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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물물기행 11탄

마크 테토가 만난 현대미술가 전광영

On October 12, 2017 0

매달 미국인 마크 테토가 도예, 공예, 회화, 가구 등 한국 작가의 공방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난달의 단색 화가 박서보에 이어 이번 달에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현대미술가 전광영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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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우리의 것을 알고 지켜나가기 위한 길라잡이 ‘마크 테토’. 한옥에 살며, 한국의 고가구를 모으고 우리의 전통 악기인 거문고를 배우기까지 한국의 문화에 푹 빠져 있다. 마크 테토가 이렇게 한국 예술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있다. 그가 한국에 와서 처음 간 갤러리 ‘케이옥션’에서 한 작품을 보고 큰 울림을 받았던 것. 독특한 표현법에 빠져들어 한참을 들여다봤고, 그 후 한국 예술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각별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그 작품의 작가는 1995년 ‘집합’이라는 작품을 선보인 뒤 전 세계적인 러브 콜을 받고 있는 작가 전광영이다.

그의 작품은 1998년 시카고 아트페어에서 이례적인 매진 행렬을 기록했으며, 호주의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소개되어 있다. 현재 한국보다는 전 세계를 무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광영. 최근 할리우드 액션배우인 실베스터 스탤론이 전광영 작가의 작품 2점을 구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올해 5월에는 ‘보고시앙 재단(Boghossian Foundation)’의 초청으로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빌라 엉팡’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국제적인 문화 후원 단체인 보고시앙 재단에서 그룹전이 아닌 한 명의 작가를 위해 전시회를 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독자적인 행보를 걷고 있는 작가 전광영. 좀처럼 만나기 힘든 작가이지만 어렵사리 약속을 잡고 분당에 위치한 ‘전광영 아트센터’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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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에 위치한 전광영 아트센터에서 만난 전광영 작가와 마크 테토.

분당에 위치한 전광영 아트센터에서 만난 전광영 작가와 마크 테토.

M 안녕하세요. 작가님을 너무나 만나뵙고 싶었던 마크 테토입니다. 홍콩 펄람갤러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어젯밤에 돌아오셨다고 들었어요. 피곤하실 텐데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반갑습니다. 마크 테토 씨! 제가 요즘 정신없이 바빠서 좀체 인터뷰에 응하지 못해요. 근데 제 아들이 이건 꼭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제가 TV를 안 봐서 몰랐는데 마크 테토 씨가 매우 진지한 자세로 한국 문화를 대하고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열심이라고요. 아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오늘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어요.

M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의 문화 예술을 정작 한국 사람들은 너무 모르고 지내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이렇게 매달 세계적인 한국 작가를 만나고 있는데요. 오늘 작가님과 나눈 대화도 한국의 많은 분들과 공유하겠습니다. 하하하. 대단하네요.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제 얘기를 한 번 해볼까요? 저는 1968년 홍익대학교 서양화학과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필라델피아예술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했어요. 미국에서 제 20대를 보냈죠. 마크 테토 씨 고향이 미국이지요?

M 네. 맞아요. 그 당시 미국으로 유학을 가셨다니 놀라워요. 그즈음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 전쟁(1960~1975)이 있었지요. 네. 격동의 시대였죠. 제가 홍익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1960년대에는 일본에서 미술 공부를 한 분들이 많았어요. 그분들 아래에서 서양의 미술을 따라가는 교육을 받았어요. 이런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죠.

M 그렇다면 당시 남들과 다른 작가님만의 길을 가고 싶어서 미국으로 떠나셨나요? 계기가 하나 더 있었어요. 제가 2대 독자예요. 당시 아버지가 크게 사업을 하셨는데요. 당연히 자식들 중 유일한 아들이었던 제가 사업을 물려받을 거라 기대를 하셨죠. 근데 전 어렸을 때부터 그림이 참 좋았어요. 해를 거듭할수록 그림에 빠져들었어요.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학비며 용돈은 물론 아버지와의 연까지 모두 끊겼어요. 그때 오기가 생겼을까요? 내가 아버지를 능가할 수 있는 방법은 일단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가는 거였고, 그곳에서 더 큰 공부를 한 다음 ‘아버지, 걱정 마십시오! 제가 여기서 이렇게나 성공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작품의 프레임에도 고서의 낱장을 붙여 작업하는 건 전광영 작가만의 전매특허.

작품의 프레임에도 고서의 낱장을 붙여 작업하는 건 전광영 작가만의 전매특허.

작품의 프레임에도 고서의 낱장을 붙여 작업하는 건 전광영 작가만의 전매특허.

M 패기랄까요, 용기랄까요. 혈기왕성한 20대 청년의 오기 어린 눈빛이 떠올라요(웃음). 어휴. 그렇게 미국을 가서 후회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공부는 공부대로 해야 하고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매일 막노동을 하거나 공장에 가서 일을 했어요. 그렇게 미국에서 12년을 보냈는데요. 그 오랜 세월 동안 아버지와 딱 두 번 전화 통화를 했어요. 한 번은 미국 시간으로 새벽 2시인가 3시에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어요. 잠결에 제가 “헬로”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놈의 자식아, ‘헬로’라니. 정신 좀 차리고 한국으로 빨리 돌아와라”라고 하셨죠.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베개가 이만큼 젖어 있었어요. 자면서도 눈물이 흘러나왔나 봐요. 지금은 웃으면서 회상하지만 그때는 너무 힘든 시기였어요. 아! 이런 이야기도 괜찮으세요? 재미가 없지요?

M 아니요! 너무 재밌어요. 그때가 1970년대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반세기 전의 작가님 일대기를 듣는 거잖아요. 계속해주세요(웃음). 그때가 유독 힘들었던 이유가 또 있는데 바로 문화적인 충격이었어요. 늘 주입식 교육을 받았던 한국과 달리 그곳에서는 학생 열 명이 그리면 열 개의 다른 그림이 나오더라고요. ‘이래서 세계적인 작가가 나오는구나’라고 느꼈어요. 지구상에는 1억 명이 넘는 작가가 있어요. 그 1억 명 중에 나는 뭘까, 어디서 본 듯한 작품을 한다면 과연 내가 예술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M 1970년대면 미국의 주도 하에 전 세계적으로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할 즈음인데요. 추상표현주의의 한복판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셨어요? 늘 저만의 표현 방식으로 작품을 하고 싶었기에 상상력이나 표현법의 구속이 없는 추상표현주의는 제겐 구세주와 같았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저는 한국 사람이잖아요. 너무 멋진 예술 문화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늘 열등감을 느꼈어요. 프랑스에서 온 수잔이란 친구가 “너희 나라에는 뭐가 있냐?”라며 무시하는 발언을 했었어요. 오랜 식민지였다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당시 한국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경제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선진국이었던 프랑스 사람의 눈에는 그저 그런 후진국으로 보였었나 봐요. 그래서 제가 “까불지 마! 우리에겐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있어. 그리고 너희도 잘 아는 세계적인 작가 백남준도 있다!”라고 했죠. 그랬더니 수잔이 한 말이요. “남준 백은 한국에서 태어나기만 했잖아. 일본, 독일,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그 나라들이 만든 작가야”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정말이지 너무나 속상했어요. 맥이 풀려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어요. 그때 당시 현대미술의 메카였던 뉴욕 소호 거리에 다시 와서, 언젠가 내 작품을, 태극기를 너희네 벽에 걸겠다!라고 결심했죠. 추상표현주의 또한 ‘이건 온전한 나의 것, 우리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혹시 남들이 하기 때문에 아무런 의식 없이 따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과감하게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2009년 모리 아트센터에 전시되었던 ‘Aggregation06-JN025’. 숯검댕같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심장을 표현했다.

2009년 모리 아트센터에 전시되었던 ‘Aggregation06-JN025’. 숯검댕같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심장을 표현했다.

2009년 모리 아트센터에 전시되었던 ‘Aggregation06-JN025’. 숯검댕같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심장을 표현했다.

작업실 입구에 있는 작품 ‘Aggregation06-SE057’. 지구를 연상케 하는 입체적인 구에 음영을 주어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았다.

작업실 입구에 있는 작품 ‘Aggregation06-SE057’. 지구를 연상케 하는 입체적인 구에 음영을 주어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았다.

작업실 입구에 있는 작품 ‘Aggregation06-SE057’. 지구를 연상케 하는 입체적인 구에 음영을 주어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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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는 7000여 개, 많게는 1만여 개의 조각을 붙여 한 작품이 완성된다.

적게는 7000여 개, 많게는 1만여 개의 조각을 붙여 한 작품이 완성된다.

  • 적게는 7000여 개, 많게는 1만여 개의 조각을 붙여 한 작품이 완성된다. 적게는 7000여 개, 많게는 1만여 개의 조각을 붙여 한 작품이 완성된다.
  • 고서로 감싸고 고서를 꼰 끈으로 묶은 삼각형의 조각을 작품에 붙이고 있는 전광영 작가. 고서로 감싸고 고서를 꼰 끈으로 묶은 삼각형의 조각을 작품에 붙이고 있는 전광영 작가.
  • 자연환경 역시 작품에 많은 영감을 준다. 자연환경 역시 작품에 많은 영감을 준다.
  • 고서로 감싸고 고서를 꼰 끈으로 묶은 삼각형의 조각을 작품에 붙이고 있는 전광영 작가.고서로 감싸고 고서를 꼰 끈으로 묶은 삼각형의 조각을 작품에 붙이고 있는 전광영 작가.

M 그때 한국에 오지 않으셨다면 지금 어떤 작품을 하고 계실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미국계 한국인이라고 해야 될까요? 국적 불명의 작품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미국에서 12년간 지내다 나이 40이 다 되어 온 한국에서도 계속해서 ‘나는 누구냐? 우리 조상은 누구냐? 내 뿌리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했어요. 아내와 함께 배낭을 메고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 전국 방방곡곡의 민속 박물관을 반년 넘게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가족을 책임져야 하니까 작품 활동을 하면서 미술 학원 선생으로 겨우 생계를 잇고 있던 시점인 1995년 늦봄이었어요. 감기 몸살로 며칠째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거실에 앉아 탁자 위에 아내가 둔 물 한 잔과 약봉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어요. 얇은 약봉지 속으로 몇 알의 진통제와 소염제가 만져졌어요. 그리고 어린 시절 큰할아버지의 한약방에서 본 풍경이 떠올랐죠. 제가 강원도 시골에서 컸는데 큰할아버지가 한약방을 운영하셨어요. 거기에서 수도 없이 본 그 장면이 아직도 뚜렷해요. 하얀 모시 적삼에 견사(絹紗) 모자를 쓰고 근엄한 태도로 환자를 보던 큰할아버지의 모습과 한지로 감싸고 노끈으로 감싼 약봉지가요. 미국도 유럽도 아닌 한국적인 고유의 정서로 세계와 소통하고 싶었던 저에게 한약방의 천장에 매달린 약봉지의 이미지는 매우 강렬했고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제 작품 세계의 큰 전환점이 되었어요.

M 아! 그때부터 작가님의 작품에 한지가 쓰이기 시작했군요? 정확히 말하면 요즘 한지가 아닌 오래된 고서예요. 적게는 50년, 많게는 100년 전에 쓰인 고서들이죠. 선비들이 공부했던 책일 수도 있고요. 누구네 집안의 족보일 수도 있고 어느 가게에서 쓰던 장부일 수도 있고요. 수십 년간 서민, 양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우리 조상의 흔적이 배어 있는 책이에요. 조상의 삶을 기록하고, 애환이 배어 있으며, 정신이 어려 있는 고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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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고 유쾌한 성격의 전광영 작가와 대화 중인 마크 테토.

호기롭고 유쾌한 성격의 전광영 작가와 대화 중인 마크 테토.

2층 전시실에 걸려 있는 최신작 ‘Aggregation17-AU061(Star18)’. 강하고 세찬 노란빛에 빠져들 것 같다.

2층 전시실에 걸려 있는 최신작 ‘Aggregation17-AU061(Star18)’. 강하고 세찬 노란빛에 빠져들 것 같다.

2층 전시실에 걸려 있는 최신작 ‘Aggregation17-AU061(Star18)’. 강하고 세찬 노란빛에 빠져들 것 같다.

최근 천연 염료로 색을 낸 색색의 조각으로 작업하는 전광영 작가의 작품 앞에 선 마크 테토.

최근 천연 염료로 색을 낸 색색의 조각으로 작업하는 전광영 작가의 작품 앞에 선 마크 테토.

최근 천연 염료로 색을 낸 색색의 조각으로 작업하는 전광영 작가의 작품 앞에 선 마크 테토.

파란색의 작품은 ‘Aggregation17-SE065(Star21)’, 초록색의 작품은 ‘Aggregation17-AU063(Star20)’.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전광영 작가의 최신작이다.

파란색의 작품은 ‘Aggregation17-SE065(Star21)’, 초록색의 작품은 ‘Aggregation17-AU063(Star20)’.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전광영 작가의 최신작이다.

파란색의 작품은 ‘Aggregation17-SE065(Star21)’, 초록색의 작품은 ‘Aggregation17-AU063(Star20)’.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전광영 작가의 최신작이다.

M 평면적인 고서로 어떻게 이렇게 입체적인 작품을 만드세요? 미국은 박스 문화잖아요. 저희는 보자기 문화라고 있어요. 보자기로 물건을 감싸 포장을 하죠. 삼각형 모양으로 자른 스티로폼 조각을 고서로 싸고, 같은 고서로 꼰 끈으로 묶어요. 이 조각들을 무턱대고 붙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으로 그린 드로잉에 따라 붙이고 있어요. 여러 조각들을 모아 집합적인 구조물을 만들어요.

M 역동적인 힘이 느껴져요. 그래서 작가님의 작품에는 ‘집합(Aggregation)’이라는 제목이 붙는군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한데 모아서 ‘집합’이라 이름 붙였어요. 작품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적개는 천여 개, 많게는 만여 개의 조각들이 있어요. 만 개의 조각이면 만 개의 지문이 찍혔을 거잖아요? 수없이 많은 조상의 혼들이 모여 있는 시공간의 흔적이기도 해요.

M 고서를 이용해 조상들의 혼을 감싸는 거네요. 때론 사회적인 대립이나 충돌을 담기도 하신다고요? 반만년 역사에서 지금이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예요.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핍박해지고 있어요. 삶의 결이 어지러워지고 갈라지고 있죠. 그걸 표현한 작품이 있어요. 삭막한 현실과 무너진 우리 마음을 표현했죠. 파괴의 인류사, 물질주의와 배금주의, 수많은 국가와 민족으로 인해 생긴 상처를 작품에 남겨 인간사와 세계사의 굴곡을 투영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내가 작품 속에서 이러한 심각한 이야기를 담고 싶지가 않아졌어요. 요즘 제가 컬러 작업을 많이 하거든요. ‘이젠 나도 나이를 먹는가 보다’라고 생각해요(웃음).

전광영 작가를 대변하는 고서로 만든 삼각형 조각. 동일한 색상 내에서도 명도와 채도를 다르게 입힌 수만 개의 조각이 작업실을 메우고 있다.

전광영 작가를 대변하는 고서로 만든 삼각형 조각. 동일한 색상 내에서도 명도와 채도를 다르게 입힌 수만 개의 조각이 작업실을 메우고 있다.

전광영 작가를 대변하는 고서로 만든 삼각형 조각. 동일한 색상 내에서도 명도와 채도를 다르게 입힌 수만 개의 조각이 작업실을 메우고 있다.

M 나이가 들어서라기보다 그간 겪고 느꼈던 감정들이 어느 정도 소화되어 지금의 작업이 만들어진 건 아닐까요? 와! 마크 테토 씨의 표현이 정답인데요! 멋있어요. 이건 내가 따로 메모를 해놓아야겠어요(웃음). 요즘은 주로 오미자, 치자, 쪽 등의 천연 염료를 물들인 조각으로 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어요. 1995년부터 지금까지 열댓 번 작품 방향이 달라졌지만, 자부할 수 있는 건요. 100년, 200년 전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의 어느 누구도 하지 않은 작품이란 거예요. 저만의 작품이죠.

M 작가님 말씀대로 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할 작품이기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한국에 와서 처음 본 작가님의 작품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서, 7년이 지났는데도 지금 작가님을 찾아온 것처럼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우리의 전통적인 재료와 천연 염색을 이용한 섬세하면서 독창적인 작업을 세계가 알아줘서 너무 감사한 삶을 살고 있어요. 제가 올해로 74세예요. 100세까지 작업하고 싶어요. 의학이 더 발달한다는데요. 그때까지 할 수 있지 않겠어요?

M 분명 그러실 거예요! 고서로 만든 조각이 끝없이 채워져 세상에 단 하나뿐인 구조물로 탄생하는 작가님의 작품을 늘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토록 열정적이고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 작가의 작품과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널리 퍼트려주세요. 저도 늘 마크 테토 씨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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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보이는 작품은 ‘Aggregation17-SE067(Star23)’.

정면으로 보이는 작품은 ‘Aggregation17-SE067(Star23)’.

마크 테토(Mark Tetto)

마크 테토(Mark Tetto)

JTBC <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린 마크 테토. 한국에 산 지 7년째로, 예스러운 한옥의 매력에 푹 빠져 북촌 한옥 마을에 살고 있다. 한국 특유의 미학과 기품을 품은 작품을 좋아한다. 그리고 매달 한국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서 나눈 대화를 <리빙센스> 독자와 공유한다.

매달 미국인 마크 테토가 도예, 공예, 회화, 가구 등 한국 작가의 공방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난달의 단색 화가 박서보에 이어 이번 달에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현대미술가 전광영을 만났다.

Credit Info

기획
이경현 기자
사진
김덕창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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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현 기자
사진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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