이 있었다. “연예인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저스틴 비버와 함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많은 팬에게 꿈같은 일일 거예요.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이런 셀카 사진을 올리는 공간의 수요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라는 자신을 셀러브리티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 유명한 포토 블로거’라고 했다. 〈One Direction〉이나 〈Bieber show〉에 신분 검사 없이 출연할 수 있을 정도면 유명인사 아니냐고 했더니 “그들은 내 얼굴은 알지만 내 이야기는 모르잖아요”라며 시크하게 받는다.


 

집착보다 더한 강박

노래를 들으면서 소리치는 팬은 언제나 고충이 있다. 소위 ‘팬걸’이나 ‘팬보이’ 모두 노래에 대한 비평을 무조건적으로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매일 노래에 대한 본인 스스로의 해석을 이어간다. 주버니스는 ‘집착’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여성 팬에게는 말이다. “아이돌 스타에 시간을 들이고 헌신하는 팬을 바람직하지 않게 보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소셜 미디어 세대가 되면서 스타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지만 팬의 어떤 행동부터 사생활 침해라고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역시 끊이지 않는다. 그 경계를 나누기는 매우 어렵다. “소셜 미디어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곧 개인의 생활 균형도 깨트립니다. 일, 학교 그리고 일상생활이 흔들리면 그때부터 아이돌과의 관계는 물론 모든 게 끝이죠.”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젊은 팬층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슈퍼팬’이라는 자각하는 팬이 생기면서다. 아마 요즘 대다수의 팬이 아트, 픽션 그리고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데 더 큰 흥미를 느끼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이 콘텐츠는 아이돌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다. 실제로 스토커 사라가 설명했듯 슈퍼팬은 최고의 판매 촉진 방법이다. 돈 주고 만드는 PR 자료보다 효과적이다. 그렇다. 그녀 말이 맞다. 팬은 진지하게 자신의 아이돌 스타를 관찰한다. 물론 눈을 삐딱하게 뜨고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팬은 강하다. 그저 웃어넘긴다. “나이 든 팬일수록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젊은 팬은 달라요. 개나 줘. 난 내가 좋아하는 걸 남 눈치나 보면서 좋아하고 싶진 않으니까.” 주버니스의 설명이다.

 

팬의 역사에서 영광의 순간

  • 리스토마니아 | 1841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의 팬은 그의 음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무수한 기행을 저질렀다. 소문에는 보석에도 그의 사진을 새기고 그의 머리카락을 훔쳤을 뿐 아니라 콘서트에서 숱하게 기절해 실려 나갔다.

  • 비틀마니아 | 1966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에서 존 레넌은 “비틀스는 예수님보다 더 인기 있는 밴드다”라는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완전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닌 듯하다.

  • 팬이 WHO 밴드 공연에 뛰어들다 | 1973

    키스 문이 공연 도중 드럼 위로 쓰러지며 기절하자 관중이 그를 대신해 드럼 스틱을 잡았다. 매거진 <롤링 스톤>은 이 팬을 ‘올 해의 픽업 아티스트’로 선정했다.

  • 스파이스 걸스 파워 | 1996

    맨체스터 출신의 12세 엘리자베스 웨스트는 스파이스 걸스 라이선스 상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둔 게 자그마치 5천 점에 달하고, 그녀의 기록은 기네스북에 올랐다.

  • 한류 | 2011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서 공전의 히트를 하며 최고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와 동시에 한류 열풍이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퍼져 나갔다.

  • 해리 | 2011

    해리 스타일스가 자신이 속한 그룹 원 디렉션의 막내 루이 톰린슨과 한집으로 이사한 뒤 둘이 함께 산다는 것만으로 팬의 의혹은 커졌고, 게이라는 소문이 정설이 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팬도매트릭 | 2015

마이크로 블로깅 서비스 텀블러에서 팬도매트릭 서비스를 시작했다. 과학적으로 팬덤을 분석해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최고의 영화, TV 쇼, 뮤지컬 배우는 물론 별의별 것이 다 포함된다. 

Credit Info

EDITOR
KANG YE SOL
WORDS
HAZEL CILLS
ILLUSTRATOR
KELLY SHAMI

201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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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KANG YE SOL
WORDS
HAZEL CILLS
ILLUSTRATOR
KELLY SHA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