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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물물기행 10탄

마크 테토가 만난 단색 화가 박서보

On September 08, 2017 0

매달 미국인 마크 테토가 도예, 공예, 회화, 가구 등 한국 작가의 공방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난달 도예가 이헌정에 이어 이번 달에는 전 세계적인 단색화의 대가 박서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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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우리의 것을 알고 지켜나가기 위한 길라잡이 ‘마크 테토’. 한옥에 살며, 한국의 고가구를 모으고 우리의 전통 악기인 거문고를 배우기까지 한국의 문화에 푹 빠져 있다. 이런 마크 테토가 즐겨 찾는 ‘국제갤러리’에서 큰 울림을 받은 작품이 있다. 바로 한 가지 색상 또는 비슷한 톤의 색만을 사용하고 한국의 미학은 물론 마음을 치유하는 힘까지 담은 박서보 작가의 단색화다. ‘국제갤러리’와 런던의 ‘화이트 큐브’, 파리의 ‘페로탱’ 등 세계적인 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활동 중인 박서보. 1931년생으로 올해 87세가 된, 전 세계적인 단색 화가 박서보를 만나러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서보미술문화재단을 찾아간 이야기를 소개한다.

박서보 작가와 마크 테토가 작가의 집무실에서 도록을 열람하고 있다.

박서보 작가와 마크 테토가 작가의 집무실에서 도록을 열람하고 있다.

박서보 작가와 마크 테토가 작가의 집무실에서 도록을 열람하고 있다.

M 안녕하세요. 오늘 작가님 만나러 간다고 친구들이 다들 부러워했어요. 모두 작가님 팬이에요. 그래요? 제가 오늘 감기 기운이 있어서 컨디션이 안 좋아요. 운 나쁘게도. 그래서 계속 이렇게 졸고 있었어요. 그래도 얘기를 나누다 보면 괜찮아질 거예요. 제 작업실을 둘러볼까요?

M 작가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작업실에 오다니 너무 떨려요. 이 조각상은 뭐예요? 한국에서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던 조각상이에요. 몇백 년이 흘러서 색이 다 떨어져 나갔는데 이렇게 하나둘 색을 입혀 보고 있어요. 머리통이 참 잘생겼죠?

M 그냥 두면 버려졌을지도 모르는 물건들이 작가님에 의해 새로 태어나고 있네요. 깊은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어요. 재미있어요. 저 조각상은 절에서 나온 건가요? 부처님을 형상화한 조각상이에요. 요즘 우리나라의 고가구와 달항아리, 인물화도 모으고 있어요. 우리 옛 문화에 굉장히 흥미가 생겨요.

M 작가님 종교가 불교세요? 하하하. 가짜 불교 신자예요. 제 아버지가 독실한 불교 신자였어요. 제가 어렸을 때, 정월 대보름날 새벽이면 여러 형제 중 유독 저만 데리고 골짜기로 가셨어요. 꽁꽁 얼어 있는 계곡물을 돌로 깨고 찬물에 세수를 시켰는데, 이러한 유년 시절의 여러 기억 때문인지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M 저도 한국의 불교 사상에 관심이 많아요. 원래는 기독교도이지만요(웃음).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은 사람이 범접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 같아요. 제가 지금의 ‘묘법 시리즈’를 하기 전에요. 모교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로 일했어요. 그 당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세계 최고의 미술대학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어요. 가장 먼저 대학 내에 만연한 관행과 타성을 없애려 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박서보 내쫓아라! 안 그러면 우리가 그만두겠다!’ 하고 들고일어났어요. 재단에서도 제가 그만두길 바라는 눈치였어요. 결국 자진해서 사표를 냈어요. 그때 우리 큰놈이 초등학생이었는데 사립학교여서 그런지 늘 돈을 내라고 해요. 아무 대책 없이 그만두고 나니까 경제적으로 죽을 지경인 거예요. 아이고, 빌어먹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자 했죠. 그러면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나는 누구일까’라는 반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한 게 없는 거예요. 서양 사람들이 만든 미술 이론을 살짝 뒤집어서 제 식으로 한 거밖에 더 있느냐는…. 뼛속까지 사무치게 반성을 했어요. 그때까지 제가 한 작업이 ‘원형질 시리즈’예요.

묘법 시리즈 중 하나인 ‘Ecriture(描法) No.050121’(2005).

묘법 시리즈 중 하나인 ‘Ecriture(描法) No.050121’(2005).

묘법 시리즈 중 하나인 ‘Ecriture(描法) No.050121’(2005).

서보미술문화재단의 외관.

서보미술문화재단의 외관.

서보미술문화재단의 외관.

사진작가 김용호가 흑백 촬영한 박서보 작가.

사진작가 김용호가 흑백 촬영한 박서보 작가.

사진작가 김용호가 흑백 촬영한 박서보 작가.

M 국제갤러리에 있는 작가님 도록에서 본 적이 있어요! 지금의 단색화와 달리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고 추상적이었어요. 화풍도 매우 어두웠고요. 전 전쟁 세대예요. 1931년에 태어나 1945년까지는 일제강점기를, 1950년에는 6·25전쟁을 겪었어요. 일제강점기에 일본 놈들이 저지른 만행으로 생긴 마음의 상처가 깊어요. 제 성도 제 이름도 모두 빼앗겼었죠. 그때 제 이름이 ‘아마카와 마사히로’였어요.

M 일제강점기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으신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 슬퍼져요. 그때 일본 놈들이 늘 우리를 감시했어요. 동네에서 친구랑 놀다가 한국말이라도 하면 “기미!”(일본어로 ‘너’) 하고 소리치며 쫓아왔어요. 모두가 가난했고 먹을 것도 없었죠. 저희 집 놋그릇은 물론 당시 제가 다닌 경북 안성의 ‘안성농업학교’ 설립자 동상도 가져갔어요. 녹여서 탄환을 만든다고요. 참 참혹하게 살았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제가 미국을 굉장히 싫어했어요.

M 미국은 왜 싫어하셨어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사이판이라는 섬을 불법 점거했고 미군으로부터 맹폭을 당했어요. 그때 일본 놈들이 우리한테 뭐라고 했냐면요. “미군이 승리해서 한국을 점령하면 너희들은 다 죽는다, 너희들 뼈를 가지고 목걸이와 팔찌를 만들고 피리를 만든다”라고 했어요. 어렸을 때 이런 소리를 들었으니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무섭고 싫겠어요. 그 당시 미군만 보면 뒷걸음질하며 도망쳤어요. 그때의 조국은 물론 인간의 존엄성마저 빼앗긴 가슴 아픈 절규와 불안정한 현실을 그림으로 표현한 게 ‘원형질 시리즈’예요. 시대가 만든 깊은 아픔을 죄다 작품에 토해내고 싶었어요. 먼 훗날 미국 국무성에서 미국에 1년간 체류할 수 있는 초청장을 보냈고 여러 미술 재단에서 오라고 했지만 다 거절했어요. 어린 시절 하도 세뇌를 당해서 쉽게 벗어나질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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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과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박서보 작가의 수집품.

한국의 전통과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박서보 작가의 수집품.

  • 한국의 전통과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박서보 작가의 수집품.한국의 전통과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박서보 작가의 수집품.
  • ‘Ecriture(描法) No.991226’(1999). ‘Ecriture(描法) No.991226’(1999).
  • 한국의 전통과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박서보 작가의 수집품.한국의 전통과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박서보 작가의 수집품.
젊은 시절의 사진 앞에서 단색화에 대해 설명 중인 박서보 작가. 수십 년간 매일 일기를 쓰고 있는데 이는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박서보의 행보를 일일이 찾아낼 길 없는 후학들을 위해 추적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감상적이거나 비판적인 내용 없이 사실만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젊은 시절의 사진 앞에서 단색화에 대해 설명 중인 박서보 작가. 수십 년간 매일 일기를 쓰고 있는데 이는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박서보의 행보를 일일이 찾아낼 길 없는 후학들을 위해 추적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감상적이거나 비판적인 내용 없이 사실만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젊은 시절의 사진 앞에서 단색화에 대해 설명 중인 박서보 작가. 수십 년간 매일 일기를 쓰고 있는데 이는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박서보의 행보를 일일이 찾아낼 길 없는 후학들을 위해 추적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감상적이거나 비판적인 내용 없이 사실만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M 지금도 미국이 싫으세요? 지금은 안 그래요. 안 가려고 버티고 버티다 제 나이 쉰여덟 살이 다 돼 미국으로 갔어요. 1988년이에요. 24회 서울올림픽을 개최할 때였어요. 전 세계 유명 예술가 24명을 시카고에 모아놓고 판화를 만들라고 했어요. 안 간다니까 꼭 가야 된대요. 서울올림픽을 기념하는 판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우리나라가 개최하는 세계적인 잔치잖아요. 어쩔 도리가 없어 미국에 갔어요. 그리고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니까요. 감동보다는 다민족의 수렁 같은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M 제가 뉴욕에 산 적이 있어서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그 수렁 속에 휩쓸리면 미국화되거든요. 전 미국화되는 게 엄청 싫었어요. 1975년쯤 도쿄갤러리 대표가 저보고 제발 뉴욕으로 가라는 거예요. 1년 반만 지나면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다고요. 하지만 자신도 없었고, 이토록 혼란스러운 나라지만 내 나라인 이상 이 땅에 뿌리를 박고 여기의 공기를 마시면서 작품 활동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이 지나 알렉산드라 몬로라고,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아시아미술 부문 수석 큐레이터가 저보고 그때 안 가길 참 잘했대요. 어떤 사람이라도 뉴욕에 오면 미국화된다고요. 지금도 뉴욕에 사는 제 친구들 그림을 보면, 미국 사람 그림 같아요. 불란서(프랑스)에 오래 있으면 불란서 그림이 되고요. 일본에 오래 있으면 일본 그림이 되고요. 인간은 동물이기 때문에 그 지역의 환경과 생태계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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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미술문화재단 내 박서보 작가의 작업실.

서보미술문화재단 내 박서보 작가의 작업실.

  • 서보미술문화재단 내 박서보 작가의 작업실.서보미술문화재단 내 박서보 작가의 작업실.
  • 작품에 쓰이는 한지. 다보탑이나 석가탑과 같은 오래된 유적에서 발굴되는 천 년의 종이가 바로 한지로, 쉽게 찢어지거나 끊어지지 않은 세계 최고의 종이이기 때문에 작품에 한지를 쓴다고 한다.작품에 쓰이는 한지. 다보탑이나 석가탑과 같은 오래된 유적에서 발굴되는 천 년의 종이가 바로 한지로, 쉽게 찢어지거나 끊어지지 않은 세계 최고의 종이이기 때문에 작품에 한지를 쓴다고 한다.
  • ‘Ecriture(描法) No.021009’(2002).‘Ecriture(描法) No.021009’(2002).
서보미술문화재단 내 박서보 작가의 작업실.

서보미술문화재단 내 박서보 작가의 작업실.

서보미술문화재단 내 박서보 작가의 작업실.

M 뉴욕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모여 있어요.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거의 없어요. 정체성 없이 그저 ‘뉴요커’로 사는 사람이 많아요. 서양 것을 흉내 내지 않고 제 정체성을 지킨 건 아마 부처님한테 받은 교훈 같아요. 내가 누구인가 반문할수록 미래가 캄캄해졌고, 도저히 안 될 거 같아 《노자》며 《장자》, 불교 경전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앞뒤 순서도 없이 그냥 미친 듯이 읽다 보니 결국은 나 자신을 비워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를 계기로 1967년 이후 제 작품에 커다란 변화를 꾀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묘법 시리즈’예요.

M 단색화 하면 바로 작가님의 ‘묘법 시리즈’죠. 그런데 묘법과 비워내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나요? 물에다 불린 한지를 캔버스에 붙이고 하루에 백 번 이상 계속 그어가면서 선을 만들어요. 한지가 밀리면서 나오는 부산물이 바로 선이죠. 이걸 계속 되풀이해요. 그 의미 없는 행위를 통해서 나를 비워내는 거예요. 스님이 하루 종일 목탁을 두드리면서 독경을 한단 말이에요. 저는 화가니까 연필심만 한 걸로 선과 선 사이를 계속 미는 거예요. 지금 단색 화가라고 떠드는 사람들 작품 중에 가짜 단색화가 많아요. 단색화의 기본은 행위의 무목적성이에요. 행위가 목적성을 가져서는 안 돼요. 동시에 행위의 반복성. 똑같은 것을 계속 반복을 해요. 그러면서 느끼는 작품의 물성과 더불어 정신적이며 초월적인 상태, 즉 명상을 통해 마음을 비워내고 수신을 일깨우는 행위가 전부여야 해요. 내가 평생을 하루에 14시간씩 이런 작업을 했어요. 20대부터 79세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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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 작가의 이야기를 경청 중인 마크 테토.

박서보 작가의 이야기를 경청 중인 마크 테토.

  • 박서보 작가의 이야기를 경청 중인 마크 테토.박서보 작가의 이야기를 경청 중인 마크 테토.
  • 2000년 도쿄갤러리에서의 전시 차 일본에 갔다가 후쿠시마에서 빨갛게 타는 듯한 단풍의 강렬한 색감과 자연의 위엄에 감복하여 탄생한 빨간색 단색화.2000년 도쿄갤러리에서의 전시 차 일본에 갔다가 후쿠시마에서 빨갛게 타는 듯한 단풍의 강렬한 색감과 자연의 위엄에 감복하여 탄생한 빨간색 단색화.
  • 작업실 내부. 작업실 내부.
박서보 작가가 명명한 ‘공기색’으로 칠한 단색화.

박서보 작가가 명명한 ‘공기색’으로 칠한 단색화.

박서보 작가가 명명한 ‘공기색’으로 칠한 단색화.

M 50여 년이라는 오랜 시간 불교에서 말하는 명상 혹은 수행을 해서 완성된 작품이 지금의 ‘묘법 시리즈’네요. 그런 과정을 거치는지 몰랐어요. 서양의 미술은 결과에 치중하는 반면 한국의 단색화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거 같아요. 단색화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은 미국의 미니멀리즘처럼, 모든 것을 최소한으로 표현하는 것이 단색화가 아니냐고 말해요.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죠. 하지만 지금 런던, 파리, 뉴욕, 홍콩 등에서 저의 단색화를 앞다퉈 찾는 걸 보면 인식이 바뀐 거 같아요. 제 그림 속을 면밀히 읽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은 작품 활동을 하다 보니까요. 런던의 ‘화이트 큐브’, 파리의 ‘페로탱’에서 관계자들이 막 찾아와요. 예전엔 꿈도 못 꾸던 세계적인 갤러리에서요. 아! 내가 결코 국내에서 헛되게 세월을 보내지 않았구나 생각했어요. ‘선이 많다’, ‘평면 회화인데도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바뀐다’라는 1차원적인 감상이 아닌, ‘치유를 받는다’고 느낀대요. 제 오랜 명상과 수양이 담긴 그림을 보면요.

M 지난해 6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 미술 특별전인 <단색화>전에 초대됐어요. 한국인으로는 처음 영국 최대 화랑인 화이트 큐브에서 두 달에 걸쳐 개인전을 여셨고요. 그때 출품한 1967~81년 작 ‘묘법 시리즈’ 16점이 모두 팔렸고요. 최근 홍콩 경매에서는 11년 만에 50배가 뛰어 최고가를 경신하셨다고 들었어요. 부끄럽습니다. 20세기의 미술은 벽에 걸어놓고 감상하는 데 그쳤다면요. 스트레스와 공격성이 과도한 21세기의 그림은 마치 흡인지처럼 사람을 빨아들이고 고뇌와 고통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고 있으면 편안해지고 불안한 것도 없어지고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되도록요. 그림은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거죠. 그림이 막 자기주장을 하지 말아야 하며, 색채는 그림이 아닌 치유의 도구가 되어야 해요. 지금 이 색은 내가 ‘공기색’이라고 불러요. 공기색이라고 왜 이름을 붙였냐면, 이 그림 앞에서는 내가 코를 대고 ‘흠’ 하고 호흡을 하고 싶었어요. 파리의 주 드 폼 국립미술관 관장이 이 그림을 보더니 “마음이 치유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감사한 일이죠. 

박서보 작가가 명명한 ‘공기색’으로 칠한 단색화와 그 앞에 선 작가.

박서보 작가가 명명한 ‘공기색’으로 칠한 단색화와 그 앞에 선 작가.

박서보 작가가 명명한 ‘공기색’으로 칠한 단색화와 그 앞에 선 작가.

M 뭔가 에너지가 있고 활기찬 느낌이랄까요. 등산할 때 맑은 공기를 맡았을 때와 같은 느낌이 들어요. 지금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암흑 같은 역사를 겪으면서 생긴 상처를 단색화라는 도구로 치료하셨군요. 더불어 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치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시간과 철학, 노력이 만들어낸 단색화이기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거 같아요. 요즘엔 하루에 몇 시간 작업을 하세요? 50여 년간 하루 14시간을 작업하다 보니 뇌경색이 왔어요. 빨리 발견해준 아내 덕분에 죽다가 살아났죠. 지금 많이 회복했지만 점점 다리를 끌게 되고 손의 움직임도 달라졌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하루에 8시간 정도 해요. 근데 오늘은 공친 거지. 덕분에(웃음).

M 하하하. 감사합니다. 오늘 시간을 내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내년 계획도 알려주세요. 내년에 ‘박서보 미술상’이라는 걸 만들어서 매년 우수 작가에게 1억원의 상금을 줄 계획이에요. 얼마 전 런던, 홍콩 등 해외 전시에서 팔린 작품 값 40억원을 제가 만든 서보미술문화재단에 기증했어요. 그럼 한 40년은 ‘박서보 미술상’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페로탱과 화이트 큐브에서도 적극 돕는다고 했어요. 이 모든 게 세상으로부터 받은 은덕에 대한 감사예요. 쭉 해외 전시도 예정되어 있고요. 내년 봄이면 연희동에 갤러리 겸 작업실을 새로 열 거예요. 그때 놀러 오세요. 우리 그때도 많은 얘기를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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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riture(描法) No.091129’(2009).

‘Ecriture(描法) No.091129’(2009). 

  • ‘Ecriture(描法) No.091129’(2009).
‘Ecriture(描法) No.091129’(2009).
  • 50여 년간 하루 14시간씩 작업하느라 못생겨진 손을 가리려 반지를 낀다는 박서보 작가.
50여 년간 하루 14시간씩 작업하느라 못생겨진 손을 가리려 반지를 낀다는 박서보 작가.

마크 테토(Mark Tetto)

마크 테토(Mark Tetto)

JTBC <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린 마크 테토. 한국에 산 지 7년째로, 예스러운 한옥의 매력에 푹 빠져 북촌 한옥 마을에 살고 있다. 한국 특유의 미학과 기품을 품은 작품을 좋아한다. 그리고 매달 한국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서 나눈 대화를 <리빙센스> 독자와 공유한다.

매달 미국인 마크 테토가 도예, 공예, 회화, 가구 등 한국 작가의 공방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난달 도예가 이헌정에 이어 이번 달에는 전 세계적인 단색화의 대가 박서보를 만났다.

Credit Info

기획
이경현 기자
사진
김덕창, 국제갤러리(작품 사진)

2017년 9월

이달의 목차
기획
이경현 기자
사진
김덕창, 국제갤러리(작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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