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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기자의 '한 잔'

봄날의 고블릿

On April 17, 2018 0

이 잔엔 담는 것마다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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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잔을 사용하고 싶어서 괜스레 술을 한 잔 마신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볕의 뽀송뽀송한 향기가 콧등을 때릴 때면 유난히 고블릿(goblet)에 손이 간다. 고블릿은 와인 전용 잔보다는 목이 짧고 무게감 있는 받침을 갖고 있다. 음료가 담기는 헤드 부분은 일반 잔보다 넓고 크다. 그런 형태의 잔을 고블릿이라고 한다.

금박 테두리를 두른 것, 아주 섬세하게 무늬를 넣거나 위트 있는 디자인을 입은 것까지. 대체로 고블릿은 장식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 덕에 햇빛 아래에 있을 때 유난히 그 속에 든 액체가 아름답다. 그 잔에 연한 빛깔을 가진 샴페인이나 과실주를 따라 천천히 음미할 때 분산되어 있던 에너지가 모이며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단지 시각적인 즐거움만 주는 건 아니다. 좋은 잔일수록 입술에 닿을 때의 촉감과 공간에 놓일 때의 존재감이 크다. 잔은 그런 방식으로 하루의 기분을 밝혀주는 수단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사실 고블릿의 어원은 중세 사람들이 사용하던 영어에 있다. 당시엔 컵을 통틀어 ‘고벨릿(gobelet)’이라 불렀다. 고블릿 잔이 더 재미있어지는 지점이다. 당시 서양에서 컵이라는 개념과 말 자체는 ‘성배’와 동의어였다고 하니까. 예수가 “이 포도주는 나의 피다”라고 말하며 13인의 제자들에게 건넨 잔도 바로 고블릿. 그러니까 고블릿은 성배의 아주 먼 후손쯤 되는 거다. 지난해 1월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서 열렸던 서양 식기 관련 전시 도록에선 이 잔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5세기 중반에는 지주 계급만이 은으로 만든 고블릿을 소유할 수 있었고, 일반인은 17세기 중반에서야 유리로 된 고블릿을 소유할 수 있었다”고. 성스러운 태생 때문일까, 그 우아함에 반한 예술가들이 꽤 많다.

다른 잔도 아닌 고블릿을 디자인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카이 프랑크(Kaj Franc)와 유리공예 디자인의 거장 타피오 비르칼라(Tapio Wirkkala), 스칸디나비아의 디자인 거장 알바 알토(Alvar Aalto)가 대표적. 19세기 예술가들을 사로잡았다고 알려진 독주 ‘압생트’ 역시 고블릿에 따라 마시는 술이다. 압생트 예찬가였다고 알려진 반 고흐와 드가, 보들레르와 랭보,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도 고블릿에 찰랑이는 연한 초록빛 액체를 보면서 감동했을까. 멋대로 생각하건대 감동을 하지 않기가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잔은 시간에 입히는 옷 혹은 향이다. 그래서 잔을 섬세하게 고르는 건 꽤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기분이 되고 싶다거나, 어떤 날씨라거나, 또는 누군가와 함께하기로 했을 때 옷과 향수를 고르듯이. 오늘은 예쁜 고블릿에 즐거운 시간을 담아 한 잔 해보는 게 어떨는지.

박민정 기자

박민정 기자


애주가 집안의 장녀이자, 집안 어른들로부터 제대로 술을 배운 성인 여성. 주류 트렌드와 이를 즐기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이 잔엔 담는 것마다 예술이 된다.

Credit Info

기획
박민정 기자
사진
박형인
자료출처
스코트랜드 국립박물관(www.nms.ac.vk), BBC(www.bbc.co.vk)
취재협조
이딸라(www.iittala.com), W101(www.w101.co.kr), 런빠뉴(www.lonpanew.com)
기획
박민정 기자
사진
박형인
자료출처
스코트랜드 국립박물관(www.nms.ac.vk), BBC(www.bbc.co.vk)
취재협조
이딸라(www.iittala.com), W101(www.w101.co.kr), 런빠뉴(www.lonpa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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